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절제

차제걸이(次第乞已)식 식당순례하다 보니, 지역식당순례 40 장터순대국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0. 12. 13:26

차제걸이(次第乞已)식 식당순례하다 보니, 지역식당순례 40 장터순대국

 

 

어디로 갈까? 점심 때 밥먹으로 나왔다가 망설였다. 안양로 이쪽 저쪽을 배회했다. 메뉴 선택에 대한 것도 있지만 식당 선택에 대한 것도 있다. 한곳만 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단골을 만들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런 원칙을 지키려면 가보지 않은 곳에 들어가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단골이 있다. 가는 곳만 가는 것이다. 한곳에서만 먹으면 식상하기 때문에 몇 군데 자주 가는 곳을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코로나시기에 식당업을 하는 자영업자의 고통을 생각해서 식당순례를 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도 식당순례를 계속하고자 한다.

 

 

오늘 가기로 한 곳은 명학역 먹거리골목에 있는 순대집이다. 5평도 안되는 작고 허름한 집이다. 간판에는 장터순대국이라고 되어 있다. 국밥전문집인 것이다. 그러나 메뉴판을 보면 실로 다양하다. 청국장, 된장찌게, 순두부, 김치찌개, 내장탕, 육계장, 설렁탕, 갈비탕, 뚝불 등 매우 다양하다. 정말 이 많은 메뉴를 다 하는 것일까?

 

 

메류를 보니 무려 22가지나 된다. 떡만두국, 칼국수, 진치국수, 떡라면, 냉면 등 분식도 취급한다. 할머니 한분이 어떻게 이 많은 메뉴를 만들 수 있을까? 자세히 들여다 보니 추천으로 순대국이 있다. 순대국으로 먹으면 무난할 것 같다.

 

 

순대국집은 여러 곳 있다. 이미 여러 순대국밥집을 가 보았기 때문에 맛을 알고 있다. 최고의 맛은 병천순대이다. 한번 맛을 들이면 그 맛을 못 잊어 한다. 다른 것을 먹을 수 없다. 그럼에도 장터순대국을 선택한 것은 맛을 불문하고 가보지 않은 곳도 가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마치 차제걸이(次第乞已)식으로 식당순례하는 것과 같다.

 

초기경전을 보면 탁발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이 살았던 집으로 탁발가는 장면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싸밧티 시에서 어느 바라문 여인의 아들 브라흐마데바가 부처님 앞으로 출가했다. 브라흐마데바는 열심히 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브라흐마데바는 어느 날 탁발을 하기 위하여 싸밧티 시에 들어 갔다. 이와 관련하여 경에서는“싸밧티 시에서 집집마다 탁발을 하면서 자신의 어머니가 사는 집에 이르렀다.(S6.3)라고 묘사 되어 있다.

 

브라흐마데바는 왜 어머니가 사는 집에 갔을까? 이는 차제걸이하는 것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집도 거르지 않고 차례로 도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문밖에 서 있다가 반응이 없으면 옆집으로 옮긴다. 일곱번까지 가능하다. 일곱집을 갔음에도 음식을 얻지 못했다면 그날은 굶어야 한다.

 

출가자가 종종 자신이 살던 집에 가는 경우는 차례차례 집을 돌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가는 집만 가게 될 것이다. 부자집이나 인심이 좋은 집이 대상이 될 것이다.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차제걸이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더욱더 근본적인 것이 있다.

 

차제걸이하는 하는 것을 빠알리어로 사빠다나짜리(sāpadānacārī)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Prj.II.118에 따르면, sāpadānacārī는 집집마다 차례로 어느 한 집을 빼지 않고 밥을 비는 것으로 탁발(piṇḍapāta)을 말하는데, 무소유의 이상과 겸허한 자아완성을 위한 수도행각의 일단이다. 오후에는 먹지 않는 오후불식의 원칙도 있었다. 탁발은 단순히 밥을 비는 구걸행위가 되면 안되며, 그것을 통해서 시주에게 복을 짓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므로 탁발할 때에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일곱집까지만 탁발하기로 되어 있다. 만약 일곱 집에 밥을 빌어서 얻지 못하면 그 날의 탁발행각은 그만 두어야 한다.”(KPTS본 수타니파타, 1450번 각주)

 

 

탁발행각은 수행자의 생계의 수단도 되지만 동시에 시주에게 공덕 쌓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교도들, 특히 바라문교도들은 머리를 깍은 수행승들에게 밥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정도일까? 수타니파타 천한 사람들의 경’(Sn.1.7)을 보면 까까중아, 거기 섰거라. 가까 수행자여, 천한 놈아, 거기 섰거라.”라며 욕설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라문은 부처님 당시 사성계급 중에서 최상위에 있었다. 바라문들이 부처님의 제자들을 천하게 본 것은 왜 그런 것일까? 이는 부처님의 교단에 천민도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상가에서는 네 계급이 모두 평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바라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자만으로 인하여 부처님의 상가를 천한 집단으로 매도 했다.

 

브라흐마데바의 어머니는 바라문녀였다. 탁발자가 왔어도 밥을 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사함빠띠 브라흐마가 바라문녀에게 복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게송으로 교화하는 장면이 상윳따니까야 브라흐마데바의 경’(S6.3)에 실려 있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아라한은 복전이다. 복밭에 공양하면 큰 과보가 따른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아라한들은 복 짓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 가기도 했다. 아마 가장 극적인 장면은 테라가타에 있는 깟싸빠 존자의 탁발행각일 것이다.

 

깟싸빠 존자는 나병환자 앞으로 갔다. 나병환자는 음식을 얻은 것을 먹고 있었다. 존자가 그의 앞에 서자 음식을 건네 주었다. 그런데 건네는 손에서 썩은 손가락이 하나 떨어졌다는 것이다. 과연 깟싸빠존자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까?

 

나병환자가 건넨 음식은 일반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더러운 것이다. 건네 주어도 먹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썩은 손가락이 떨어졌을 때 어땠을까? 토할지 모른다. 이에 대하여 깟싸빠 존자는 담장의 아래에서 나는, 그 음식을 한주먹 먹었는데, 먹으면서나 먹고 나서도 나에게 혐오가 일어나지 않았다.”(Thag.1062)라고 게송으로 말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다른 순대국밥집것과 비교하면 이른바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천원이 싸다. 다른 집에서는 8천원 하지만 이 집에서는 7천원한다. 모든 메뉴가 다 그렇다. 천원 때문에 망설인다면 이 집에 오면 좋을 것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한다. 먹어 주기로 했으니 맛있게 먹어야 한다. 순대국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그러나 밥의 양이 너무 많다. 반만 넣었다. 무언가 부족한 것 같다. 김치를 잘게 쪼개어 넣었다. 그제서야 씹는 맛이 났다.

 

 

점심때 밥을 먹어야 한다. 가는 곳만 간다면 단골이 될 것이다. 주로 가는 곳이 없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차제걸이 하듯이 일터 주변 식당을 순례하고자 한다. 왜 그런가? 그렇게 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과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동안 망설였던 집에 들어가 보았다. 맛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식당순례를 차제걸이식으로 하려면 맛을 불문해야 한다. 당연히 가격도 불문이고 청결도 불문이다. 그래야 진정한 차제걸이식 식당순례가 될 것이다. 나올 때 잘 먹었다는 감사의 말과 함께 밥은 위가 적어서 반 남겼습니다.”라고 말했다. 맛은 보통이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상쾌했다.

 

 

2022-10-1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