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암송의 새로운 발견

담마다사 이병욱 2022. 7. 5. 08:10

암송의 새로운 발견


열대의 밤이다. 살기 힘든 계절이 되었다. 에어컨을 가동해 보지만 그때뿐이다. 숨이 턱턱 막히고 찐득찐득하고 불쾌한 열대의 밤에 잠을 못 이룬다.

잠을 자는둥 마는둥 했다 수면의 질이 좋지 않다. 더 이상 누워 있을 수 없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앉았다.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는 것이다.

어제 저녁 늦게 부터 편두통이 왔다.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다. 편두통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잘 알기에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하던 것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편두통이 시작되면 타이레놀에 의지 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타이레놀에 의지하여 시간 보내다 보면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쉬는 것이다. 눈을 감고 지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것이다.

편두통은 가볍게 왔다. 시작될 기미가 보였을 때 일을 멈추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 이번에는 타이레놀 대신에 환약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서산 보광당 한약방의 백중환을 말한다. 관절, 손발저림, 혈액순환에 좋은 약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중풍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백중환 삼십알가량을 두 차례 나누어 먹었다 잠자기 전에 한번 먹고 새벽에 한번 먹었다. 백중환 효과가 있어서일까 더 이상 편두통은 일어나지 않았다.

열대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새벽에 깨어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대로 앉아 있으면 멍때리기가 될 것 같았다. 잡생각도 끊임없이 올라 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서 경행을 하는 것이다.

작은 방을 거닐었다. 불과 오보도 안되는 방을 거닐어 보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잡생각만 일어 났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나만의 방법이 있다. 암송하는 것이다. 경을 암송하면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 간다는 것은 해 보아서 알고 있다.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숫따니빠따 제 삼품 두 번째경에 실려 있는 정진의 경을 말한다. 부처님이 보살이었을 때 성도과정에서 악마와 싸워서 승리한다는 서사시로 구성되어 있다.

빠알리어로 되어 있는 빠다나경 이십오게송을 암송했다. 경행을 하면서 암송했다. 새벽이어서인지 잘 떠오른다. 일과시간에 암송하는 것과 확실히 차이가 있다. 일과시간에 암송하면 잘 막히는데 새벽에 암송하면 막힘이 별로 없다. 다음 단어가 금방금방 올라오는 것이다.

빠다나경 이십오게송은 이십분 가량 걸린다. 잘 떠오르면 더 단축된다. 그런데 경을 암송하는 과정에서 집중이 된다는 것이다. 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 했을 때 전혀 다른 상태가 되어 버린다. 집중된 상태가 된 것이다. 이 상태를 내버려 둘 수 없다. 경행에 활용하는 것이다.

단지 가볍게 걷기만 하면 경행이 된다. 좌선하다 몸풀기 정도로 생각한다면 경행이 된다. 그러나 행선은 다르다. 행선은 집중된 상태이기 때문에 경행이라 하지 않고 행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암송을 하고 나면 집중된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이 집중된 힘을 경행에 이용하면 행선이 된다.

육단계 행선을 했다. 발을 들어서 올리고 밀고 내리고 닿고 누르는 과정을 말한다. 집중이 된 상태에서는 여섯 단계가 잘 보인다. 하나하나 동작이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선명하고 또한 각 단계를 알아차리는 마음이 일어난다.

모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이다. 발을 들 때 이를 아는 마음도 있다. 이는 물질과 정신에 대한 것이다. 발을 드는 것은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의도가 있어서 행위가 있다. 이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것이다.

행선을 하면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가 생겨난다. 오로지 행위와 이를 아는 마음만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자아와 같은 개념이 있을 수 없다. 아뜨만이나 영혼과 같은 어떤 변치 않는 자아가 있어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신-물질적 과정만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위빠사나 십육 단계 지혜 중에서 제 일 단계 지혜라고 한다.

행선을 하면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가 생겨난다. 의도가 원인이고 행위가 결과인 것이다. 또한 행위가 원인이 되고 이를 아는 마음은 결과가 된다. 조건발생해서 소멸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발생할 때는 조건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소멸할 때는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원인과 결과를 아는 것에 대하여 위빠사나 십육 단계 지혜에서 제 이 단계 지혜라고 말한다.

행선이 잘 되면 오로지 몸과 마음만 있는 것 같다. 동작과 이를 아는 마음만 있는 것이다. 집중이 된 상태에서는 동일한 행위를 수없이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다. 한시간 내내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모두가 암송의 힘 때문이라고 본다.

암송을 하면 전혀 다른 상태가 된다. 몸과 마음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찌뿌둥한 몸은 경쾌한 몸으로 만들어 준다. 온갖 잡념으로 가득한 마음은 평온한 마음으로 만들어 준다. 마치 요술 부리는 것 같다. 암송의 새로운 발견이다.

암송을 하면 집중이 된다. 이 집중된 힘으로 어느 것에든지 할 수 있다. 집중된 힘을 경행에 이용하면 행선이 된다. 한동작한동작 알아차림이 강해지는 것이다. 집중된 힘을 좌선에 이용하면 위빠사나가 된다. 호흡을 따라가면서 호흡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한시간 행선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런 상태라면 한시간 좌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암송의 힘을 일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은 집중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암송으로 집중된 힘을 일에 적용했을 때 효율이 높아지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물론 암송의 힘을 공부에 적용할 수도 있다. 공부 역시 집중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집중을 필요로 한다.

아침이 되었다. 암송을 하고 행선을 하고 좌선을 했다. 행선과 좌선을 언제까지나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멈추었다. 가능성만 확인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새벽에 암송하고 행선하고 좌선하는 것은 거저먹기가 되는 것 같다. 잠을 자고 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마치 흙탕물이 가라 앉은 것 같은 새벽에 행선이나 좌선을 하면 날로 먹는 것 같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암송하는 것이다. 암송으로 집중된 힘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암송에서 집중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암송하는 것은 일종의 수념(anussati)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마흔 가지 사마타 명상 주제에 해당된다.

새벽암송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전혀 다른 상태가 되었다. 더 이상 편두통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잡념이 없어진 것이다. 행선을 하면 단계가 보이고 좌선을 하면 호흡이 보인다. 이 모두가 암송으로 집중된 힘에 따른 것이다.

 


오늘도 하루일과가 시작된다. 오늘 아침은 밤호박으로 때웠다. 해남 특산품이다. 해남에 귀촌한 친구가 보내 준 것이다. 전자렌지에 칠분 데워서 식혀 먹으면 밤 맛이 나는 밤호박이 된다. 제철에 나는 최상의 웰빙식품이다. 오늘도 빠다나경 암송과 함께 하루일과가 시작되었다.


2022-07-0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