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는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0. 9. 09:31

나는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지난주 금요일 일이 마감되는 바람에 더 이상 할 일이 없게 되었었다.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다. 공허함에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불과 사흘 밖에 되지 않는다.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일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일을 할 때 충만되는 것 같다. 일은 본래 하기 싫은 것이지만 할 일이 없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에 중독된 것 같다. 수십년 동안 해오던 것을 하지 않았을 때 일종의 금단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담배를 끊었을 때 느끼는 허전함과 같은 것이다.

 

일감이 있어서 일을 하는 것은 수동적인 것에 해당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일을 하는 것은 능동적인 것이 못 된다. 어쩔 수 하는 일은 노예나 하는 일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월급생활자와 자영업자는 다르다.

 

월급생활자와 자영업자는 똑같이 돈을 버는 행위를 한다. 전자는 수동적이고 후자는 능동적이다. 전자는 시간에 매이는 일을 하지만 후자는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일을 한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죽지 못해서 일을 한다. 둘 다 일에 매여 있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일은 노예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은 무엇을 할까? 철학이나 문학이나 예술 등을 한다고 했다. 일이 없기에 여가의 일을 하는 것이다.

 

힘든 인생을 살 것인가, 쉬운 인생을 살 것인가?

 

갑자기 할 일이 없어 졌을 때 가만 있을 수 없다. 최악은 TV시청으로 소일 하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유튜브에 더 열중하는 것 같다. 에스엔에스도 이에 못지 않다. 이럴 경우 밥 먹는 것이 가장 큰 행사가 된다. 이른바 식사대사(食事大事)를 말한다.

 

TV시청, 유튜브 보기, 에스엔에스 하기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이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하고 나면 남는 것은 공허함뿐이다. 남는 것이 없는 것이다.

 

남는 것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것이 있을까? 이럴 때는 일하지 않는 즐거움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아야 한다. 90년대 북미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책이다.

 

 

어니 젤린스키에 따르면 편한 인생의 법칙이 있다. 어떻게 해야 인생을 편하게 살 수 있을까? 편하다고 해서 위험성이 없는 길만 택한다면 인생이 지루해질 것이다. TV만 시청하는 삶 같은 것을 말한다. 그런데 쉽고 편안한길만 추구하다 보면 인생이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어렵고 힘든 일을 감수하면 인생이 쉬워진다고 했다. 여가생활이 대표적이다. 강한 성취감을 맛보기 때문이다.

 

힘든 인생을 살 것인가, 쉬운 인생을 살 것인가? 힘든 인생을 살려거든 쉽고 편안한 길로만 가면 될 것이다.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쉬운 인생을 살려거든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면 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니 젤린스키는 불을 쬐기보다 불을 피우는 사람이 되자.”라고 말한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물론 여가생활에 대한 것이다. 책에 따르면 글쓰기, 독서, 운동, 공원산책, 그림그리기, 악기연주, 춤추기, 강습받기가 있다. 이 중에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것은 글쓰기와 독서이다.

 

최악은 TV시청이라고 했다. TV시청이 최악인가? 이는 책에서 “TV시청은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혼자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TV시청하는 것은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과 같다고 했다. 왜 그런가?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TV를 시청하면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최악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삶이다. 그런데 책이 나온 시점은 90년대라는 것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현시점은 어떤가? 지금은 유튜브시대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유튜브를 보고 있다. 오늘날 유튜브는 90년대 TV와 같은 것이다. 책에서는 TV시청에 대하여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처럼 중독이라고 했다. 유튜브시청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으른 자는 이미 죽은 자

 

유튜브를 시청하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보다 보면 시간만 흘러간다.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밥 먹을 것이다. 하루를 유튜브로 보내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와 무()만 남을 것이다.

 

어떤 이는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한다. 은퇴하여 홀로 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아마 TV시청이나, 유튜브 시청, 그리고 에스엔에스는 열심히 할 것이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이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은 죽음의 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미 죽은 자에 해당된다. 이는 법구경에서도 확인된다.

 

 

"방일하지 않음이 불사의 길이고

방일하는 것은 죽음의 길이니

방일하지 않은 사람은 죽지 않으며

방일한 사람은 죽은 자와 같다.”(Dhp.21)

 

 

방일한 사람은 죽은 자와 같다고 했다. 게으른 자는 이미 죽은 자와 같다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사는 자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하류종일 TV시청이나 유튜브시청, 그리고 에스엔에스로 보낸다면 이미 죽은 자에 해당된다.

 

다행히(?) 사십대 중반에 해고되어서

 

어니 젤린스키의 일하지 않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산 것은 90년대의 일이다. 그때 당시 30대였다. 지금 돌이켜 보니 인생에 있어서 일을 가장 많이 하던 시기였다.

 

책을 접했을 때 충격 받았다. 열심히 직장다니는 사람에게 일하지 않는 즐거움을 말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의 서문을 보면 경고가 있다. 이 책을 보고서 사표를 쓰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책의 저자는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해고 당한 것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직장에 계속 다녔다면 워커홀릭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다행히 한창 일하던 젊은 시기에 해고되었기 때문에 자신만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직장인들의 로망이 있다. 그것은 일하지 않는 것이다. 일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년이나 은퇴해서나 가능한 일이다. 도중에 해고 된다면 좋은 찬스가 될 것이다.

 

책을 읽은지 십년 되었을 때 해고 되었다. 사십대 중반 때의 일이다. 더 이상 직장을 잡지 못했을 때 나의 일을 하게 되었다. 이른바 개인사업자, 일인사업자로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일인사업자로 삶을 살면서 진정한 나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남의 삶이었다. 직장에 매이는 삶, 시간에 매이는 삶이었다.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살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한다는 말이 있다. 예비군에게 하는 말이다. 노는 일에 염불한다는 말이 있다. 일이 있을 때는 일을 하고 일이 없을 때는 글을 썼다. 블로그에 인터넷 잡문을 쓰는 것을 말한다.

 

매일 쓰다 보니 일을 하면서도 썼다. 아침에 일찍 업체 담당자들이 출근하기 전에 시간을 확보하여 쓴 것이다. 예비군처럼 일하면서 쓰고, 쓰면서 일한 것이다.

 

지금 이시점에서 생각해 본다. 직장다닐 때는 수동적이고 소극적 삶이었다. 시간에 매이는 삶이었고 나의 삶이 아니었다. 진정한 나의 삶은 일인사업자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다행히(?) 사십대 중반에 해고 되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

 

읽기와 쓰기, 외우기와 암송하기의 나날

 

책의 저자 어니젤린스키는 능동적인 활동에 대하여 글쓰기, 독서, 운동, 공원산책, 그림그리기, 악기연주, 춤추기, 강습받기를 들었다. 작가는 특히 읽기와 쓰기에 대해서 강조했다.

 

읽기와 쓰기는 적극적인 활동에 해당될 뿐만 아니라 생활의 질은 상당히 높아진다고 했다. 그러나 읽기와 쓰기에 전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204)이라고 했다.

 

30대 때 어니젤린스키의 일하지 않는 즐거움을 읽었을 때 글쓰기는 로망이었다. 그때 당시 집과 직장만을 시계추처럼 왕래하고 있었는데 글쓰기는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나 기자 등 특별한 사람들만이 쓰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2000년대 인터넷시대가 되면서 누구나 쓰게 되었다. 더구나 해고 되어서 마땅히 할 것이 없었을 때 글쓰기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사는데 도움을 주었다.

 

어니 젤린스키는 읽기와 쓰기를 강조했다. 읽었으면 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두 가지를 더 추가했다. 그것은 외우기와 암송하기를 말한다.

 

읽기와 쓰기, 외우기와 암송하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초기경전, 즉 부처님 원음이라 일컫는 니까야에 대한 것이다. 방대한 오부니까야는 일생동안 읽어도 다 못 읽을 정도라 양이 방대하다. 오히려 이런 점이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킨다. 바이블처럼 한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권이나 되는 진리의 말씀에 끌린 것이다.

 

읽었으면 써야 한다. 다행히도 사십대 중반에 해고되어서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는 인터넷이 대중화되던 시기와도 맞물린 것이다. 그때 블로그라는 히트상품이 생겨서 가능하게 되었다.

 

읽고 쓰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좋은 문구를 보면 새겨 두고 싶다. 그런데 초기경전을 보면 어느 것 하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이 없다. 왜 그런가?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예불문이자 수호경부터 외웠다. 그것도 생소한 빠알리어로 외웠다.

 

경 외우기는 2011년부터 시동을 걸었다. 라따나경(보배경)을 스타트로 하여, 멧따경(자애경), 망갈라경(축복경), 자야망갈라가타(길상승리게), 담마짝까왓따나경(초전법륜경) 등을 외웠다. 최근 이삼년사이에서는 앗탕기까막가비방가경(팔정도분석경), 법구경 찟따박가(마음의 품), 마라낫사띠(사수념), 빠띳짯사뭅빠다비방가경(십이연기분석경)을 외웠다. 가장 최근인 올해 봄에는 빠다나경(정진의 경)을 외웠다.

 

가장 최근에 외운 정진의 경은 25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66일 걸려서 외웠다. 어렵게 외운 것을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지금까지 5개월 동안 암송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경을 외워야 한다.

 

읽었으면 쓸 줄도 알아야 하고 들었으면 말할 줄도 알아야

 

오늘 아침 할 일이 없다. 일감이 없음을 말한다. 다음주가 되면 어떤 일감이 올지 알 수 없다. 갑자기 일이 없다 보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때는 경을 외우는 것이 가장 좋다. 하루에 한 게송씩 외우는 것이다. 나만의 독특한 외우기 비법에 따라 외우는 것이다.

 

읽었으면 쓸 줄 알아야 한다. 들었으면 말할 줄 알아야 한다. 현재 읽기와 쓰기는 되어 있다. 여기에다 외우기와 암송하기를 추가하고 있다. 어니 젤린스키에 따르면 북미에서 읽기와 쓰기에 전념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고 했는데 더구나 외우기와 암송하기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읽기, 쓰기, 외우기, 암송하기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방식이다. 여기에 허와 무가 있을 수 없다. 특히 암송하고 나면 충만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언어 생활에 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말하기이다.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그는 읽었으면 쓸 줄도 알아야 하고, 들었으면 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읽기, 쓰기, 외우기, 암송하기는 생활화 되어 있다. 아직까지 말하기는 되어 있지 않다.

 

읽기만 하고 쓸 줄 모른다면 어쩌면 TV나 유튜브 시청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읽었으면 써야 할 것이다. 쓰기를 해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방식이 된다.

 

들었으면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듣기만 한다면 마치 TV나 유튜브 시청하는 것처럼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삶의 방식이 될 것이다. 말을 할 줄 알아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방식이 된다.

 

오랫동안 혼자 살아 왔다. 물론 가정은 있다. 그러나 사회활동에 있어서 나홀로 살아 왔음을 말한다. 모임이나 단체가 있기는 하지만 말할 기회는 많지 않다. 이는 공식적인 발언을 말한다. 강연이나 법문 같은 것을 말한다.

 

아직까지 한번도 교단에 서 본적이 없다. 이는 직업과도 관계가 있다. 오랜 세월 개발자로 살다 보니 주로 계측기 앞에서만 있었다. 일인사업자로 살면서부터는 모니터 앞에만 있다. 대중 앞에서 말할 기회는 없었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언어생활을 해야 한다. 읽기, 쓰기, 외우기, 암송하기는 생활화가 되어 있지만 말하기는 되어 있지 않다. 언제까지나 듣기만 할 수 없다. 읽었으면 쓸 줄도 알아야 하듯이, 들었으면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힘써 노력하고 방일하지 않고

자제하고 단련함으로써

지혜로운 님은 거센 흐름에

난파되지 않는 섬을 만들어야 하리.”(Dhp.25)

 

 

2022-10-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