백권당

173권 담마의 거울 2025 II

담마다사 이병욱 2026. 2. 19. 07:49

173권 담마의 거울 2025 II

 

 

새벽에 커피잔을 마주 대하고 있다. 커피 맛과 향을 음미한다. 이것도 맛에 대한 갈애일까?

 

새벽 세 시대나 네 시대에 깨어난다. 다시 잠들어야 하나 귀중한 새벽 시간을 놓치기 싫어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그것은 글쓰기로 나타난다.

 

글쓰기 패턴이 변했다. 전에는 사무실 가서 썼다.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백권당으로 달려 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아파트 작은방이 사무실이 되었다.

 

새벽에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책을 읽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중에서 판매되는 교양서적을 읽는 것은 아니다. 영원한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전을 읽는다.

 

경전을 읽을 때 천천히 읽는다. 마치 커피 마시듯이 음미하며 읽는다. 진도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하루에 한두 페이지가 고작이다.

 

경전을 읽을 때 경전만 읽는 것은 아니다. 논서와 함께 읽는다. 요즘은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을 읽는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이 있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루라도 경전과 논서를 읽지 않으면 마음은 거칠어 지는 것 같다.

 

책은 읽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감명적인 문구를 발견했을 때는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한다. 그것은 글쓰기로 나타난다.

 

나의 글쓰기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할 나위 없이 경전이다. 경전에서 본 문구를 근거로 하여 쓴다. 이런 세월을 이십년 살았다.

 

수많은 글을 썼다. 블로그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글 쓴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책으로도 만든다.

 

책을 하나 만들고자 한다. 이번에 만든 책은 2025년 경전과 논서를 보고 감명받은 것에 대한 글모음이다. 책 제목은 ‘173 담마의 거울 2025 II’이다.

 

173번째 책을 만들었다. 담마에 대한 것으로 20257 21일부터 12 28일까지 6개월간의 기록이다. 목차에는 34개의 글이 있다. 폰트 사이즈 12에 종이사이즈는 B5(182.2X25.7Cm)이고 505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관습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

2. 개산책에서 옷 입은 개를 보고

3. 행복보다 행운을 바라며

4. 지름신이 강림하지 않아서

5. 어서 이 지옥을 어서 벗어나자

6. 나마루빠(名色)를 어떻게 볼 것인가?

7. 내가 평온하기를 내가 고요하기를

8. 수타니파타 완독

9. 세속철학은 희론망상

10. 아낫딸락카나숫따 법문 완독

11. 왜 세간법을 염오(厭惡)해야 하는가?

12. 부처님이 사용하신 보편어 빠알리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

13. 우다나 읽기를 시작하며

14. 단지 그런 줄 알아야

15. 고통이 행복의 모습을 하고

16. 세상의 관찰에 대한 경

17. 사띠 비구의 후예

18. 나를 욕하고 매도하는 사람이 있을 때

19. 헤마와따숫따 법문 읽기 시동을 걸며

20. 나무영산회상불보살

21. 테라와다 보살도

22. 석가도 모르고 가섭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데

23. 커피한잔의 평온

24. 죽음 앞에 당당하기, 우다나읽기를 마치고

25. 상대방의 종교를 모르면 백전백패

26. “이 나이에 뭘 하냐고?” 이번 한생으로는 부족

27. 생활속의 자애수행

28. 현실이 지옥일 때

29. 학인(學人)의 조건

30. 찰나삼매와 이익삼빠자나

31. 불행한 만큼 청정해지고

32. 법념처 이해하기

33. 오늘도 가르침에 바다에 퐁당 빠져

34. ‘마하사띠빳타나숫따(大念處經) 대역읽기 시동을 걸고

 

173 담마의 거울 2025 II_260219.pdf
2.45MB

 

 

 

그날 그날 쓰고 싶은 것을 쓴 것이다. 경전이나 논서, 법문을 읽고서 감명깊은 문구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근거로 해서 썼다.

 

학자도 아니고 수행승도 아니다. 일개 자영업자가 쓴 글을 누가 알아줄까?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쓰고 싶은 것을 썼다. 특히 불교학자출신의 승려의 글을 반박하며 쓴 것도 있다. 목차 3번에 있는 나마루빠(名色)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이 바로 그것이다.

 

나마루빠, 명색이라고 번역된다. 우리말로는 정신과 물질이다. 논서, 특히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을 보면서 나마루빠의 개념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철저하게 경전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교학자라는 사람은 이를 이름-형태로 보았다. 우파니샤드 철학에 근거한 것이다. 이를 글에서 비판했다.

 

불교학자는 논문을 발표한다. 스님은 법문을 한다. 내가 쓰는 담마에 대한 글은 무엇인가? 논문도 아니고 법문도 아니다. 그럼에도 논문처럼 썼고 법문처럼 썼다. 나 자신의 수행을 위해서 쓴 것이기도 하지만 이 글을 보는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고자 쓴 것이다.

 

진리의 글을 쓰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견(私見)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부처님 가르침을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하면 마치 어느 불교학자가 나마루빠에 대하여 이름-형태로 보는 것과 같다. 이는 다름 아닌 정법의 훼손이다.

 

경전만 읽어서는 안된다. 글만 써서는 안된다. 반드시 수행과 함께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은 큰 힘이 되었다.

 

글에서는 경전의 문구와 법문집의 문구를 근거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교학과 수행을 병행하는 것이 된다. 실제로 사무실에서 행선이나 좌선을 한 후에 글을 썼다.

 

환경이 바뀌었다. 더 이상 임대료와 관리비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아 철수한 것이다. 이제는 집이 사무실이 되었다. 앞으로 안양과 포천을 오가며 글을 쓸 것이다. 그렇다면 수행은 어디서 해야 할까?

 

나에게 있어서 수행은 행선이나 좌선이다. 특히 행선이다. 이는 행선의 맛을 조금 맛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이 수행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개념의 타파로 나타난다.

 

개념은 수행의 최대 적이다. 일체 뉴스를 보지 않는 이유이다. 당연히 TV도 보지 않는다. 드라마와 영화도 보지 않는다. 공연도 보지 않는다. 노래도 듣지 않는다. 요즘은 유튜브도 보지 않는다. 심지어 교제를 위한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다. 모두 수행에 방해되는 것들이다.

 

수행자의 삶은 어떠할까? 고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외로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의 대상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감각적 대상이나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삼매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고독한 삶을 수밖에 없다.

 

 

나는 수행자인가? 스스로 재가수행자라고 말한다. 스스로 안거를 나기도 했다. 지난 삼년 재가우안거라고 하여 매년 안거를 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철저하게 고립되는 삶을 살았다.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최근 몇 년 간의 글쓰기는 삼매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행선이나 좌선을 한 다음 삼매가 가볍게나마 형성되었을 때 그 힘으로 쓴 것이다. 마음이 가장 청정한 상태에서 쓴 것이다.

 

에이아이시(A.I)대가 되었다. 단어 몇 개만 나열해도 훌륭한 문장이 완성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금방 표가 난다. 기계적인 글쓰기의 한계로 본다.

 

에이아이시대에 글쓰는 쓸 데 없는 짓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글에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비린내가 있기 때문이다.

 

비린내는 좋지 않은 것이다. 생선비린내가 연상된다. 육고기 비린내도 있다. 그라나 경전에서는 살생하고, 학대하고, 자르고, 묶는 일, 도둑질, 거짓말, 사기와 속이는 일, 가치 없는 공부, 남의 아내와 가까이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은 아닙니다.”(Stn.242)라고 했다. 주석에서는 비린내가 나는 것은 물고기나 고기가 아니라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이다.”(Prj.II.278-283)라고 설명되어 있다.

 

누구나 고유의 비린내가 있다. 번뇌 다한 아라한이 아닌 이상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비린내가 있기 마련이다. 이는 다름 아닌 날 것의 향기이다.

 

비린내가 왜 날 것의 향기인가? 이는 수타니파타 아마간다의 경(āmagandhasutta)’ (Sn.2.2)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아마간다(āmagandha)는 날 것을 뜻하는아마(āma)와 향기를 뜻하는간다(Gandha)’의 합성어이다. 이렇게 본다면 경의 제목은날 것 향기가 된다. 이는 비린내를 뜻한다.

 

나에게도 비린내가 있다. , , 치를 뿌리로 하는 번뇌를 다 소멸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린내가 있는 것이다.

 

비린내 나는 사람이 글을 썼다. 비린내가 있어서 최대한 경전에 근거한 글을 쓰고자 했다. 또한 논서나 법문에 근거한 글을 쓰고자 했다. 그럼에도 날 것의 향기는 있을 것이다.

 

에이아이 글쓰기 시대가 되었다. 기계가 대신 글을 써 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기계글은 무미 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마치 감정 없는 로보트를 대하는 것 같다. 이럴 때 비린내 나는 글을 접하면 읽는 맛이 난다. 이를 날 것의 향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2026-02-1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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