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제조업 강국이 된 것은
한국이 제조업 강국이 된 것은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고 한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께 빌면 학업성취, 사업번창, 가내안녕, 병고소멸이라는 이른바 사대기도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2023년 5월 1일 갓바위부처님을 보러 갔다. 안양에서 230여키로 3시간 40분이 찍혔다. 실제로 5시간 걸렸다.
노동절 휴일임에도 고속도로는 막힘이 없었다. 영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원주-안동고속도로, 대구외곽고속도로 등 수 많은 고속도로를 탔다. 그리고 고속도로같은 국도를 탔다.
방방곡곡 도로가 잘 닦여 있다. 지방에는 차가 별로 없다. 전국토가 사통팔달이다. 산업인프라는 잘 발달되어 있다.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된 것 같다. 국토는 일일생활권으로 좁지만 경제강국이 되었다.
한국은 반도체, 조선, 가전 등 세계 제조업을 주도하고 있다. 또한 케이팝(K-Pop) 등 한류가 세계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또한 세계 10권의 경제강국이 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나라가 경제강국이 되었을까?
강국은 국토면적과 비례하지 않는다. 또한 강국은 인구와 비례하지 않는다. 한국은 국토 9만 제곱미터에 인구 5천만의 강국이다.
한국이 강국이 된 것은 산업인프라가 잘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전국토가 일일생활권이 된 것도 큰 이유가 된다. 전국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사통팔달이다. 물류시스템이 잘 발달되면 산업도 발달되기 마련이다.
한국은 제조업이 강하다. 한국은 여전히 제조업으로 먹고 산다. 상품을 만들어 수출해서 먹고 산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관련 산업이 발달해야 한다. 지역내에서 모든 것이 한꺼번에 처리되는 논스톱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오랜세월 제조업에 종사해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제조업에 취업했다. 공장에서 상품개발을 담당했다. 개발한 전자제품이 콘베이어 벨트에서 대량생산되어 콘테이너에 실릴 때 뿌듯했다. 수출해서 달러를 벌어 들일 때 애국하는 것 같았다.
제조업에서 20년 일했다. 대부분 공장에서 보냈다. 산업현장에서는 매일 상품이 대량생산되었다. 그것도 수출상품이었다. 비좁은 국내시장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전세계 시장을 상대로 한 아이템이었다. 위성방송수신기를 말한다.
공장에 다닐 때는 프라이드가 하늘을 찔렀다. 산업역군으로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이다."라고 생각했다. 내 손으로 개발한 상품이 전세계시장에 수출되어 달러를 벌어 들일 때 판검사, 정치인 등 소위 기득권층이 부럽지 않았다. 부동산 투기 등으로 졸부가 된 부자들을 경멸했다.
제조업체에서 근무할 때는 먹지 않아도 배부른 것 같았다. 월급은 작았지만 매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국민을 먹여 살리는 일이다. 그것도 외화를 벌어서 먹여 살리는 것이다.
이 좁은 국토에서 이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수출밖에 없다고 보았다. 거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밤낮없이, 주말없이, 휴가없이 일한 것이다. 특히 30대 때 그랬다.
성장의 시대를 살았다. 성장의 추억이 있다. 1985년 그룹공채로 처음 들어간 S사는 매출 2,500억원에 종업원이 2,500명이었다. 회사를 퇴사한 1992년이 되었을 때 회사는 매출 1조원에 종업원이 만명으로 성장해 있었다. 매년 새로운 공장이 건설 되었고 매년 신규사업을 했다. 매년 고도성장을 해서 6개월에 한번씩 조직개편이 이루어졌다.
입사동기 중에 한명은 TV에 들어가는 핵샘부품을 개발하는 담당자였다. 입사 3년차 시절에 그로부터 "우리가 이제 도시바를 제쳤다."라는 말을 들었다. TV 핵심부품인 DY와 FBT에서 세계 일등 매출을 달성한 것이다.
1980년대 말은 고도성장의 시기였다. 더구나 엔저호황으로 인해서 풍요로운 시기이기도 했다. 회사에서는 매주 회식이 있었다. 그때 당시 일본 전자산업이 절정에 이를 때였다. 연구원들은 처음에는 일본 것을 베끼기에 바빴다.
회사가 70년대 한일합작이었을 때 카피했었다. 처음에는 엎어 놓고 베끼는 이른바 데드카피(Dead Copy)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았다고 한다.
연구소에서 전설적으로 회자된 이야기가 있다. 엎어 놓고 베꼈음에도 특성이 나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기구담당자가 구멍 하나를 뚫지 않은 것이다. 설계담당자가 보기에 아무런 의미 없는 홀이 있는 것 같아 무시한 것이다. 그러나 고주파 제품에서는 그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할 홀이었다. 이후 "베끼려면 제대로 베껴라."라는 말이 금과옥조처럼 전해 왔다고 한다.
회사는 한일합작 10년만에 합작을 청산했다. 그때가 1983년이다. 1985년 입사 했으므로 2년 후의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1973년에 입사한 사람들이 부장이 되어 있었다. 고도성장기에 6개월마다 조직개편이 이루어지니 승진도 빨랐던 것이다.
고도성장기에 대한 추억이 있다. 고도성장기 때 젊음을 바쳤다. 회사가 내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만든 제품이 외화를 벌어 들여온다고 생각하니 프라이드가 하늘을 찌른 것이다. 내수시장을 바라보고 경제활동 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봤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졸부들을 경멸했다. 제조업에 종사해야 진정한 애국자로 보았다.
오늘날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 되었다. 이렇게 좁은 나라에서 제조업 강국이 된 것에 대해서 어떤 이는 '작은 미국'과 같다고 말한다. 한국이 왜 작은 미국인가? 이는 캐나다를 보면 알 수 있다.
캐나다는 국토면적이 광대하다. 너무 커서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제조업이 생겨나는데 불리한 조건이 된다. 그대신 캐나다는 광물자원으로 지세븐(G7) 국가가 되었다. 캐나다가 경제강국이긴 하지만 제조업 기반이 아님을 말한다.
미국은 전세계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어떤 산업이든지 1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제조업은 발달되어 있지 않다. 상품은 설계만 하고 제조는 중국이나 대만 등에 하청 주는 형태로 되어 있다. 왜 그럴까? 땅 덩어리가 크기 때문이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물류시스템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제조업에 불리한 여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상품개발에서부터 양산까지 논스톱 생산시스템을 갖추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국토면적이 좁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도권에 인구가 몰려 있다. 그 결과 최적의 제조업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대만이 제조업 강국이 된 것은 이유가 있다. 국토가 좁고 인구가 많은 것이 장점으로 작용했다. 완제품 생산업체에서부터 부품업체에 이르기까지 한지역에 있어서 계열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한국의 수도권에서도 볼 수 있다.
서울과 경기는 전체인구 절반이 산다. 비좁은 면적에 인구가 2천5백만명인데 이는 대만처럼 최적의 제조업 기반이 된다. 그결과 경기도에는 수많은 공장이 있다.
반도체공장이 경기도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산업인프라와도 관련이 있다. 대규모 공항과 항만이 있고 도로는 사통팔달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산업인프라로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 되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것은 다 생산되고 때문에 작은 미국이라고 한다. 그것도 반도체, 가전, 휴대폰 등 일류제품이다.
젊은 시절 성장의 시대를 살아왔다. 그리고 성장의 시대 한 가운데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제조업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은 제조업 기반이 되는 일이다.
소비하는 일이 아닌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에 대한 프라이드는 아직도 남아 있다. 판검사, 정치인, 부동산이나 주식투기꾼 등을 우습게 보는, 때로 경멸하는 시각을 갖는 것은 아마도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우월의식 때문일 것이다.
우월적 자만은 불선한 것이다. 해탈과 열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졸부들을 한껏 경멸한다. 투기로 또는 불로소득으로 벤츠를 타고 다니는 자들을 보면 "그래 보았자 국내에서 국내 사람들을 대상으로 등쳐먹어 얻은 결과이다."라고 보는 것이다.
팔공산 갓바위에 이르렀다. 사진으로만 보던 갓바위부처님을 보자 경외감이 생겼다. 천년 이상 사람들을 지켜 보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갓바위 기도문구는 노골적이다. 마치 상품을 판매하는 것 같다. 기도품목마다 가격이 매겨져 있다. 갓바위부처님에게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준다는 것이다.
갓바위에 오르려면 1,365계단을 올라야 한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하려고 했다. 한시간 걸어서 마침내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갓바위 부처님은 정상에 있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있다. 이처럼 유명기도처는 동굴, 절벽, 해안 등과 같이 막다른 곳에 있다.
막다른 인생이 막다른 곳에서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질지 모른다. 기도는 간절히 하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1365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갓바위 부처님께 소원했다. 이른바 학업, 사업, 가족, 치유라는 사대기도는 아니다. 그것은 “아유 반노 수캉 발랑”이다.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겅하길 기원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 가는 길에 인프라를 보았다. 전국토가 일일생활권이 된 것은 도로가 잘 발달 되었기 때문이다. 그결과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 되었다. 덕분에 이렇게 경차를 타고 전국방방곡곡 유람하게 되었다. 여기는 팔공산자연휴양림이다.
2023-05-0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