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근불가원

정의롭지 않은 자들이 득세하는 한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1. 27. 08:19

정의롭지 않은 자들이 득세하는 한


오늘 아침 뜨거운 물에 샤워했다. 콸콸 쏟아지는 온수를 무한정 쓰는 것 같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옛날 못살던 시절을 생각하면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아파트에서는 본격적으로 난방이 시작되었다. 방바닥이 뜨끈뜨끈 하다. 이중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바깥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방안에만 있으면 춥지 않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편의와 행복은 모든 사람들의 노고의 결과이다. 뜨거운 물도 따뜻한 방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도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어제 촛불집회에 갔었다. 몇 회째인지 알 수 없다. 검색해 보니 16회째라고 한다. 촛불이 4개월 타오른 것이다. 촛불은 언제까지 켜질까?

어제 늦게 촛불집회 현장에 갔었다. 5시 45분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사회자는 2만명이 모였다고 전했다. 시청 남단에서부터 남대문 북단까지 대로의 반을 차지했다.


어제 날씨는 추웠다. 사람들은 두껍게 껴입고 나와 차가운 아스팔트에 앉아 있었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매일 나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을까?

이제 촛불은 일상이 된 것 같다. 매주 토요일 5시가 되면 시청 남단 광장에 나가는 날로 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이번 촛불까지 내리 4주째 참여하고 있다.


역사는 매번 반복되는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이나 20년전이나 30년전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전이나 1000년전에는 어땠을까? 역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본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발전되었다. 그리고 갖가지 정치체제가 실험되었다. 인류는 이미 민주주의제도나 공화제도 등의 체제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역사가 발전한다면 좀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역사는 진보를 하긴 하되 아주 조금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때로 후퇴하여 야만의 시대로 되돌아 가는 것 같다. 이른바 전쟁의 시기가 그렇다.

촛불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거의 대다수는 이름 없는 민중들이다. 이 땅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촛불을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인들이나 교양인들, 오피니언 리더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익과 안락을 추구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남의 일에 무관심하다.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자신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나서지 않는다.

여기 소극적 공리주의가 있다. 주변에 폐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을 말한다. 나만 착하고 바르게 살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이 정치참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선거 때가 되면 투표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소극적 공리주의가 있는가 하면 적극적 공리주의도 있다. 자신도 이익되게 하고 타인도 이익되게 하는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보았을 때 침묵하기 보다는 나서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촛불대행진에 나오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역사는 발전할까? 사람들이 자신의 안위와 안락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공리주의가 많다면 발전은 더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안위와 안락과 행복뿐만 아니라 타인의 안위와 안락과 행복도 추구하는 적극적 공리주의자가 많다면 역사는 빠르게 진보할 것이다.

역사가 발전한다면 역사발전의 주체는 누구일까? 흔히 말하기를 지식인들, 교양인들, 의사결정권자들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변혁기에 있어서 이와 같은 지식인 그룹은 숨어 버린다.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운 일에는 나서지 않는 것이다.

누가 역사의 주체일까? 그것은 이 땅의 힘없는 민중이라고 볼 수 있다. 등 따습고 배부른 자들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가진 것이 없고 지위도 없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없는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광주민중항쟁에서도 알 수 있고, 학생운동에서도 알 수 있고, 시민운동에서도 알 수 있다.

오늘 아침 샤워를 하면서 따뜻한 물 나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했다. 따뜻한 아파트에서 사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자판을 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정보통신시대가 된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와 같은 민주주의를 만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는 이 땅에 태어나서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 했는가? 젊었을 때 몸을 바쳐 희생하지 않았다. 그저 방관자에 지나지 않았다. 투표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긴다면 소극적 공리주의자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촛불대행진에 참여하여 머리수를 채워 주는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하고 있다. 차가운 아스팔트에 앉아 있지 않고 한시간도 못되어서 나와 버리기 때문이다. 어제는 고작 20분 있었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 일보 전진하는가 하면 일보 후퇴한다. 지금은 후퇴의 시기이다. 정의롭지 않는 자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태원참사도 밝혀진 것이 없다. 정의롭지 않은 자들이 득세하는 한 촛불을 들 수밖에 없다.


2022-11-2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