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어떤 존재로도 형성되지 않기 위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22. 7. 25. 10:55

어떤 존재로도 형성되지 않기 위하여

 

 

여인초 기세가 좋다. 커다란 잎파리가 사람 얼굴보다 더 크다. 말려진 잎파리가 펼쳐질 때 생명의 신비를 느낀다. 여인초뿐만 아니다. 돈나무에서는 연두색의 대가 불쑥 솟았다. 인도고무나무 꼭대기에서는 계속 새로운 잎파리를 만들어 낸다.

 

 

사무실은 온통 식물로 가득하다. 여름 생장기를 맞이하여 여기저기에서 대가 올라온다. 물만 주었을 뿐인데 스스로 알아서 자라는 것 같다. 생장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하물며 축생은 어떠할까?

 

형성이라는 말이 있다. 상카라를 번역한 말이다. 형성을 뜻하는 상카라는 유정중생의 조건과도 같다. 그래서 삼계와 육도를 설명할 때 형성조건이라고 한다.

 

인간의 경우 형성조건은 오계이다. 축생은 우치와 탐욕이다. 아수라는 진애이고, 아귀는 인색이고 지옥은 잔인과 살해이다. 천상은 어떨까?

 

 

욕계천상의 형성조건은 믿음과 보시와 지계이다. 색계는 색계선정을 닦으면 되 고무색계는 무색계 선정을 닦으면 된다.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맛지마니까야를 읽고 있다. 머리맡에 있어서 틈만 나면 열어 본다. 오늘 새벽에 120번 경을 읽었다. 경의 제목은 형성의 생겨남에 대한 경이다. 빠알리어 제목은 상카루빠빳띠숫따(sakhārupapattisutta)’이다. 경에서는 소망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 돈을 쫓아 가지만 더 멀리 달아날 뿐이다.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까진다. 마치 주식시장에서 단타매매로 돈을 벌어 벌려고 하지만 잔고만 줄어들 뿐이다. 탐욕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그것은 부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만들면 될 것이다. 베풀고 보시하는 삶을 산다면 부자가 될 것이다. 설령 이번 생에서는 되지 못할지라도 다음생은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서원이 필요하다.

 

맛지마니까야 120번 경에서는 여러가지 서원이 있다. 가장 먼저 왕족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지위가 높은 자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서원하는가?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내가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부유한 왕족들의 일족으로 태어났으면!”(M120)라고 서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교는 서원의 종교이다. 불교는 기도의 종교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불교 스님들은 기도를 한다. 에스엔에스에서 어떤 스님은 매일 기도문을 올린다. 말미에 해 주서소!”라며 끝을 맺는다. 부처님 대신 하나님을 집어 넣으면 유일신교의 기도문처럼 보일 것 같다.

 

부처님 가르침에 기도는 보이지 않는다. 부처님은 스스로 안내자라고 했다.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나는 다만 길을 안내하는 자입니다.”(M107)라고 했다.

 

 

바라문이여, 열반이 있고 열반에 이르는 길이 있고 내가 안내자로서 있는데, 나의 제자들이 나에게서 이와 같이 충고를 받고 가르침을 받고, 어떠한 이들은 궁극적인 목표인 열반을 성취하고 또는 어떤 이들은 성취하지 못합니다. 그것에 대하여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다만 길을 안내하는 자입니다.”(M107)

 

 

오늘날 한국불교는 기복불교가 되었다. 절에서 기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스님들도 기도라는 말을 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스님들이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 그분이 누구이고, 부처님 그분이 어떤말씀을 하셨는지 안다면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기도와 서원은 다른 것이다. 기도는 절대자 또는 창조주에게 무언가 이루어달라고 비는 것을 말하지만 서원은 단지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는 맛지마니까야 120번경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왕족으로 태어나고자 한다면 왕족이 되고자 서원하면 된다. 다만 조건이 있다. 어떤 조건인가?

 

다음 생에 왕족으로 태어나고자 한다면 몇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는 믿음을 갖추고, 계행을 갖추고, 배움을 갖추고, 보시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다.”(M120)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다음 생에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것은 삼보에 대한 믿음, 오계를 지키는 등의 계행, 가르침을 배우는 배움, 베풀고 나누는 보시, 그리고 가르침에 대한 지혜를 말한다. 이러한 조건은 색계나 무색계 형성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목적은 아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또한 수행승이 믿음을 갖추고, 계행을 갖추고, 배움을 갖추고, 보시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다. 그는 나는 참으로 번뇌를 부수고 번뇌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 여기서 곧바로 알아 깨닫고 성취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참으로 번뇌를 부수고 번뇌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 여기서 곧바로 알아 깨닫고 성취한다. 수행승들이여, 이 수행승은 어디에서도 다시 태어나지 않고 어디로 가서도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M120)

 

 

부처님 궁극적 가르침은 어디에도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번뇌를 부수어야 한다. 이 세상을 싫어하여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대하여 눈곱만큼이라도 미련이 있다면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인생을 오래 살지 않았다. 그래도 살만큼 살았다. 육십갑자가 한번 회전 했으니 살만큼 산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인생은 의문이다. 여전히 인생은 알 수 없다. 인생은 불가사의한 것으로 가득하다. 특히 생명이 그렇다.

 

식물에서 어느 날 꽃대가 나온 것을 본다. 어떤 힘이 꽃대를 밀어 냈을까? 물만 주었을 뿐인데 꽃대가 형성되어서 꽃을 피운다. 하물며 인간이나 축생은 어떠할까?

 

식물이나 동물이나 형성된 것으로 보면 심오해지는 것 같다. 태어난 것이라기 보다는 형성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특히 유정물이 그렇다. 마치 없는 것에서 툭 튀어 나온 것 같다.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서 부모를 닮아서 태어났지만 성향까지는 닮지는 않는 것 같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람들은 생긴 것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다. 누구도 같은 사람이 없다. 일란성 쌍생아라고 해도 자세히 보면 다르다. 성향은 많이 다를 것이다. 이런 성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람들은 능력에 따라 차이가 있다. 후천적인 것보다는 선천적 요인이 더 크다. 이런 차이는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부처님 가르침에 명쾌한 답이 있다. 부처님은 바라문 청년이여, 이와 같이 뭇 삶들은 자신의 업을 지닌 자로서 그 업의 상속자이며, 그 업을 모태로 하며, 그 업에 묶여 있으며, 업을 의지처로 합니다. 업이 뭇 삶들을 차별하여 천하고 귀한 상태가 생겨납니다.”(M135)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이 다르고 성향이 다른 것은 업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축생으로 태어나는 것도 업에 의한 것이고,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업에 따른 것이다. 그 세계에 태어날 만해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서원을 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맛지마니까야 120번 경을 읽고 놀라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인간 이하 축생, 아귀, 아수라, 지옥에 태어나는 것은 서원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도 사악처에 태어나길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이상 천상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서원을 하면 된다.

 

인간 중에서도 지위가 높은 자로 태어나고자 한다면 내가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부유한 왕족들의 일족으로 태어났으면!”라고 서원하면 된다. 천상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내가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서른셋 하늘나라 신들의 일족으로 태어났으면!”라고 서원하면 된다. 서원하면 하느님도 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수행승들이여, 또한 수행승이 믿음을 갖추고, 계행을 갖추고, 배움을 갖추고, 보시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다. 그는 ()의 하느님 나라들의 하느님은 오래 살고 아름답고 아주 행복하다.’라고 듣는다. 수행승들이여, 천의 하느님 나라들의 하느님은 두루 활동하며 그 세계를 비추어 이해하고, 또한 그곳에 뭇 삶들이 태어나면, 그들도 두루 활동하며 그 세계를 비추어 이해한다. 수행승들이여, 이를테면 눈 있는 사람이 하나의 동그라미를 손바닥에 그리고 자세히 관찰하듯이, 수행승들이여, 천의 하느님 나라들의 하느님은 천의 세계에 두루 활동하며 그 세계를 비추어 이해하고, 또한 그곳에 뭇 삶들이 태어나면, 그들도 두루 활동하며 그 세계를 비추어 이해한다. 그는 내가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천의 하느님 나라 신들의 일족으로 태어났으면!’이라고 생각한다.”(M120)

 

 

서원하면 누구나 하느님이 될 수 있다. 여기서 하느님은 브라흐마(brahma)를 말한다. 색계와 무색계 선정을 닦으면 누구나 하느님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불교에서 하느님은 윤회하는 중생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는 그것에 마음을 정하고 그것에 마음을 집중하고 그것에 마음을 계발한다. 그의 형성과 주거는 이와 같이 닦여지고 이와 같이 익혀져서 그곳에 다시 태어남으로 이끈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이 그곳에 다시 태어남으로 이끄는 길이고 방도이다.” (M120)라고 했다.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형성되지 않는 것임을 말한다. 형성될 조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은 번뇌를 부수고 번뇌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지금 여기서 곧바로 알아 깨닫고 성취한다.” (M120)라고 했다. 이것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이다. 어떤 존재로도 형성되지 않는 것이다.

 

 

2022-07-2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