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포천 38휴게소를 지날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0. 11. 07:10

언제나 녹색이 녹색으로 인식될까? 포천 38휴게소를 지날 때

 


포천 43번 국도 길에 38휴게소가 있다. 처의 고향 가는 길이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분단을 실감한다. 말로만 듣던 분단의 현장을 지나는 것 같다.

처가 아버지 납골당에 가 보자고 했다. 2019년 작고 이래 한번도 가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간단히 준비하여 길을 떠났다.

오늘 날씨는 오락가락했다. 오전에는 맑았으나 오후에는 비를 뿌렸다. 다시 햇살이 비치는가 싶더니 또다시 비가 내렸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것 같다.

납골당 가는 길에 38휴게소가 있다. 한때 번영했던 것 같다. 커다란 주차장이 이를 말해 준다. 그러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 상가건물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상가동 옥상에 있는 '3.8 만남의 광장'이라는 입간판이 옛날의 영화를 말해 주는듯 하다.

 


38
선을 건너면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 같다. 38선 영종교를 건너면 다른 나라에 가는 것 같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 아마 그것은 이곳이 5년 동안 북한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장인에게 들은 것이 있다. 해방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38선 이북 수복지역에서는 공산치하였다고 한다. 38선이 그어짐에 따라 공산주의 사상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선택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선을 그음으로 인하여 체제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해방 당시 민초들은 선택권이 없었다. 강대국들의 이익에 따라 선이 그어졌을 때 그 지역에 살았다는 이유로 편입된 것이다. 다른 체제가 들어서면 또다시 순응해야 할 것이다.

왕조시대 때는 왕조가 바뀔 때 마다 민초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그 지역의 주인은 민초들이다. 지배자가 바뀌는 것은 세금 징수자가 바뀌는 것과 같다. 나라가 망했을 때는 일본에 세금을 내야 했다.

민초들은 선택권이 없다. 때놈이 됐든, 왜놈이 됐든, 양키가 됐든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해 준다면 만사 OK가 될 것이다. 세금 적게 가져가는 놈이 가장 좋을 것이다. 나라가 망한 것은 민초들 탓이 아니다. 나라가 분할된 것도 민초들 탓이 아니다. 리더가 정의로워야 한다.

세상은 무력에 의해 바뀌는 경우가 많다. 특히 왕조시대 때 그랬다. 중국에서 오호십육국 시대 때 중원에 사는 민초들은 해마다 세금 징수자가 바뀌는 시대를 살았을 것이다. 한번은 오랑캐가 가져가고 한번은 동족이 수탈해 갔을 것이다. 한국에서 6.25때도 그랬을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중에 '그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자전적 성장소설이 있다. 작가는 세상이 바뀌는 장면을 묘사해 놓았다. 6.25때 인민군이 들어온 것에 대하여 "그러나 얼마 안 있어 헐레벌떡 되돌아 온 숙부는 몹시 얼뜬 목소리로 밤사이에 세상이 바뀐 걸 알려 주었다."라고 써 놓았다.

세상은 밤사이에 바뀐다. 요즘은 선거로 세상이 밤사이에 바뀐다. 6.25때는 무력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세상이 바뀌면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소설에서는 "길가에 인민군을 환영하는 인파가 적지 않다고 했다."라고 묘사된 것에서 알 수 있다.

민초들은 세상이 바뀌면 바뀐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달리 선택권이 없다. 정권이 바뀌면 바뀐 정권하에서 살아야 한다. 장인도 그랬을 것이다. 38선 이북에서 살았기 때문에 달리 선택권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전쟁이 났을 때 인민군에 징집되었다. 도중에 국군이 되었다.

세월은 무상하다. 38휴게소에서 영종교를 건너면 이북땅에 들어선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30여년 전에는 육중한 콘크리트 차단 시설이 있었다. 그리고 검문이 있었다.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제야 남한 땅이 된 것 같다.

처의 고향은 38휴게소에서 13키로 거리에 있다.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철원의 경계에 있다. 작은 하천을 사이에 두고 큰집은 경기도에 있고 작은 집은 강원도에 있다. 산정호수가 있는 명성산 가까이에 있는 곳이다.

납골당은 강포저수지 뒤에 있다. 명성산이 보이는 곳에 있다. 명성산을 울음산이라고 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궁예가 왕건군에게 쫓길 때 명성산에 올라가서 울었기 때문에 울음산이라고 한다. 또 하나는 산이 울기 때문에 울음산이라고 한다. 동네 사람에 따르면 산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명성산이 보이는 곳에 납골당이 있다. 가족납골당이다. 일종의 동네 씨족 납골당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은 매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화장을 한 후에 납골당에 모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식으로 참배했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서 황태포와 사과와 소주를 준비했다. 납골당 묘역에 국화 화분이 놓여 있었다. 국화를 보자 꽃을 준비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길가에 핀 황금색 금계국을 몇송이 꺽었다.

 


안양에서 포천 자일리까지 116키로 거리이다. 먼 길을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납골당 참배를 마치고 포천의 새로운 명물 한탄강 출렁다리로 향했다.

요즘 지자체마다 출렁다리 건설 붐이 이는 것 같다. 이곳저곳 출렁다리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포천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비둘기낭폭포와 연계하여 길이 200미터 높이 50미터의 아찔한 출렁다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출렁다리에서 본 한탄강은 절경이다. 용암으로된 현무암 협곡이 마치 작은 그랜드캐년같다. 중부이남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독특한 지형이다. 제주도 화산지형에서 보는 것과 유사하다.

 


한탄강은 독특하다. 협곡으로 이루어진 강이기 때문이다.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굳어져서 형성된 것이다. 협곡은 110키로나 된다. 또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주상절리도 있다. 폭포도 있는데 비둘기낭폭포가 잘 알려져 있다.

 


오늘 43번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달렸다.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개었을 때는 산에 구름이 걸려 있었다. 저멀리 파르스름한 산 위에는 아스라히 흰 구름이 피어 있었다.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산너머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점심때 과식한 것이 탈 난 것 같다. 가슴이 맺힌 것처럼 통증을 동반해서 불편했다. 걷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귀가길에 광릉수목원 부근 고모저수지 카페에서 쌍화차를 마셨다. 커다란 유리잔에는 뜨거운 쌍화차와 잦 등의 열매가 들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쌍화차를 마시자 증상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앞으로 이런 증상이 발생되면 쌍화차를 마셔야 할까?

해방 때 이데올로기가 국토를 갈라 놓았다. 38선으로 갈라 놓았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채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다. 나라의 주인이 바뀌면 바뀐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했다. 그동안 업치락뒤치락 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녹색이다.

 


녹색이라 해서 같은 녹색이 아니다. 남도에서 녹색과 수복지역의 녹색은 달라 보인다. 남도의 녹색은 본래의 녹색으로 인식되지만 38선을 지날 때는 군복의 녹색이 연상된다. 언제나 녹색이 녹색으로 인식될까?


2022-10-1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