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이주노동자들의 빈자일등(貧者一燈), 2019 서울국제연등축제

담마다사 이병욱 2019. 5. 5. 16:32


이주노동자들의 빈자일등(貧者一燈), 2019 서울국제연등축제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 한다. 가난한 여인의 등 하나를 말한다. 왜 하필이면 여인이고 왜 하필이면 가난한 자의 등일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여성은 소외계층에 속한다. 아무리 양성평등을 외치지만 성이 다름으로 인하여 구별이 있을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차별까지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여성의 인권과 권리가 대폭향상 되어서 한국의 경우에는 남성들이 오히려 역차별 받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다.

 

여성은 소외계층의 대명사이다. 가난한 자 역시 소외계층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귀하고 천한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차별이 있다면 업()의 차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바라문 청년이여, 뭇 삶들은 자신의 업을 소유하는 자이고, 그 업을 상속하는 자이며, 그 업을 모태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친지로 하는 자이며, 그 업을 의지처로 하는 자입니다. 업이 뭇 삶들을 차별하여 천하고 귀한 상태가 생겨납니다.”(M135) 라고 말씀했다. 각자 지은 행위가 다르기 때문에 업의 과보가 차별 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소외 받는 계층의 등 하나의 의미는 무엇일까?

 

법우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연등축제 보러 가자고 했다. 법우님이 다니는 덕암사가 이번에 연등축제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함께 보자는 것이다. 법우님을 따라 덕암사에 여러 번 갔었다. 군부대 위문공연도 따라 갔었고 행사가 있을 때 마다 갔었다. 그때 마다 글을 남겼다. 그래서 주지스님도 낯 익고 신도들도 아는 사람이 몇 있다. 오후 4시에 동국대 대운동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2004년 능인불교교양대학 법우님들 중에 이창용, 권수현, 차윤선 님도 함께 하기로 했다. 해서 모두 4명이 모이기로 했다.

 




낯 익은 동국대 대운동장

 

동국대 대운동장은 낯익은 곳이다. 그리고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동대부중을 다녔다. 중학교 1학년 때인 1973년의 일이다. 부처님오신날 대운동장에서 행사가 있었다. 동국체전이라 하여 동국학원 산하 학교가 집결했다. 동국학원 산하 각 학교 대항 체육대회가 열린 것이다. 학생들은 행사에 동원 되었다. 일주일 동안 오전 수업이 끝나면 오후에는 대운동장에서 카드섹션 등 응원 연습을 해야 했다.

 

체전이 끝난 후 저녁에는 제등행렬에 참가했다. 종로거리를 활보 했다. 교복을 입고 차도를 활보 한 것이다. 연도에서 사람들이 격려했다. 인도로만 다니다 차도에서 걸으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더구나 박수와 환호까지 받으니 대접 받은 기분이 되었다. 연등행렬에 참가하는 사람들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부처님오신날 행사가 열린다. 꽃피는 꿈의 계절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축복받은 날씨에 울긋불긋 이곳저곳에 꽃이 만발해 있다. 이제 신록이 막 시작 되어서 온통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더구나 대학캠퍼스는 청춘들이 있는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46년전에도 그곳에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대운동장 가파른 계단은 그대로 남아 있다.

 




동국대에 대한 기억이 있다. 지금도 동대하면 기억에 남는 것은 가파르다는 것이다. 고지대에 있어서 아득할 정도로 가파랐다. 더구나 대운동장 계단은 엄청나게 높았다. 어린 나이에 한걸음으로 올라가기가 몹시 힘들 정도였다. 세월이 한참 지나 동국대 대운동장에 다시 있게 되었다.

 

본부석에 자리 잡고

 

본부석에 자리 잡았다. 콘크리트 계단으로 된 본부석을 말한다. 예전에는 이곳이 귀빈석이었다. 이번에는 본부석이 수영장 방향 쪽에 임시로 만들어졌다. 더구나 본부석 맞은편 정각원 방향에 가설 계단까지 만들어져서 사방에 자리가 마련 되었다.

 




본부석에서 강형진 선생을 만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이다. 아는 사람을 길가다 우연히 만난 경우와 같다. 그러나 불교인들의 잔치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강선생과 얘기 중에 담마와나 선원에서 만났던 법우님을 만났다. 딸과 함께 구경왔다고 했다. 활동을 하니 알아 보는 사람이 생겨난 것이다.

 

12년 전에는 동대문운동장에서 행사를 했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오세훈이 시장으로 있을 때 모두 허물어 버린 것이다. 이런 조치에 대하여 지금도 아쉽게 생각한다. 연등축제 식전 행사 장소로서 서울운동장 야구장만큼 좋은 장소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식전 행사 장소는 동국대 대운동장이 되었다.

 




진정한 하일라이트는 종합율동

 

화창한 날씨이다. 작년에는 비가 와서 행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더구나 온갖 의혹과 비리투성이의 총무원장이 개회를 선언했는데 비까지 세차게 내려서 최악의 행사가 되었다. 그러나 올해는 날씨가 무척 좋았다. 하늘은 청명하고 온도와 습도는 적합해서 상쾌한 행사가 되었다.

 




운동장에는 사람으로 가득하다. 이날 식전 행사 가장 하일라이트는 연희단의 율동이다. 한차례 리허설을 했다. 유치원, 청소년, 청년, 성인 연희단의 순서로 진행 되었다. 정식으로 식전 행사가 시작되었을 때 종합율동이 있었다. 이 종합율동이야말로 이번 연등축제의 진정한 하일라이트라 여겨진다. 그것은 모두 한마음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때는 슬픈 축제가 되어

 

연등축제를 2004년부터 참관하고 있다. 참관할 때 마다 기록을 남겼다. 2007년부터 후기를 남겼다. 어쩌면 이것도 연등축제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다. 이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2007 연등축제,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 대표축제(2007-05-21)

2. 2008 연등축제, 제등행렬은 해마다 진화한다(2008-05-05)

3. 2009 서울 연등축제, 국민축제로 승화 되었으면(2009-04-27)

4. 외국인 반? 2010 서울 연등축제(2010-05-017)

5. 우리는 자랑스런 불자, 2011 서울국제연등축제(2011-05-08)

6. 연등소녀의 미소, 2012 서울국제연등축제(2012-05-20)

7. 이날만큼은 불국토, 2013 서울 연등축제(2013-05-12)

8. “못 지켜 주어서 미안해” 2014 연등축제는 애도축제(2014-04-27)

9. 무명을 밝히는 2016 서울국제연등축제를 보고(2016-05-08)

10. 정의로운 세상 평화로운 세상, 우중(雨中)의 2018 서울국제연등축제(2018-0513)

 

 

매년 연등축제에 참관하여 기록을 남겼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14년 연등축제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하여 열리느냐 마느냐로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는데 백색 등을 들고 참여하기로 했다. 음악도 구호도 없는 침묵속에서 행진했다. 그래서 가장 슬픈 연등축제가 되었다. 2015년과 2017년에는 참관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종단 적폐청산과 관련된 이유도 있고 개인적인 사정도 있어서 참관하지 못했다.

 

주관과 객관이 어우러져

 

지금까지 15년 동안 연등축제를 죽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주객이 하나라는 사실이다. 공연자 따로 있고 구경하는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축제와는 다른 것이다.

 




축제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을 보면 무대가 있어서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어 있다. 관객은 그저 구경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눈으로 귀로 듣는 것 이상 없다. 그러나 연등축제의 경우 분리 되어 있지 않다. 함께 율동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식전행사인 종합율동 시간에 관중석에서 따라 하는 것이 대표적 예라 볼 수 있다. 길거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모습은 관제축제나 기획축제와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아무리 삼바축제가 세계인의 이목을 끌어도 관객은 관객일 뿐이다. 공연자들의 현란한 춤솜씨와 화려한 볼거리에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연등축제의 경우 함께 한다는 것이다. 주관과 객관이 어우러지는 것이다. 아마도 종교축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본다. 이런 점은 지역특산품 홍보장과 같은 지자체축제와도 확실히 다른 것이다. 어떤 이익을 추구하는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일체가 되는 것이 가능한 일이라 본다.

 




외국인의 시선을 사로 잡는 한복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한복이 아름답다. 운동장 행사장에서 사회자는 어떻게 이렇게 한복이 아름다울 수 있는지. 이렇게 우리 한복이 아름답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복은 한국인들의 전통의상이다. 그런데 연등축제에서 선보인 한복은 개량된 것이다. 갖가지 형태로 바뀌고 색상도 컬러풀하다. 일종의 퓨전한복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여성한복이 그렇다.

 















외국인들도 많이 참석했다. 특히 동남아 불교국가 참석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베트남의 경우 아오자이를 입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일까 변형이 가능하지 않다. 미얀마나 태국, 스리랑카, 네팔의 복식도 마찬가지로 변형이 쉽지 않다. 반면 한복은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하다. 그래서 연등축제 기간이 되면 마치 개량한복이나 퓨전한복 전시장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한복은 갖가지 형태로 변형되어 있다. 한복은 치마와 저고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연등축제의 장에서 한복은 이런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 사극에서 보는 고려시대, 통일신라시대, 삼국시대 복식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벽화에서 보는 복식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더구나 컬러풀하다. 그래서일까 외국인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한국인들에게도 아름다우면 외국인들에게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으로 휘감고 눈만 보이는 이슬람 여성도 사진찍기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로 가득한 야시장

 

제등행렬은 저녁 7시부터 시작된다. 동대운동장에서는 식전 행사가 4시부터 시작된다. 5시가 되면 법회의식이 이어진다. 동대운동장에서는 종합율동만 보고서 자리를 떴다. 권승들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객이 다시 분리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권위를 내 세우는 법회의식에서 신도들은 객에 지나지 않을 뿐인 것 같았다.

 

저녁식사를 해야 했다. 청계천을 따라 걷다 보니 종로5가 방산시장에 이르렀다. 먹거리 거리에 들어가니 마치 야시장 분위기가 난다. 중앙통로에는 포차식이어서 노점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지붕이 있다. 사시사철 전전후 야시장이라 볼 수 있다.

 










야시장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길게 줄을 서 있는 곳을 보니 빈대떡으로 유명하다. 재래시장에 가면 흔히 불 수 있는 메뉴가 대부분이다. 일행은 모듬순대와 전을 주문했다. 순대국밥으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대로로 가보니 연등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연등행렬

 

연등행렬은 끊임이 없다. 저녁 7 40분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9시가 될 때까지 끊임 없이 이어졌다. 어느 외국인 연등행렬 참관기에서 오고, 또 오고 두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졌다.”라고 표현했다.

 
















연등행렬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같은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모두 독특한 자신들만의 특징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밀려 드는 연등행렬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다양성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외국인 연등행렬일 것이다.

 


























외국인 연등행렬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금발을 특징으로 하는 외국인들이 연등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들의 종교는 무엇일까? 불교가 아닌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연등을 들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것은 종교를 초월한 것이라 보여진다. 이런 모습을 한국의 유일신교 신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연등축제가 있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불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설령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참가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유일신교를 믿는 사람들은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유일신교 사람들이 이런 행사에 등을 들고 참여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불교신자 역시 기독교 행사나 축제에 참가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외국인들이 등을 들고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모두 젊은 외국인들이다. 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날 외국인 행렬중에서 매우 특이한 모습을 하나 보았다. 그것은 일본 참가자에 대한 것이다. 십여년간 연등축제를 참관하면서 한번도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 행렬에서는 놀랍게도 기모노를 입은 여성을 보았다. 이런 것도 연등축제가 글로벌 했기 때문일까?

 



 

종교와 민족을 초월하여 누구나 등 하나 들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연등축제이다. 평화축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본다. 누구나 등만 있으면 거리 행진 할 수 있다. 외국인들에게 있어서 축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전에 볼 수 없었던 문화를 접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이것으로 불연(佛緣)이 될 수 있다.

 






법화경 방편품에서도 어린 아이가 막대기로 불상을 그려도 그 인연으로 언젠가는 성불할 것이라 했다. 외국인이 연등을 든 인연으로 언젠가는 부처님 가르침과 접하게 되리라는 것을 기대해 본다.

 

이주민 불교공동체의 등불

 

예전 제등행렬에서는 외국인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컬러풀하지도 않았다. 1973년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참가한 제등행렬은 단순하고 소박했다. 등하나 들고 종로거리를 행진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자들의 한복 역시 치마와 저고리 형태뿐이었다.

 

언제부터 인지 외국인들이 참가하기 시작했다. 외국 이주민 노동자들이 증가한 시기와 일치한다. 그래서 최근 십여년 동안 연등축제를 참관하다 보니 연등행렬에서도 외국인 행렬을 볼 수 있다. 특히 베트남, 태국, 미얀마, 스리랑카, 네팔 등 불교국가 이주민 노동자 행렬이 그것이다.

 









 

미얀마행렬을 보았다. 짙은 붉은 색 가사를 특징으로 하는 빅쿠들이 앞장서고 미얀마 사람들이 등을 들고 따라 붙었다. 아마 이주민 노동자들일 것이다. 미얀마여인들은 미얀마 전통의상을 입었다. 쉐다곤 파고다에서 보았던 전통의상 그대로이다. 남성들은 치마처럼 보이는 론지를 입었다. 이런 모습이 이제 익숙하다.

 





지난 1월 초에 미얀마로 집중수행 하러 갔었다. 14일 일정이었다. 수행기간이 끝나고 12일 동안 양곤과 부근의 수행처와 성지를 순례했다. 그때 본 미얀마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강렬했다. 이를 수행기와 순례기로 남겼다. 그래서일까 미얀마 사람들이 더 정겨워 보인다. 행진에 참가한 미얀마의 젊은 남녀의 표정이 무척 행복하게 보였다.


연등축제는 한마음 축제와 같다. 주체와 객체가 따로 없는 것이다. 모두 참여 하는 축제이다. 연도의 사람들은 미얀마 불교공동체가 지나가면 미얀마, 미얀마라며 큰 소리로 응원해 준다. 그러면 미얀마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매우 흐뭇한 광경이다. 대만불교공동체가 지나가면 대만, 대만이라 하고, 베트남 불교공동체가 지나가면 베트남, 베트남하며 연호한다. 스리랑카, 태국, 네팔 등 이주민불교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연등축제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은 외국인 이주민노동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불교공동체 행렬이다. 불자들이 연등축제 하루만큼은 종로거리를 활보 하며 불교의 존재를 마음껏 과시하는 듯 하다. 마찬가지로 각 나라의 이주민불교동체들의 멤버들 역시 자신들 나라의 불교를 마음껏 과시 하는 것 같다.

 

그들은 한국으로 돈 벌러 와서 주로 3D업종에 종사하며 갖은 악조건과 차별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날 하루만큼은 그들의 세상처럼 보였다. 그들의 행렬에서 빈자일등을 보았다.

 




정법(正法)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전등(傳燈)이라는 말이 있다. 마치 등불이 계속 이어지듯이, 부처님 가르침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전등록(傳燈錄)이 있다. 송대 도원이 지은 것으로 역대 조사의 선종계보와 어록을 밝힌 책이다.

 

전등록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 이래 역대 법맥이 등을 주고 받듯이 전승되어 왔다고 한다. 선가계보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본다. 선가에서는 달마를 선종의 시조로 삼고 있다. 그래서 한국 선가에서는 가깝게는 달마, 멀게는 석가모니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법의 등불이 꺼지지 않고 전승되어 왔다고 한다.

 

전등록에 따르면 법의 등불은 과거칠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과거불의 등불은 전승되지 못했다. 과거불이 출현했다는 것은 정법이 단절 되었음을 의미한다.

 

91겁 전의 비빳시(vipassi) 붓다의 법맥은 단절 되었다. 31겁 전에 시키(sikhī) 붓다가 출현하기 전까지 무려 30겁 동안 암흑의 시대가 되었다. 이후 벳사부(Vessabhū, 31겁전), 까꾸산다(Kakusandha, 현겁), 꼬나가마나(Koāgamana, 현겁), 깟싸빠(Kassapa, 현겁), 그리고 고따마(Gautama, 현겁)붓다가 출현했다. 그래서 과거칠불이라 한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미륵(metteyya)의 출현이 예고 되어 있다. 이로서 현겁에만 5명의 붓다가 출현한다. 그래서 현겁에 대하여 행운의 겁(bhadda kappa)’ 이라 한다. 그런데 초기경전에 따르면 모든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모두 같다고 했다. 연기법을 발견하여 법을 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연기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이 생겨난다.’라고 여래가 출현하거나 여래가 출현하지 않거나 그 세계는 정해져 있으며 원리로서 확립되어 있으며 원리로서 결정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S12.20)”라고 말씀 하셨다. 부처가 출현하든 출현 하지 않든 연기법은 이미 원리로서 확정되어 있다고 했다.

 

정법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미륵불의 출현을 예고 하는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법도 언젠가 변질되고 오염되어서 사라지고 말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정법이 사라지면 다음 부처가 출현할 때까지 암흑의 시대를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정법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섯 가지 시대가 있는데

 

카페가 있다. 인터넷 카페도 카페이다. 카페에 불이 꺼지면 썰렁해진다. 오래 되면 페가처럼 보인다. 블로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로운 글이 올라가면 불이 켜진다. 그러나 계속 올라 가지 않으면 불꺼진 집처럼 된다. 오래 되면 잊혀지게 된다. 아무도 찾지 않는 카페,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블로그가 된다. 폐가처럼 되는 것이다. 가르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법을 유지하려면 전등해야 한다. 어둠을 밝히는 등을 주고 받아야 한다. 등을 켜는 순간 어둠은 사라진다. 등을 켜면 한순간에 모든 것이 파악된다. 등이 어둠을 밝히듯이, 가르침은 무명을 밝힌다. 등을 켠다는 것은 정법을 수호한다는 말과 같다. 가르침의 등불이 꺼지지 않으면 정법도 오래 간다.

 

정법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정법이 사라지는 시기를 다섯 단계로 보고 있다. 그것은 1)깨달은 자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는 것(paivedha sāsana), 2)깨달은 자가 없어도 깨닫기 위하여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paipatti sāsana), 3)제대로 된 승가가 없고 제대로 된 계율을 지키지 않는 스님만 남아 있는 것 (pariyatti sāsana), 4)평복으로 입는 가사가 행사 때만 입는 것(liga sāsana), 5)가르침에 대한 지식이 모두 사라지는 것(sarīra sāsana)을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슨 시대일까?

 

지금의 시대를 정법이 살아 있는 시대라 한다. 일반적으로 정법시대라는 것은 아홉 가지 출세간법이 살아 있는 시대를 말한다. 부처님 가르침으로 성자가 출현하면 정법시대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겉모습만 스님인 시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늬만 불교인 시대가 있다. 평상복이 되어야 할 가사를 의식이나 행사 등 특별한 날에만 입는 시대를 말한다. 더구나 가사가 점점 작아져서 가사의 모퉁이를 잘라 몸에 걸쳐서 스님임을 표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가사를 끈처럼 해서 손이나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네 번째 단계로 스님들이 평복으로 입는 가사는 사라지고 행사 때만 입는 가사가 되는 시대(liga sāsana)’를 말한다. 어쩌면 한국불교는 네 번째 단계에 해당되는지 모른다.

 

이주민 노동자들의 빈자일등


언젠가 정법은 변질되고 오염되어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눈 밝은 이들이 있어서 가르침의 등을 켜고 있다. 미얀마 등 테라와다 불교국가의 이주노동자들이 등을 들었다는 것은 어쩌면 정법의 등을 든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가난한 여인이 어렵사리 등을 하나 마련했다. 여인은 부처님과 가르침과 상가에 대한 지극한 믿음으로 등에 불을 켰다. 가난한 자의 등은 부자의 크고 화려한 등과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것이 정법의 등불이라면 밤하늘을 환하게 밝힐 것이다. 미얀마 등 테라와다 불교국가 사람들이 등을 들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빈자일등이다.

 









유튜브에 연등축제 동영상을 올리고

 

연등축제 동영상 파일을 만들었다. 하나는 유사동영상이고 또 하나는 실제동영상이다.

 

유사동영상은 사진 202장을 이용하여 이미우이의 불정존승다라니곡을 삽입했다. 10분 분량의 이 동영상은 경쾌한 음악이 특징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u1RI3t6dzA&t=351s

 

 

실제동영상은 현장에서 촬영한 짤막한 동영상 10개를 편집해서 만든 것이다. 2 30초 분량으로 현장감이 넘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ZmlICsWQks



2019-05-0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