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자의 불교
은둔자의 불교
두 가지 유형의 출가자가 있다. 하나는 ‘은둔자형’이고, 또 하나는 ‘사회참여자형’이다. 대개 은둔자형이기 쉽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를 했다는 것은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자기자신과 단절했으므로 세상과의 단절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은둔자형은 요즘 유행하는 ‘자연인’을 연상케 한다. 깊은 산중에서 홀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세상과 단절하고 세상과 인연을 끊은 채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여 사는 사람이다. 자급자족이 원칙이다. 그러나 완전히 세상과 단절할 수 없다. 자급자족하더라도 쌀은 사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참여자형이 있다. 탁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부처님 당시부터 출가자는 탁발에 의존했다. 그래서 빅쿠(bhikkhu)라고 한다.
빅쿠는 무엇으로 사는가?
빅쿠는 문자적으로 “he who begs”라는 뜻이다. 구걸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빅쿠는 “bhikkhus do not beg”라고 했다. 구걸하지만 구걸하지 않는 빅쿠라는 뜻이다. 왜 그런가? 빠알리사전에 따르면 “They silently stand at the door for alms.”라고 했다. 자선을 위하여 문앞에 조용히 서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빅쿠에 대한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bhikkhu:
A fully ordained disciple of the Buddha is called a bhikkhu. "Mendicant monk" may be suggested as the closest equivalent for "Bhikkhu", literally it means "he who begs" but bhikkhus do not beg. They silently stand at the door for alms. They live on what is spontaneously given by the supporters. He is not a priest as he is no mediator between God and man. He has no vows for life, but he is bound by his rules which he takes of his own accord. He leads a life of voluntary poverty and celibacy. If he is unable to live the Holy Life, he can discard the robe at any time.。
(빠알리 전자사전 PCED194)
빅쿠에 대한 설명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구족계를 받은 부처님의 제자를 빅쿠라 한다. 걸식에 의존하는 승려는 가장 빅쿠다운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빅쿠는 문자적으로 ‘구걸하는 자’를 의미하지만 실제로 구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조용히 자선을 바라며 문 바깥에 서 있다. 그들은 보시자가 자발적으로 주는 것에 의지하여 살아 간다. 그는 신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도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다. 그는 생계를 위한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다. 다만 자신이 준수하는 계율안에서 살아간다. 그는 자발적 빈곤과 금욕적 생활을 한다. 만일 그가 성스런 삶을 살 자신이 없다면, 그는 언제든지 가사를 버릴 수 있다.”
(담마다사역)
빅쿠를 ‘a Buddhist monk’라고 한다. 한자어로눈 비구라고 한다. 또 다른 말로 걸자(乞者), 걸식자(乞食者)라고 한다. 걸사(乞士)라고 말하기도 한다.
걸인과 걸사는 어떻게 다른가? 다른 사람에게 걸식한다고 해서 모두 걸사는 아니다. 청정하게 사는 자가 걸사인 것이다. 윤회의 두려움, 행위의 두려움을 안다면 청정한 삶(Brahmacariya)를 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상윳따니까야에 ‘걸식의 경’(S22.80)이 있다. 경에 따르면 “이 탁발이라는 것은 삶의 끝이다.” (S22.80)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세상에는 ‘손에 발우나 들고다녀라!’라고 하는 저주가 있다.” (S22.80)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삶은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훌륭한 양가집 자제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왜 양가집의 훌륭한 자제들이 걸식자의 삶을 선택했을까? 이런 선택에 대하여 “결코 왕이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강도가 강요한다고 그런 것이 아니고, 빚을 졌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그런 것도 아니다.” (S22.80)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일까? 이는 “그러나 그들은 ‘나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에 떨어졌다. 괴로움에 떨어져 괴로움에 둘러싸여 있다. 적어도 괴로움의 다발들이 종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S22.80)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걸식자 또는 걸사, 즉 빅쿠로서의 삶은 강력한 사회참여를 실천하는 것과 같다. 마을 주변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살며 탁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사람들과의 접촉을 의미한다.
출가했다고 하여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다. 항상 세상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출가한다고 하여 마을이나 도시를 떠나 심산유곡에서 은둔하며 사는 것이 아니다. 자급자족하며 사는 것도 아니다. 마을 주변 가까운 숲에서 살며 마을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강력한 사회참여라고 볼 수 있다.
탁발은 강력한 사회참여
부처님 당시 불교는 사회참여불교였다. 이는 도시의 불교라는 말도 된다. 사람이 사는 곳에 불교가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도 강력한 사회참여를 했다. 부처님이 무상정등각을 이루신 후에 45동안 마을에서 마을로 다니면서 설법한 것이 좋은 예이다. 부처님이 6년 고행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회와는 단절하지 않았다. 탁발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사회참여불교는 오늘날까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탁발의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탁발에 의존하는 한 강력한 사회참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불교는 어떤가?
한국불교에서 탁발은 금지되어 있다. 간혹 탁발승을 보기는 하지만 종단에서는 위의를 해치는 것이라 하여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요즘 탁발승을 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예전에는 불교망신을 주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어쩌면 이런 탁발승이야말로 진정한 빅쿠가 아닐까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한국불교에는 탁발하기가 쉽지 않다. 기후조건을 들기도 한다. 남방테라와다불교국가처럼 아열대성 기후가 아닌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추운 겨울철이 있어서 탁발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핑계일 가능성이 높다.
유년시절을 시골에서 자랐다. 그때 당시 탁발승을 종종 보았다. 초가집 문 앞에서 회색승복을 입은 스님이 서 있으면 어머니는 쌀을 한 그릇 퍼서 주었다. 이런 모습이 지금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탁발 전통이 있었다.
은둔자형 불교에서 사회참여자형 불교로
한국불교 출가자들은 대부분 은둔자형이다. 출가를 하면 세상에서 멀리 떠나 깊은 산속에서 숨어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탁발에 의존하기 보다는 시주(施主)의 보시에 의존한다. 이를 단월(檀越)이라고 한다. 단월이라는 말은 절이나 스님에게 물건 따위를 봉양하는 일을 말한다. 아마 빠알리어 다나(dāna)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한국불교에서 대부분 스님들은 매우 검소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청정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일부 스님들은 호의호식하며 살아 간다. 종단 권력을 장악한 권승들은 시주에 의지하지 않고도 자력으로 살아간다. 조상이 물려준 막대한 문화유산과 토지, 그리고 재산을 차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권승들이 개혁의 대상이다.
한국불교가 개혁되려면 은둔자형 불교에서 사회참여자형 불교로 전환되어야 한다. 마치 숨어 살듯이 깊은 산중에서 토굴을 마련하여 독살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나와서 대중과 함께 사는 것이다. 승가공동체를 형성하여 사는 것을 말한다.
자자와 포살이 있는 승가공동체에서 성자가 출현한다. 부처님도 승가공동체에서 살았다. 설령 독살이 하며 살더라도 포살일 때는 모여서 의무계율을 합송했다. 이런 승가공동체에 보시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이모이자 양모이기도 한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부처님을 위해서 가사를 보시하고자 할 때 “고따미여, 승단에 이것을 보시하십시오. 그대가 승단에 보시할 때에 곧 나와 승단을 공양하는 것이 됩니다.”(M142)라고 했다.
출가자와 시주(施主)와의 관계는
출가자는 시주의 보시에 의존한다. 만약 출가자가 시주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먹고 살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직업을 갖는 것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출가자가 직업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가자는 어떻게 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할까? 가장 이상적은 것은 탁발하는 것이다.
탁발 하게 되면 서로 출자가나 시주에게나 서로 좋은 것이다. 시주는 보시공덕을 쌓아서 좋고, 출가자는 생계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다. 출가자는 시주로부터 보시를 받을 때 축원해 준다. 법구경에 실려 있는 것처럼 “아유 완노 수캉 발랑 (āyu vaṇṇo sukhaṃ balaṃ)”(Dhp.109)하는 것이다. “장수하고 아름답고 즐겁고 건강하기를!”라고 축원해주는 것이다. 오래 오래 살아서 공덕을 많이 지으라는 아름다운 축원이다.
연인과의 사랑은 주고받기식이다. 이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다른 것이다. 한편이 주면 다른 편도 주어야 오래간다. 장사도 사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래를 할 때 손해본다고 생각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 적정하게 이윤을 챙겨 주어야 한다. 사업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놀랍게도 부처님 가르침에 ‘사업의 경’이 있다. 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그가 약속한 것을 의도한 것 이상으로 보시한다.”(A4.79)라고 말씀했다. 이는 오늘날 고객감동에 해당된다.
고객을 감동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족을 넘어서 흡족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감동을 받는다. 이는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주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해야 거래가 오래지속된다. 출가자와 시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주는 보시를 할 때 무엇을 바랄까? 분명한 사실은 보시공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도 말씀하신 것이다. 숫따니빠따 ‘보배의 경’에서도 “그들에게 보시하면 크나큰 과보를 받습니다.”(Stn.227)라고 했다. 여기서 그들은 사쌍팔배의 성자를 말한다.
보시를 해도 공덕이 되는 보시도 있고 공덕이 되지 않는 보시도 있다. 반승반속에게 보시하면 공덕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 하는 말은 “바보는 보시하고, 현자는 취한다.”가 될 것이다. 보시는 청정한 자에게 해야 한다. 그래야 보시공덕이 크다. 청정한 자에게 기쁜 마음으로 보시하면 전혀 아깝지 않다.
보시 받는 자는 보시만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그동안 공부한 것을 세상에 회향해야 한다. 시주에게 “아유 완노 수캉 발랑”하는 것을 넘어서 해탈과 열반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법문을 해야 하고 수행지도를 해야 한다. 이는 다름아닌 부처님의 명령이다. 출가자와 시주와의 관계는 공생관계가 되어야 한다.
붓다사사나, 부처님의 명령
부처님의 전도선언이 있다. 부처님은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안락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사람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S4.5)라고 했다. 그리고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마지막도 훌륭한, 내용을 갖추고 형식이 완성된 가르침을 설하라.” S4.5)라고 했다.
부처님의 전도선언은 출가자에 대한 부처님의 명령(Buddha-sāsana)이다. 어느 누구도 부처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 공부가 되었으면 은둔을 청산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 있는 곳에서 담마를 알려야 한다. 승가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알리는 것이다. 이렇게 알리지 않으면 가르침이 쇠퇴한다.
오늘날 불교가 쇠퇴한 이유 중의 하나는 스님들이 은둔생활하는 것에 있다. 시주시부터 받기만 할 뿐 내 놓는 것이 없는 것이다. 받기만 하고 주는 것이 없다면 걸인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재보시를 하면 법보시를 해야 한다. 시주가 바라는 것은 공덕을 쌓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가르침에 대한 갈증도 있다.
수행자는 굶지 않는다. 재가불자들은 스님들이 굶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용맹장진하는 수행자는 누가 도와 주어도 도와 준다. 또 도와 과를 이루어 출가목적을 달성하도록 도움을 준다. 그런 한편 법보시를 기대한다.
출가자는 공부할 기회가 많다. 바쁜 재가불자들을 위해서 담마를 설하고 수행지도를 하면 훌륭한 법보시가 된다. 그럼에도 심산유곡에서 신선처럼 은둔하며 산다면 직무유기에 해당될 것이다. 법보시는 부처님의 명령이다. 만일 법보시 없이 밥만 먹는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기려면
출가자에게 네 가지 음식의 즐김이 있다. 1)도둑질 한 것을 즐김, 2)빚진 것을 즐김, 3)유산의 즐김, 4)자기 것을 즐김, 이렇게 네 가지를 말한다. 계행이 엉망인 자는 도둑질 한 것을 즐김이 된다. 오늘날 권승들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이런 권승들에게 보시해 보았자 아무 공덕이 없다.
빚진 것을 즐긴다는 것은 계행을 지키기는 하지만 아직 성자가 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성자가 되기 전까지는 차용해서 먹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면 부처님 은혜로 음식을 먹는다. 성자가 됨으로써 부처님 은혜에 보답했기 때문에 유산으로 음식을 즐긴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은 음식은 자신의 것을 먹는 것이다. 이를 번뇌를 부순 자들의 수용이라고 한다. 아라한이 되면 주인으로서 음식을 먹는 것이다. 복전으로서 음식을 먹는 것이다. 이 시대 출가자들은 과연 무엇으로 음식을 먹을까?
앙굴리말라 게송을 보면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Thag.882)라는 말이 있다. 이는 수행자가 밥값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시대 출가수행자가 밥값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 종일 마음의 밭을 갈 것밖에 없는 것이 수행자의 삶이다. 성자가 되어서 부처님 유산으로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럼에도 보시만 강조하면서 법보시에 게을리 한다면 빚진 자로서 음식을 먹는 것이 된다.
이제 스님들은 은둔의 삶에서 나와야 한다. 자자와 포살이 있는 승가공동체에서 살아야 한다. 또 안거를 해야 한다. 설령 성자가 되었더라도 일년에 한번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와 같이 일년에 두 번 안거는 바람직 하지 않다. 안거는 여름철 3개월 동안 한번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흔히 해제철 만행한다고 한다.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거나 자신의 경계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만행 대신에 전법을 해야 한다. 부처님의 명령에 충실하는 것이다. 공부가 된 자가 세상사람들을 연민한다면 만행하는 것 보다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전법할 것이다. 이것이 밥값을 제대로 하는 것이 된다.
가장 이상적은 출가자의 삶은
세상사람들과 함께 한다고 하여 페이스북에서 활동하는 스님들도 있다. 심산유곡에 홀로 살면서 시장바닥과도 같은 페이스북에서 비대면 접촉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부처님이 지금 계시다면 아마 분명히 “페이스북을 하지말라. 페이스북을 하면 악작죄가 된다.”라고 새로운 계율을 만들었을 것이다.
굳이 인터넷으로 소통하려거든 블로그나 카페가 좋다. 별도의 독립된 주소를 가진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수행일기나 법문을 올려 놓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바닥과도 같은 페이스북에서 “아, 나는 행복하다.”라며 신선과도 같은 삶의 이야기나 자신의 일상에 대한 자랑을 올려 놓는다면 부처님도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출가수행자는 소극적인 은둔의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부가 되었으면 세상으로 돌아 와야 한다. 부처님도 6년 공부하고 세상에 나와서 45년 설법하고 지도했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당연히 부처님의 뒤를 따라야 한다.
이제 은둔자의 불교를 청산해야 한다. 세상으로 나와 전법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은 출가자의 삶은 3개월 안거를 하고 나머지 7개월은 전법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실천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도 실천하는 사람은 이러한 모든 네 사람 가운데 최상이고 가장 훌륭하고 가장 탁월하다.”(A4.95)라고 했다. 자리이타행의 실천이다. 이렇게 해야 부처님과 시주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2020-07-2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