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나는 여행

죽음같은 겨울비 내리는 날에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2. 11. 19:51

죽음같은 겨울비 내리는 날에

 

 


단풍나무 이파리가 바닥에 가득하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에 거의 대부분 떨어졌다. 대량학살을 보는듯 하다.

은행나무 이파리는 11월 18일 경에 떨어졌다. 조금씩 찔끔찔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떨어졌다. 그때도 대량학살을 보는 듯 했다.

 


은행나무 잎이 지면 가을이 끝났음을 알리는 것 같다. 대개 11월 20일 전후에서 일시에 진다. 그럼에도 단풍나무 잎은 남아 있다. 마침내 오늘 비바람이 부는 날 종말을 맞이 했다.

비오는 날 거리는 앙상하다. 나목이 되어 버린 거리는 을쓰년스럽다. 빛나는 도시의 거리임에도 우수의 마음이 든다. 하물며 빈촌의 거리는 어떠할까?

부지런한 사람들은 월동준비를 한다.  눈이와도 비바람이 불어도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든다. 더 부지런한 사람들은 노후준비를 한다. 저축을 하고 연금을 든다. 그렇다면 죽음준비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늙을 때까지 좋고
무엇이 좋은 의지처이며
무엇이 인간의 보물이고
무엇이 도둑이 빼앗기 어려운 것인가?"(S1.51)

"계율이 늙을 때까지 좋은 것이고
믿음이 좋은 의지처이며,
지혜가 인간의 보물이고
공덕이 도둑이 빼앗기 어려운 것이다."(S1.51)

하늘사람(천신)이 묻고 부처님(세존)이 답한 것이다. 계율과 믿음과 지혜와 공덕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노후준비를 한다. 노후에 월 얼마가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한다. 어떤 이는 250만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는 330만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각각 처한 입장에 따라 달리 말한다.

노후에 둘이 살 때 한달 최소 생활비는 얼마가 될까? 일반적으로150만원이라고 말한다. 사람에 따라 그 이하일 수도 있다. 지금 노년에 이른 자는 최소 생활비라도 준비해 놓았는가?

사람이 돈만 바라보고 살 수 없다. 돈은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살면 된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굵어 죽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명색이 오이씨디(OECD) 회원국 아닌가?

대한민국은 선진국클럽에 가입되어 있다. 굶어 죽었다는 말이 나오면 국가망신일 것이다. 아무리 못살아도 굶어 죽지 않는다. 굶어 죽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노년에 이르러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이 인간의 의지처이고
세상에서 최상의 벗은 누구인가?
땅에 의존하는 뭇삶들은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 키우랴?"(S1.54)

"아들이 인간의 의지처이고
최상의 벗은 아내이고,
땅에 의존하는 뭇삶들은
비[雨]라는 존재들이 그들을 키운다."(S1.54)

천신이 묻고 부처님이 답했다. 아들이 의지처라고 한다. 아내가 베스트프렌드라고 한다. 마치 땅의 존재들을 비가 키우듯이, 노년에 가족이야말로 최상의 의지처임을 말한다.

세월이 흐르면 주변 사람들은 죽어 간다. 혼자 오래 사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떠났을 때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무엇이 나그네의 벗이고,
무엇이 자기 집의 벗인가?
무엇이 일이 생겼을 때의 벗이고,
도대체 무엇이 앞날의 벗인가?"(S1.53)

"카라반이 나그네의 벗이며,
어머니가 자기 집의 벗이고,
친구가 일이 생겼을 때
언제라도 자신의 벗이지만,
스스로 지은 공덕이야말로
다가올 앞날의 벗이다."(S1.53)

노후준비를 아무리 잘 했어도 죽음준비를 하지 않으면 허사가 된다. 노후에 월 300만원이 들어와도 써버리면 그만이다.

물질적 재화는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정신적 재물은 사라지지 않는다. 계행의 재물, 믿음의 재물, 지혜의 재물은 누군가 가져 갈 수도 없고 빼앗아 갈 수도 없다. 든든한 죽음의 노자돈이다.

죽음의 길에 의지처인 자식과 함께 갈 수 없다. 절친과 같은 아내와도 함께 갈 수 없다. 혼자서 두렵고 무서운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 이럴 때 공덕이야말로 든든한 의지처이고 베스트프렌드이다.

2023-12-1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