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권당

182권 이띠붓따까 읽기

담마다사 이병욱 2026. 4. 23. 11:39

182권 이띠붓따까 읽기

 

 

글은 고통의 산물이다. 오늘 아침 생각난 것이다. 나에게 왜 이 말이 그토록 사무칠까? 전재성 선생에게 들은 말이다.

 

전재성 선생의 금요니까야모임이 있었다. 2017 2월부터 2024 12월까지 칠년 동안 존속했던 모임이다. 여름과 겨울 방학 각각 두 달을 제외하고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 열렸다. 언젠가 이 모임에서 전재성 선생은 글에 대하여 말했다.

 

문자는 본래 거래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받을 것을 기록해 놓다 보니 문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금요니까야모임에서 들은 말이다. 이런 문자가 글이 되고 책이 된다. 그런데 이런 글과 책은 고통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책 쓰기가 쉽지 않다. 한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는 피가 마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마디로 영혼을 갈아 넣어서 만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글이 고통의 산물이고, 책이 또한 고통의 산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숙제를 하지 않은 것 같아서 불편하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쓰지 않는다. 반드시 내용과 형식을 갖추어서 쓴다. 그래서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내용과 형식을 갖춘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이다.

 

글은 쌓이고 쌓였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글을 내버려 두면 모래알과도 같은 것이 된다. 그러나 시기별로 또는 주제별로 구분해서 책을 만들면 삶의 결실이 된다.

 

올해로 글쓰기 20년이 되었다. 그리고 책만들기 한지 8년이 되었다. 그 동안의 성과는 어떠한가? 글은 팔천개가 넘었다. 책은 181권 만들었다. 이런 것도 고통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힘든 것은 하려 하지 않는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만 들뿐 아니라 돈도 되지 않는 일이다. 시간낭비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글쓰기에 올인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에 올인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글쓰기는 어쩌면 고통의 산물일지 모른다. 고통이 있기에 글쓰기가 힘을 받는 것이다. 고통이 없다면 애써 힘만 들게 돈도 안되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라도 하나 써야 한다. 그렇다고 일기형식의 글을 써서는 안된다. 초등학교 일기장 같은 글은 지양한다. 무언가 하나라도 정신적 성장을 이루는 글을 써야 한다. 경전을 근거로 한 글쓰기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

 

글은 2006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필 형식으로 짤막하게 썼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경전의 문구를 곁들인 글쓰기를 하게 되었다.

 

경전을 근거로 하는 글쓰기 특징이 있다. 나에게도 좋고 타인에게도 좋은 것이다. 경전 문구를 읽고 감명받아서 사구게라도 하나 올려 놓으면 자신에게도 이익이고 타인에게도 이익 되는 것이다. 이런 글쓰기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매일 아침 흰 여백을 대한다. 참으로 막막하다. 무엇을 써야 할지 알 수 없다. 이런 때는 일단 두드리고 본다. 마치 펜 가는 대로 쓰는 것처럼, 자판 치는 대로 쓰는 것이다.

 

글은 고도의 창작작업이나 다름없다. 내용과 형식을 갖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전에 씨나리오를 써 놓아야 한다.

 

글의 씨나리오는 머리 속에 있다. 오늘 써야 될 것을 대강 정리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폰 메모앱에 메모해 둔다. 때로 종이노트에 써 놓기도 한다. 이렇게 준비 작업을 마쳤을 때 자판을 치기 시작한다.

 

서두가 문제이다. 마치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고민되는 것과 같다. 영화에서 첫 장면 같은 것이다. 강한 어필이 있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흰 여백을 메꾸어 나가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여백은 공포나 다름없다. 그러나 노련한 작가는 일단 쓰고 본다. 쓰다 보면 술술 풀릴 때도 있는 것이다.

 

지난 이십년동안 매일 오전 흰 여백을 대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한두달도 아니고 일이년도 아니다. 매일 흰 여백을 접했을 때 아무리 노련한 작가라도 막막할 것이다. 그럼에도 여백을 메꾸어 나가야 한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조작업이다.

 

매일 창조작업을 하고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로지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른 것이다.

 

나는 소설가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블로거이다. 그럼에도 매일 글을 쓰는 것은 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고통스러운 창조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만들었다. 이번에 만든 책은 이띠붓따까에 대한 것이다. 이를 ‘182 이띠붓따까 읽기라고 이름 붙였다. 182번째 책이다. 목차에는 19개의 글이 있고 354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오늘 같은 날만 되어라

2. “이 나이에 뭘 하냐고?” 이번 한생으로는 부족

3. 생활속의 자애수행

4. 현실이 지옥일 때

5. 학인(學人)의 조건

6. 행선(行禪)의 맛

7. 왜 부끄러움과 창피함인가?

8. 명상이 아니라 수행을 해야

9. 찰나삼매와 이익삼빠자나

10. 불행한 만큼 청정해지고

11. 잠과의 전쟁

12. 던져진 존재와 태어날 곳을 선택하는 자

13. 매일매일 무너지는 삶을 살고 있지만

14. 나는 언제나 피가 철철 나도록

15. 오늘도 가르침에 바다에 퐁당 빠져

16. 사람들은 나름대로 즐길거리가 있어서

17. 그래도 희망을 노래하자

18. 독자를 하느님처럼 부모처럼

19. 출가자는 특별관리대상

 

182 이띠붓따까 읽기_260423.pdf
2.23MB

 

 

 

글은 중복된 것이 많다. 경전을 근거로 하여 쓰다 보니 이 책과 저 책에서 동시에 게재되는 글도 많다. 특히 최근에 만든 책에서 볼 수 있다.

 

목차에 있는 글은 주로 이띠붓따까에 실려 있는 가르침에 근거한다. 이띠붓따까를 처음부터 끝까지, 각주까지 빠짐없이 읽어 가면서 그때 그때 느낌을 쓴 것이다.

 

글은 일단 쓰고 보는 것이다. 좌고우면할 것 없다.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고 시를 쓰는 것도 아니다. 경전을 읽고서 새기고 싶은 것을 쓰는 것이어서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다.

 

경전을 보면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있는 것이 있다. 이미 수천년전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것을 알았을 때 마음이 충만된다. 목차 19번에 있는 글도 이에 해당된다.

 

목차 19번은 존재에 대한 글이다. 어떤 것인가? 이띠붓따까를 읽다가 부땅 부따또 빳싸띠(Bhūta bhūtato passati)”라는 말에 감동받아 쓴 것이다. 이 말은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는 그대로 본다.”(It.43)라는 뜻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미사여구가 붙지 않는다. 주어 동사 목적어 순이다. 존재에 대한 것도 그렇다.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는 그대로 본다.”라는 말은 얼마나 단순한가? 진리는 이런 것이다.

 

존재란 무엇일까? 빠일리어 원문에 따르면 부따(bhūta)’를 번역한 말이다. 빠알리어 사전에 따르면, ‘[pp. of bhavati] become; existed’라고 설명되어 있다. 되어진 것, 형성된 것의 의미이다.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유정중생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심오하다. 부처님이 짧게 한마디 했을 때 엄청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주석을 보아야 한다.

 

요즘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을 읽고 있다. 삼년 되었다. 질적으로 향상되는 것 같다. 이전에 놓치고 있었던 것이나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는 그대로 본다.”라는 말도 해당된다.

 

요즘 책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전에는 일상에 대한 것이나 여행에 대한 것 등을 만들었으나 요즘에는 경전읽기나 법문읽기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건은 만들어 놓으면 팔리게 되어 있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책도 만들어 놓으면 누군가 읽을지 모른다. 이런 기대감으로 피디에프(pdf) 파일을 만든다.

 

책을 182권 만들었다. 블로그에 피디에프 파일이 올려져 있다. 누군가 볼지 모른다. 단 한사람이라도 다운 받아 간다면 내가 할 일은 다 한 것이 된다.

 

글쓰기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창작의 고통이라 말할 수 있다.

 

매일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매일 고통스러운 작업을 하고 있다. 고통이 없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고통이 있기에 글을 쓴다. 이렇게 본다면 고통은 글쓰기의 원동력이 된다.

 

세상에 수많은 책이 있다. 일생에 한두 권 내기 힘들 것이다. 이런 책은 고통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책을 쓰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류문화유산 같은 것이다.

 

세상의 책은 고통속에서 탄생했다.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은 한존재의 고통의 결과에 대한 것이다. 책의 작자에 경의를 표한다.

 

 

2026-04-2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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