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담마다사 이병욱 2021. 2. 14. 15:41

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이 몸을 하나의 촛불과 같다고 본다. 촛불은 초와 심지를 조건으로 하여 끊임없이 타오른다. 그런데 사람의 촛불은 꺼지지 않는 촛불이라는 것이다. 촛불은 초가 다하면 꺼지지만 인간촛불은 도무지 꺼질 줄 모르고 계속 타며 빛을 낸다.

인간촛불이 계속 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연료가 무한공급되기 때문이다. 어떤 연료인가? 그것은 탐, , 치라는 연료를 말한다. , , 치가 있는 한 인간촛불은 꺼질 줄 모른다. , , 치를 연료로 하여 거세게 타오른다.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S35.28)


부처님은 일체가 불타고 있다고 했다. 어떤 일체인가? 자신이 만들어낸 세계이다. 그래서 시각도 불타고 있고 형상도 불타고 있고 시각의식도 불타고 있고 시각접촉도 불타고 있고 시각접촉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고 있다.”(S35.28)라고 했다.

이 세계는 내가 만든 것이다. 내가 창조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세상이 있어서 내가 태어나기도 하지만, 내가 있어서 세상이 있기도 하다. 눈으로 보이는 세계는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럼 귀로 듣는 것은? 눈의 세계가 있다면 당연히 귀의 세계도 있다. 이를 청각의 세계라고 한다. 물론 코의 세계, 혀의 세계도 있다. 여섯 감역의 세계가 있다.

눈만 있다고 하여 세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눈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 대상을 보면 인지하게 되는데 시각의식이 생겨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좋고 싫음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없던 것이 생겨나는 것이다. 좋은 느낌은 거머쥐려 하고, 싫은 느낌은 밀쳐 내려 한다. 이것이 탐욕과 성냄이다.

탐욕과 성냄이 있는 한 세계는 계속된다. 탐욕과 성냄은 의업이 되고, 의업은 구업과 신업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행위로 인한 업이 된다. 업을 지으면 업에 대한 과보가 뒤따르기 때문에 새로운 태어남을 유발하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탐욕과 성냄은 윤회의 땔감이 된다

탐욕과 성냄이 윤회의 땔감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어리석은 것이다.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화를 내면 낼수록 땔감은 쌓여만 간다. 반면 탐욕과 성냄을 내지 않는다면 윤회의 땔감은 줄어들게 된다. 고락의 느낌을 알아차려서 갈애와 집착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타오르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새로운 세계가 열리지 않는다.

땔감이 없으면 더 이상 타지 않는다. 윤회의 땔감이 없으면 불은 꺼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현자들은 등불처럼 꺼져서 열반에 드시나니(Nibbanti dh
īrā yathāyampadīpo)(Stn.235)라고 했다. 부처님은 열반에 대하여 불이 꺼진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제 다이소에서 엘이디(LED)촛불을 샀다. 두 개에 천원이다. 작은 건전지가 들어 있어서 스위치를 켜면 빛을 낸다. 촛불은 초와 심지를 조건으로 타지만, 엘이디촛불은 전지와 엘이디를 조건으로 빛을 내는 것이다. 빛의 모양은 다르지만 빛을 내는 것에 있어서는 같다.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것에 있어서는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초가 다타면 촛불은 꺼진다. 엘이디촛불도 전지가 다하면 더 이상 켜지지 않을 것이다. 이를 촛불의 죽음, 엘이디의 죽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죽지 않는다. 탐욕과 성냄의 땔감이 있는한 결코 죽지 않는다. 마치 촛불이 계속 타오르듯이 세세생생 계속된다.

몸이 무너져 죽어도 생은 계속된다. 행위에 대한 과보가 남아 있는 한 멈추지 않는다. 탐욕과 성냄이라는 땔감이 계속 공급되는 한 세세생생 타오른다. 이는 다름아닌 절망의 불꽃이다. 그래서 탐욕의 불로, 성냄의 불로,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으로 불타고 있다고 나는 말한다.”(S35.28)라고 했다.


2021-02-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