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 입은 여인초, 반려식물로서 새식구가
오늘 새 옷 입은 여인초, 반려식물로서 새식구가
꽃집에서 여인초를 사왔다. 화분 하나에 세 개의 줄기가 들어 간 것이다. 가격은 2만 5천원이다. 인덕원 꽃시장에서 샀다.
사무실에서 식물을 키우는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 하 둘 모으다 보니 화분이 25개가 되었다. 작은 사무실이 온통 화분천지로 변한 것 같다. 마치 작은 식물원 같다. 작은 꽃집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텃밭에서 농사를 한다. 주말농장에서 채소를 기르는 사람들도 있다. 텃밭도 주말농장도 없다. 그 대신 사무실에서 식물을 기르고 있다. 행운목을 시작으로 하여 쿠루시아, 홍콩대엽야자. 인도고무나무, 벤자민, 돈나무 등 갖가지 식물과 난을 키우고 있다.
사무실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창측이 북북동 방향이어서 이른 아침 두세 시간 정도 햇볕이 든다. 그것도 해가 길 때이다. 그러다 보니 햇볕 부족으로 인하여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그러나 음지에서 잘 자라는 식물도 있다.
음지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 많다. 이번에 산 여인초도 음지식물이다. 생명력이 있어서 물만 주어도 잘 자랄 것이라고 한다.
여인초는 마치 파초처럼 잎파리가 넓직하다. 비슷한 종류로서 극락조화가 있다. 직사광선을 피한 밝은 창가가 좋다고 한다. 또한 미세먼지 제거에 효과가 있는 식물이라고 한다. 오늘 인덕원 화원에 간 것은 일부로 간 것이다. 식물을 사 주기 위해서 간 것이다.
그제 이마트 식물 코너에서 눈 길을 끄는 식물이 있었다. 그것은 ‘몬스테라’라는 식물로 잎파리가 크고 갈라진 것이다. 꽤 크기가 컸다. 가격표를 보니 3만5천원 했다. 거의 살 뻔했다. 사려고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형마켓에서 사는 것 보다 작은 꽃집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에 화원에서 사면 도움을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인덕원 서울구치소 가는 길 간선도로 양면에는 화원가게가 집단을 이루고 있다. 안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화훼단지라 볼 수 있다. 가격을 보니 이마트 보다 훨씬 저렴 했다. 여인초의 경우 이마트에서 한 줄기에 1만5천원 하지만, 인덕원 화원에서는 세 줄기에 2만 5천원이다.
화분은 주은 것이다. 누군가 가져 가라고 놓고 간 것을 가져온 것이다. 사무실이 있는 층의 엘리베이터 로비에는 종종 이런 경우가 많다. 삼년전에도 길고 큰 화분을 누군가 놓고 갔었다. 아마 이사 갈 때 놓고 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미화원에게 부탁해 놓았다.
미화원에게 혹시 식물이나 화분이 나오면 즉시 연락해 달라고 했다. 이는 평소 미화원과 친분관계를 유지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번에도 큰 화분이 나왔다. 길이가 무려 60센티에 달한다. 백색 도자기로 된 것으로 마치 골동품을 연상케 한다.
화원에서 사온 여인초를 백도자기 화분에 옮겼다. 그리고 백도자기 화분을 깨끗이 닦았다. 깨끗이 닦으면 그 순간에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일종의 의례를 치루는 것과 같다.
화분에 어떤 식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또 이 화분에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화분을 가져오게 됨에 따라 화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화분은 새로운 식물을 맞이했다.
백도자기 화분에 여인초를 옮겨 심으니 식물이 기품 있어 보인다. 오늘부터 화분은 사무실 안에서 새로운 식물식구가 되었다. 26번째 화분이 된 것이다.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려라는 말은 이제 일반화되었다. 동료나 파트너를 뜻하는 이 말은 이제 ‘반려동물’이라는 말로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요즘 ‘반려식물’이라는 말도 유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식물도 반려가 될 수 있을까?
식물도 키워 보면 동료의식을 느낄 때가 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식물이 반겨 주기 때문이다. 행운목이 그랬다.
2007년 사무실에 처음 입주했을 때 기념으로 화원에서 행운목을 사왔다. 지난 14년 동안 늘 행운목과 함께 했다. 가져 온지 만 3년이 지나면서 매년 행운목에서는 꽃이 피었다.
행운목꽃이 절정일 때 밀폐된 사무실 공간에는 행운목꽃 특유의 향내로 가득했다. 식물이 꽃을 피우고 냄새를 발산했을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본다면 식물도 생명이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디가니까야 ‘사만냐팔라경’에서 중간계행을 보면 ”그는 종자와 식물을 해치는 것을 여읩니다.”(D2.43)라고 했다.
율장대품에서는 “구족계를 받은 수행승은, 심지어 풀잎이라도, 주지 않은 것을 훔칠 목적으로 갖지 말아야 한다.”(Vin.I.96)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식물도 해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애경에서는 “살아 있는 생명이건 어떤 것이나, 동물이거나 식물이거나 남김없이”(Stn.146) 자애의 마음을 내라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식물도 반려식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무실에는 크고 작은 식물로 가득하다. 주로 열대식물이다. 음지에서 물만 주어도 잘 자라는 식물로 구성되어 있다. 하루 종일, 일주일내내, 일년 365일 늘 식물과 함께 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식물은 식물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감히 반려식물이라 할 만하다. 오늘 새 옷 입은 여인초도 반려식물로서 새식구가 되었다.
2021-05-2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