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다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다
갑자기 파일이 열리지 않았다. 폰트가 다 깨져 있는 것이다. 방금 작성한 문서는 예외이다. 이전에 작성한 문서가 모조리 깨져 있었다. 이틀전 글을 하나 작성하면서 마무리 작업 했는데 그때 기진맥진 한 상태에서 급하게 이것저것 건드렸다. 아마 무언가 잘못 건드린 것 같았다.
작업한 파일이 모조리 깨졌는데
이전에도 이런 현상이 있었다. 2013년도의 일이다. 문서뿐만 아니라 사진도 깨졌다. 문서의 경우 쓰는 족족 인터넷에 올리기 때문에 덜 서운했지만 애써 찍어 놓은 사진이 모두 깨진 것은 매우 아까웠다. 그래서 이삼년 모아 놓은 파일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6년만에 또다시 대참사가 벌어졌다.
다음날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컴퓨터 관련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문서프로램을 새로 깔면 간단히 해결될 줄 알았다. 친구에게 현상을 찍은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내 주었다. 지독한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했다. 돈을 요구하는 해커짓이라고 했다. 이런 경험이 있는 또다른 친구에게 전화 걸어 보라고 했다.
또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오년전에 그런 경험이 있다고 했다. 중요한 문서가 모두 파손 되어서 복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고 한다. 안철수연구소까지 찾아 갔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해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해커가 요구한대로 비밀 계좌를 개설하여 돈을 보냈다고 한다. 그때 당시 비트코인 가격 40만원 가량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천만원가까이 된다고 한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포기했다. 절차도 복잡했고 돈이 얼마나 들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괘씸 했다. 악성파일을 몰래 심어서 파일을 파괴하고 돈을 요구한다는 것이 악랄한 사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서파일만 파괴된 것이 아니었다. 수년동안 작업해 놓은 캐드파일이 모조리 못쓰게 되었다. 그러나 사진파일은 무사했다. 추억만큼은 남겨 놓은 것 같다.
문서파일은 인터넷에 올려져 있기 때문에 파괴 되어도 그다지 걱정 되지 않았다. 문제는 작업파일이다. 작업을 하여 거래가 끝나면 거의 대부분 다시 찾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 작업한 것은 상황이 다르다. 아직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수정 작업이 있으면 해 주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컴퓨터를 이원화하고
컴퓨터가 폭격을 맞은 듯 초토화 된 것 같다. 애써 작업해 놓은 것이 모조리 못쓰게 되었을 때 처참한 마음이 되었다. 사람이라면 사망에 가까운 재앙인 것이다. 컴퓨터를 포맷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컴퓨터가 사망한 것이다. 사람이 죽은 것과 똑 같다. 마치 사고로 갑자기 죽은 것과 같다.
포맷을 함으로 인하여 이전에 모아 두었던 것은 대부분 사라졌다. 안전하게 남은 것은 인터넷에 있는 것들이다. 또 프린트 해놓은 자료들이다. 컴퓨터만 믿고 있다가 컴퓨터가 못쓰게 되자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마치 사람이 죽으면 오온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과 조금도 다름 없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인터넷용 컴퓨터와 작업용 컴퓨터로 이원화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바이러스나 해커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전부터 필요성을 알고 있었으나 태만한 것이다. 막상 닥치고 보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방법은 작업용 컴퓨터에는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작업용으로만 사용하는 전용 컴퓨터가 필요했다.
마침 노트북이 있었다. 노트북에 작업을 하기 위한 각종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작년 미얀마 가기 전에 구입해 놓은 것이다. 생업을 포기 하고 보름동안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차하면 현지에서 작업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노트북 화면이 작기 때문에 대형모니터를 연결하였다. 모니터가 두 개 된 것이다. 작업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별도의 키보드가 필요했다. 노트북을 마치 데스크탑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상에는 세 개의 모니터에다가 두 개의 키보드, 그리고 두 개의 마우스가 갖추어지게 되었다.
사람을 등쳐먹고 사는 직업
이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모두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이다. 그런데 최악은 사람을 등쳐먹고 사는 직업일 것이다. 사기꾼 같은 것이다. 컴퓨터를 불능상태로 만들어 돈을 요구하는 것은 최첨단 사기에 해당될 것이다. 애써 작업한 문서뿐만 아니라 추억을 간직한 소중한 사진까지 못쓰게 만들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복구하려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해커와 협상이 이루어지고 계좌를 개설하는 등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치 낙시바늘을 문 물고기와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다.
해커들은 기술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남들 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때 인생관이나 직업관, 가치관이 없다면 손쉽게 돈을 벌려고 할 것이다. 이럴 때 기술이 있는 것이 오히려 재앙이 된다. 그래서 법구경에 이런 말이 있다.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난다.
오직 그의 불익을 위해서
그것이 그 어리석은 자의 행운을 부수고
그의 머리를 떨어 뜨린다.”(Dhp.72)
부처님은 기술을 강조했다. 부처님은 부모가 자녀에게 다섯 가지 경우로 돌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기술’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기술을 배우게 하고(sippaṃ sikkhāpeti)”(D31.18)라고 말씀했다. 부처님은 축복의 조건 중에서도 기술을 강조했다. 그래서 “많이 배우고 익히며(bāhusaccañ ca sippañ ca)”(Stn.261)라고 하여 기술을 배울 것을 강조 했다. 그런데 기술이 어리석은 자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리라 자신도 해친다고 했다. 오늘날 해커와 같은 사람들이다. 왜 그럴까? 그들은 업과 업의 과보를 모르기 때문이다.
불선업을 지으면 불선과보를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사기를 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나면 불익이 될 것이라고 했다. 결국 “그의 머리를 떨어 뜨린다.”(Dhp.72)라고 했다. 여기서 머리는 지식을 상징한다. 떨어진다는 것은 퇴락을 의미한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나 기술이 있는 사람들이 가치관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그 배움이나 기술이 독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배움이나 기술은 어리석은 자도 습득할 수 있다. 어리석은 자가 고위직에 올라 갈 수도 있다.
인기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종종 구설수에 오르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한마디로 어리석기 때문이다. 업과 업의 과보를 모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금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다. 미투(Me Too)로 낭패 보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어리석은 자들에게 지식이나 기술이 생겨나거나 권위가 주어지면 파멸로 이끌 수 있다. 그것도 목이 떨어질 정도로 운명적 파멸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가 애써 습득한 지식이나 기술, 권위는 모두 파괴되고 퇴락하고 황폐해진다. 머리가 떨어진 것과 같은 것이다.
오온이 통째로 사라졌을 때
애써 작업해 놓은 것이 통째로 사라졌다. 그러나 웹에 올려진 자료는 살아 남았다. 컴퓨터를 포맷함에 따라 이전 컴퓨터는 사망하고 새로운 컴퓨터와 마주하고 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 같다. 이메일을 세팅하고, 프린터를 동작시켰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컴퓨터의 일생은 사람의 일생과도 유사한 면이 있다.
언제까지나 이 평온이 계속될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컴퓨터가 불능이 되다보니 어느 것 하나 영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또다시 알게 되었다.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이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단절될 수 있다. 그럴 경우 오온이 통째로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오온이 통째로 사라졌을 때 그 동안 애지중지 하던 것들은 무용지물이 된다. 평생 돈을 모은 사람은 돈을 가져 보지 못하고 단절된다. 설령 살아 있을 때도 내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불에 타버리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어 버린다. 천재지변으로 물에 휩쓸려 갈 수도 있다. 도둑이 가져 갈수도 있고 사기 당할 수도 있다. 악의적인 상속자가 빼앗아 갈 수 있다.
지금 애지중지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돈이나 골동품, 부동산과 같은 재산은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 오면 하나도 가져 가지 못한다. 마치 컴퓨터가 불능이 되었을 때 하나도 건지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마음의 재산은 예외이다.
한평생 마음을 닦은 수행자의 재산은 죽어서도 가져 갈 수 있다. 마치 웹에 남아 있는 자료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믿음의 재물, 계행의 재물,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재물, 배움의 재물, 보시의 재물, 지혜의 재물을 말한다. 이를 일곱 가지 영원히 상실되지 않는 재물이라고 한다. 또 칠성재(七聖財)라고 하여 일곱 가지 성스런 재물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칠성재에 대하여 부처님은 “불이나 물이나 왕이나 도둑이나 원하지 않는 상속자에 의해 약탈될 수 없는 것입니다.”(A7.7) 라고 말씀했다.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다
애써 작업한 파일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인터넷과 정보통신시대이다. 모르면 포털검색하라고 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원시인이 된다. 네트워크가 끊어지고 정보통신기기가 불능이 되었을 때 반문명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것 밖에 없다. 머리에 있는 지식이 가장 확실하다. 포털이나 책에 있는 것과는 다르다. 언제 어디서든지 즉각 꺼내 쓸 수 있다. 삶의 지혜는 자신의 것이다. 노우하우(Know How)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지혜를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힘들다. 몸으로 체득하여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 경험한 것은 잊어 버리지 않는다. 확실히 내 것이 된다. 어느 날 오온이 통째로 사라져도 가져 갈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의 재물, 계행의 재물,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재물, 배움의 재물, 보시의 재물, 지혜의 재물은 다음 생을 위한 자산이 된다. 어쩌면 웹에 올려진 글과 같은 것이다.
사고가 난지 이틀 되었다. 컴퓨터를 포맷하고 노트북을 데스크탑화여 이틀만에 이원 체제를 만들었다. 한책상에 두 대의 컴퓨터가 가동 되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도 두 대, 키보드도 두 개, 마우스도 두 개, 모니터는 세 개이다. 일반용은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고, 작업용은 차단 되어 있다. 앞으로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의해 자료가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다.
2019-09-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