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펭귄이 되기로
퍼스트 펭귄이 되기로
오늘 민감한 주제를 다루어 보았다. 스님의 오후불식에 대한 것이다. 예상대로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스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종단 권승을 대상으로 한 것임에도 불편해 하는 것을 보니 초록은 동색인것 같다.
불자들은 스님의 허물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보고도 못본척 넘어가는 것 같다. 들어도 못들은척 하는 것 같다. 이런 것은 대승보살계의 영향이 크다. 대승보살계에 따르면 삼보를 비방하지 말라고 했다. 스님의 허물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했다.
율장의 성립배경을 보면 사람들의 적극적인 비난이 있었다. 비구가 죄악을 저지르는 것을 보았을 때 동료수행자나 재가불자, 일반사람들의 혐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단 것이다. 그래서 율장은 수범수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죄를 먼저 범하고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사회법과 비슷한 것이다.
한국불교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잘못을 해도 죄악이 되는지 모르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스님들이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니까야(경장)와 위나야(율장)를 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행위를 해도 죄악인줄 모르는 것 같다. 오후불식도 그렇다.
출가자에게 오후불식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스님들은 세 끼를 꼬박꼬박 찾아 먹는 것 같다. 이는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난다. 이런 점을 지적했다. 블로거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종단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것도 이유가 된다. 종단의 혜택이나 녹을 받고 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오후불식에 대한 반응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대개 스님들의 경우 "너는 해 보았냐?" 라든가, "너는 하고 있냐?"라는 식으로 묻는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우문에 불과하다. 출가자와 재가자의 조건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너나 잘해!"가 될 것이다.
어떤 이는 먹는 것 가지고 시비걸지 말라고 한다. 어느 정도 타당성 있다. 먹는 것이야말로 가장 신성한 행위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몸을 지탱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공양하는 것이다. 먹는 문제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치사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비법은 두고 볼 수 없다. 누군가 나서야 한다. 욕먹을 각오하고 거론한 것이다.
계는 왜 있는 것일까? 당연히 지키라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스님들은 계를 지키지 않는다. 구족계를 받자마자 폐기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뭐하러 계를 받는 것일까? 그것은 재가불자와 차별화 때문으로 본다.
대승보살계는 출재가를 막론하고 공통이다. 이렇게 되면 출재가의 구별이 없어진다. 그래서 소위 소승계라 불리우는 비구계 또는 비구니계를 받아야 한다. 소승계를 받으면 확실히 차별화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받을 때 뿐이다.
지키지도 못할 거라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계를 지키지도 않는다면 계는 있으나 마나한 것이 된다. 스님이라 하지만 스님이 아닌 자가 된다. 이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반승반속이라 해야 할 것이다.
반승반속은 반은 스님이고 반은 재가자를 말한다. 또 다른 말로 스님도 아니고 재가자도 아닌 자가 된다. 보통 후자를 지칭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반승반속은 "출가와 재가의 양자에서 소외된다.”(Vism.1.154)고 했다.
반승반속은 재가자도 아니고 출가자도 아니다. 그래서 "재가자로서의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고, 수행자의 목적도 성취할 수 없는 삶"(It.89-90)이라고 했다. 반승반속에게 보시해도 공덕이 될까? 청정도론에 따르면 "시물이 주어지더라도 받는 그들에게 커다란 과보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시물은 가치가 없다." (Vism.I.154)라고 했다.
반승반속에게 보시하면 공덕이 되지 않는다. 받는 자가 청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받는 자가 청정하면 어떤 시물이라도 청정한 보시가 되어 큰 과보가 기대될 것이다.
계학은 기초와 같다. 건물도 기초가 탄탄해야 높이 쌓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계학이 탄탄해야 정학도 있게 되고 혜학도 있게 된다. 그래서 "계행을 확립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선정과 지혜를 닦네." (S1.23)라고 했다.
한국불교는 바뀌어야 한다. 먼저 계행의 토대 부터 다져야 한다. 계행은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한국불교는 계행의 뿌리가 없는 것 같다. 종단권력을 장악한 스님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반승반속들에게 하루 한끼만 먹을 것을 권한다. 나는 오늘 퍼스트 펭귄이 되기로 했다.
2021-01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