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고귀한 우정에 대하여

담마다사 이병욱 2022. 9. 3. 10:22

고귀한 우정에 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양하다. 그 중에 우정의 가르침이 있다. 어떤 우정의 가르침인가? 이는 고귀한 우정에 대한 것이다.

 

친구는 있어도 절친은 없다. 친구중의 친구, 베스트 프렌드는 아직 나에게 없는 것 같다.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고 비밀을 지켜 줄 수 있는 친구는 아직 없다. 또한 목숨까지 걸 친구는 아직 없다. 아직까지 최상의 친구는 없다.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친구라면 청정한 삶의 전부에 해당될 것이다. 함께 길을 가는 절친이 있다면 그것은 고귀한 우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고귀한 우정은 어떤 것일까?

 

요즘 맛지마니까야를 읽고 있다. 머리맡에 놓고 읽는다. 매일 한두경 읽다 보니 이제 거의 다 읽어 간다. 현재 149경까지 읽었으니 총152경에서 세 경 남았다. 그렇다고 설렁설렁 읽지 않는다. 새겨 두고자 한다. 그래서 글로서 표현한다.

 

맛지마니까야 147번 경에 해탈에 성숙에 도움이 되는 원리라는 말이 나온다. 부처님은 라훌라가 20세가 되었을 때 라훌라가 해탈에 도움이 되는 원리가 갖추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라훌라를 번뇌의 소멸로 이끌기 위한 법문을 했다. 바로 그것이 라훌라에 대한 가르침의 작은 경’(M147)이다.

 

경에 표현되어 있는 해탈에 성숙에 도움이 되는 원리(vimuttiparipācaniya)’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15가지를 들고 있다. 첫번째 그룹은 5근이다. 두번째 그룹은 무상, , 무아, 버림, 사라짐에 대한 통찰이다. 세번째 그룹은 고귀한 우정, 계행, 유익한 토론, 정진, 지혜이다.

 

해탈에 성숙이 되는 도움이 되는 원리는 모두 15가지이다. 그 중에 고귀한 우정이 있다. 이에 대하여 각주에서는 ‘AN.IV.356’‘Ud.36’을 참조하라고 했다. 앙굿따라니까야 메기야의 경’(A9.3)과 우다나 메기야의 경’(Ud.34)을 말한다.

 

메기야는 부처님 시자였다. 아난다 이전의 시자를 말한다. 어느 날 메기야는 아름다운 망고나무 숲을 발견했다. 홀로 조용한 망고나무숲에서 정진하고자 했다. 부처님의 시자였음에도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고 홀로 정진하고자 한 것이다.

 

라훌라는 부처님에게 망고나무 숲에서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부처님이 두 번 거절 했지만 메기야는 계속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메기야가 세 번째로 말하자 부처님은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기야는 망고나무 숲에서 정진을 잘 했을까? 결론적으로 정진이 잘 되지 않았다. 메기야가 망고나무 숲에서 보낼 때 자주 세 가지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가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팔정도 정사유에서 볼 수 있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사유, 분노에 매인 사유, 폭력에 매인 사유를 말한다.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있다. 경치가 좋은 산사에서 살면 저절로 수행이 잘 될 것 같다. 보는 것, 듣는 것 등에서 자유로운 이유가 가장 크다. 사람을 떠나 마치 숨어 살듯이 산 좋고,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있으면 저절로 해탈할 것 같다.

 

절에서 살면 저절로 수행이 되는 것일까? 경치가 좋은 곳에서 나홀로 살면 마음이 저절로 청정해지는 것일까?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은 영향을 줄지 모르지만 마음은 번뇌로 가득 찬 생활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부처님의 시자 메기야도 그랬다.

 

메기야는 망고나무 숲에서 내려 왔다. 부처님 앞에서 악하고 불건한 세 가지 사유가 일어났음을 말했다. 이에 부처님으 메기야여, 아직 익지 않은 마음에 의한 해탈을 익게 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원리가 도움이 된다.”(A9.3)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메기야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수행승이 숲속에 들어가 나홀로 살았을 때 번뇌에 지배 되는 삶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아직 해탈의 조건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부처님은 해탈의 조건에 다섯 가지가 있다고 했다. 이는 부처님이 라훌라에게 말한 해탈에 성숙에 도움이 되는 원리(vimuttiparipācaniya)’와도 같은 것이다.

 

라훌라는 다섯 가지 원리가 성숙되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라훌라에게 해탈법문을 해주었다. 그러나 메기야는 다섯 가지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 그 다섯 가지 조건은 고귀한 우정, 계행, 유익한 토론, 정진, 지혜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고귀한 우정에 주목한다.

 

고귀한 우정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경에 따르면 선한 벗과 사귀고 선한 도반과 사귀고 선한 동료와 사귄다.”(A9.1)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선우를 사귀는 것이다. 그것도 절친이다. 어느 정도일까? 이는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수행승들이여, 주기 어려운 것을 주고, 하기 어려운 것을 하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고, 비밀을 고백하고, 비밀을 지켜주고, 불행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가난할 때 경멸하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원리를 갖춘 벗과 사귀어야 한다.”(A7.36)

 

 

이것이 고귀한 우정의 조건이 될 것이다. 또한 절친의 조건이기도 하다.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이라면 이런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릴 정도의 고귀한 우정을 말한다.

 

도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도반은 삶의 전부와도 같다. 마치 사리뿟따나와 목갈라나의 우정을 연상케 한다. 어디 이런 도반 있을까? 만일 이런 도반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성실하고, 공경받을 만하고, 가르침을 주고, 충고를 받아들이고, 심오한 대화로 이끌고,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원리를 갖춘 수행승이라면, 거절하더라도, 도반으로 삼고, 사귀고, 섬겨야 한다.”(A7.37)

 

 

부처님은 마음에 드는 도반이 있으면 거절하더라도사귀어야 한다고 했다. 왜 그런가? 배울점이 있기 때문이다. 도반처럼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도반은 도반 이상이다. 도반은 스승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섬겨야 한다고 했다.

 

도반들끼리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정치이야기 등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야 할까? 부처님은 심오한 대화(gambhīra kathā)’를 하라고 했다. 주석에 따르면 선정과 통찰과 길과 경지와 열반에 의지한 오묘하고 심오한 대화를 말한다.”(Mrp.IV.24)라고 했다.

 

부처님은 말을 할 때는 심오한 대화를 하라고 했다. 이는 다름 아닌 법담이다. 수행자들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 잡담을 해서는 안되지만 담마에 대한 이야기는 밤을 세워서 이야기해도 좋음을 말한다. 왜 그런가? 해탈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에스엔에스를 보면 스님들이 지나치게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또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수행자는 오로지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말만 해야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대들에게는 두 가지가 행해져야 한다. 가르침에 대한 담론이나 고귀한 침묵이다.”(A9.4)라고 했다.

 

수행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 입이 있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말만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말은 담마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고 심지어 밤새도록 토론해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담마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를 고귀한 침묵이라고 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고귀한 침묵이란 무엇일까? 이는 주석에 따르면 두 번째 선정과 근본적인 명상의 주제가 모두 이 고귀한 침묵에 해당된다.”(Pps.II.169)라고 했다. 명상 주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선정에 들었을 때 고귀한 침묵이 되는 것이다.

 

고귀한 침묵은 선정에 드는 것이다. 그것도 두 번째 선정이라고 했다. 이는 첫 번째 선정의 조건인 사유(vittaka)와 숙고(vicara)가 끊어진 상태를 말한다. 언어적 형성이 사라졌으므로 고귀한 침묵상태가 되는 것이다.

 

아난다 이전 부처님의 시자였던 메기야는 준비가 되지 않은 수행자였다. 해탈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숲속에 들어간 것이다. 그 결과 번뇌가 일어 났다.

 

메기야는 경치 좋은 망고나무 숲에서 나홀로 정진하면 저절로 해탈에 이르게 될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아직 해탈을 위한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해탈의 성숙이 되는 다섯 가지 조건을 말해 주었다. 그것은 고귀한 우정, 계행, 유익한 토론, 정진, 지혜에 대한 것이다.

 

해탈에 도움이 되는 조건 다섯 가지 중에 유익한 토론이 있다.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수행자도 토론을 할 줄 알아야 해탈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어떤 토론인가? 이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메기야여, 또한 수행승이 마음을 여는데 필요한 버리고 없애는 대화, 예를 들어, 욕망의 여윔에 대한 대화, 만족에 대한 대화, 멀리 떠남에 대한 대화, 번잡의 여읨에 대한 대화, 노력에 대한 대화, 계행에 대한 대화, 삼매에 대한 대화, 지혜에 대한 대화, 해탈에 대한 대화, 해탈에 대한 앎과 봄의 대화와 같은 대화를 원하는 대로 이끌고 어려움 없이 이끌고 곤란 없이 이끈다.”(A9.3)

 

 

부처님은 수행승의 토론을 장려 했다. 그것은 버리고 없애는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부처님의 담마에 대한 것이다. 이런 대화를 하는 것이 해탈의 성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해탈의 성숙에 도움이 되는 다섯 가지 원리 중에 고귀한 우정이 들어가 있다.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행은 나홀로 산에 들어가서 나홀로 고요히 앉아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상식을 깨 버린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먼저 대중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수행의 힘이 약할 때는 함께 모여서 수행하는 곳이 좋다. 명상센터에 가보면 수백명 수행자들이 한 장소에서 모여서 좌선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주변 수행도반들의 힘을 받는 것이나 다름 없다.

 

초보 수행자는 모여 사는 것이 좋다. 함께 모여 살다 보면 계행을 지키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해탈의 성숙에 도움이 되는 다섯 가지 원리 중에 계행이 들어가 있다. 어떤 계행인가?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수행승이 계행을 지키고, 의무계율을 수호하고, 올바른 행위의 경계를 갖추고, 사소한 잘못에서도 두려움을 보고, 지켜야 할 학습계율을 수용하여 배운다.”(A9.3)라고 했다.

 

여기 출가자가 있다. 출가해서 나홀로 산속에서 지내지 않는다. 반드시 대중생활을 해야 한다. 승가의 일원으로서 사는 것이다. 자자와 포살이 있는 승가를 말한다. 이렇게 대중생활을 했을 때 고귀한 우정도 있고 계행도 있게 된다. 재가자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재가의 삶을 살면서 불도를 닦기가 쉽지 않다. 설령 불도를 닦는다고 하더라도 나홀로 닦는다면 메기야와 같은 번뇌에 휩싸이기 쉽다. 이렇게 본다면 재가수행자에게도 해탈의 성숙에 도움이 되는 다섯 가지 원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그 다섯 가지 중에서 가장 앞서는 것은 고귀한 우정이다.

 

재가불자로서 항상 부처님 가르침과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늘 혼자이다. 늘 혼자이다 보니 고구한 우정이 형성되지 않는다. 계행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년에 한번쯤은 집중수행을 해야 할 것이다. 수행처에 입소해서 대중생활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가 일어나기 전에 미얀마에 갔었다. 20191월의 일이다. 그때 미얀마 위빠사나 선원에서 2주일가량 있었다. 생업이 있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다. 그럼에도 시간을 낸 것은 일인사업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얀마 수행센터에서 대중생활을 했다. 매일 구계를 받아 지니며 좌선과 행선을 했다. 무엇보다 우정이다. 함께 갔었던 동료수행자들과 우정이 생겨난 것이다. 이를 고귀한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산에 산다고 하여 수행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나홀로 산중에 산다고 하여 저절로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다. 먼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먼저 대중생활을 하는 것이다.

 

대중생활을 하여 우정과 계행 등 다섯 가지 해탈을 위한 성숙의 원리를 닦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고귀한 우정이다. 나는 고귀한 도반이 있는가?

 

 

2022-09-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