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휴양림

통나무집 다락방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1. 15. 07:56

통나무집 다락방에서


지금은 몇 시일까? 완벽한 어둠과 고요속에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좀 더 누워 있어야 할까 일어나야 할까? 새벽 1시나 2시대라면 난감하다. 깊은 잠은 아니지만 잘 만큼 잤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밀려온다. 날 샐 때까지 게으름 필 수 없다. 늘 하던 대로 새벽 글쓰기를 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보았더니 4 43분이다. 딱 적당한 시간이다.

아래층에 내려갔다. 차를 마시기 위해서는 물을 끓여야 한다. 차는 준비되어 있다. 어제 선암사 야생차체험관에서 마시다 남은 것을 가져왔다.

 


물을 끓인 주전자와 컵과 차를 들고 다락방에 올라왔다. 어느 차인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이 지역에서 나는 차일 것이다. 차를 조금 컵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소주잔에 잘 우려 나온 찻물을 부었다. 소주잔이 찻잔이 되는 순간이다. 새벽녘 갈증이 풀렸다. 뜨거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자 속이 "짜르르"하는 것 같다.

 


여기는 낙안민속자연휴양림, 앞에 국립자가 붙는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휴양림이다. 휴양림 안에 숙소가 있어서 누구나 예약만 하면 하루 밤 머물 수 있다.

온통 나무판이다. 벽면도 천정도 모두 나무판대기로 되어 있어서 통나무집에 있는 것 같다. 자연휴양림 여러 곳을 다녀 보았지만 낙안민속자연휴양림 통나무집만한 곳이 없는 것 같다.

 

통나무집에서 잠을 자서 그런 것일까 비교적 잠을 잘 잤다. 통나무에서 어떤 물질이 나온 것인지 모른다. 흰색 벽면과는 확실히 다르다. 통나무 원목이 벽이 되고 천정이 되어서인지 안정되고 아늑한 느낌이다. 더구나 여기는 다락방이다.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이 있다. 외딴 곳, 풍광 좋은 곳에 2층짜리 전원주택을 보면 "나도 저런 곳에서 살아 보았으면"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일종의 전원주택 로망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전원주택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전국에 있는 자연휴양림을 이용하는 것이다. 통나무집에 머물면 일시적으로 꿈이 실현되는 것 같다.

 


낯선 곳에 가면 잠을 못 이룬다. 해외여행가서 호텔에서 잠을 잘 때도 잠을 못 이룬다. 휴양림에서 하루밤도 그렇다. 환경이 바뀌었을 때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나는 낯선 곳에서 왜 잠을 못 이룰까? 신경이 예민한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평소에도 수면의 질이 좋지 않다. 낯선 곳에서 하루밤은 최악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침구류에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덮고 잔 것을 또 덮고 자는 것이 영 찜찜했던 것이다.

여행 떠나기 전에 준비한 것이 있다. 덮게와 베개를 준비했다. 남이 깔고 잔 것 까지는 참을 수 있으나 남이 덮고 잔 것은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무릎담요이다. 베개는 늘 사용하던 것을 가져 갔다. 이 두가지만 있어도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을 자긴 잤다. 통나무집이어서 안정감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덮게와 베게 때문일까? 어제 6시간 운전하고 선암사 넓은 경내를 걸은 피로감 때문일까? 아무튼 시계를 보니 4시대였다.

모든 것을 소유해야 할까? 별장이 로망인 사람은 풍광 좋은 곳에 집을 짓고 살고자 할 것이다. 파도치는 바닷가가 좋아서 별장 짓고 산다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하루 종일 바다만 바라보고 살 수 없을 것이다. 하루 종일 처량하게 파도소리만 듣고 살 수 없을 것이다. 별장이 감옥이 될 수 있다.

 


공유개념에 대해 생각해 본다. 도서관을 활용하듯이 별장도 공유하는 것이다. 풍광 좋은 곳에 나홀로 별장 짓고 사는 것보다는 국립휴양림에 있는 통나무집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인터넷주문하면 최소한 한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소유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공공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공공재를 활용하는 것이다. 아파트 생활하는 것도 공공재 활용 범주에 들어 갈 수 있다. 휴양림 통나무집 활용하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공공재를 활용하면 현재 당면하고 있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많이 가진 자들은 대체로 탐욕스럽다. 어떤 방법으로 부를 형성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큰 집을 갖고 더 큰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풍광 좋은 곳에 별장도 갖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탐욕은 공동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요즘과 같은 기후위기시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이 또한 인생이다. 왔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홀로 왔지만 갈 때는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마치 인생은 나그네와도 같다.

삶을 살다 보면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자손을 남기는 것이 가장 큰 흔적일 것이다. 마치 이 세상에 와서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고교시절에 본 어느 학생프로에서 그 학생은 "저는 이 다음에 커서 기필코 아버지가 되겠습니다."라고 했나 보다.

누구나 삶의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자손을 남기든 이름을 남기든 어떤 식으로든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삶의 불청객이 되어서는 안된다.

종종 불청객에 대한 영화를 접한다. 미국 서부시대 한 평화로운 가정이 있다. 어느날 불청객이 나타났다. 주인은 호의로 잠자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불청객은 아내를 겁탈하는 등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불청객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있다. 남미를 정복한 피사로도 불청객이었다. 평화롭게 잘 사는 제국에 어느날 침입자가 나타났다. 탐욕에 눈이 먼 불청객은 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여행자는 하루밤을 머물러야 한다. 여행자가 탐욕을 내면 숙소가 망가질 수 있다. 호텔 물건이 좋다고 하여 가져가면 어떻게 될까? 내것이 아니라고 마구 사용하여 기물을 파손하면 어떻게 될까? 불청객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 시대 탐욕스런 자본가는 불청객이나 다름 없다. 더 큰 집을 소유하려 하고, 더 큰 자동차를 타고자 하고, 그림같은 별장을 갖고자 한다면 이 세상을 오염시키는 것과 같다. 마치 어느날 불청객이 가정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처럼,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것과 같다.

 


집이 내것이라 해서 아무렇게나 사용해서는 안된다. 아파트가 내소유라고 해서 아무데나 못을 박아서는 안된다. 아파트를 팔고 이사가면 누군가 들어와서 살 집이다. 휴양림 통나무집도 오늘 오전 11시까지 자리를 비워주면 오후 3시 이후에 새로운 예약자가 들어올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불을 더럽혀서 안된다. 주방기기도 함부로 사용해서 안된다. 다음 사람 쓸 것을 염두에 두고 조심해서 써야 한다.

 


휴양림에서 하루밤 머물다 가는 나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라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언젠가는 떠나 가야 할 인생이다. 인생의 오점을 남겨서는 안된다. 살다보면 흔적을 남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파괴적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 공공재를 활용하듯이 대해야 한다. 고독한 나그네가 될지언정 탐욕스러운 불청객이 되어서는 안된다.

차를 마시며 엄지로 치다 보니 날이 밝아 온다. 고요한 만추의 아침이다. 아침밥을 먹고 자리를 떠나면 누군가 이 자리에 있을 것이다. 통나무집 다락방에도.


2021-11-1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