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달려 가는 곳이 있는데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달려 가는 곳이 있는데
지금 시각은 아침 7시 35분, 사무실의 아침이다. 오자마자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사무실에 냉장고와 전자레인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3주전에는 샌드위치 메이커인 토스터도 구입했다. 안양 굿윌스토어에서 7천원 주고 샀다.
소형냉장고에는 먹거리가 있다. 샌드위치를 3,500원에 구입한 것을 아직 다 못 먹고 있다. 두 장씩 나누어 먹다 보니 여러 차례 먹게 된다. 샌드위치햄과 치즈도 구입했다. 빵에 발라 먹을 것, 첨가해서 먹을 것이 많으면 푸짐한 한끼 식사가 된다.
절구커피를 만들었다. 근처 동서식품대리점에서 원두를 1키로에 9천원 주고 샀다. 이렇게 한번 사 놓으면 수십번 만들어 마실 수 있다. 커피점에서 커피 한잔 가격이 5천원 안팍이고, 아메리카노가 아무리 싸다고 해다 1,500원이다. 이렇게 원두를 사서 절구질해서 만들어 마시면 매우 경제적이다.
가능하면 돈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가능하면 집에서 먹으려고 하고, 가능하면 만들어 먹으려고 한다. 음식도 제철음식을 먹고자 한다.
만안구청이 있는 안양로 맞은 편에 ‘막둥이네’가 있다. 청과물을 싸게 파는 곳이다. 일반마트 보다는 거의 반값이다. 어제 가서 보니 완두콩이 보였다.
지금이 완두콩철인지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완두콩이 껍질이 까지지 않은 채 진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가게 주인에게 물어 보니 올해 생산된 것이라고 했다. 한바구니에 3천원이다. 완두콩 1키로에는 9천원이다.
완두콩을 한바구니 샀다. 부모님 생각이 났다. 부모님은 살아 계실 때 제철에 나는 먹거리를 종종 사가지고 오셨다. 완두콩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완두콩을 껍질 째 쪄서 먹기도 했다.
완두콩을 밥에 넣어서 먹고자 했다. 먼저 완두콩 껍질을 까야 한다. 초록빛의 동그란 알갱이가 나왔다. 적당량을 전기밥통속에 넣었다. 밥이 되고 나니 흰밥과 초록의 완두콩이 조화를 이루었다. 식욕을 당기기에 충분했다.
오늘 아침 일찍 일터에 일찍 왔다. 이 나이에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정년이 되어서 집에 있을 나이이고 은퇴를 해서 집에 있을 나이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이 있다. 개인사업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요즘 유튜브에서 노후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본다. 나이 들어서도 일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년이 되어서도 일을 해야 건강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그러나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친구 중에 회사경비로 취직한 사람이 있다. 대기업까지 다녔던 친구이다. 아무리 회사가 크고 탄탄하다고 해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퇴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타의적이든 자의적이든 퇴출 되었을 때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나는 홀로서기에 성공했을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홀로서기가 되었다고 본다.
2005년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 아니 퇴출되었다. 사오정이 된 것이다. 참으로 막막했다. 어떻게 벌어 먹고 살아야 할까? 거의 2년 방황했다. 그러다가 현재 하고 있는 인쇄회로기판설계업으로 정착이 되었다.
사업자등록증이 있다. 개업 연월일은 2005년 11월 3일로 되어 있다. 그때 퇴출 되던 해 갈 곳이 없었다. 갈 곳이 없어서 안양공구상가에 아주 작은 사무실 하나를 임대했다. 일이 없어도 앉아 있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그때 사업자등록을 했는데 그때가 개업연월일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사업 18년차가 된다.
본격적으로 내 일을 하게 된 것은 2007년 12월의 일이다. 그 해 사무실을 공유하는 사무실에서 몇 달 보냈다. 책상 하나만 주어지는 공간을 말한다. 다행히도 다층설계기법을 그 해 연초에 배워 놓았기 때문에 일감이 있었다. 그 결과 현재 오피스텔에 입성하게 되었다.
오피스텔은 나의 제2의 집과 같다.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달려 가는 곳이다. 주말도 없고 연휴도 없다. 작은 공간이긴 하지만 하루 지출되는 비용을 생각하면 비워 둘 수 없다. 풀 가동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앉아 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남들처럼 정년퇴임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왜 이런 생각을 하는가? 나이 들어 노년에 이르러 자리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조금이라도 젊을 때, 조금이라도 나이가 적을 때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사십대 중반에 사오정이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오늘 아침 걸어서 일터에 왔다. 집에서 일터까지 거리는 얼마나 될까? 대충은 알고 있다. 더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만보기를 켰다.
이마트안양점을 돌아서 비산사거리 산업도로를 건넌다. 꿈에그린 아파트 단지를 횡단하면 안양천이 나타난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삼성래미안 메가트리아 대단지가 나타난다. 예전에는 우회했으나 지금은 가로질러 간다. 몇 분 단축된다.
메가트리아에서 옛날 동료를 만난다. 그는 아침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1995년이다. 그때 직장따라 안양에 오게 되었는데 그때 만났던 직장 사람이다. 그 사람은 풍채가 좋고 사람 좋게 생겼다. 그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 사람은 나이가 먹은 것 같지 않다. 그때 본 얼굴이나 지금 보는 얼굴이나 차이가 없다.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렸음에도 얼굴에 큰 변화가 없다. 그런 나의 얼굴 모습은 어떨까? 변화가 매우 심하다. 그럼에도 자주 보면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친구들 얼굴을 보면 그런 것 같다.
만보기를 보니 집에서 일터까지 1.64키로 거리이다. 2,347보에 23분 걸렸다. 이제야 제대로 거리와 걸리는 시간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날씨가 좋아서 차를 타고 다니지 않는다. 점심 때도 걸어서 집에 갔다가 온다. 하루에 네 번 다니면 만보가 될 것 같다.
일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이번 부처님오신날 연휴에도 일감이 있어서 밤낮으로 했다. 일감은 끊어질듯 하면서도 연결된다. 그러나 장담하지 못한다. 언젠가 완전히 끊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무실도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일이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정년이 지나고 은퇴할 나이가 넘었음에도 일이 있다는 것은 생활에 활력을 준다. 아직까지는 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이런 일감을 준 고객사에 감사드린다. 특히 담당에게 감사드린다.
지금 시각은 8시 27분이다. 오늘도 하루일과가 시작되었다. 연휴가 끝나고 새로운 한주가 시작된 것이다. 굴다리를 지날 때 일터로 가는 노동자들의 발걸음이 가벼운 것 같다. 분명한 사실은 나도 갈 곳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내가 만든 것이긴 하지만, 눈만 뜨면 밥만 먹으면 갈 곳이 있다는 곳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 또 하루일과 시작된다.
2023-05-3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