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저 하늘 끝까지, 추억의 3•8휴게소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1. 4. 11:00
저 하늘 끝까지, 추억의 3•8휴게소에서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년시절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온통 산으로 둘러쌓인 시골에서 산 너머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았다.

어쩌다 세상 밖으로 나간다.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새로운 땅이지만 하늘은 늘 똑같다. 흘러가는 구름도 똑같고 나무도 똑같다. 다만 지형은 달랐다. 사람 사는 모습도 달랐다. 우물안을 벗어나니 새로운 세상이 있었던 것이다.

저 길 끝나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스라이 길이 사라지는 곳에도 세상이 있을 것이다. 푸른 하늘 흰 구름 끝나는 곳 너머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북으로 길을 달렸다. 좀처럼 북쪽으로 갈 일이 없다. 대부분 남쪽으로 간다. 북쪽이 가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휴전선 때문에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 저 길 끝나는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저 산 너머 미지의 땅에도 세상이 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북쪽 개념일까? 축석고개로 보고 있다. 의정부에서 포천방향으로 43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완만한 경사지를 오르게 되는데 이를 축석령이라고 한다.

축석령 이후는 갑자기 고지대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고개 너머에 펼쳐진 세상은 고개 아래 세상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남쪽에서 볼 수 없는 긴장감도 없지 않아 있다.

43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군부대를 종종 볼 수 있다. 남쪽에서는 보기 힘들다. 남쪽과 분위기가 다른 것이다. 다른 세계에 들어 온 것 같다. 산천초목의 초록이 같다고 할지라도 축석령 이북의 초록은 더 진한 것 같다.

43번을 주욱 타다 보면 이북에 이른다. 왜 이북인가? 38선 이북에 있기 때문에 이북이다. 지금은 수복된 곳이다. 그곳에 처가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처가의 고향은 포천군 영북면 자일리이다. 강포리 저수지가 있는 곳이다. 강원도와 다리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다. 작은 하천 다리를 건너면 철원이다. 큰집은 경기도이고 작은 집은 강원도인 것이다. 그래서 생활권은 가까이 있는 강원도 갈말읍이다. 결혼식 등 집안의 대소사 행사는 4키로 거리에 있는 신철원이라 불리는 갈말에서 하는 것이다. 팔팔년 이후 종종 다녔다.

어제 오랜만에 이북에 갔다. 처가 고향마을 근처에 사는 K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산정호수에서 만나기로 했다. 안양에서 차를 몰아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탔다. 그리고 구리포천고속도로 갈아 탔다.

구리포천고속도로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의정부에서 43번을 타고 축석고개를 넘어서 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를 달려야 했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든지 도로가 잘 발달 되어 있다. 구리포천고속도로도 예외가 아니다.

고속도로는 포천읍 조금 지난 곳에서 끝난다. 이후 부터는 43번을 타야 한다. 한참 북으로 올라가다 보면 38선이 나온다. 산정호수를 10여키로 남겨 놓은 거리에 해당된다. 명성산 산정호수를 말한다. 처가 마을이 있는 곳이다.

명성산은 사시사철 관광명소이다. 그런데 처가 사람들은 명성산을 울음산이라고 불렀다. 왜 울음산일까? 궁예가 이 산에서 목놓아 울었다고 해서 울음산이라고 한다. 나라가 망해서 쫓기는 몸이 되어서 이 산에 들어 오게 되었는데 나라 잃은 한으로 슬피 울었다는 것이다.

울음산이 어떻게 명성산이 되었을까? 아마 울음을 한자어로 표기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명성산 아래에서 오래 산 K선생에 따르면 한자어로 우음산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명성산은 울음산에서 유래했음에 틀림없다.

38선에 38휴게소가 있다. 처가의 마을에 갈 때 늘 지나치는 곳이다. 종종 차를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38휴게소는 일종의 관광명소라고 볼 수 있다.

평일 오전 휴게소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관광버스가 주차할 수 있는 대형주차장은 텅 비어 있다. 아마 옛날에는 관광버스가 멈추어 가는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퇴락되어 폐허가 되었다.

38휴게소는 43번 국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도가 통과하는 38선이라면 어느 곳이나 있을 것이다. 2019년 강원도 펀치볼 전적지 순례 갔었을 때 그곳 국도에서도 38휴게소가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38선은 어떤 의미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분단의 상징이다. 38선 이북과 이남이 이념으로 갈린 것이다. 그래서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

처가가 있는 고향마을은 38휴게소에서 12키로 가량 북쪽에 있다. 전쟁나기 전에는 이북이었던 곳이다. 작고한 장인의 말에 따르면 공산치하에서 살았다고 한다.

민중은 이념의 선택권이 없었다. 어느 날 선이 생겨나서 선을 넘으면 안되었다. 38선에서 다리만 넘으면 이북이다. 한탄강 너머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었던 것이다. 한탄강 영중교를 중심으로 하여 남과 북이 갈린 것이다.

영중교를 건너면 이북이다. 이제 우리 땅이 되었다. 수복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다리만 건너면 이북이라고 한 것이다.

38선 이북에는 명성산도 있고 산정호수도 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런데 축석령을 넘을 때 보다 더 초록이 짙어지는 것 같다. 휴전선 가까이 가면 더 짙어질 것이다. 그런 녹음은 평화의 녹음이라기 보다는 긴장의 녹음이다.

38휴게소는 이제 폐허가 되었다. 팔각정은 문이 잠겨져 있다. "사격장 폐쇄" 등 각종 구호가 붙어 있다. 한때 번영의 상징 '3•8만남의 광장' 상가는 마치 부도난 회사처럼 방치되어 있다.

폐허 앞에 돌비석이 있다. 두 기의 돌비석에는 '기평화통일'과 '남북통일기원'문구가 한자로 적혀있다. 한때 번영의 기념비처럼 보인다.

두 돌비석 사이에 는 칠층 석탑이 있다. 불교냄새가 물씬 풍긴다. 왠 석탑일까? 누가 만들었을까? 하나의 단서가 있다. 돌비석 문구에서 일붕 서경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일붕 서경보는 누구일까? 검색해 보니 1988년 일붕교를 창종한 스님이다.

세월은 무상하다. 이제 더 이상 예전의 38휴게소가 아니다. 그렇다면 전성기때는 언제였을까? 이는 초석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은 폐허가 된 상가동 초석은 1984년에 세워졌다. 이렇게 본다면 38휴게소의 전성기는 80년대라고 볼 수 있다.

팔팔년 처음 38휴게소를 보았다. 이후 종종 이곳에 들렀다. 이번에도 쉬어 갔다. 그러나 예전의 모습은 아니다.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것 같다. 쉬어가는 곳이 아니라 패스하는 곳이 된 것이다.

38선에 붉은 색 입간판이 우뚝 서 있다.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추억의...3•8선 휴게소'라고 쓰여 있다. 문자 그대로 추억이 된 것 같다. 나에게는 마치 "아, 옛날이여!"라며 한탄하는 것 같다.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길 끝나는 곳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미지의 세계가 있을 것이다. 43번 국도가 끝나는 곳이다.

축석령을 넘으면 다른 지형이 펼쳐진다. 38선을 지나면 이북에 간 것 같다. 43번이 끝나는 곳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미지의 땅이다.

미지의 땅에 언제 갈 수 있을까? 바위에 새겨진 것처럼 평화통일 되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내년에는 자유로운 왕래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저 하늘 끝까지 가게.

2021-11-0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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