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추위를 법으로 본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1. 2. 17. 07:30

추위를 법으로 본다면



겨울 바람이 차갑다. 2월도 중순인데 또다시 갑자기 한파가 밀어 닥치고 있다. 2주만 지나면 3월인데 아직 체감하는 봄은 멀리 있다.

아무리 껴입어도 추위는 피해갈 수 없다. 얼굴 피부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온몸이 반응을 일으킨다. 싸락눈까지 바닥에 얼어붙어 있어서 심적으로도 차갑다. 이럴 때 아이고 추워!”라고 대부분 말한다. 부처님 제자라면 무어라 말해야 할까? “이것이 법이구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법 아닌 것이 없다. 보이는 족족 법이고, 듣는 족족 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냄새도 법이고, 맛도 법이고, 감촉도 법이다. 심지어 생각도 법이다. , , , , , 의도 법이고, , , , , , 법도 법이다. 이 세상에 법 아닌 것이 없다. 당연히 차가운 감촉도 법이다.

겨울에도 늘 따뜻한 곳에만 있다. 아파트에는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 추운줄 모른다. 일터에 가도 추운줄 모른다. 다만 이동중에 추위를 느낀다.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추울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법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다. 안락한 삶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법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진리를 보기 힘들다. 오로지 행복만 있는 천상에서는 법을 보기 힘들 것이다.

 


진리는 세상속에 있다. 안락한 세상에서 진리를 보기 힘들다. 희로애락의 세상에서 진리를 보기 쉽다. 겨울에는 얼굴에 닿는 차가운 감촉으로 법을 감지한다. 치통이 있으면 법을 보기 좋은 기회가 된다. 괴로움을 느낄 때 법을 보기 쉽다.

부처님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했다. 이는 괴로움이라는 진리를 절절하게 온몸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괴로움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속으로 뛰어들어 괴로움의 본질을 보라는 말과 같다. 이는 단지 이해차원이 아니다. 개념화된 언어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보는 것이다. 차가우면 차가운 법을 보듯이, 지금 괴롭다면 그 괴로움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본다면 이는 고귀하고, 거룩하고, 성스러운 괴로움의 진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날씨가 차가운 줄 알면 차갑지 않다. 춥다고 하여 어휴 추워!”라고 말하면 진짜 춥다. 그러나 춥네.”라고 법으로 본다면 어떤 추위도 법이 되어서 더 이상 춥다고 보지 않는다. 지금 괴로워도 괴롭네.”라고 법으로 본다면 초연해질 수 있다.

이 세상에 법 아닌 것이 없다. 보기 싫은 것도 법으로 보아야 하고, 듣기 싫은 소리도 법으로 보아야 한다. 일체를 무상한 법으로 보아야 하고, 일체를 괴로운 법으로 보아야 하고, 일체를 실체가 없는 법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이 법(dhamma)이다. 법은 진리이자 위대한 부처님 가르침이다.


담메수 담마누빳시 위하라띠
아따삐 삼빠자노 사띠마
위네이야 로께
아빗자 도마나상

올바로 알아차리고
새김을 확립하여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제거하며,
사실에 대하여 사실을 관찰한다.” (S45.8)


2021-02-1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