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비판하려거든 먼저 해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21. 3. 28. 14:08
비판하려거든 먼저 해보고
"수행을 안하고 수행을 비판한다." 이 말은 담마끼띠 스님이 한 말이다. 유튜브에서 들은 것이다.
담마끼띠 스님의 상윳따니까야 유튜브 강좌를 보았다. 한국명상원에서 강의한 것을 한국명상원에서 유튜브에 올려 놓은 것이다. 빠알리 주석서에 대한 강의에서 "수행을 안하고 수행을 비판한다."라고 말 했는데 이 말에 공감한다.
비판하려거든 먼저 알아야 한다. 수행을 비판하려면 해당수행을 해보고 비판해야 한다. 그럼에도 비판만 한다면 비난이 된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비난했을 때 구업이 된다. 신뢰도 떨어져서 믿지 않게 된다.
아비담마와 청정도론과 같은 논서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부파불교시대의 산물로서 부처님 가르침과 거리가 먼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논서나 주석서는 철저하게 경전을 근거로 한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여 비판한다면 "아비담마와 청정도론을 읽어 보지 않고 비판한다."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아비담마와 청정도론을 접한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수많은 글을 썼다. 이렇게 된 것에는 책이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 보면 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들어 있다. 특히 업에 대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마치 불교백과서전 같기도 한 두 논서를 여러번 읽었다. 그런데 읽을 때마다 새롭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아직도 소화하지 못한 내용이 많음을 말한다.
청정도론을 접하면 가슴이 설레인다. 어느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금과옥조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한구절한구절이 의미가 있다. 언제나 새겨 두고 싶은 내용들이다. 청정도론 한권만 마스터하면 불교에 대해서 박사가 될 것이다.
청정도론을 여러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말인지 몰랐다. 그럼에도 인내를 가지고 읽었다. 글을 쓰면서 인용을 많이 했는데 하나씩 여백을 메꾸어 나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정적으로는 KPTS(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번역서를 출간했을 때이다. 그때 교정작업에 참여 했다.
KPTS본 교정작업에 참여하면서 두 번 읽었다. 놓치고 싶지 않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노트를 만들었다. 나중에 글쓰기 소재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생소하다. 아직 알아야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흔히 미얀마불교를 청정도론불교라고도 한다. 청정도론이 논서임에도 경전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이다.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은 대부분 청정도론에 기반한 것이다.
청정도론은 5부니까야 주석서이자 동시에 수행지침서라고 볼 수 있다. 불교에 대해 모든 것이 다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불교의 모든 것이 있어서 청정도론 하나만 있으면 불교에 대하여 아는척 할 수 있다고 본다.
청정도론과 함께 10년 이상 살아왔다. 지금도 틈만나면 청정도론을 열어본다. 열어보면 청정도론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불교에 대해 토론하려거든 먼저 청정도론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비판하려 한다면 "청정도론도 읽지 않고 청정도론을 비판한다."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비판하려거든 먼저 해보고 비판해야 한다.
니까야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부처님 원음인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승과정에서 첨삭되고 편집되었기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개 학자들 말을 인용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사람에게 "니까야를 읽어보고 니까야에 대해 비판하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니까야에 신통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네 번째 선정에서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 등 6신통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또 니까야에는 신족통 등 10가지 신통에 대한 이야기가 도처에 있다. 어떤이는 이런 사실을 들어 못믿겠다고 한다. 이럴때 "선정에 들고 나서 비판하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윤회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니까야 도처에는 윤회에 대한 가르침으로 가득하다. 논서와 주석서에도 많다. 그럼에도 윤회에 대해서 비판하려 한다면 "숙명통을 경험하고 비판하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자신이 믿지 못하는 것은 비판하기 쉽다. 또 과학적으로 검증 되지 않았다고 하여 비판하기 쉽다. 그러나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특히 담마에 대한 것이라면 경전적 근거를 들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근거업이 비판하려 한다면 개인적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인이라면 경전에 의존해야 한다. 마땅한 스승이 없다면 경전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그럼에도 비판하려 한다면 "수행을 안하고 수행을 비판한다."라는 식의 말을 들을 것이다. 해보지 않았다면 그 입을 다물어야 한다.
2021-03-28
담마다사 이병욱
"수행을 안하고 수행을 비판한다." 이 말은 담마끼띠 스님이 한 말이다. 유튜브에서 들은 것이다.
담마끼띠 스님의 상윳따니까야 유튜브 강좌를 보았다. 한국명상원에서 강의한 것을 한국명상원에서 유튜브에 올려 놓은 것이다. 빠알리 주석서에 대한 강의에서 "수행을 안하고 수행을 비판한다."라고 말 했는데 이 말에 공감한다.
비판하려거든 먼저 알아야 한다. 수행을 비판하려면 해당수행을 해보고 비판해야 한다. 그럼에도 비판만 한다면 비난이 된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비난했을 때 구업이 된다. 신뢰도 떨어져서 믿지 않게 된다.
아비담마와 청정도론과 같은 논서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부파불교시대의 산물로서 부처님 가르침과 거리가 먼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논서나 주석서는 철저하게 경전을 근거로 한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여 비판한다면 "아비담마와 청정도론을 읽어 보지 않고 비판한다."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아비담마와 청정도론을 접한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수많은 글을 썼다. 이렇게 된 것에는 책이 번역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 보면 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들어 있다. 특히 업에 대한 정리가 잘 되어 있다. 마치 불교백과서전 같기도 한 두 논서를 여러번 읽었다. 그런데 읽을 때마다 새롭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아직도 소화하지 못한 내용이 많음을 말한다.
청정도론을 접하면 가슴이 설레인다. 어느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금과옥조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한구절한구절이 의미가 있다. 언제나 새겨 두고 싶은 내용들이다. 청정도론 한권만 마스터하면 불교에 대해서 박사가 될 것이다.
청정도론을 여러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말인지 몰랐다. 그럼에도 인내를 가지고 읽었다. 글을 쓰면서 인용을 많이 했는데 하나씩 여백을 메꾸어 나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정적으로는 KPTS(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번역서를 출간했을 때이다. 그때 교정작업에 참여 했다.
KPTS본 교정작업에 참여하면서 두 번 읽었다. 놓치고 싶지 않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노트를 만들었다. 나중에 글쓰기 소재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생소하다. 아직 알아야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흔히 미얀마불교를 청정도론불교라고도 한다. 청정도론이 논서임에도 경전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이다. 미얀마에서 위빠사나 수행은 대부분 청정도론에 기반한 것이다.
청정도론은 5부니까야 주석서이자 동시에 수행지침서라고 볼 수 있다. 불교에 대해 모든 것이 다 담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불교의 모든 것이 있어서 청정도론 하나만 있으면 불교에 대하여 아는척 할 수 있다고 본다.
청정도론과 함께 10년 이상 살아왔다. 지금도 틈만나면 청정도론을 열어본다. 열어보면 청정도론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불교에 대해 토론하려거든 먼저 청정도론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비판하려 한다면 "청정도론도 읽지 않고 청정도론을 비판한다."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비판하려거든 먼저 해보고 비판해야 한다.
니까야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부처님 원음인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승과정에서 첨삭되고 편집되었기 때문에 부처님 가르침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개 학자들 말을 인용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사람에게 "니까야를 읽어보고 니까야에 대해 비판하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니까야에 신통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네 번째 선정에서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 등 6신통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또 니까야에는 신족통 등 10가지 신통에 대한 이야기가 도처에 있다. 어떤이는 이런 사실을 들어 못믿겠다고 한다. 이럴때 "선정에 들고 나서 비판하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윤회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니까야 도처에는 윤회에 대한 가르침으로 가득하다. 논서와 주석서에도 많다. 그럼에도 윤회에 대해서 비판하려 한다면 "숙명통을 경험하고 비판하십시오."라고 말해야 한다.
자신이 믿지 못하는 것은 비판하기 쉽다. 또 과학적으로 검증 되지 않았다고 하여 비판하기 쉽다. 그러나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특히 담마에 대한 것이라면 경전적 근거를 들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근거업이 비판하려 한다면 개인적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인이라면 경전에 의존해야 한다. 마땅한 스승이 없다면 경전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그럼에도 비판하려 한다면 "수행을 안하고 수행을 비판한다."라는 식의 말을 들을 것이다. 해보지 않았다면 그 입을 다물어야 한다.
2021-03-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