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배우는 입장에서
늘 배우는 입장에서
한번도 교단에 선 적이 없다. 한번도 남을 가르친 적이 없다. 대중 앞에 서 본적이 없다. 당연히 법문 해본적도 없다. 늘 배우는 입장이다.
직장생활 할 때는 중간관리자 입장에 있었다. 상명하복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때로 지시하는 입장에도 있었다. 하나의 공동목표를 향해 가는 이익집단에서 직장생활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직장생활 할 때는 직위가 있어도 실무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직접 설계하고 디버깅하는 등 개발에 참여한 것이다. 이는 “실무에서 손을 놓는 순간 죽음이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때 익힌 실무 중의 일부를 일인사업자가 된 지금도 써먹고 있다.
모든 면에서 소극적이었다. 앞에 나서 본 적이 없다. 반장도 해 본적이 없다. 분단장을 해 보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남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있어 보지 않았다. 당연히 리더가 되어 보지 못했다.
리더가 되려면 리더로서 덕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따라야 할 매력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이것 저것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매력 있는 인간은 아니다. 그렇다면 리더로서 덕목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니까야에는 리더의 덕목에 대한 가르침이 있다. 먼저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믿음이 있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계행을 지키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부끄러움을 알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창피함을 알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많이 배우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관대하고,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지혜를 갖추었다. 수행승들이여, 핫타까 알라바까는 겸손을 갖추었다. 핫타까 알라바까는 이와 같은 여덟 가지 아주 놀랍고 경이로운 원리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아라.”(A8.24)
이것이 리더의 조건이다. 리더가 되려면 1)믿음이 있고, 2)계행을 지키고, 3)부끄러움을 알고, 4)창피함을 알고, 5)많이 배우고, 6)관대하고, 7)지혜를 갖추고, 8)겸손을 갖추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나는 이런 덕목을 갖추었을까?
부처님이 말씀하신 하신 리더의 여덟 가지 덕목중에서 ‘관대함’과 ‘겸손함’에 주목한다. 이 두 가지는 여덟 가지 조건 중에서 리더가 되기 위한 실질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제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교만하면 덕이 없다. 홀로 잘났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 사람이 따르지 않으면 리더가 될 수 없다. 조직내에서는 상명하복 관계이기 때문에 따르는 척할지 모른다. 조직 바깥으로 나왔을 때 따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사람의 진면목은 조직 바깥에 있을 때 발휘된다. 이해를 초월한 관계에서 돋보인다는 것이다. 하나라도 배울점이 있을 때 따를 것이다. 그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따르는 것이다. 스승이 될 만한 조건을 갖추었을 때 따를 것이다.
한그룹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덕이 있어야 가능하다. 덕에는 덕목이 있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리더의 덕목으로 여덟 가지를 말씀하셨다. 경에서 알라바까는 덕이 있는 리더였다. 오백명의 재가자가 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앙굿따라니까야 ‘서원의 경’에서 “내가 장자 찟따와 알라비의 핫타까처럼 되기를!”(A2.131)라고 말씀 하셨다. 핫타까는 알라바까를 말한다. 재가의 리더가 되려면 알라바까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가의 리더 알라바까의 리더십은 불교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불교 바깥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사회 모든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계행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또한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알아야 한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걸림이 없어야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다. 여기에 배움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많이 배웠다는 것은 지식이 많은 것을 말한다. 리더가 되려면 이것저것 많이 알고 상식이 풍부해야 한다. 그러나 지혜 없는 지식은 지식장사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물론 불교적 지혜를 말한다.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지혜,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 등을 말한다. 궁극적으로 무상, 고, 무아의 지혜를 아는 것을 말한다.
그가 계행을 잘 지키고 아는 것도 많고 지혜가 있어도 관대함과 겸손함이 없다면 리더가 될 수 없다. 이는 스승이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먼저 관대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사섭법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알라바까가 다음과 같이 부처님에게 말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대중을 세존께서 가르쳐주신 네 가지 섭수의 토대로 이 대중을 섭수합니다. 1) 저는 ‘이 사람은 보시를 베풀어 섭수해야 한다.’라고 알면, 그 사람을 보시를 베풀어 섭수합니다. 2) 저는 ‘이 사람은 사랑스런 말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사랑스런 말로 섭수합니다. 3) 저는 ‘이 사람은 도움을 주는 일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도움을 주는 일로 섭수합니다. 4) 저는 ‘이 사람은 동등한 배려로 섭수해야 한다.’ 라고 알면, 그 사람을 동등한 배려로 섭수합니다.” (A8.24)
사섭법은 불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실천덕목이다. 특히 리더가 될 수 있는 덕목이라고 본다. 나누는 것(布施), 사랑스런 말(愛語), 도움을 주는 것(利行), 동등한 배려(同事)야말로 리더가 갖추어야할 필수덕목이다. 이 네 가지를 실천하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다. 특히 네 번째 동등한 배려는 결정적이다.
동등한 배려는 빠알리어 ‘samānattatāya’를 번역한 말이다. 한역으로는 ‘동사(同事)’라고 한다. 흔히 동사섭이라고 말한다. 고락을 함께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KPTS(한국빠알리성전협회)본에서는 ‘동등한 배려’로 번역했다. 어원적으로나 문맥상으로나 '동등한 배려'로 번역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동사를 동등한 배려로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리더의 덕목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대중을 눈높이로 대하기 때문이다. 아래로 내려 보는 것이 아니라 무릎을 굽히고 눈높이를 맞추어 대하는 것이다. 이런 리더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리더 되기가 쉽지 않다. 스승 되기도 쉽지 않다. 계행, 지식, 지혜뿐만 아니라 관대함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대함은 보시, 애어, 이행, 동사의 실천에서 드러난다. 이런 조건을 갖춘 자가 리더가 되고 스승이 된다. 그러나 교만해지면 물거품 된다. 그래서 겸손의 덕목이 요청된다.
리더가 되기 위한 여덟 가지 조건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강조되는 것은 겸손함이다. 어떤 겸손함인가?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자신에게 착하고 건전한 것들이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A8.23)라며 알라바까를 칭찬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겸손함은 알려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일을 했다고 자랑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오늘날 사람들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이미지관리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드러내지 않는 일이 가능할까? 그것은 수행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세상에는 고수가 많다. 강호에는 숨은 고수도 많다. 리더로서 또는 스승으로서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이다. TV에 나왔다고 하여, 신문기사에 소개되었다고 하여 모두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가장 낮은 사람을 위하여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묵묵히 하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다. 겸손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직까지 한번도 강단에 서 본적이 없다. 따르는 사람도 없다. 늘 배우는 입장이다.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다. 방대한 빠알리삼장을 보면 평생 공부해도 다 못한다. 이번 생에서 못하면 다음 생에서라도 해야 할 것이다. 지혜도 마찬가지이다. 위빠사나 16단계 지혜가 있지만, 1단계 정신과 물질을 구별하는 지혜와 2단계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도 넘어 서기가 쉽지 않다. 한생으로 되지 않으면 다음 생을 기약해야 한다.
강단에 서 보지 못했지만 ‘선생’소리는 들어 보았다. 재가불교활동 하면서 들어 본 것이다. 어느 존경하는 분을 처음 찾아 뵈었을 때 “이선생”이라고 말한 것에 깜짝 놀랐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선생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다. 활동하다 보면 누구에게나 붙여 주는 명칭임을 알게 된 것이다.
누군가를 부를 때 “선생”이라는 말을 한다. 사실 알고 보면 선생이라는 말처럼 일반적인 말은 없다. 왜 그런가? 누구나 선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면 누구에게나 선생호칭을 붙여 줄 수 있다.
선생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설령 “쌤”이라 하건, “샘”이라 하건 그 사람에 대한 존칭의 의미가 크다. 그러나 선생이라 하여 모두 스승이 될 수 없다. 스승이 되는 데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리더의 조건이기도 하다. 믿음, 계행, 부끄러움, 창피함, 많이 배움, 관대, 지혜, 겸손, 이렇게 여덟 가지 덕목을 갖추고 있어야 리더가 될 수 있고 스승이 될 수 있다.
나는 덕이 있을까? 재가자 오백명의 재가자가 따른 재가의 지도자 알라바까는 리더십이 있었다. 그것은 여덟 가지 덕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턱없이 부족하다. 리더나 스승이 될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강단에 서지 않는다. 다만 글로서 아는 만큼 알리고자 한다. 이는 능력껏 보시하는 것과 같다. 늘 배우는 자세로 살아간다. 나는 학인(學人)이다.
2021-02-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