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왜 정진의 모임이어야 하는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8. 12. 12. 08:35

 

왜 정진의 모임이어야 하는가

 

 





수 많은 모임이 있습니다. 조직이나 단체 모임일 수도 있고 취미나 종교모임일 수도 있습니다.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모임 저런 모임 하여 여러 개 있을 것입니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는 사람이라면 한 개도 없을 수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송년회라 하여 이런 모임 저런 모임에 참석합니다. 한해를 마무리 하고 새해를 다짐하는 모임의 성격이지만 대부분 한상 거하게 차려 놓고 먹고 머시는 떠들썩한 것이 되기 쉽습니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근사한 곳에서 보고 즐기는 시간을 갖기도 할 것입니다.

 

모임은 왜 갖는 것일까? 원초적 질문을 던져 봅니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추구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취미모임이라면 취미를 극대화 하기 위한 것이기 쉽습니다. 어느 모임이든지 무언가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을 때 적극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모임이든지 목적이 없는 모임은 없습니다. 그래서 추구해야 할 목적에 대하여 의미와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런데 모임에는 반드시 배울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명이서 길을 가면 그 중에 배울 사람이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목표가 뚜렷한 모임일수록 이런 경향은 강합니다.

 

주로 종교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많은 것은 아닙니다. 네 다섯개에 불과 합니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정신적 성장과 향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정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모임은 기본적으로 화합을 특징으로 합니다. 서로 싸우기 위한 모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화합해 갈 때 성장과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정진의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정진이 없는 모임이 있습니다. 불교의 모임에서 정진이 없다면 있으나마나한 모임이 되기 쉽습니다. 일반모임처럼 모여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임이라면 가나마나한 모임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 갈 때 정진의 모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승가가 대표적입니다.

 

불자들은 법회 때 마다 삼귀의 합니다. 그런데 한글삼귀의문을 보면 승보에 대하여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 합니다. 부처님(Buddha)과 가르침(Dhamma)과 승가(Sangha)라는 삼보 중에 승가가 빠진 것입니다. 어떤 이는 거룩한 스님들을 승가와 같은 것이라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승가는 자자와 포살이 있는 커뮤니티를 말합니다. 계율을 바탕으로 화합의 승가공동체입니다. 단지 스님들이 무리지어 있는 모임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런 승가공동체에서 사쌍팔배의 성자들이 출현합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인 해탈과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 승가공동체가 유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삼보중의 하나인 상가는 화합의 승가이자 동시에 정진의 모임입니다. 모든 불교단체의 모임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불교단체의 모임이 화합과 정진이 없다면 일반 취미모임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어느 모임이든지 배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있어서 모임에 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최상의 모임에 대하여 성취하지 못한 것을 성취하고, 실현하지 못한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열심히 정진한다. 그의 후계자도 자각적으로 본 것을 따라 한다.”(A3.93)라 했습니다. 그 사람과 닮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진의 모임의 가장 큰 조건 아닐까요?

 

 

2018-12-12

담마다사(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