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행복의 종교?
불교는 행복의 종교?
누구나 안락한 삶을 바란다. 안락은 행복과 동의어이다. 빠알리어로 수카(sukha)라고 한다. 부처님은 전도선언에서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S4.5)라고 말씀했다. 부처님은 분명이 행복(안락)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부처님은 “지극히 원만하고 오로지 청정한 거룩한 삶을 실현하라.”(S4.5)라고 말씀 했기 때문이다.
출가자들이라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청정한 삶(brahmacariya)이다. 불교인들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열반인데 청정한 삶은 열반에 이르게 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행복은 다름아닌 열반이다. 가르침대로 살면 열반에 이르기 때문에 이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행복을 말하는 스님이 있다. 박사 타이틀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스님은 불교가 행복의 종교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 행복론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특히 윤회를 반신반의하는 것이 그렇다. 윤회는 인도라는 특수한 지역에서 생겨난 특별한 문화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말은 즉문즉설로 유명한 스님도 똑같이 말했다.
윤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한다. 지금 여기에서 잘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잘살면 저 세상에서도 잘살 것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세상에 못살면 어떻게 될까? 악하고 불건전하게 한평생 살았을 때 다음생이 없다면 어떤 삶을 살아갈까? 대부분 즐기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인생이 원타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굳이 착하고 건전하게 살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오직 한번뿐인 인생이라면, 저세상이 없다면 최대한 즐기는 삶을 살 것이다. 은퇴한 사람에게 “이제 남은 여생 즐기며 살아 가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청년이여,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지나가면 후회한다.”라는 지하철 공익광고 문구도 보았다. 그래서일까 세상은 즐거움을 부추기는 것으로 가득하다. 먹방이 대표적이다. 세상은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는 것으로 가득하다.
즐기는 삶은 재미를 추구하는 삶이다. 눈과 귀 등 감각기관으로 즐기는 삶이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삶이다. 동물적 삶의 방식이다. 감각적 쾌락의 삶의 방식이다.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말했을 때 대개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만족시켜 주는 오욕락(五慾樂)이기 쉽다. 부처님이 오욕락을 추구하라고 전도선언 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불교는 행복의 종교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행복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기 때문이다. ‘고생끝 행복시작’을 연상케 하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행복이라는 말이 문자적으로 안락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즐거움, 재미 등 감각적 쾌락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행복은 ‘궁극적 행복(parama sukha)’이다. 그래서 “열반이 최상의 행복이다.(nibbānaṃ paramaṃ sukhaṃ)”(Dhp.204)라고 말씀했다.
부처님은 중생들의 안락과 이익을 위해 전도하라고 했다. 제자들에게 준엄하게 명령한 것이다. 혼자 은둔하며 살지 말라는 것과 같다. 그들에게 자신의 청정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열반으로 이끌라는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열반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불생불사(不生不死)의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생들에게 이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행복의 종교’라고 말하기 보다는 “불교는 열반의 종교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2019-06-1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