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성도 열반을 한날에, 사월보름 붓다데이 유래
탄생 성도 열반을 한날에, 사월보름 붓다데이 유래
압빠마데나 삼빠데타, 이 말은 부처님이 최후로 말씀하신 것이다. 불방일정진이라고 한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D16.125)는 뜻이다.
부처님 말씀은 심오하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도 의미가 있다. 주석에서는 이런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해설해 놓았다. 불방일정진을 뜻하는 압빠마데나 삼빠데타(appamādena sampādethā)에 대하여 “새김을 잃어버리지 말고 모든 해야 할 일을 성취하라.”(Smv.593)라고 설명해 놓았기 때문이다.
불방일을 뜻하는 압빠마다(appamāda)는 사띠(sati)와 동의어이다. 늘 깨어 있는 상태, 늘 알아차림이 유지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부지런함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이렇게 사띠가 유지되어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사띠가 유지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미얀마 담마마마까 국제선원 에인다까 사야도는 이렇게 설명했다.
“아빠마데나란 걸을 때도 잊지 않고 싸띠하며, 서 있을 때도 잊지 않고 싸띠하며, 앉아 있을 때도 잊지 않고 싸띠하며, 누워 있을 때도 잊지 않고 싸띠하는 것입니다. 또 볼 때도 싸띠하고, 들을 때도 싸띠하고, 냄새에도, 먹을 때에도, 접촉할 때에도, 생각이 날 때에도, 잊지 않고 알아차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24시간 이어지는 싸띠를 충분하고 완전하게 성취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사띠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띠의 의미를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수행에서 사띠이고, 또 하나는 일상에서 사띠를 말한다. 수행에서 사띠는 정진과 관련이 있다. 일상에서 사띠는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으로 본다.
사띠의 뜻은 제1의 의미가 기억이고 제2의 의미는 알아차림이다. 모두 기억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팔정도에서 삼마사띠에 대하여 바른기억의 뜻으로 ‘정념(正念)’이라고 번역했다.
사띠는 부처님 가르침을 늘 새겨서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순간순간 알아차림 하는 것도 해당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늘 현명한 주의기울임이 필요하다. 한시도 주의기울임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불방일이 된다. 사띠와 압빠마다는 사실상 동의어인 것이다.
부처님은 최후로 불방일정진을 말씀하셨다. 불방일과 정진이 키워드이다. 그래서 압빠마데나 삼빠데타에 대하여 “새김을 잃어버리지 말고 모든 해야 할 일을 성취하라.”라고 해석한다. 여기서 모든 해야 할 일은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37조도품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팔정도를 말한다.
팔정도를 왜 닦아야 할까? 그것은 사향사과와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열반이다. 그런데 열반은 살아 있을 때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팔정도를 닦아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사향사과 단계에서 각단계마다 열반체험이 있게 된다. 그렇다고 각 단계의 열반이 다른 것은 아니다. 모두 다 똑같다고 한다.
사향사과에서 수다원의 단계를 견도(見道)라고 한다. 도를 체험했다는 뜻이다. 견도단계로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열반을 체험했다면 수행해야 한다. 이 단계가 수행도(修行道)로서 사다함과 아나함단계를 말한다. 남아 있는 탐욕과 성냄 등과 같은 불선법을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이다. 마침내 모든 오염원이 소멸되었을 때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S22.59)라며 스스로 선언하게 된다. 이 단계를 아라한선언 또는 성도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무학도(無學道) 단계이다.
아라한 선언은 수행의 완성이자 깨달음의 완성이다. 부처님이 최후로 말씀하신 압빠마데나의 완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라한선언은 부처님의 탄생게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보살로서 부처님이 탄생했을 때 읊은 게송이 있다. 일종의 신화라고도 볼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라 하여, “하늘 위와 하늘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이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빠알리 탄생게를 보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자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자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선구적인 자이다. 이것은 나의 최후의 태어남이다. 나에게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M123)라고 되어 있다. 후송부분이 다르다. 이 차이로 인하여 대승불교와 테라와다불교가 갈리는 것으로 본다.
대승불교에서는 사월초파일에 부처님 탄생만 기념한다. 그러나 테라외다불교에서는 사월보름날에 탄생, 성도, 열반 이렇게 세 가지 사건을 한날에 기념한다. 이렇게 한날에 기념하는 것은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와 열반이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이는 탄생게 후송에 답이 있다.
탄생게 후송을 보면 “이것은 나의 최후의 태어남이다. 나에게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고 되어 있다. 이 문구는 부처님이 성도과정에서 “나는 흔들림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을 이루었다. 이것이 최후의 태어남이며,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S56.11)라고 선언한 문구와도 같다.
탄생게와 아라한선언(成道宣言)을 보면, 공통적으로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열반을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와 열반은 같은 것이 된다.
그동안 궁금했었다. 보살은 왜 태어나자 마자 최상자라고 했으며 또 이것이 마지막 생이라고 했을까에 대한 것이다. 비록 신화적으로 보일지라도 거기에는 심오한 뜻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보살의 탄생은 이미 성도와 열반을 예견한 것이었다.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교는 성립되지 않는다.
동아시아불교에서는 탄생일과 성도일, 열반일이 모두 다르다. 대승 탄생게를 보면 성도와 열반을 암시하는 문구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탄생일만 기념한다. 그러나 부처님의 일생을 보면 탄생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성도와 열반도 중요하다. 그래서 탄생과 성도와 열반은 동급이 된다. 이런 이유로 세 가지 사건을 한날에 기념하는 것으로 본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음력사월보름날에 탄생, 성도, 열반을 기념한다. 그래서 사월보름은 부처님의 ‘탄생절’이기도 하고 동시에 ‘성도절’이기도 하고 ‘열반절’이기도 하다. 이렇게 본다면 탄생게와 아라한선언, 그리고 최후의 말씀은 같은 맥락이 된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탄생게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자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자이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선구적인 자이다. 이것은 나의 최후의 태어남이다. 나에게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M123)
2) 성도게
“나는 흔들림 없는 마음에 의한 해탈을 이루었다. 이것이 최후의 태어남이며,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S56.11)
3) 열반게
“모든 형성된 것들은
부서지고야 마는 것이니,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D16)
세 가지 게를 보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열반이다. 탄생게에서 “나에게 더 이상 다시 태어남은 없다.”(M123)라고 했는데 이는 열반에 대한 것이다. 성도게에서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S56.11)라고 했는데 역시 열반에 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에 들 때 최후의 말씀으로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D16)고 했는데 이 말은 열반을 성취하라는 말과 같다.
열반이 없는 불교를 상상할 수 있을까?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와 열반을 보면 모두 열반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열반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열반한 해를 불기의 시작으로 잡는다.
올해 붓다데이는 2565주년이 된다. 이는 부처님의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부처님이 탄생한 해를 기준으로 하면 2645년이 된다. 부처님이 80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불교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이라 하여 부처님 탄생을 기념하는데 불기 2565년이라고 말한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불교에서 불기문제는 언젠가 바로잡게 될 것이다. 불기가 불일치 되는 모순을 언제까지나 안고 갈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테라와다불교 불기를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념일이 바뀌어야 한다. 음력 사월초파일이 아니라 음력 사월보름날로 바꾸는 것이다.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한다면 대승탄생게도 폐기되어야 할 것이다. 대승불교 존립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불기는 통일되어 있다. 부처님이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념일도 음력 사월보름날이 공식화되어 있다. 이는 1999년 유엔에서도 공식적인 홀리데이로 인정한 바 있다. 그래서 사월보름날의 베삭데이는 전세계적으로 공인된 공식적 붓다의 날이 되었다. 붓다데이는 크리스마스와 함께 성스런 날로 인정되어서 유엔사무총장이 매년 축하메세지를 발표 하고 있다.
한국불교에서 불기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대로 모순을 안고 간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그렇다고 유엔공식 붓다데이날인 사월보름날을 따를수도 없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현재의 불기에서 80을 더해 발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부담 없지 않을까?
2021-05-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