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청구서는 날아 오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19. 4. 23. 11:18

 

청구서는 날아 오는데

 



 

오피스텔 사무실이 있다. 작은 사무실이다. 옆사무실에 딱지가 붙었다. 관리비를 내지 못해 단전하겠다는 것이다. 문은 굳게 잠겨 있다. 칠년 이웃이었는데 이후 다시 볼 수 없었다.

 

복도를 중심으로 사무실 열개가 있다. 2007년 커다란 사무실을 열개로 쪼개서 분양한 것이다. 실평수 열평 가량 작은 사무실이 복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다섯 개씩 있다. 변화무쌍하다. 일년이 멀다하고 입주자가 바뀐다. 임대로 입주한지 12년 만에 어느덧 터주대감이 되었다.

 




수 많은 사람을 만난다. 고객으로서의 만남이다. 그 중에는 파산자들도 있다. 사연도 가지가지이다. 그는 세금을 제때에 내지 못했다. 부가세가 날라 왔는데 가볍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세금은 가혹한 것이다. 밀린 날자에 따라 가산된다. 몇년이 지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 그는 어찌할 수 없어서 파산신청 했다. 경제적으로 사망한 것이다. 그는 그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오늘도 빚을 갚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청구서는 매달 날라온다. 관리비가 대표적이다. 전기와 수도, 가스비가 포함되어 있다. 임대비도 만만치 않다. 통신비도 내야 한다. 가장 아까운 것은 의료보험비이다. 병원에 가지 않음에도 자동집계 되어 꼬박꼬박 청구된다. 국민연금은 아무리 많이 내어도 아깝지 않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세금이다. 부가세는 당연히 내야 하는 것이지만 내돈 나가는 것처럼 아깝다.

 

통장잔고는 늘 텅텅 비어 있는 것 같다. 이것저것 결재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자연스럽게 마이너스통장이 된다. 그럼에도 이곳저곳에서 청구서는 날라온다. 생각지도 못한 것들도 있다. 마치 고급차를 긁은 것처럼 그때그때 발생한다. 내일은 또 어떤 청구서가 날아올지 모른다.

 

청구서와의 전쟁이다. 이달에 막으면 다음 달이면 어김없이 날라온다. 인해전술을 보는 것 같다. 일진에 이어 이진이, 그리고 삼진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물리쳐도 물리쳐도 끊임없이 밀려 드는 중공군 같다. 기계적으로 날아 오는 청구서에 천하장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빚과의 전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빚쟁이이다.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도 힘들다. 그러다보니 옆도 뒤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서로 돕고 사는 것은 빚없는 자들의 일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보시는 여유 있는 자들의 일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여기에다 원금까지 압박 받으면 평생 빚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빚진자들의 세상이다. 모두 크고 작은 빚이 있다. 빚을 갚으면 후련하다. 그러나 또 언제 어떤 청구서나 날아올지 모른다. 가장 빚 갚기 어려운 청구서가 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인생청구서이다. 그것은 부모가 될 수 있고 배우자가 될 수 있고 자식이 될 수 있다.

 

결재하면 그것으로 종료된다. 수 많은 세금계산서도 결재되는 순간 깨끗이 잊어 버린다. 그러나 미결이 있다. 결재 되지 않은 것은 평생간다. 내돈 떼어 먹고 달아난 사람을 기억하는 것과 같다. 금액이 작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빚을 갚으면 깨끗하게 잊어 버린다.

 

가족은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다. 극한직업 방송프로에서도 가족이 있기에 이런 힘든 일을 한다고 말한다. 청구서는 결재 하는 순간 잊어 버리지만 인생의 짐은 평생간다.

 

오늘도 내일도 청구서는 날아 올 것이다. 물밀듯이 거침없이 냉정하게 날라 오는 청구서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빚진자도 먹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큰 빚을 졌어도,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졌어도 세 끼는 먹는다. 경제적으로 사망한 자도 숨을 쉬며 살아간다.

 

빚갚기 위해 살아간다. 빚은 삶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언젠가 빚을 갚았을 때 목표는 달성된다. 인생의 빚갚기야말로 목표중의 목표이다. 오늘도 내일도 청구서는 날라온다.

 

 

2019-04-2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