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과 월지에 뜬 보름달
동궁과 월지에 뜬 보름달
동궁과월지, 생소한 이름이다. 이를 떼어 읽으면 동궁과 월지가 된다. 그래도 생소하다.
경주여행을 했다. 토함산휴양림에서 연박하면서 곳곳에 가 보았다. 휴양림 가까이에 있는 석굴암을 시작으로 천년의 숲, 남산, 불국사를 봤다. 다음날에는 감포 문무대왕수중릉, 감은사지, 대릉원 공원, 황리단길, 황룡사지, 동궁과 월지를 봤다.
경주는 천년고도이다. 또한 천년동안 잊혀져 왔다. 조선시대 어느 시인은 폐허가 된 연못을 노래했다. 폐허가 된 연못에 기러기만 노닌다고 했다. 그래서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경주는 유적만 남아 있는 고도이다. 석재로 된 것은 남아 있지만 목재로 된 것은 남아 있지 않다. 옛 절터에 가보면 주춧돌만 남아 있다. 그럼에도 천년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는 문화재도 있다. 석굴암과 불국사가 대표적이다.
석굴암은 1300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 석굴암 조성연대가 8세기이니 중국 돈황석굴 등과 시대를 같이한다. 옛날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도 정보가 공유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석굴암을 보면 시대를 초월한 것 같다. 마치 현대에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조형미와 세련미의 극치를 이룬다. 불교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도 불상의 거룩한 상호를 보면 저절로 경외(敬畏)가 날 정도이다.
석굴암은 불교예술의 절정이다. 또한 석가탑과 다보탑 역시 절정이다. 이후 이만한 작품이 나오지 못했다. 오히려 후대로 내려갈수록 퇴보했다.
경주남산에도 가보았다. 거의 십년전에 가 본 곳이다. 가다 보니 통일전에 이르렀다. 가고자 하던 곳은 아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천년의 숲’에도 가보게 되었다.
천년의 숲은 사진찍기 좋은 장소같다. 신록이 시작 되는 이때 햇살에 반짝이는 잎이 싱그러웠다. 한없이 평화롭고 한없이 한가로워 보였다. 숲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자동으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경주남산은 여러코스가 있다. 서남산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삼릉에서 본 소나무군락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다. 새벽 안개 때 보면 환상적일 것 같다.
목적지는 상선암이다. 도중에 목이 잘린 불상을 보았다. 왜 목이 잘렸을까? 사연이 있을 것이다. 암각화도 보았다. 부처를 두 보살이 외호하는 형상이다. 자세히 보니 공양단처럼 보이는 바위가 있다. 울퉁불퉁하지만 네모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다 꽃공양을 했을까?
문무대왕릉에도 가보았다. 능은 보이지 않고 암초같은 바위만 보일 뿐이다. 특이하게도 해변은 모래가 아닌 자갈로 되어 있다. 파도가 칠 때마다 자갈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감은사지는 해안에서 멀지 않다. 높은 둔덕에 커다란 3층석탑 두 기가 덩그렇게 서 있다. 돌로 된 것은 살아 남았지만 나무로 된 것은 사라졌다. 주춧돌을 보니 금당이 있고 또한 회랑이 있어서 불국사 구조와 유사하다. 이렇게 돌로 만든 것은 천년만년 간다.
경주시내로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황리단길로 향했다. 도중에 대릉원 공원에 갔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온 곳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문이 있다. 어떻게 산처럼 커다란 무덤이 시내에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경주는 분지에 있다. 능에 서니 분지가 매우 넓어 보였다. 한나라의 수도로 삼기에 적당해 보였다. 백제의 공주나 부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다.
어느 왕릉에 커다란 나무가 한그루 있다. 무덤은 천년이상 지속 했는데 나무는 고작 백년도 되지 않는다. 저 멀리 아스라히 첩첩 산이 중첩되어 있다. 맑고 푸른 하늘에 실루엣이 잡혔다. 천오백년전 사람들도 저기 첩첩산을 보았을 것이다. 저기 홀로 서 있는 나무는 천년 갈 수 있을까?
황리단길을 걸었다. 유튜브로만 보던 것이다. 놀랍게도 세발차를 보았다. 동남아나 인도, 스리랑카에서는 ‘툭툭’이라고 한다.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다.
동남아 등 외국에서 툭툭은 서민들의 주요한 교통수단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곳 황리단길에서는 놀이 기구가 된 것 같다. 대여를 하기 때문이다. 면허가 없어도 누구나 운전할 수 있다. 한국인은 세계 최고의 운전실력을 가진 나라 같다.
경주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카페 바로 옆에는 커다란 무덤이 있다. 무덤을 보고 커피를 마신다. 목조로 된 것은 오래 전에 사라졌지만 무덤만은 천년만년 가는 것 같다.
해가 점차 기울어져 간다. 분황사로 향했다. 분황사탑을 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6시 넘어 도착했기 때 들어가지 못했다. 그대신 황룡사지를 보고자 했다.
황룡사지에는 아무것도 없다. 허허벌판만 있다. 목조로 된 것은 모두 불타버렸다. 9층탑도 목조로 된 것이기 때문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주춧돌만 남았다. 금당터 주춧돌, 강당터 주춧돌, 회랑터 주춧돌 등만 남았다.
황룡사지에서 보리밭을 발견했다. 청보리밭이다. 사람들은 해질 무렵에 기념촬영을 했다. 일부러 청보리 밭으로 찾아가는데 생각지도 않게 보리밭에 있게 되었다.
어둠이 깔릴 때 동궁과월지로 향했다. 처음 들어 보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곧 알 수 있었다. 안압지였던 것이다. 이곳은 통일신라 궁궐터 중의 하나로 임해전 등이 있던 곳이다. 특히 동궁이 있었다고 한다.
안압지라는 말에 익숙하다. 지금은 더이상 안압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대신 월지(月池)라는 말을 사용한다. 폐허가 된 호수에 기러기만 노닐었다고 해서 안압지라고 이름 붙였는데 최근 본래 이름인 월지로 회복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동궁과 월지’라고 한다.
동궁과 월지는 안압지가 환골탈태한 곳이다. 또한 새로 복원한 곳이다. 그래서일까 관광명소가 되었다. 특히 야간에 보는 동궁과 월지는 환상적이다.
야간에 사람들은 동궁과 월지에 몰려 들었다. 호수에 비친 전각의 야경을 찍기 위해서이다. 더구나 이날 달은 거의 차 있었다. 보름달이 있는 동궁과 월지가 되었다.
달은 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저 자리에 떠 있다. 변한 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이다. 한때 기러기만 노닐던 폐허가 이제 다시 부활했다. 앞으로 또 천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경주 남산에 가면 목 잘린 불상 등 다수의 불상과 암각조상이 있다. 천년된 것들이다. 이처럼 바위에 새겨 놓으면 천년만년 간다. 그러나 저 아래 평지에 있던 절은 대부분 사라졌다.
국력을 기울여 만든 황룡사9층탑은 불타버렸다. 불상도 온데간데 없다. 서민들이 찾던 남산의 불상은 살아 남았지만 귀족이 다니던 절은 사라졌다. 절터에서 귀족불교의 한계를 본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은 영원하지 않다. 천년지나면 대부분 사라지고 흔적만 남는다. 그러나 정신유산은 천년만년 간다. 구전으로 또는 기록으로 남은 경전은 시대를 초월한다. 이제 경전불사를 할 때가 되었다.
2023-05-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