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네 얼굴을 기억하라

담마다사 이병욱 2019. 9. 24. 16:49

네 얼굴을 기억하라

 

 

죽어 가는 자에게서 네 얼굴을 보라.” 이 말은 니까야 강독모임에서 듣던 말이다. 법구경에 있는 말이라고 했다. 찾아 보니 비슷한 말이 있다. 그것은 그들 속에서 너 자신을 인식하라.”(Dhp.129)라는 말이다. 여기서 그들이란 누구를 말할까? 이럴 때는 법구경 게송 전체를 보아야 한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다.

 

 

어느 누구나 폭력을 두려워한다.

모든 존재들에게 죽음은 두렵기 때문이다.

그들 속에서 너 자신을 발견하라.

괴롭히지도 말고 죽이지도 말라.”(Dhp.129)

 





 

폭력에 대한 게송이다. 그것도 죽을 정도의 폭력에 대한 것이다. 죽음의 공포에 질린 자의 얼굴이 연상된다. 몽둥이로 때렸을 때 상대방은 죽음의 공포를 느낄 것이다. 그때 상대방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사자성어 중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남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했을 때 그 사람을 이해 할 수 있음을 말한다.

 

지금 상대방에게 몽둥이질을 해서 죽음의 공포에 질린 얼굴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나와 무관한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나로 인해 공포에 질려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사색이 되어 있다면 그 얼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 속에서 너 자신을 발견하라. (Attāna upama katvā)”(Dhp.129)라고 했을 것이다.

 

게송에서 그들 속에서 너 자신을 발견하라.”라는 말은 빠알리어 “Attāna upama katvā”를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katvā’‘having done’의 의미이다. upama‘~와 같이의 뜻이 있다. 따라서 “Attāna upama katvā”이라는 구절은 영어로 “remember that you are like unto them”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또 다른 영역에서는 Drawing the parallel to yourself”라고 했다. 나까무라 하지메는 をひきくらぺて라고 번역했다. 나까무라 하지메역을 중역한 법정스님은 이 이치를 자기 몸에 견주어라고 번역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는 그들 속에서 너 자신을 발견하라라고 번역했다.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상대방을 통해 나를 본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볼 수 있다. 이어지는 게송을 보면 어느 누구나 폭력을 무서워한다. 모든 존재들에게 삶은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들 속에서 너 자신을 인식하라.”(Dhp.130)라고 되어 있다. 모든 존재들에게 삶은 사랑스럽다고 했다. 자기의 삶이 사랑스럽듯이,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삶도 사랑스럽다면 폭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얼굴에서 내 얼굴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것은 없다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스럽게 생각한다. 반대로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도 사랑스럽지 않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쁜 행위를 하는 자라고 했다. 그런 사람에 대하여 그들은 자기자신을 사랑스런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S3.41)라고 말했다.

 

누구든지 악행을 하면 과보를 받는다.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폭력을 가하면 결국 자기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폭력을 행사하는 자는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자기자신을 사랑스럽게 대하는 자는 악행을 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행을 하지 않는 자이다. 그런데 자기자신을 사랑스럽게 여기는 자는 남에게도 사랑스럽게 대한 다는 것이다.

 

자기자신을 사랑스럽게 여기는 자는 자기자신을 친구로 여기는 자와 같다. 반대로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남에게도 사랑스럽지 않게 대한다. 남에게 폭력으로 대한다면 결국 자기자신을 해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적으로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다.

 

 

마음이 어느 곳으로 돌아다녀도

자기보다 더 사랑스런 님을 찾지 못하듯,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사랑스러우니

자신을 위해 남을 해쳐서는 안되리.”(S3.8)

 

 

이 게송은 매우 유명하다. 상윳따니까야 뿐만 아니라 우다나(Ud.40)에도 등장하고 청정도론(Vism.9.10)에도 나온다. 게송에서 자기보다 더 사랑스런 님을 찾지 못하듯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빠세나디왕이 말리까왕비와의 대화로 알 수 있다.

 

빠세나디왕이 말리까왕비에게 물었다. 빠세나디왕은말리까여, 그대에게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것이 있습니까?”라고 물어 본 것이다. 이에 현명한 왕비는 대왕이여, 저에게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것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폐하께서는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것이 있습니까?”(S3.8)라고 되물었다.

 

영화를 보면 연인 사이에서 한편이 자기 나 사랑해?”라고 물어 보는 장면이 있다. 거의 대부분 다른 한편에서는 당신만을 사랑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가식이 있다. 의무적으로 하는 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말리까왕비처럼 저에게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것이 없습니다.”(S3.8)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왜 그런가?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비는 대왕이여, 폐하께서는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것이 있습니까?”(S3.8)라고 되물었는데, 이 말은 대왕을 무척 사랑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먼저 자기자신이 증인이 되어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런 사람은 자기자신이라고 한다. 이는 이기적인 관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자비의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사랑스러우니”(S3.8)라는 말로 설명된다. 이 말에 대하여 우다나 주석에서는 각각의 존재는 이렇게 자기를 사랑하므로 자기를 위해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싫어하므로 자기를 위해 이익과 행복을 바란다면, 다른 존재를 개미나 작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해치거나 죽이거나 손이나 흙덩이나 몽둥이 등으로 때려서는 안된다. 자신이 타인에게 행한 고통은 옮겨져서 시간이 지나면 자신에게 나타난다.”(UdA.276)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 자기를 사랑하듯이 남도 사랑하는 것이다. 자애수행을 하면 모르는 사람에게도 자애의 마음을 낼 수 있다. 청정도론에서는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는 사랑스러우니”(S3.8)라는 구절에 대하여 자애수행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애수행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

 

먼저 자기자신이 증인이 되어야 한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할까? 청정도론에서는 내가 고통을 여의고 행복해지길!”(Vism.9.8)라거나, “내가 원한없이, 악의없이, 근심없이, 나자신을 수호하기를!” (Vism.9.8)라며 자기에 대한 자애를 닦아야 한다고 했다.

 

다음 단계는 주변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대상이 된다. 수행자라면 아마도 스승이 될 것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그러므로 증인이 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을 자애로 가득 채우고, 그 다음에 자애를 쉽게 일으키기 위해 사랑하고 마음에 들고 존경하고 공경하는 궤범사나 궤범사 정도의 사람이나 친교사 친교사 정도의 사람에 대하여 그의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게 만드는 사랑스런 말 등과 존경과 공경을 불러일으키는 계행과 학식 등을 새기면서 이 분 참사람께서는 고통을 여의고 행복하길!’라고 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애를 닦아야 한다.”(Vism.9.11)라고 했다.

 

그 다음은 누구일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그 직후에 좋아하는 친구에 대하여, 아주 좋아하는 친구 다음에는 무관한 자에 대하여, 무관한 자 다음에는 원적인 사람에 대하여 자애를 닦는 것이 좋다.”(Vism.9.10)라고 했다.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하여 멀리 있는 사람, 나와 무관한 사람 순으로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네 얼굴을 기억하라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의 일이다. 그때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는 촛불추모제가 열렸다. 세월호 사건 백일째 되는 날 추모제 콘서트 주제는 네 눈물을 기억하라!”였다. 사건이 난지 백일이 되었음에도 진상조사가 지지 부진함에 따라 특별콘서트를 연 것이다.

 

콘서트에서는 네 눈물을 기억하라!”라고 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내눈물을 기억하라!”라고 착각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눈물을 기억하라는 뜻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자를 자세히 보니 내눈물이 아니라 네눈물이었던 것이다. 누구 눈물이었을까?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대통령이 어머니의 마음으로 품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대통령은 끝내 외면 했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눈물을 주르륵 흘린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눈물로 약속했다면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전혀 지키지 않았다. 결국 국민적 분노가 폭발하여 광화문촛불이 되었다.

 

폭력을 행사한 자는 폭행을 당한 자의 얼굴을 알고 있다. 죽음의 공포를 느낄 정도로 폭행을 했다면 죽어가는 자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그 죽어가는 자의 얼굴은 다름 아닌 폭행한 자의 얼굴과도 같다. 왜 그런가? 마음의 그늘이 지기 때문이다. 마치 살인자에게 죽어가는 자의 얼굴이 언뜻언뜻 떠 오르는 것과 같다.

 

세상사람을 속여도 자신자신만큼은 속일 수 없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어느 노숙자는 젊은 시절 살인을 했다. 자신을 모욕한다고 하여 우발적 폭행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 사건으로 십 년 이상 감옥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 당시 끔찍한 장면이 떠 오르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한다. 특히 죽어 가는 자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죽어가는 자의 얼굴에서 자기자신의 얼굴을 본 것이다.

 

세월호 사건 때 네 눈물을 기억하라!”라고 했다. 이 말은 대통령의 눈물을 말하는 것도 되지만 유족들의 눈물도 된다. 폭력을 행사한 자들은 폭행당한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 비참한 얼굴은 바로 자신의 얼굴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 속에서 너 자신을 발견하라. (Attāna upama katvā)”(Dhp.129)라고 했다.

 

 

어느 누구나 폭력을 두려워한다.

모든 존재들에게 죽음은 두렵기 때문이다.

그들속에서 너 자신을 발견하라.

괴롭히지도 말고 죽이지도 말라.”(Dhp.129)

 

 

2019-09-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