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이것" 과 "현존"을 말하는 자들의 입에서 허와 무를

담마다사 이병욱 2021. 3. 25. 07:07

"이것" 과 "현존"을 말하는 자들의 입에서 허와 무를


유튜브 전성시대이다. 유튜브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일을 하다가도 스트레스 쌓이면 유튜브로 향한다. 유튜브에 가면 온갖 진기한 것들이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있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 유튜브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불교블로거이기 때문에 불교와 관련된 것을 주로 본다. 오랜세월 경전을 근거로한 글쓰기를 해 왔기 때문에 들어 보면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그가 정법을 말하는지 자신의 견해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경전을 근거로 말하면 정법이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견해가 된다. 여기서 경전은 물론 초기경전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빠알리니까야를 말한다. 그러나 경전을 무시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경전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부처님 원음이라 하지만 후대 편집된 것이기 때문에 오리지널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허정스님은 종단의 불교성전 편찬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수많은 오류를 지적해 냈다. 그중에 범망경도 있다. 편찬자들은 다음과 같이 범망경을 합리화하고 있다.

"
학자들은 보살계를 담고 있는 범망경이 중국에서 찬술된 것으로 보고 있습
니다. 이것을 안 좋게 보면 위경(
僞經)이라고 하겠지만 경전이 위경이냐 아니냐의 분명한 구분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초기불전 조차도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 그대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불교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오늘날 전승되어온 빠알리삼장은 방대하다. 모아 놓으면 한수레 될 것이다. 책장 가득 있는 삼장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 정교함에 놀란다.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번역자는 초기경전에 대해서 잘 짜여진 양탄자와 같다고 했다. 빈틈없이 촘촘하게 구성된 니까야를 보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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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는 상윳따니까야를 읽다 보면 불교의 진수를 맛본다. 주제 중에는 천신에 대한 것도 있고 초월적인 것도 있다. 이를 비현실적이라 하여 무시한다면 자신만 손해일 것이다. 오히려 이런 표현이 가르침을 풍요롭게 만든다. 또한 가르침이 비유로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안다면 후대 편집 운운하는 것은 위경제작을 합리화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위경이 있다. 주로 중국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엄밀히 따지면 인도가 원조이다. 대승보살운동이 일어났을때 독자경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편집과 다른 것이다. 그들은 전혀 다른 경전을 만들어 냈다. 이런 행위는 대승보살사상을 합리화 하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불완전한 것 또는 미완성 된 것으로 간주한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유튜브에서 자칭타칭 깨달았다는 자들의 법문이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것"이나 "현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멍때리기 하는 것이 견성하는 것과 같다는 식으로 말한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 본성이라 한다. 이런 논리라면 화가 나면 성을 내야 하고 욕망이 생기면 충족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수행을 부정한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수행하는 것에 대하여 인위적이라 말한다. 일부러 만들어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스님은 죽비를 들고 있다. 죽비를 손바닥에 탕탕 치면서 "이것"이라고 말한다. 때로 책상을 치기도 한다.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행위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문자로 기록된 경전을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정도로 본다.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이 모두 방편이라는 것이다.

방편은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한다. 때로 거짓 의미도 있다. 법화경에서 '불난 집의 비유'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자신이 설한 것을 방편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모두 진실을 말한 것이다. 진리를 개념화된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팔만사천법문이 되었다. 그럼에도 후대사람들은 "나는 한자도 설하지 않았다."라고 하여 마치 부처님을 실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디부터 꼬인 것일까? 그것은 위경제작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전혀 다른 불교를 만들었을 때 부처님 가르침은 불완전한 것, 미완성인 것이 되어 버렸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절에서도 볼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뒷방신세로 전락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유튜브에서 죽비를 탕탕치며 "이것"을 말하는 스님이 있다. 듣고 있으면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것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심지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식으로 말한다. 오로지 지금 여기서 행복만을 말할 뿐이다. 그의 말에서 허와 무를 보았다.

불교TV에서 어느 재가법사는 본질과 현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의 삶은 '현상'이라는 것이다. 꿈과 같고 껍데기와 같다고 한다. 본질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모든 현상은 본질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본질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재가법사의 본질론을 듣다보니 이데아론을 말하는 것 같다. 서양철학의 원류를 말한다. 후대 중세신학의 근간이 되었다. 재가법사의 본질론은 "이것"이나 "현존"을 말하는 자들의 얘기와 다르지 않다. 또하나의 다른 버전인 셈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만 말할 뿐 내세나 윤회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개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망상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부처님 가르침과 정반대 이야기를 한다.

부처님은 이세상의 행복뿐만 아니라 저세상의 행복도 말씀하셨다. 누군가 이세상의 행복만 이야기한다면 단멸론자가 되기 쉽다. 그래서일까 오로지 이것, 현존, 본질을 말하는 자들의 이야기에서 허무를 본다.

유튜브에는 흥미로운 것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대부분 쓰레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종종 건질만한 것이 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무의식연구소' 채널이다. 최면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는 채널이다. 전생보다 미래에 대한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느 불교법사 보다 감명 깊은 이야기를 해준다.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부처님 팔만사천법문을 말하는 것 같다. 마치 오물장에서 장미를 본 것 같고 진흙탕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것 같다. 얼간이의 어설픈 법문보다 백배천배 낫다.

오늘도 유튜브로 하루를 시작하고 유튜브를 보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불교블로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불교와 관련된 것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런데 너무나 사이비가 많다는 것이다. 불교라고 하지만 무늬만 불교인 것이 많다. 들어 보면 자신의 생각만을 얘기할 뿐이다. 듣다 보면 "그래서 어쩌라구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어느 의식있는 스님은 "한국불교는 논리가 없어요.
오직 모를뿐을 많이 해서 그런가?"라고 했다.

정법 만나기가 어렵다. 속된 말로 유튜브에서는 개나 소나 불교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불교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다. 무상, , 무아를 말하지 않으면 사견이라고 봐도 좋다. 그렇다면 정법이란 무엇일까?

정법시대 조건이 있다. 팔정도 수행이 있으면 정법시대이다. 왜 그런가? 팔정도가 있으면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기 때문이다.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다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이 잘 전승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는 빠알리삼장의 전승을 말한다. 그래서 정법시대는 팔정도 수행이 있고, 사향사과와 열반이 있고, 빠알리삼장이 있으면 정법시대이다.

매일 팔정도경을 암송하고 있다. 마치 예불 드리듯이 홀로 암송한다. 빠알리어로 "에왕메 수땅"으로 시작하여 삼마사마디 부분에서 "아양 뷰짯띠 삼마사마디"로 끝을 맺는다. 이때 자동적으로 "싸두, 싸두, 싸두"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해야 할 일을 마친 것 같고 마음은 충만된다.


2021-03-2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