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무상하고 실체 없는 행운목꽃향

담마다사 이병욱 2020. 5. 3. 09:54

 

무상하고 실체 없는 행운목꽃향

 

 

시큼한 냄새가 났다. 사무실에 행운목꽃이 피었다. 4년 만에 핀 것이다. 13년 전에 산 행운목은 이제 천정을 쳤다. 천정에서 꽃대가 나와 향기를 발산하고 있다. 그런 행운목은 야행성이다. 해가 질 무렵에 핀다. 오후 6시가 되자 꽃잎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밀폐된 공간에 향내가 강렬하다.

 




꽃마다 특유의 향기가 있다. 강렬하기로는 라일락 만한 것이 없다. 바람을 타고 온 라일락꽃 향기는 특유의 진한 향내가 있다. 향기 있는 것 중의 최상은 재스민이라고 한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어떠한 꽃의 향이 있든지 그들 가운데 재스민을 최상이라고 한다.(A10.15)라고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스민꽃을 사서 향내를 맡아 본 적이 있다. 후각이 덜 발달된 사람도 순간적으로 뿜는 듯한 강렬한 향기에 즐거운 느낌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행운목꽃 향은 어떨까? 한마디로 시큼한느낌이다. 향기가 너무 강렬해서 상큼하기 보다는 시큼한 것이다. 마치 식초냄새 같기도 하다.

 






꽃향기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맛을 표현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맛에는 달다든가, 쓰다든가, 시다든가, 맵다든가 하는 표현이 있다. 그러나 향기를 표현하는 데는 딱히 표현할 만한 말이 마땅치 않다. 라일락과 재스민의 경우 상큼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차이는 있다. 행운목은 시큼하다고 표현했는데 공기청정을 위한 방향제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꽃향기가 계속 나는 것은 아니다. 관심 두었을 때 향기가 난다. 소리도 마찬가지이다. 소리에 관심 갖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행운목꽃향이 계속 나지만 다른 것에 관심 기울이고 있으면 냄새를 느끼지 못한다. 무엇이든지 그렇다. 마음이 가는 곳만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은 한순간에 한가지 일 밖에 못한다는 것이다.

 

여섯 가지 감역이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정신을 말한다. 여섯 감역은 독립적이다. 시각에는 시각의 세계가 있고, 청각에는 청각의 세계가 있다. 이들 여섯 감역은 서로 섞이지 않는다. 부처님은 여섯 감역에 대하여 일체라고 했다. 여섯 감역이 세계이고 우주인 것이다. 여섯 감역에서 세계가 발생되고 파괴된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 살고 있고 귀로 들리는 세계에 살고 있다. 눈을 감으면 세계는 파괴될 것이다. 이런 논리는 모든 감역에 적용될 수 있다.

 

행운목꽃향은 후각영역이다. 후각의 세계가 열린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시각이나 청각의 세계는 열리지 않는다. 한순간에는 오로지 한마음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머무는 시간은 짧다. 향내가 계속 나는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계속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후각의 세계는 파괴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매순간 새로운 세계가 생겨났다가 소멸하는 것이다.

 

매순간 시시각각 변한다. 조금도 가만 있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변하는 것들이 많다. 몸안에는 세포분열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마음은 일어나고 사라진다. 다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제멋대로라고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은 나의 통제권 바깥에 있다. 어느 것 하나 내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법구경에 이런 게송이 있다.

 

 

원하는 곳에는 어디든 내려앉는

제어하기 어렵고 경망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훌륭하나

마음이 다스려지면, 안락을 가져온다. (Dhp.35)

 

 

마음은 제어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마음은 경망한 것이라고 했다. 자기도 자기마음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대히여 이렇게 결론 내린다.

 

 

1) 마음은 길들이기 어렵고,

2) 마음은 빠르게 일어났다 사라지고,

3) 마음은 제멋대로이고,

4) 마음은 원래 선하지 않은 것을 좋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마음의 특징이다. 마음을 내버려 두면 불선업을 짓게 되어 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림(sati) 하는 것이다.

 

사띠하면 여섯 가지 감각의 문을 지킬 수 있다. 사띠는 본래 선법이기 때문에 사띠하면 불선법을 멀리할 수 있다. 사띠하면 날뛰는 듯한 마음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사에 사띠하라고 했다. 좌선이나 행선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띠하는 것이다.

 

사무실에 행은목꽃 향내가 진동한다.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 확 풍겨온다. 환기를 하지 않으면 불쾌감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는 행운목꽃이 필 때 꽃대를 잘라 버린다고 한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다.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십일 가지 않는다. 그 최후를 보면 비참하다. 마치 눈물 흘리듯이 진한 액체를 뚝뚝 흘린다. 굳으면 마치 접착제처럼 딱딱해진다.

 

행운목꽃은 꽃보다 향기라고 볼 수 있다. 꽃은 작고 보잘것 없지만 향기는 강렬하여 후각을 자극한다. 그러나 꽃도 향기도 무상한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변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것도 순간순간 변화한다. 그래서 무상이라고 한다.

 

무상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변하는 것을 말한다. 순간순간 변하는 무상을 보았을 때 무아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무상이나 인생무상과 같이 과거를 회상하는 무상으로는 무아를 볼 수 없다. 자아에 기반한 과거회상무상으로는 무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상과 무아를 보아야 할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항상 새로운 법들이 생겨나는데 일출시의 이슬방울처럼, 물거품처럼, 물위에 그은 막대기의 흔적처럼, 송곳끝의 겨자씨처럼, 번개처럼 잠시 지속하는 것으로 보라고 했다. 이것이 무상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무아에 대해서는 환술, 아지랑이, , 신기루, 파초처럼 견실하지 않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게 와서

괴멸한 뒤 보이지 않게 간다.

허공의 섬광처럼

생겨났다가 사라진다.”(Vism.20.72)

 

 



행운목꽃은 실체가 있다. 그러나 행운목꽃향은 실체가 없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 향내를 낼 때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향내는 존재에 기초한 존재적 개념이다. 왜 그런가? 후각접촉에서 후각도 존재하는 것이고 향내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후각과 냄새를 조건으로 후각의식이 생겨난다. 그 세 가지가 화합하여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난다.”(S35.107)라고 했다. 이것이 세상의 생겨남이라고 했다.

 

행운목꽃향이 진동할 때 세상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는다. 한번 생겨난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이 부서지는 것에 대하여 후각이 부서지는 것이며 냄새가 부서지는 것이며 후각의식이 부서지는 것이며 후각접촉이 부서지는 것이며 후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부서지는 것이다.”(S35.82)라고 했다.

 

행운목꽃향은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행운목꽃향이라는 실체가 있어서 향내가 어니다. 후각과 향내와 후각의식 삼사가 화합하여 정신에서 감각접촉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향내는 존재한다. 행운목꽃향은 실체가 없지만 조건이 맞았을 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머무는 시간은 매우 짧다. 마치 송곳끝의 겨자씨처럼 찰나지간이라고 했다.

 

행운목꽃향은 무상하다. 마치 일출시의 이슬방울처럼, 물거품처럼, 물위에 그은 막대기의 흔적처럼, 송곳끝의 겨자씨처럼, 번개처럼 잠시 지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환술, 아지랑이, , 신기루, 파초처럼 견실하지 않고 실체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향기에 집착한다. 그러나 개념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과거 냄새 맡은 경험이 있어서 실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행운목꽃향은 그때 뿐이다. 마치 열광한 관중이 떠난 텅빈 객석을 보는 것 같다. 마치 소리와도 같은 것이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비파연주의 비유를 들었다.

 

 

비파를 연주할 때 생겨난 소리는 생겨나기 전에 쌓여 있었던 것은 아니고, 생겨나더라도 쌓여 있던 것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더라도 방향이나 사잇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이미 소멸한 것이라도 어떤 곳에 쌓여 있는 것이 아니고, 비파와 연주와 연주자의 적당한 노력을 조건으로 전에 없던 것이 생겨난 것이고, 생겨난 것은 소멸하는 것과 같다.”(Vism.20.96)

 

 

모든 생겨난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하여 우 조띠까 사야도는 소리를 듣고 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소리를 아는 의식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모든 것은 지속되지 않고 모든 것은 일어나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아닛짜(無常)와 둑카()를 확신합니다.”(마음의 지도, 169)라고 했다. 향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든 경험들은 지금 일어나서 지금 사라진다고 했다. 행운목꽃향도 계속 향내가 나지 않는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 갔을 때 확 풍긴다. 이내 무감각해진다. 라일락도 재스민도 그렇다. 이전에 없던 향내가 나는 것은 향내가 날 만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무는 시간은 매우 짧다.


 




행운목꽃향은 온데 간데없다. 또다시 새로운 향내가 난다. 이전 향내는 아니다. 전에 없던 향내가 생겨난 것이다. 마치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보이지 않게 와서 괴멸한 뒤 보이지 않게 간다.”고 했고, 허공의 섬광처럼 생겨났다가 사라진다.”고했다. 행운목꽃향도 그렇다. 행운목꽃향은 무상하고 실체가 없다.

 

 

2020-05-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