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버리고 없애는 삶

담마다사 이병욱 2020. 8. 22. 10:31

버리고 없애는 삶

 

 

이사를 했다. 늘 그렇지만 이사하는 날은 버리는 날이다. 사이즈를 줄여서 가든 늘려서 가든 짐을 꾸릴 때 버려야할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사하면서 많은 것을 버렸다. 장농도 버리고 책장도 버리고 화장대도 버렸다. 너무 낡고 오래 된 것들이다. 공간만 차지하고 별로 쓸모가 없다. 좁은 집에 가구만 많이 있으면 더욱 좁아 보인다. 이사가는 것을 가회로 과감하게 버렸다.

 

 

책도 버렸다. 한 권, 두 권 쌓이다 보니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애물단지가 된다. 언젠가는 볼 것이라 생각하며 보관해 두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은 것 같다. 한번 보고 말 책이 대부분이다. 한번 열어 보고 다시는 열어 볼 일이 없을 때 짐만 된다. 이사가는 것을 기회로 버렸다.

 

세탁기도 버렸다. 너무 오래 되고 낡아서 버렸다. 10년 이상 쓴 것 같다. 소리가 요란하다. 용량도 작다. 이사가는 것을 기회로 버렸다. 그 대신 좀 더 크고 성능이 좋은 것으로 샀다.

 

이사가면 버리게 된다. 그리고 새것으로 사게 된다. 가전제품이 대표적이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는다는 말이 있다. 큰집으로 이사가면 사이즈에 맞게 가전제품을 구매한다. 그래서일까 경기부양하는데 있어서 주택부양정책만한 것이 없다. 신도시를 건설하거나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사를 하면 구매가 일어난다. 이사하는 것을 계기로 가구도 바꾸고 가전제품도 바꾸기 때문에 경기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미니멀라이프(minimal life)라는 말이 있다. 최소한의 생활을 의미한다. 사전적 의미는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는 생활방식.”을 말한다. 2010년 부터 영미권에서 유행했는데 이제 일상적 용어가 되었다. 물건을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물건을 적게 가지는 운동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경제적 측면으로 본다면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소비를 해야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 가는데 버리기만 하고 사지 않는다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미니멀라이프는 버리기 운동이라기 보다는 최소한의 삶에 대한 운동이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소욕지족의 삶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 버려야할까? 정신적 버림은 없을까? 놀랍게도 부처님도 버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맛지마니까야 버리고 없애는 삶의 경(Sallekhasutta)’(M161)이 그것이다. 이런 내용이 있다.

 

 

“ ‘다른 사람들이 탐욕을 부리더라도 우리는 탐욕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버리고 없애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M161)

 

 

버리고 없애는 삶은 다른 것이 아니다.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는 선정을 닦는 것과는 다르다.

 

경에 따르면 선정은 행복이라고 했다. 초선정에서 부터 팔선정, 즉 비상비비상처정에 이르기까지 선정은 버리고 없애는 삶에 대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얻기 위한 삶이라는 것이다. 이는 쭌다여, 어떤 수행승은아무 것도 없는 세계를 완전히 뛰어넘어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를 성취하는 경우가 있다. 그는나는 버리고 없애는 삶을 실천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쭌다여, 고귀한 자의 계율에서는 이것들을 버리고 없애는 삶이라고 부르지 않고 고귀한 자의 계율에서는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한 삶이라고 부른다.”(M161)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진정한 버리고 없애는 삶은 어떻게 성취될까? 경에 따르면 유신견 타파로 성립된다. 유신견은 자아의 이론에 대한 것이다. 이는 오온에서 물질에 대한 것이라면 물질을 자아로 여기고, 자아가 물질을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고, 자아 가운데 물질이 있다고 여기고, 물질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여깁니다.”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네 가지 유신견에 하여 오온에서 다섯 가지를 적용하면 모두 스무 가지 유신견이 있다.

 

오온에 대하여 나의 것이라고 보았을 때 결코 버리고 없애는 삶을 실현할 수 없다. 버리고 없애는 삶을 실현하려면 유신견을 부수어야한다. 여기서 스무가지 유신견을 한구절로 표현한다면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가 된다. 이것은 마법의 주문과도 같은 것이다. 이 주문만 외면 오취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말한다.

 

오온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집착했을 때 유신견이 된다. 특히 정신적 현상에 대해서 그렇다. 부처님은 버리고 없애는 삶에 대하여 오계준수와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 마흔 네 가지로 설명했다.

 

버리고 없애는 삶은 선정에서 행복과 비할 바가 아니다. 번뇌를 여의었을 때 진정한 행복이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경에서는 여덟 번째 선정까지만 언급되어 있다. 아홉 번째 선정인 상수멸정이 없는 것이다. 상수멸정은 열반과 동의어로서 근본적으로 유신견이 타파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행복도 행복나름이다. 부처님은 선정의 행복보다 소욕지족의 행복을 말씀했다. 선정의 행복보다 소욕지족의 행복이 더 수승함을 말한다. 주석에 따르면, 선정에 대하여 이것들을 통찰의 기초로서 사용하지 않고, 단지 행복과 평정을 누리는 수단으로써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Pps. I. 186)라고 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기 전에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을 닦았다. 그러나 불만족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오염원의 소멸을 위한 수행을 했다. 그것은 유신견 극복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은 탐욕과 성냄 등 마흔 네 가지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렇게 해야 만족할 수 있다.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버리고 없애는 삶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많은 것을 버렸다. 그렇다고 버린 만큼 산 것은 아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소파는 사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의 것만으로 사는 것이다. 미니멀라이프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진정한 미니멀라이프는 버리고 없애는 삶이다.

 

물질적인 것 만을 버리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들도 버리고 없애야 한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소욕지족의 삶이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주문외듯이 왼다면 버리고 없애는 삶이 실현되지 않을까?

 

 

2020-08-2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