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다기(茶器)세트도 준비됐으니 오시라!

담마다사 이병욱 2021. 4. 24. 07:14

다기(茶器)세트도 준비됐으니 오시라!


눈을 의심했다. 분명히 5000원이었다. 혹시 0이 하나 덜 붙은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보았다. 분명히 5천원이다. 다기 한세트에 5천원인 것이다. 아무리 재활용품이라 하지만 너무 싸다. 두 말 하지 않고 값을 치루고 나왔다. 이런 것을 횡재라 해야 할 것이다. 요즘 말로는 득템이다. 일본말로는 호리다시모노이다.

 


일감이 뚝 끊길 때 할 일이 없다. 글도 다 써 놓았을 때 오늘 숙제를 다 한 것 같다. 명상공간에 앉아 보지만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런 때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안에 있으면 잡념만 생긴다. 유튜브를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가서 거닐면 새로운 기분이 된다.

신록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밖에는 생명으로 넘친다. 보통 만안구청 안마당 공원에 간다. 더 멀리 간다면 명학공원이다. 옛날 수의검역소가 있던 곳이다. 그것도 심드렁하면 안양중앙시장으로 향한다. 시장은 삶의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중앙시장은 도보로 20여분 거리에 있다. 도중에 두 곳의 재활용품 매장이 있다. 한곳은 남부시장 맞은 편에 있는 그린스토어이고, 또 한곳은 은혜와 진리의 교회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굿윌스토어이다. 뒷짐지고 한가롭게 천천히 거닐면서 들어가 보는 곳이다.

 


재활용품 매장은 혹시나하며 간다. 그러나 역시나로 끝난다. 갖가지 생활용품이 있는데 여성의류가 주류이다. 늘 두리번거리며 찾는 것이 있다. 그것은 차()와 관련된 것이다. 다기가 있으면 사게 된다. 그렇게 한개, 두개 사다 보니 꽤 된다. 이번에도 호기심반 기대반으로 굿윌스토어에 들어 갔다.

다기세트 앞에서 걸음이 멈추어 졌다. 차주전자와 물식힘 그릇과 찻잔 다섯 개로 이루어진 3종세트이다. 모두 백옥처럼 흰색깔이다. 한눈에 보아도 고급이다. 이런 다기세트라면 5만만원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고작 5천원이라니!

 

 

다기세트가 어떤 연유로 재활용품 매장에 나왔는지 알 수 없다. 새로운 인연을 맺으면 그만일 것이다. 새인연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누군가 마셨을 것이지만 그런 것에 게의치 않는다. 반드시 새것을 사야 하고 명품을 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고도 주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중고상품이 많다. 자동차도 중고차이고 PC와 노트북도 중고품이다.

중고상품을 쓴다고 중고인생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쓰다 버린 것이나 사연 있는 것을 재활용한다면 새것이나 다름없다. 중고품 입장에서는 새인연을 만나는 것과 같다. 기꺼이 새인연이 되어 주고자 한다. 그러다가 인연이 다하면 또다른 인연을 찾아가면 될 것이다.

 


횡재한 다기세트를 응접탁자에 올려 놓았다. 사무실에 손님이 왔을 때 차담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다가 학교친구가 오거나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이 오기는 하지만 일년에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혹시 올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다기세트를 준비해 놓는다.

혼자 있어도 늘 바쁘다. 일감이 있으면 활력이 넘친다. 마치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선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과 같다. 바쁠 때 사람이 찾아오면 그다지 반갑지 않다. 한가할 때 사람이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자신의 편리만을 추구하는 일종의 이중심리일 것이다.

바쁘거나 한가하거나 손님이 오면 반갑게 맞이해야 한다.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건성건성 커피나 대접하여 보내려고 생각하면 안될 것이다. 먼 길을 시간내서 일부러 찾아왔다면 차대접을 해야 한다. 커피 마시면 30분이지만 차를 마시면 3시간이다. 차가 매개가 되어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차담이라고 한다. 그리고 떠날 때는 선물을 주어야 한다. 이미우이의 명상치유음악씨디가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사무실에 명상공간이 있다. 사무실 반을 칸막이하여 명상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이 공간을 다실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탁자 등 집기와 차와 관련된 각종 소품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만두기로 했다. 일년에 고작 몇 명 오는 사람을 위해서 다실을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응접탁자에 기본 다기세트로 충분할 것 같다.

 


늘 혼자 있다. 일인사업자가 일인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다. 밥도 혼밥이다. 그렇다고 외로워하지 않는다. 그대신 고독을 즐긴다. 타인에게 의지하는 외로운 나그네가 되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에서 즐거움을 찾는 고독한 수행자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때로 사람을 기다린다. 이제 다기(茶器)도 준비되어 있으니 오시라!


2021-04-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