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게스트하우스에서 불면의 밤을

담마다사 이병욱 2022. 6. 5. 06:58

게스트하우스에서 불면의 밤을

 

잠 못 이루는 도시의 밤이다. 낯선 곳에서 하루밤은 더욱더 잠 못 이루게 한다. 어떤 집착이 있길래 나는 잠을 못 이룰까? 게스트하우스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가족여행을 떠났다. 아주 작은 차에 네 명이 탔다. 차는 겉에서 보기에는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인다. 그러나 탈만 하다. 중간사이즈나 큰 것이나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목적지는 목포이다. 왜 목포인가? 여행일정을 잡다 보니 그렇게 정한 것이다. 목포에서 부터 시작하여 해남과 강진 일원의 사찰을 둘러 보는 것이다. 대흥사, 미황사, 백련사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정해진 것은 없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무려 34일 일정이다. 마치 해외여행 일정 같다. 연휴를 이용한 여행이다. 도중에 올라 가는 사람도 있다. 처음 시도해 보는 장기일정이다.

목포는 멀리 있다. 땅끝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끝에 있기 때문에 가는지 모른다. 갈데까지 가는 것이다. 더이상 갈 수 없는 곳까지 가는 것이다. 항구도시는 바다때문에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곳이다.

차를 이용한 여행에서 네비는 필수이다. 네비 없는 여행을 생각할 수 없다. 네비를 켜니 380키로 5시간 29분이 찍혔다. 경로를 보니 평소 생각한 것과 달랐다. 안양에서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그런데 네비에서는 서판교 쪽으로 가라고 했다.

두 갈래 길에서 고민했다. 평소 했던 것처럼 할 것인가 네비를 믿을 것인가? 네비 가자는 대로 따랐다. 교통량 등을 감안하여 최적의 코스를 제공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토요일 오전 아닌가.

에이아이(AI)에게 길을 맡곁다. 네비가 유도하는대로 따랐다.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으나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요즘 새로 생긴 고속도로가 많다. 경부와 서해안 사이에도 몇 개 된다. 네비가 교통량 등을 파악하여 최적의 코스로 인도해 줄 것으로 믿었다.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서판교 인터체인지에서 용인까지 가는 171번 고속도로를 탔다. 새로 생긴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용인에서부터 정체가 시작되었다.

동탄과 오산에서는 도심을 통과하게 되었다. 네비에서는 경부를 타게 하려 했다. 이럴 거라면 처음부터 경부를 탔어야 했다. 네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안성 이전에 새로 생긴 인터체인지가 있다. 어렵사리 타게 되었다. 출발한지 두 시간이 지났다. 도착도 하기 전에 지쳐 버린 것 같았다.

도로에는 차들로 가득하다.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된 듯하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안성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 주차장도 차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사 먹기 위해서 긴 줄을 섰다.

경부에서 천안-논산고속도로를 탔다. 이 구간은 막히기로 잘 알려졌다. 주말인 토요일에는 더욱더 막히는 것 같았다. 한시간 이상 서행했다. 서천에서 서해안고속도로와 합류했다. 이럴거라면 뭐하러 경부를 탔을까? 처음부터 서해안을 탔어야 했다. 네비를 믿다가 망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 두 갈래 길이 있다. 이쪽으로 갈 것인가 저 쪽으로 갈 것인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여기 두 갈래 길이 있다. 왼쪽으로 갈 것인가 오른쪽으로 갈 것인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부처님은 두 갈래에서 어느 길로 가라고 했을까? 부처님은 "이 길을 따라 잠깐만 가면 두 길이 나타난다. 그러면 왼쪽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가라."(S22.85)라고 했다. 부처님은 오른길로 가라고 했다. 당연히 바른길을 선택해야 한다.

부처님은 왼쪽길과 오른쪽길을 말했다. 이것은 방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바른길과 바르지 않은 길을 말한다. 그래서 "왼쪽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가라."(S22.85)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른길은 어떤 길일까?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로서 부처님은 이런 비유를 들었다.

"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면 우거진 숲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라.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면 늪지대가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라.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면 험준한 절벽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라.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면 풍요로운 평원이 보인다.”(S22.85)

길을 아는 자가 있다. 길을 모르는 자가 길을 물었을 때 왼쪽길로 가지 말고 오른쪽길로 가라고 했다. 그런데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도중에 숲도 만나고, 늪지도도 만나고, 절벽도 만난다. 마침내 풍요로운 초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부처님은 비유의 천재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오른쪽길은 팔정도의 길이다. 당연히 왼쪽길은 팔사도의 길이 된다. 그런데 팔정도의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숲도 있고 늪지대도 있고 절벽도 있다. 여기서 숲은 무명을 말하고, 늪지대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말하고, 절벽은 분노와 절망을 말하고, 풍요로운 초원은 열반을 말한다.

목포로 가는 두 갈래 길에서 오른쪽 길을 선택했다. 네비가 기자는대로 간 것이다. 그 결과 엄청나게 고생했다. 시간과 돈과 정력을 길바닥에 쏟아 부었다. 그때 왼쪽길로 갔었다면 어땠을까? 서해안을 탔었다면 순조로웠을 것이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빨리 가려고 오른쪽길을 선택했다가 더 늦게 가게 되었다.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이다. 처음부터 서해안을 탔었더라면 속된말로 '개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목포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 되었다. 오전 10시에 출발했으니 8시간 걸린 것이다. 방향을 잘 못 잡은 대가는 혹독했다. 네비를 믿다가 망한 것 같았다. 길이 막히는 내내 후회와 원망의 마음이 일어 났다. 그런 한편 인생길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후회와 원망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때 그 아파트를 샀어야 했는데"라며 후회 한다. "그때 그 아파트를 팔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원망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때 그 사람을 만났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한다.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며 원망한다.

순간순간 선택해야 한다. 순간의 선택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엊그제 그랬다. 동시에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하다 사고가 났다. 엉뚱한 파일을 발송한 것이다. 그 결과 고스란히 손실로 이어졌다.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후회와 원망의 감정에 지배되었다.

그때 조금만 주의 기울였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그 사람이 급하게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다. 수습이 중요하다. 사실 이런 문제는 문제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진짜문제인 것이다.

여기 두 갈래 길이 있다. 이쪽으로 가면 죽음의 길이고 저쪽으로 가면 불사의 길이다.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당연히 불사의 길로 가야 한다. 죽음의 길은 팔사도의 길이고 불사의 길은 팔정도의 길이다. 팔사도는 방향이 없이 헤매는 길이고 팔정도는 방향이 있어서 고속도로와 같은 길이다.

고속도로를 타면 목적지를 향해서 간다. 경부고속도로를 타면 종착지는 부산이 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면 종착지는 목포가 된다. 목포를 가기 위해서는 서해안을 타야 한다. 그러나 네비를 너무 신뢰한 나머지 네비 하자는대로 했다가 경부선을 타고 말았다.

 

 

무려 8시간 걸려 목포에 도착했다. 먼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유달산 근처 원도심에 있는 하얀 이층집이다. 게스트하우스 이름은 '달빛언덕'이다.

 


달빛언덕은 명소에 있다. 게스트하우스 앞에 인공폭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원도심에는 아치로 꾸며져 있어서 마치 명동같은 분위기가 난다. 손혜원 의원이 늘 말하던 창성장도 근처에 있다.

 


저녁 늦게라도 해상케이블카를 타려고 했다. 50분 대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날 아침에 타기로 했다. 그 대신 식당으로 향했다. 목포에 왔으니 삼합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삼합을 주문했다. 홍어는 안양이나 서울에서 맛본 것과 다르다. 쫀득쫀득하고 감칠맛이 난다. 수육과 묵은지와 밥을 합하여 사합이 되었다. 먹는 맛이 났다. 무엇보다 인심이다. 식당 여주인은 "여기가 전라도인데, 그것도 목포인데" 라며 퍼주듯이 말했다. 고생길을 보상 받는 것 같았다.


2022-06-0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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