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철골소심과 백운을 구입하고

담마다사 이병욱 2022. 4. 6. 06:44

철골소심과 백운을 구입하고


오늘도 중앙시장으로 향하고 말았다. 하나의 일감을 끝내 놓고 잠시 한가한 시간이 되었다. 오후에는 졸립다. 집중도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걷는 것이 좋다.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향했다.

오늘 중앙시장에 난초를 사기 위해서 갔다. 며칠전 하나 샀지만 양이 차지 않았다. 다 죽어가는 난을 걷어 내고 새 난을 채워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난초를 파는 할머니는 늘 그 자리에 있다. 대로변 게이트 옆이 그 자리이다. 지금으로부터 칠팔년 전에 난을 샀었을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안양에서 알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할머니에게 난 사러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전에 황룡관을 사 간 사람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기억하고 있었다. 네 종류의 난 중에서 철골소심을 권했다. 25천원짜리를 23천원에 주겠다고 했다.

철골소심은 잎이 가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이 꽃 필 때가 된 것 같다. 꽃대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 옆에 또 하나의 난이 있었다. 백운이라고 했다. 철골보다는 사이즈가 작다. 잎은 더 크다. 2만원이다.

어느 것을 사야 할까?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할머니는 두 개를 사라고 했다. 난이 잘 나가기 때문에 지금 안사면 못살 것이라고 했다. 장사속인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속는 것처럼 흔쾌히 "두 개 주세요."라고 말했다.

 


난을 하나 사고자 갔으나 두 개 사고 말았다. 43천원 들었다. 예산이 초과된 것이다. 할머니의 권유로 사게 된 것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사기 힘들 것 같아 질러 버린 것이다.

요즘 소비가 심하다. 그러나 보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보시는 그냥 주는 것이지만 쇼핑은 소유하는 것이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사는 자나 파는 자나 서로 좋은 것이다.

나는 어쩌면 쇼핑중독인지 모른다. 그래 보았자 생필품이다. 그 중에 먹거리가 대부분이다. 만원 안팍으로 쇼핑하는 것이다. 난은 어디에 속할까? 아마 문화상품 영역에 속할 것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오늘 계획에 없던 난을 소유하게 됨으로 인하여 며칠간 내핍생활을 해야 한다. 점심을 밖에서 먹지 않고 집에서 먹는 것이다. 일인사업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일과시간에 글을 쓰거나 사적인 외출이 가능하다.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밥 먹는 것도 되는 것이다.

난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 같아서는 도자기 화분에 옮기고 싶다. 그러나 할머니는 만류한다. 꽃을 보고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아마 분갈이로 인하여 식물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일 것이다.

 


난은 플라스틱 화분에 담겨 있다. 이것을 통째로 도자기 화분에 넣었다. 분갈이를 하지 않았지만 분갈이한 것처럼 보인다. 경전이 진열되어 있는 책장에 올려 놓으니 조화롭다. 이렇게 난초가 여섯 개 되었다.

난이 있으면 고상해 보인다. 열대식물만 있는 것보다 난이 있으면 품위가 있고 품격이 있어 보인다. 요즘 말로 있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재나 사무실에 난을 치는지 모른다.

 


오늘 충동구매를 했다. 권유한 것도 있지만 팔아 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난은 한개이든 두 개이든 어차피 사야할 것이었다. 마침 권유가 있어서 앞당겨서 산 것이다. 할머니는 팔아서 좋고 나는 팔아 주어서 좋았다. 서로가 좋았다. 윈윈한 것이다.

갈수록 식물이 늘어난다. 언제 또다시 식물을 구매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고가의 식물이 아니다. 몇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꾸 소유가 늘어난다. 이런 것도 탐욕일까?

최근 맛지마니까야에서 '버리고 없애는 삶의 경'(M8)을 읽었다. 수행자라면 마땅히 버려야할 44가지 유형에 대하여 지리할 정도로 반복구문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 중에 탐욕도 있다.

" '
다른 사람들이 탐욕을 부리더라도 우리는 탐욕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와같이 버리고 없애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M8)

탐욕을 버리고 없애라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번뇌를 소유하기는 쉬워도 버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버리고 없애는 삶에서 물질적인 것에 대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탐욕이나 성냄, 어리석음 같은 정신적인 것이 전부이다. 버리고 없애야 할 것은 번뇌임을 말한다.

그다지 많이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상대적일 것이다. 식물을 남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면 많이 소유한 것이 된다. 그런데 식물의 소유로 인한 번뇌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주식을 소유한 자는 번뇌를 안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유 금액이 크면 클수록 번뇌도 늘어나게 되어 있다. 이에 비하면 난 몇개 가진 것은 소유라고 볼 수 없다.

소유를 해도 번뇌가 없다면 무소유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소유는 물질적 무소유를 말하기 보다는 정신적인 것과 관련이 있다. 그가 가진 것이 없어도 정신적인 고뇌로 가득하다면 많은 것을 소유한 자가 된다.

오늘 난초 두 개를 소유하게 되었다. 소유함으로 인하여 근심과 걱정도 안게 되었다. 그러나 주식이나 부동산을 소유한 것과 비할 바가 아니다. 동물이나 사람을 소유한 것과도 비할 바가 아니다. 소유로 인하여 번뇌가 발생하겠지만 미미한 것이다.

버리고 없애는 삶은 번뇌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물질을 소유하면 번뇌도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물질이 많아도 번뇌가 없다면 무소유나 다름없다. 진정한 무소유는 번뇌가 없는 삶이다. 그리고 베풀고 나누는 삶이다.


2022-04-0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