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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권 진흙속의연꽃 2019 II, 차라리 내가 바꾸는 것이 더 낫다

담마다사 이병욱 2023. 12. 23. 10:14

116권 진흙속의연꽃 2019 II, 차라리 내가 바꾸는 것이 더 낫다

 

 

계절의 변화는 한치도 예외 없는 것 같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것이다. 그것도 무척 춥고 무척 덥다.

 

지난 여름을 생각해 본다. 여름나기가 무척 힘들었다. 특히 열대야는 참을 수 없었다. 차라리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겨울이 휠씬 더 낫다고 생각했다.

 

열대야 트라우마는 꽤 오래 계속되었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었지만 고통스러운 열대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마침내 요즘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혹독한 추위에 열대야는 먼 날의 기억이 되었다.

 

오늘도 백권당 아지트로

 

오늘도 백권당으로 왔다. 그것도 아침 일찍 왔다. 눈만 뜨면 오는 것이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걸어 왔다. 눈만 빼고 모두 가렸다. 마치 굴러다니는 이불 같았다.

 

백권당은 나의 아지트나 다름 없다. 늘 혼자 있다. 문을 열면 식물이 반겨준다. 나에게 있어서는 반려식물이다. 다음으로 아침을 먹는다. 집에서 고구마와 계란 삶은 것을 가져와서 샌드위치와 함께 먹는다. 모두 직접 만든 것이다.

 

 

아침을 먹고 나면 커피를 마셔야 한다. 요즘은 원두 분쇄된 것을 이용하여 커피를 만든다. 그리고 여백을 마주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한 것이다. 먼저 글을 쓰는 것이다.

 

나만의 공간에 있으면 안온하다. 누가 터치 하는 사람이 없다. 추운 겨울날에도 훈훈하다. 발 밑에는 히터가 있다. 마치 장작불 난로처럼 따뜻한 열기가 느껴진다.

 

 

매일 일상적으로 하는 것이 있다. 글쓰기, 명상하기, 경전읽기가 주된 것이다. 여기에다 두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그것은 책만들기빠알리어공부하기이다.

 

116 진흙속의연꽃 2019 II

 

틈만 나면 책을 만든다. 일주일에 한두 권 만든다. 블로그에 올려 놓은 것을 시기별로 또는 카테고리별로 묶어서 만드는 것이다.

 

오늘 책 완성하는 날이다. 편집은 다 끝났다. 서문만 쓰면 된다. 이번에 만든 책은 2019년 하반기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이를 ‘116 진흙속의연꽃 2019 II’라고 이름 붙였다.

 

이번에 만든 책은 116번째 책이다. 2019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의 기록이다. 모두 75개의 글이 실려있고 351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목차)

 

1. 국민휴가철에 암반계곡으로

2. 블로그 개설 14주년에

3. 하루 일과 중에 반은 글쓰기로

4. 일본의 백색테러를 보고

5. 일본의 경제침략

6. TV에서 본 입학동기

7. 오는 사람 막지말고 가는 사람 잡아야

8. 입학동기 사당동 모임에서

9. 소면국수 만들기

10. 서민이 서민 것을 팔아 준다

11. () 파는 노인

12.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산다면

13. 시간 지나도 해결 안되는 문제

14. 유튜버 수익

15. 컴퓨터 바이러스

16. 작업한 파일이 모조리 깨졌는데

17. 학의천 옹달샘

18. 리오를 폐차시키고

19.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지 말자

20. 불로소득을 부끄러워하자

21. 세상이 정의롭지 않다면

22. 말 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

23. 2019 안양 음식문화축제

24. 3년만에 또 다시 촛불을

25. 육식동물의 굴욕과 초식동물의 위엄

26. 검찰이 이기는지 국민이 이기는지, 9.28서초동촛불

27. 관망파도 정치검찰 단죄의 대열에 합류할 것

28. 재벌밥상 부럽지 않은 제철 꿀고구마

29. 내가 내일 서초동촛불에 나가는 이유

30. 조국사태로 불쾌하고 불편한 나날을

31. 일주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날, 10.5서초동촛불

32. 나는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고 있는가

33. 중상모략을 일삼는 종편과 유튜브

34. 언론은 어떻게 왜곡되는가, 알릴레오 3회를 보고

35. 나는 오늘도 서초동으로

36. 위대한 촛불 위대한 국민, 10.12서초동촛불 최후통첩

37. 까티나(kathina) 축제를 아시나요?

38. 믿을 것은 선업공덕밖에 없다 

39. 무소유와 미니멀라이프

40.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기 위하여, 여의도촛불

41. 그 다음이 있는 이야기를 해야

42. 역사는 흐른다, 11.2 여의도촛불문화제

43. 인간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는

44. 오랜만에 손맛을 

45. 불교교양대학동기 12일 펜션모임

46.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허물

47. 삶이 권태로울 때

48. 숙성(熟成)되어야 맛이 나는 대봉

49. 절친(切親)의 조건에 대하여

50. 질문하는 것에 의식수준이

51. 건전한 음주 문화 정착을 위하여

52. 명상도 상품화되는 시대, 2019 서울국제불교박람회

53.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

54.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다면

55. 훌륭한 법사의 조건

56. 낯이 두꺼운 사람

57. 사무실 공유자와 8년세월

58. 어쩌다 개인사업자가 되어

59. 운이 나빠서 정년까지 쭉 가시는 분들

60. 노점좌판에서 무우 팔아주기

61. 새벽에 오룡차를 마시며

62. 정치중도는 가능한가

63. 부처님 권위에 의지하여

64.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65. 불교교양대학동기 2019 송년모임

66. 연소하는 삶을 살고자

67. 개혁은 변방으로부터

68. 노인들이 국회 담장을 넘은 것은

69. 천사(天使)의 경고 세 가지

70. 목표로 살 것인가 목적으로 살 것인가

71. 오로지 감각을 즐기고자 한다면

72. 마음의 평정을 잃었을 때

73. 찻잔 한모금에 행복을

74. 운명을 잘 가꾸어야

75. 석화(石火) 빛과 같은 인생

 

116 진흙속의연꽃 2019 II_231223.pdf
7.00MB

 

대부분 짤막짤막한 글이다. 일상에 대한 것을 이틀에 한번 쓰다시피 했다. 그러다 보니 갖가지 소재의 글을 쓰게 되었다. 이런 글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를 인터넷 잡문(雜文)’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리오를 폐차시키고 모닝을

 

일상에 대한 글에는 시시콜콜한 내용도 있다. 남들이 보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낭비에 대한 글도 있다. 그럼에도 나에게 있어서는 인상적인 사건이었다. 자동차를 바꾼 것도 그 중의 하나이다.

 

자동차를 새것으로 사 본적이 없다. 항상 중고차만 샀다. 2019년에도 그랬다. 그 동안 타고 다녔던 리오를 폐차시키고 모닝을 구입했다. 이에 대하여 목차 18번에서 리오를 폐차시키고’(2019-09-11)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리오는 배기량이 1300씨씨정도 되는 소형차이다. 기록을 보니 15년 탔다. 그런데 리오도 중고차로 샀다는 것이다. 중고차를 사서 15년 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 가치가 떨어져서 중고로 팔 수도 없었다. 폐차시키는 것이 더 낫다는 권유를 받고 폐차 시킨 것이다.

 

리오 후속으로 산 것은 모닝이다. 모닝 역시 중고로 샀다. 그런데 모닝은 배기량 999씨씨로 경차라는 사실이다. 소형에서 경차로 내려 온 것이다.

 

 

자동차는 세 번 샀다. 모두 중고로 샀다. 처음 산 것은 액센트이다. 배기량 1500씨씨 이하로 소형차이다. 거의 십 년 탄 것 같다. 수명이 다 되었을 때 폐차 시켰다.

 

액센트 후속으로 리오를 샀다. 역시 중고차이다. 15년 타고 폐차 시켰다. 리오 후속으로 모닝을 샀다. 역시 중고차이다. 2019년에 구입했으므로 현재 4년째 타고 있다.

 

한번도 새 차를 사본 적이 없다. 한번도 소형차 이상을 타 본 적이 없다. 소형차나 경차를 탔다. 지금은 배기량 999씨씨의 경차이다. 부딪치면 종이장처럼 부서질 것 같은 약해 보이는 차이다.

 

어떤 것이든지 만족하면 그것이 행복이다. 경차 타는 것에 만족한다. 소형도 아닌 경차의 이점은 무엇일까?

 

첫째로 연비가 좋다는 것이다. 차가 작다 보니 연료가 그다지 많이 들지 않는다. 둘째로 톨게이트비용과 주차비용이 반값이다. 주자차비용 반값은 공영주차장에만 해당된다. 이는 차가 작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작은 차를 타고 다니면 이점과 단점이 있다. 이점은 유지비가 적게 드는 것이다. 단점은 하차감이 좋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차감은 차에서 내릴 때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좋은 차의 조건은 승차감일 것이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하차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차감은 무엇인가? 요즘 속된 말로 뽀다구나는 것을 말한다. 차에서 내릴 때 우월적 자만을 말한다.

 

경차는 탈만하다. 승차감도 좋다. 단지 하차감은 자신 없다. 차가 작다 보니 종종 무시 받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경차를 타고 주행하다 보면 마구 들어 온다. 차가 작다고 깔보는 것 같다. 차선을 변경하려 할 때 잘 비켜 주지 않는 것도 차가 작기 때문일 것이다.

 

차가 작기 때문에 피해 다닌다. 값 비싼 차가 앞에 있으면 거를 확보한다. 잘못하다 부딪치면 수리비가 차 값보다 더 나올 수 있다.

 

경차는 가족용 차나 다름없다. 처와 아들도 함께 사용한다. 차 한대로 세 명이 사용하는 것이다. 처는 직장 갈 때 가져 간다. 아들은 휴가 때 가끔 사용한다. 나는 업체 방문할 일 있을 때 사용한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사회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위화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차를 가졌다면 알리지 않는다.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면 더욱더 알리지 않을 것이다.

 

가진 자들은 프라이버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을 노출시키려 하지 않는 것이다. 사생활을 공개해서 이득 될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자들은 거리낄 것이 없다. 사생활도 노출 시킨다. 왜 그럴까? 지켜야 할 것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잃을 것도 별로 없는 이유도 있다.

 

경차 다니는 것이 자랑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노출하는 것은 싼 차, 중고차, 작은 차 타고 다니는 것에 대하여 반감이나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작은 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동산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글쓰기 하면서 주식이나 부동산에 대하여 신경 끄고 살았다. 지난 17년동안 한번도 주식시세나 부동산 시세를 알아 보지 않았다. 아파트 평수가 22평인 것은 최근에 알았다.

 

단지 내에서 가장 작은 평수에 살고 있다. 전에는 23평인줄 알았는데 최근에 22평인 것을 알았다.

 

아파트 평수를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작은 평수에 살기 때문이다. 넓은 평수에 살거나 고급주택에 산다면 감추려 할 것이다.

 

언젠가 작고한 김성철 교수의 컬럼에서 인상적인 글을 보았다. 그것은 희고 고운 손을 부끄러워하자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부동산 등 투기로 형성된 불로소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자 한다. 가능하면 노출하지 않는다. 당연히 인터넷에 자신을 알리지 않는다. 자신의 집이나 차에 대해서도 알리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아마도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킬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 그러기에 자유롭게 쓴다. 경차와 소형평수에 대하여 걸림 없이 쓰는 이유에 해당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2019년 글을 보면 정치에 대한 것도 많다. 특히 2019년 하반기 때 서초동과 여의도 촛불에 대한 글을 여러 편 썼다. 이에 대하여 목차 24번 글에서 ‘3년만에 또 다시 촛불을’(2019-09-25)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2016년에 광화문촛불이 있었다. 그 해 가을 매주 토요일만 되면 광화문광장으로 갔었다. 그 결과 촛불혁명이 달성되었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촛불을 든 지 3년만에 다시 촛불을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조국사냥에 대한 검찰권력을 규탄하기 위한 것이었다.

 

세상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역사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때로 내 뜻과는 정반대로 되기도 한다. 검찰권력이 정권을 잡은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2019년 촛불을 들었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 바램과는 정반대로 간 것이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었는데 들어맞지 않은 것이다.

 

 

검찰권력이 들어선 것은 민주진영에 있어서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건대 반드시 그렇게 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사람들의 다양성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

 

사람을 믿으면 실망하기 쉽다. 왜 그런가? 인간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격적으로 덜 성숙된 존재들이 대부분이다. 대부분은 탐, , 치로 살아간다. 이런 인간들이 권력투쟁을 해서 정권을 잡는다.

 

선거철이 가까워지고 있다. 요즘 유튜브에 부쩍 정치관련 영상이 많다. 아마 그것은 한번 어떤 영상에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관련 영상을 연결시켜 준 것이다.

 

재작년 대선 이후 일절 뉴스를 보지 않는다. 뉴스가 있는 식당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들어가서 본 유튜브 영상으로 인하여 마치 고구마줄기처럼 관련 영상이 달라 붙는 것이었다.

 

정치적 이슈와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너무 가까이 하면 타버린다. 너무 멀리하면 무관심하게 된다.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런가? 정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떤 정권이 들어섰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이렇게 본다면 정치에 무관심할 수 없다.

 

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겉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이는 선거 때 한표를 행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무관심해 보이는 사람들도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념투쟁의 시대에

 

또다시 정치의 계절이 왔다. 유튜버들은 낚시성 제목으로 유혹한다. 갖가지 자극적인 말을 쏟아 낸다. 지나치게 빠지면 안된다.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세상은 내뜻대로 바뀌지 않는다.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하지만 너무나 더디다. 떄로 후퇴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이성도 있지만 욕망의 지배를 더 받기 때문이다. 이를 불교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인간은 오취온적 존재이기 때문에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욕망을 욕망으로 제어할 수 없다. 욕망은 욕망을 억제하는 것으로 제어된다. 수행을 통해서 제어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정각을 이루었을 때 전법하지 않으려고 했다. 욕망에 물든 사람들이 깨달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차라리 설하지 말아야지.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이해하기 힘드네.”(S6.1)라고 말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유튜브 정치영상을 보면 탐욕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이념차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러다 보니 미움은 점점 더 심해진다. 누군가 하나는 죽어야 한다.

 

이념투쟁에 몰두하면 폭력이 된다. 편가르기 해서 내 편이 되지 않으면 배제된다. 편을 가르고 배제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폭력이다. 정치유튜버에게서 볼 수 있다.

 

이념투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휩쓸리면 타버린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 가르침에 정답이 있다.

 

차라리 내가 바꾸는 것이 더 낫다

 

부처님은 세상과 싸우지 않았다. 그럼에도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왜 그런가? 이는 부처님이 수행승들이여,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싸운다. 수행승들이여, 진리를 설하는 자는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다.”(S22.95)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진리를 설하는 자는 세상과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 사람들은 탐, , 치의 흐름대로 사는데 진리를 설하는 자는 무탐, 무진, 무치를 말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진리를 설하는 자는 싸우지 않는다. 그럼에도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싸움을 걸기 때문이다. 가만 있는데 시비 거는 것과 같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사람들은 오취온적 존재들이다. 태어날 때부터 오취온적 존재이다. 오온에 집착된 채로 태어난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탐, , 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탐욕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진리를 설하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은 크게 웃어버릴 것이다. 약간은 반신반의하며 들을지 모른다. 극소수는 진리로서 받아들일 것이다.

 

탐욕의 존재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하느니 내가 바꾸는 것이 더 낫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마음이 오염되므로 뭇삶이 오염되고 마음이 청정해지는 까닭으로 뭇삶이 청정해진다.”(S22.100)라고 했다. 마음청정이면 중생청정이라는 가르침이다.

 

남을 바꾸려고 해서는 안된다. 한번 형성된 성격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나이를 먹어 노년에 이르렀다면 더욱더 바꾸기 힘들다. 이럴 때는 내가 바뀌어야 한다. 마음을 청정하게 하면 세상이 청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청정해지는 까닭으로 뭇삶이 청정해진다.”(S22.100)라고 한 것이다.

 

성찰하는 글을 쓰고자

 

오늘도 장문의 글을 썼다. 116번째 책의 서문이다. 서문을 통해서 책 내용에 대하여 간단히 알린다. 그러나 글 쓰는 행위는 항상 현재시점이다.

 

글은 과거에 쓴 것이다. 2019년에 쓴 글모음이다. 이런 글을 모아 놓은 책의 서문에는 현재시점으로 쓴다. 과거를 보면서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이다.

 

과거에 써 놓은 글을 보면 부끄러운 글도 없지 않아 있다. 지나치게 감정이 개입되어 있는 글이다. 지나치게 이념투쟁에 몰입된 글도 있다. 가장 좋은 글은 성찰하는 글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성찰이 없다. 에스엔에스에서도 성찰의 글은 찾아 보기 힘들다. 그러나 성찰이 없으면 발전하기 힘들다. 항상 현재에 만족하는 삶을 산다면 옛날이나 오늘이나 똑 같다. 미래도 다를 것이 없다.

 

성찰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경전을 근거로 하는 것이다. 진리를 근거로 하는 글쓰기는 실패할 수 없다. 특히 정치의 계절에 두드러진다.

 

요즘 유튜브에 점차 빠져 들고 있는 것 같다. 선거철이 점차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유튜버의 세 치 혀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불완전하게 말한다. 이에 빠져 들면 똑 같은 사람이 된다. 이럴 때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 “마음이 청정해지는 까닭으로 뭇삶(衆生)이 청정해진다.”(S22.100)라고.

 

 

2023-12-2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