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못질 하지 말자
함부로 못질 하지 말자
날씨가 쌀쌀하다. 봄을 시샘하는 것일까 다시 겨울이 온 듯하다. 주말 토요일 용주사로 차를 몰았다. 안양에서 병점 용주사까지는 마실 다니는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용주사 참배를 마치고 수원 옛날 살던 아파트에 가 보기로 했다. 처음 분양 받은 아파트가 있는 곳이다. 햇수로 따져 보니 32년 되었다. 사대 신도시가 개발되기 이전이다. 생애 첫 아파트여서 애착이 갔다. 그러나 3년 가량 밖에 살지 못했다. 그 아파트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아파트는 변한 것이 없다.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다. 다만 색이 바뀌었다. 전에 없던 아파트 브랜드명이 새겨져 있다. 지나가면서 본 것이지만 그자리에 그대로 의연히 서 있는 것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내친 김에 첫 직장이 있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아파트에서 직장까지는 걸어 다녔었다. 논길을 걸어 다닌 것이다.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었다. 어느 여름해였던가 논길을 걸었는데 스치는 벼에 옷이 훔뻑 젖기도 했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상전벽해가 된 느낌이다.
첫 직장이었던 회사를 지나쳤다. 옛날 옛모습 그대로 있다. 거대한 공장건물군을 보니 성장시대의 상징을 보는 것 같다. 그때 당시 회사 다닐 때 매년 거대한 공장이 세워졌는데 그때 뼈대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85년 여름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때 오제이티(OJT) 교육이 한달가량 있었다. 수십개에 달하는 부서를 돌아 다니며 공장견학을 한 것이다. 총무부서에서 부서장은 "우리회사는 종업원 2,700명에 2,500억원 매출입니다."라고 말했다. 회사는 매년 가파르게 성장했다. 10-20프로가 아니라 50프로 가량 성장한 것 같다. 1980년대 하반기 때 3저호황으로 인하여 가파르게 성장하던 때도 있었다. 그때 마다 회사에서는 공장을 지었다. 공장을 지을 땅은 충분했다. 4-5층 짜리 거대한 공장이 일년에 하나 정도 세워졌다. 회사 중앙로 양쪽으로 거대한 공장군을 보면 성장의 시대가 실감 났다. 1992년 퇴사할 때 회사는 종업원 만명에 매출 1조원을 기록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자동차로 지나는 길에 보는 회사는 그대로였다. 아니 더 커진 것 같다. 못보던 공장도 몇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30년 전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자기숙사가 그대로 있다. 성장의 시기에 조립자가 필요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국에서 차로 데려온 것이다. 회사 내에 기숙사를 만들어 숙식을 제공했는데 기숙사동 건물군이 그대로 있다.
중앙로도 여전히 그대로 있고 증앙로 양옆 공장건물군도 그대로 있다. 아침 출근 때 빽빽이 들어가던 종업원 행렬이 있었다. 대부분 20대로 활력이 넘쳤다. 그 중에 대다수가 여자였는데 70프로가 넘었던 것 같다. 회사가 30년이 지났음에도 망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보인다.
회사는 무엇으로 먹고 살까? 그때 당시에도 매월 월례회 때 매출과 이익을 발표하며 늘 긴장감을 유발했다. 이후로도 그랬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들락거렸을까? 회사의 성장기를 지켜 본 사람의 입장에서 아직도 의연히 그 자리에 당당한 모습으로 있다는 것이 안심이다. 자신이 다녔던 회사가 폭삭망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옛날 그대로 모습을 보니 성장시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뿌듯했다.
아파트도 그대로 있었고 회사도 그대로 있었다. 세월이 30년 흘렀지만 여전히 그자리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면 몹시 서운했을 것 같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갔을까?
첫아파트에서도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을 것이다. 주인이 수없이 바뀌었을 것이다. 각자 사연도 많았을 것이다. 함부로 박은 못자국도 안고 갔을 것이다. 파손된 문도 누군가 물려 받았을 것이다. 함부로 못을 박은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18년 된 것이다. 못 자국이 별로 없다. 누군가 잘 사용한 것 같다. 파손된 것도 없어서 새아파트 같다. 못하나 함부로 박지 않고 잘 사용해 주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살아 오면서 못을 많이 박았던 것 같다. 그것도 대못이다. 사람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것이다.
아파트가 못질 투성이면 볼썽 사납다. 그런 아파트를 다른 사람이 물려 받아 살 것이다. 상처를 물려 받아 사는 것과 같다. 오래 된 아파트는 못질로 상처 투성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고 있다. 못질한 것이 미안하다. 사람에게 못질한 것도 미안하다. 못질하면 상처가 남는다. 그대로 10년, 20년, 30년 가게 되었을 때 못질 자국도 그 세월만큼 가게 된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못질 자국이 별로 없다. 잘 살아준 전사람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못질 하나 하는 것도 죄스럽게 생각한다. 내집임에도 함부로 못질 하지 않는다. 이 집도 10년, 20년, 30년 후에도 누군가 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함부로 못질 하지 말자.
2021-03-2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