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권 국내성지순례 VIII 2019-2021, 내가 다니는 절은 작고 가난한 절
113권 국내성지순례 VIII 2019-2021, 내가 다니는 절은 작고 가난한 절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사찰순례도 함께 시작했다. 블로그를 열어 보니 2006년 12월에 천안 광덕사 순례한 것이 순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이후 지금까지 236곳 사찰순례한 것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중복된 사찰도 있다.
정식으로 불교인이 되고 나서 사찰순례를 시작했다. 2004년 이전에는 절에 가지 않았다. 안양에서 가까운 삼막사와 청계사를 가는 정도에 그쳤다. 단지 산에 절이 있기 때문에 간 것이다.
처음으로 순례 간 것은 2004년 가을로 기억된다. 그때 윤필암과 대성사를 갔었다. 능인선원 금강회에서 단체로 간 것이다. 전세버스가 20대 이상이었다. 거의 팔백명 가까이 되었다. 그때가 아마도 능인선원 최전성기였을 것이다.
능인 동기모임에서도 순례를 갔다. 버스를 한대 전세 내어서 간 것이다. 처음으로 간 것 남해 보리암이다. 2004년 가을의 일이다. 그러나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의 일이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사찰순례하겠다고 발원했다. 사찰순례는 좋은 글쓰기 소재가 된다. 본대로 느낀 대로 쓰면 되는 것이다. 사진도 곁들였다. 여행기 쓰는 것은 부담이 없다.
불교인이 되고 나서 가장 큰 변화는 사찰순례 하는 것이었다. 주로 삼사순례했다. 한번 간 김에 세 절 참배 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이사순례가 되었다. 시간도 부족하고 길도 막혀서 두 곳만 참배하는 것이다.
사찰순례 다니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다. 전국방방곡 불국토 아닌 곳이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깊은 산중에 여법한 가람이 건설되었을까?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듯한 암자도 볼 수 있다.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찰순례 원칙을 정해 놓았다. 어느 절에 가든지 불상을 사진에 담아 놓는 것이다. 그 절이 그 절인 것 같지만 모두 다르듯이, 그 불상이 그 불상 같지만 모두 다르다. 순례가 많아질수록 불상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불상 사진을 꼭 찍어 두었다.
불상 사진을 찍다가 봉변당한 적도 있다. 불국사 대웅전에서 불상을 찍다가 이른바 ‘법당보살’로부터 험한 말을 들은 것이다.
불국사는 문화재의 보고와도 같다. 대법당에 있는 불상도 문화재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지 말라는 팻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당 밖에서 찍었다. 이를 본 법당보살이 달려와서 조롱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큰 절 주불전에는 법당보살이 있다. 법당보살은 기도비 접수 등의 일도 하지만 사진을 못찍게 하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 유독 불국사 대웅전 법당보살은 위세가 당당했다.
불국사 법당보살은 큰 소리로 관람객을 통제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 저거 봐라 사진 좀 찍겠다고”라며 조롱하는 듯한 말을 했다. 이런 조롱에 엄청나게 분노했다. 후기에 법당보살에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사찰순례를 하면 반드시 후기를 작성했다. 한번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나중을 위해서 기록을 남겨 둔 것이다. 절 곳곳을 촬영했다.
꽃이나 나무도 사진 찍어 두었다. 풍광도 예외가 아니다. 동영상도 촬영했다. 법회에서 법문한 내용까지 올려 놓았다. 기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기록해 놓았다. 이런 기록이 2006년 이후 236개가 된다.
사찰순례는 기록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제 책으로 만들고 있다. 이번에 만든 책은 여덟 번째 사찰순례에 대한 기록이다. 책 제목에 대하여 ‘113 국내성지순례 VIII 2019-2021’라고 이름 붙였다.
순례기는 113번째로 만든 책이다. 국내사찰순례한 책으로는 여덟 번째이다. 기간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동안에 대한 기록이다. 목차는 24개이고 241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미륵이 꿈꾼 세상은? 미륵사지 석탑보수정비 준공식을 보고
2. 직지사 백련암에서 에인다까 사야도와 함께
3. 작은 절에 단 빈자일등(貧者一燈), 앵봉산 약수암
4. 전시에는 성(城)이 되는 화엄사찰, 구미 대둔사
5. 스리랑카식 점안식, 성원정사 이전개원법회
6. 보시는 보시하고 싶은 수행자에게, 2019 양주 마하보디사 까티나축제
7. 도심 포교현장, 부천상동 도연선원 개원법회에 참석하고
8. 빠알리어로 챈팅 해야 하는 이유, 마하위하라 담마끼띠 스님과 함께
9.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동짓날 성원정사에서
10. 마애석불418계단을 오르며, 석모도 보문사
11. 왜 공덕 회향해야 하는가, 성원정사 천도재
12. 절이 있어서 산에 간다, 관악산 불성사
13. 수종사 전망대에 서니
14. 코로나팬데믹도 남북갈등도 없는, 수종사 전망대에 서니
15. 사나사에 보리수가 있었네
16. 불갑사 대웅전 앞에 서니
17. 함평 용천사 가는 길에
18. 일본풍 동국사에서 본 조동종 참회비
19. 정진하는 모임은 최상의 모임, 향천선원 우 실라 사야도 법회
20. 빠알리챈팅 음성에 충만되어, 마하위하라 2020 까티나축제
21. 친구약속을 지키고자, 안양사 사십구재 대리참석
22. 청계사 울릉도 호박엿
23. 그 절 앞을 지나노라면, 안양 백운사
24. 천장사가 고향집 같은 것은, 신임주지스님 상견례
사찰순례라 하여 심산유곡에 있는 전통사찰만 간 것은 아니다. 도심에 있는 사찰에도 갔다. 이는 부평에 있는 도연선원과 신림동에 있는 성원정사가 해당된다.
(도연선원)
사찰순례라 하여 기와지붕을 특징으로 하는 대승불교 사찰만 간 것은 아니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테라와다불교 사찰에도 갔다. 이는 양주에 있는 마하보디사원과 아산에 있는 마하위하라사원이 해당된다.
어떤 이는 큰 절만 찾아 다닌다. 조계사와 봉은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큰 절은 가지 않는다. 그 대신 작은 절이나 가난한 절에 다닌다.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 성원정사가 있다. 스리랑카 유학파 출신 송위지 선생이 운영하는 도심속 포교당이다. 이에 목차 5번에서 ‘스리랑카식 점안식, 성원정사 이전개원법회’(2019-10-14)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성원정사)
성원정사에는 스님은 없다. 송위지 선생이 법사복을 입고 법회를 주관한다. 큰 절에 비하면 존재감이 없는 작은 절이다.
성원정사에 종종 나간다. 부모님 천도재를 그곳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장인 천도재도 지냈다. 이런 인연으로 일년에 몇 차례 간다.
성원정사에서는 매년 연말이 되면 달력을 보내 온다. 입춘대길 부적도 함께 보낸다. 입춘대길 부적을 받으면 아파트 현관에 붙여 둔다.
성원정사는 송위지 선생의 원력으로 건립된 절이다.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고시생들에게 쉼터를 마련해 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
성원정사와의 인연은 우연에 따른 것이다. 2017년 5월에 봉암사에서 불교개혁운동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송위지 선생도 참여한 것이다.
송위지 선생은 성원정사 신도와 함께 왔다. 그 중에는 고시생도 있었다. 고시생들에게 머리를 식혀 주기 위해서 함께 온 것이다. 아마 칠팔명 되었던 것 같다.
2017년 당시에 아들은 취업준비생이었다.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매일 노량진으로 갔는데 거리가 멀었다. 시간도 낭비되었다. 그때 마침 성원정사 생각이 났다. 고시촌에 있기 때문에 숙식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찾아가게 되었다. 그때가 2017년 가을이다.
성원정사는 숙식하는 곳이 아니다. 단지 고시생들에게 쉼터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성원정사에서는 고시생들에게 장학금도 주었다. 이런 이유로 성원정사는 고시생들에게 쉼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성원정사에서 처음 찾아 갔을 때 들은 것이 있다. 그것은 천도재를 무료로 해준다는 것이다. 이런 말에 솔깃했다. 그때 당시 부친이 돌아가신지 며칠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에 걸쳐서 천도재를 했다. 송위지 선생이 두 시간 동안 정성껏 집전했다. 처와 함께 둘이서 참여했다. 보시는 능력껏 자율적으로 했다.
한번 성원정사와 인연이 맺어지자 이후 계속 다니게 되었다. 부처님오신날도 가고 이전법회 할 때도 갔다. 동지법회 때도 갔다. 목차에 있는 것은 동지법회 때 기록에 대한 것이다.
성원정사는 고시생들을 위한 절이다. 고시공부하다 합격한 사람들이 많다. 성원정사에서 기원하면 합격도 잘 되는 것 같다. 아들은 그해 2017년에 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지금은 서울시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해외에 사는 친구가 있다. 스페인에서 외국여자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동생이 중병에 걸려서 죽었다. 친구는 한국에 올만한 처지가 되지 못했다. 이에 친구는 사십구재에 대리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친구는 내가 불자인 줄 알기 때문에 부탁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목차 21번에서 ‘친구약속을 지키고자, 안양사 사십구재 대리참석’(2020-11-29)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천장사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다. 천장사에 가면 반가운 얼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종종 천장사에 간다. 큰 행사가 있을 때도 간다. 주지가 바뀔 때도 간다. 목차 24번에서는 ‘천장사가 고향집 같은 것은, 신임주지스님 상견례’ (2021-04-04)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현재 주지를 맡고 있는 중현스님을 말한다.
(천장사)
절에 가면 기록을 남긴다. 사진과 동영상을 곁들인다. 절은 글쓰기에 좋은 소재가 된다. 대한민국에 있는 전통사찰은 모두 다 가보고자 한다. 전통사찰이 구백 개 가량 된다 하니 평생 가도 다 못 볼 것 같다.
전국방방곡곡에 절이 있다. 옛날에는 더 많았을 것이다. 산 중에 여법한 가람이 있으면 불교가 살아 있는 것 같다. 도시에는 십자가 천지이지만 그래도 절은 남아 있다. 절에 가면 불국토에 있는 것 같다.
큰 절에 다니지 않는다. 신도가 수만명 되는 큰 절에서는 존재감이 없을 것 같다. 그 대신 작은 절에 다닌다.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성원정사는 부모님 천도재와 인연이 되어서 다닌다. 서산 천장사는 일요법회 법우들과 인연이 있어서 다닌다. 서울 청파동에 있는 담마와나선원은 빠알리 법명을 받은 곳이어서 다닌다. 아산에 있는 담마위하라는 담마끼띠 스님과 인연이 있어서 다닌다.
내가 다니는 절은 작고 가난한 절이다. 절이 작아서 나에게는 존재감이 있다. 언제든지 가면 반겨 주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절이 가난하기 때문에 청정한 것 같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청정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작고 가난한 절이 좋다.
2023-12-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