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스님같지 않은 스님도 선방에서 한철 나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2. 6. 27. 08:06

스님같지 않은 스님도 선방에서 한철 나면


벗이여, 그대의 감관은 맑고 피부색은 청정하다.”(M26) 사명외도 우빠까가 말한 것이다. 우빠까는 이제 막 정각을 이룬 부처님의 상호를 보고 감탄했다. 깨달은 자의 얼굴은 맑고 깨끗한 것일까?

천장사에 염궁선원이 있다. 선방 스님들의 상호를 보니 맑고 깨끗하다. 세속 사람들의 얼굴과 비교된다. 산중에서 수행만 하고 살아서 그런 것일까? 누구나 수행을 하면 감관이 청정해진다.

 


2019
년 미얀마에 갔었다. 위빠사나 선원에서 2주 머물렀다. 매일 새벽 구계를 받아 지니며 좌선과 행선을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약간의 효과는 있었다. 공항에서 한국관광객들의 자신만만한 태도가 거슬렸던 것도 그런 것 중의 하나였다.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선방 스님들 입장에서 본다면 재가자는 어떤 모습일까? 그가 제아무리 많이 배우고 지위가 있다고 해도 비린내 나는 것으로 보일 것 같다. 머리를 기르고 속복을 입고 있는 한 그가 인격자라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6
26일 천장사 반철법회에 참석했다. 이를 반철소참법회라고 했다. 회주 옹산스님이 법문했다. 작은 인법당 안에는 스님들이 앉아 있고 법당 바깥 외실에는 재가불자들이 자리 했다.

 

 

선방스님들은 모두 가사를 수했다. 가사를 수한 모습은 당당해 보인다. 청정도론에서 '분소의를 입는 수행고리'에 대한 게송을 보면 악마의 군대를 쳐부수기 위해 분소의를 입는 수행자는 전쟁터에서 빛난다. 갑옷으로 무장한 전사처럼.”(Vism.2.22)이라고 했다.

 


스님들은 삭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단정해 보였다. 한치의 빈틈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감관은 맑고 깨끗해 보였다. 법회는 칠정례, 청법게, 입정, 소참법문 순으로 진행되었다.

회주스님의 법문이 시작 되었다. 안거를 시작한지 한달 보름만에 법문한 것이다. 일종의 중간점검이고 경책법문이다. 이는 회주스님이 성성적적 하던가요? 또렷또렷하던가요? 고요하던가요?”라며 물어 보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절에 산다고 하여 저절로 깨닫는 것은 아니다. 정진해야 힌다. 경허스님은 목에 칼을 대 놓고 정진했다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도 정각을 이룰 때 용맹정진 했다는 사실이다.

요즘 빠다나경(정진의 경, Sn.3.2)을 암송하고 있다. 애써 외운 것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암송하고 있다. 25개나 되는 긴 길이의 경이다. 그것도 빠알리어로 외웠다. 그런데 경을 보면 후대 귀감이 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악마와 사투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러한 정진에서 오는 바람은 흐르는 강물조차 마르게 할 것이다.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는 나에게 피가 어찌 마르지 않겠는가.”(Stn.435)

목숨을 건 정진이다. 피가 마르도록 정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마음가짐부터 다 잡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초기경전을 보면 "내가 치아를 치아에 붙이고 혀를 입천장에 대고 마음으로 마음을 항복시키고 제압해서 없애 버리는 것이 어떨까?"(M100)라며 정진하는 장면이 있다.

회주스님이 반철소참법문을 한 이유는 분명하다. 스님들을 경책하고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다. 일종의 중간점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경허스님의 깨달음의 기연을 들려 주었다. 콧구멍 없는 소, 무비공 이야기를 말한다. 의심에 사무쳐 있는 자에게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 깨달음의 기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산대사는 새벽 닭 우는 소리에 깨달았다고 한다. 만공스님은 예불 종소리를 듣고 깨달았다고 한다. 깨달음의 기연으로 화두가 타파 된 것이다.

회주스님은 깨달음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 했다. 깨달음은 분명히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은 깨달음에 대해서 숨바꼭질의 비유로 설명했다. 숨바꼭질놀이하면 찾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깨달음도 찾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이치가 분명히 있다고 했다.

회주스님 소참법문에서 가장 공감한 것이 있다. 이번에 글로 쓸려고 했는데 놀랍게도 똑같은 말을 한 것이다. 그것은 "땡땡이 중으로 살아도 선방에서 한철 정진하면 업장이 무너집니다."라는 말이다.

여기 계행이 엉망인 스님이 있다. 이런 스님에 대해서 사람들은 땡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스님을 무시하지 말라고 했다. 한국테라와다불교 이사장 빤냐완따 스님에게 들은 것이다. 땡중이라도 발심해서 선방에서 한철 살면 생사윤회를 벗어난 성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회주스님이나 빤냐완따스님이나 공통적으로 안거 수행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스님같지 않은 스님도 선원에서 한철 용맹정진하면 도인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도와 과를 이루는데 있어서 출가자가 재가자보다 월등히 유리하다. 재가자가 제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어도 선원에서 한철 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다. 이론만 가지고는 깨달을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러나 스님같지 않은 스님이라도 선방에서 한철 정진한다면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거리에서 스님같지 않은 스님을 마주치면 반배라도 해야 하는 이유에 해당 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하늘을 나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백조의 빠름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재가자는 멀리 떠나 숲속에서 명상하는 수행승, 그 성자에 미치지 못한다.” (Stn.221)

숫따니빠따에 실려있는 게송이다. 빠름에 있어서 재가자는 출가자를 따라잡을 수 없음을 말한다. 이를 공작과 백조의 비유로 설명했다.

재가자는 공작새와 같다. 재가자는 공작처럼 화려해 보이지만 멀리 날지 못한다. 출가자는 백조와도 같다. 백조는 깨끗한 이미지와 함께 멀리 높이 날아 간다. 나이 어린 사미라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어리다고 해서 깔보지 말아야 할 것 네 가지가 있다. 왕족, , , 수행승을 말한다. 왕족으로 태어난 왕자는 나중에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깔보아서는 안된다. 뱀이 작다고 하여 깔보면 물렸을 때 독으로 죽을 수 있다. 아무리 작은 불이라도 방심하면 큰 불이 되어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 이제 갓 출가한 수행승이라도 없신여겨서는 안된다. 왜 그럴까?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알 수 있다.

계행을 지키는 수행승이
청정의 불꽃으로 불타오르면
아들과 가축이 없어
그 상속자들은 재산을 알지 못하리.
자손이 없고 상속자가 없으니
그들은 잘린 종려나무처럼 되네.”(S3.1)

사미가 어리다고 깔보거나 없신여겨서는 안된다. 사미는 재가자와 달리 매우 빨리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재가의 성자도 이제 갓 출가한 사미에게 예경해야 된다고 했다.

재가자는 빠름에 있어서 출가자를 따라 잡을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깨달음에 있어서 재가자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재가자는 현실의 삶을 살아야 한다. 생업이 있기 때문에 선원에서 한철 집중수행 하기 힘들다. 그러나 출가자는 걸림이 없기 때문에 수행에 전념할 수 있다. 스님같지 않은 스님이라도 선방에서 한철 나면 성자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반철소참법회가 끝났다. 점심은 찰밥이다. 찰밥에 콩과 밤이 들어간 특식이 제공되었다. 모두 일곱 명이서 식사했다. 어제 토요법회가 있었기 때문에 나오지 못한 법우님들이 많았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주지스님과 커피를 마셨다. 중현스님이 손수 원두커피를 만들어 주었다. 마치 차 마시듯이 찻잔에 따라 주었다. 비우면 다시 따라 주곤 했다. 다섯 명이 함께 마셨다. 수월거사님, 길상화보살님, 길상화보살 친구분, 그리고 해미에 사는 법진 법우님을 말한다.

 


커피를 마시고 난 다음 다섯 명은 안면도에 갔다. 홍성에 사는 수월거사님이 운전기사가 되었다. 안면도 이곳저곳 구석구석 돌았다. 차 안에서 이야기꽃이 피었다. 무려 6시간 동안 함께 했다. 주로 법에 대해서 이야기 했기 때문에 법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천장사 법우모임은 유쾌하다. 서로가 서로를 챙겨준다. 10년 모임이다 보니 유대관계가 끈끈하다. 부부팀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법회가 끝나면 차담을 하고 사찰순례를 한다. 코로나도 끝났으니 주지스님과 함께 하는 순례가 재개 될 것 같다. 형제보다 더 가까운 끈끈한 우정의 모임이다.


2022-06-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