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앎이 끊어진 자리, 인제 용화선원
일체의 앎이 끊어진 자리, 인제 용화선원
차는 북동으로, 북동으로 달렸다. 막히지 않았다. 오전 7시 30분에 동대입구역에서 출발했다. 11시까지 인제 용화선원에 도착해야 한다. 대중공양가는 차는 너무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같았다. 휴게소에서 시간 조절을 해야 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강원도 인제에 있는 용화선원이다. 지도를 보니 현리에서 가깝다. 구불구불 양장길을 한참 갔다. 보이는 것은 산과 하늘뿐이다. 날씨는 화창했다. 연 사흘동안 비가 왔는데 비 온 다음날이 그렇듯이 맑고 쾌청했다. 하늘이 도운 것 같다.
주차장에서 선원까지 꽤 먼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해탈문과 같은 커다란 다리에 이르렀을 때 저멀리 선원이 보였다. 커다란 궁궐이 있는 듯 했다. 주변에는 오로지 선원만 있었다. 세상과는 완전히 격리된 별유천지비인간과 같은 곳이다.
원주스님이 대중공양단을 가장 먼저 맞이해 주었다. 이곳에서는 도감스님이라고 말한다. 선원의 살림을 도맡아 관리하는 스님이다. 법명은 환공스님이다. 송담스님 제자들 법명이 환자 돌림인데 법명으로 보아 송담스님 제자임에 틀림없다.
마침내 명진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대중공양단 23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은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모두 스님과 인연 있는 사람들이다.
스님은 나를 보더니 "이게 누군가?"라며 깜짝 놀란듯이 다가 왔다. 다가와서 두손으로 내 손을 덥썩 잡았다. 반가운 사람에게 보이는 스님 특유의 방식이다. 오직 나에게만 이런 환대를 보이는 것 같았다. 아마 전혀 생각지 않은, 뜻밖의 사람이 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법당에서 스님과 상견례가 있었다. 대중공양단이 삼배의 예을 올리자 스님도 함께 예를 올렸다. 그리고 스님으로부터 선원생활에 대해서 간단히 들었다.
인제 용화선원은 인천용화선원의 선원이다. 조계종 소속은 아니다. 재단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송담스님의 탈종으로 인하여 조계종과 무관한 선원이다.
인천 선원이 도심에 있는 것이라면 인제에 있는 선원은 산중에 있는 것이다. 지금은 산철이지만 결제철이 되면 육칠십명의 스님들이 머문다고 한다.
인제 용화선원은 결제철과 해제철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산철에도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원에서는 매일 새벽 3시부터 일과가 시작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새벽 2시에 일어나야 한다. 세속에 사는 사람들은 잠들 시간이다. 3시에서 3시 40분까지 예불이 있다. 하루에 딱 한번 있는 예불이라고 한다. 3시 40분부터 5시까지는 새벽좌선시간이다.
선원에서 아침공양시간은 5시 50분이다. 이후 8시까지는 자유시간이다. 오전에는 8시부터 11시까지 3시간 동안 정진한다. 오후에는 2시부터 4시까지 정진한다. 이런 일정은 결재철이나 산철이나 변함 없다고 한다.
용화선원은 어떤 곳인가? 법당에 전강스님 사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강스님의 선맥을 잇는 곳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명진스님은 "경허스님으로 부터 시작된 한국의 중흥선이 만공스님, 전강스님, 송담스님으로 선맥이 이어져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흔히 한국의 선맥에 대하여 남진제북송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명진스님은 남진제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스님은 경허, 전강, 송담의 계보를 설명하면서 더 이상 선맥이 확장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서는 "지금은 다 끊어졌습니다. 송담스님이 최후의 선지식입니다."라고 말했다.
명진스님은 한국의 선맥은 끊어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느 거사가 "명진스님이 맥을 잇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웃음이 터졌다.
점심공양 시간이 되었다. 인제 용화선원은 음식을 잘 하기로 소문난 것 같다. 이 모두가 도감스님이 꼼꼼히 챙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갖가지 나물을 비롯하여 떡과 전도 있다. 더구나 사과를 갈아서 만든 쥬스도 있었다. 우리 대중공양단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점심공양이 끝나고 포행이 있었다. 명진스님을 따라 산책하는 것이다. 계곡길을 따라 20여분 산책했다. 걸음으로 2천보된다. 도중에 돌고래바위를 보았다. 계곡 물 흐르는 곳에 있는 커다란 너럭바위가 돌고래처럼 생겼다. 매일 산책길에 보는 것이라고 한다. 자세히 보니 틀림없는 돌고래 형상이다.
산책이 끝나자 법당에 모였다. 명진스님으로부터 소참법문을 듣기 위해서이다. 사단법인 평화의 길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녹화했다. 유튜브 명진TV에 방영될 것이다.
대중공양단은 스님에게 어떤 법문을 기대하고 있을까? 현 시국에 대해서 시원한 말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은 말을 아꼈다. 그대신에 화두에 대해서 대부분 얘기 했다.
스님은 공양이 끝나면 산책한다고 했다. 하루에 세 번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자연에서 경이를 느낀다고 했다. 봄이 되어 야생화가 피는 것에 대해서 두두물물진법신이라고 했다. 또한 처처안락국이라고 했다. 세상에 부처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스님은 야생화 이야기를 했다. 스마트폰에서는 꽃이름을 알려 주는데 확률로 알려 준다는 것이다. 백프로 확신하지 않음을 말한다. 스님은 왜 이 말을 꺼냈을까? 사람의 견해는 확실하지 않음을 말한다. 그럼에도 확신한다면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가 되어 버릴 것이다.
스마트폰에서 꽃이름은 99프로 가능성을 말한다. 백프로 확정하지 않는 것이다. 세상사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백프로 확정하는 순간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린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스님은 자승의 정법론과 윤석열의 한미일 공조를 비판했다. 이를 프리즘 현상으로 설명했다.
사람들은 각자 색안경을 끼고 있다. 이는 자신의 견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색안경보다 더 심각한 것은 프리즘이라는 것이다. 굴절해서 보기 때문이다. 한번 적으로 규정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부수고야 마는 것도 프리즘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견해가 있다. 이를 색안경 또는 프리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깨달은 사람들은 색안경의 농도가 없는 사람이다. 또한 프리즘의 꺽인 정도가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해야 잘못된 견해를 없게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화두로 설명했다.
선가귀감에 한물건에 대한 게송이 있다. 소소영영한 이 물건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명진스님은 이 게송에서 "석가도 몰랐는데 가섭이 전할손가?"라는 구절이 미묘하다고 했다
부처님은 깨달은 분이다. 그런데 부처님도 모르는 소소영영한 한물건이 있다고 한다. 이는 모순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것이 화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화두에 대해서 부처님은 단지불회로 설명했다.
단지불회, 명진스님을 떠오르게 하는 말이다. 봉은사를 나오고 난 다음 이 말이 알려졌다. 그래서 명진스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을 단지불회라고 했다. 이는 "단지 알지못하는 것을 아는가?"라는 뜻이라고 했다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할까? 알수없는 의심으로 가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3처전심 같은 것이다. "왜 부처님은 꽃을 들었을까?"라든가, "가섭은 왜 웃었을까?"라며 의문해야 함을 말한다.
불교는 과학이라고 말한다. 불교가 과학이면 불교는 논리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하여 명진스님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것에 대하여 '왜 그랬을까?'라며 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모순된 것에 대하여 의문하며 화두를 드는 것도 해당될 것이다.
명진스님은 화두를 들 때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묻고 또 물어야 함을 말한다. 이렇게 묻다 보면 "큰 물음속에 큰 지혜가 나옵니다."라고 말했다. 그 큰 지혜는 무엇일까?
선종의 공안을 보면 말이 안되는 것이 많다. 말이 안되는 것을 의문했을 때 화두가 타파된다고 말한다. 이쯤해서 나에게 하나의 해법이 보였다. 그것은 언어적 개념에 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빤냣띠에 대한 것이다. 빤냣띠가 나오면 빠라맛타도 나온다. 이를 개념과 실재라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언어적 개념으로 살아간다. 대화하는 것도 언어적 개념에 따른다. 그런데 일상에서 언어적 개념이 아닌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언어적 개념이 사실과 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는 각자 프리즘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굴절각도가 큰 프리즘을 가지고 있다. 견해가 큰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견해가 강하면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하기 쉽다. 부처님 당시 외도의 스승들이 그랬다. 요즘에는 이데올로기가 이에 해당된다.
화두를 드는 것은 언어적 개념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다. 언어로써 언어를 부수는 것이다. 마치 독을 독으로써 제독하는 것과 같다. 화두를 들어 "이뭐꼬?"라며 언어적으로 의심하는 것은, 언어를 이용하여 언어로써 언어를 부수기 위한 것이다.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런데 논리적이지 않는 것은 아무리 물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하여 명진스님은 "아무리 물어도 몰라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누군가 화두를 타파해서 '나는 깨달았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기꾼이라고 했다.
모름의 끝은 어디일까? 간화선은 핵심은 모르는데 있다고 한다. 알면 간화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모름의 끝은 모름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모름의 끝에 대해서 "일체의 앎이 끊어진 자리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 이르러 비로서 의문이 풀렸다. 그것은 언어적 형성에 대한 것이다. 언어적 형성을 부수어야 함을 말한다.
한번도 간화선을 해보지 않았다. 화두를 들고 의심해 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막연히 '이런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위빠사나에서 빤냣띠(개념)와 빠라맛타(실재)에 대한 것을 접하고나서 부터이다.
위빠사나에서는 언어적 개념을 부정한다. 그래서 개념으로 말하지 말고 실재를 보라고 한다. 지금 여기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알아차려야함을 말한다. 행선 했을 때 발바닥의 감촉을 느끼는 것도 실재를 보는 것이다. 좌선하다 다리가 저릴 때 통증을 관찰하는 것도 실재를 보는 것이다. 실재를 보는 것은 생멸을 보는 것이다.
간화선에서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의문이 계속 이어져야 함을 말한다. 의문의 끝, 모름의 끝에 이르렀을 때 일체의 앎이 끊어진 자리라고 말했다. 여기서 앎이란 언어적으로 아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아는 것이다.
소소영영한 그놈이 부처가 출현하기도 전에 있었다고 한다. 이 구문을 보고 분개했었다. 부처님 가르침을 능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스님의 법문을 들어 보니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본래 한물건은 없었던 것이다. 단지 이름이나 명칭에 불과했던 것이다. 언어적 개념에 놀아난 것이다. 묻고 또 물어서 앎이 끊어진 자리, 그 자리가 진리의 자리임을 말한다.
스님의 법문이 끝났다. 현시국에 대한 시원한 일갈을 기대했었다. 물론 일갈도 있었다. 자승이나 윤석열은 각자 두꺼운 프리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심하게 꺽였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화두를 길게 설명했는지 모른다.
법문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어떤 불자가 봉은사에 다니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현실을 외면하는 스님들과 불자들의 행태가 못마땅하다는 것이다. 이에 스님은 "그건 그거고 시절이 그런데 어쩌겠습니까?"라며 말했다. 그리고서는 "항상 내안을 살피면서 근본이 흔들리게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조계종 승적을 가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총무원장이 되고 종정이 되어 계급질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대신 이렇게 먼 길을 찾아 와 주는 불자들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부처님 법에 대해서 이해한다면 이것보다 더 기쁜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인제 용화선원에서 선지식을 만났다. 그 선지식은 투사의 이미지가 아니다. 한사람의 수행자의 모습이다. 해제철이지만 결제철처럼 일과표대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선지식을 찾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 온다. 부처님오신날에는 월악산 보광암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
2023-04-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