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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해제는 없을까? 천장사 북토크

담마다사 이병욱 2024. 2. 24. 22:02

인생해제는 없을까? 천장사 북토크

 

 

염불 소리에 몸을 맡겼다. 눈은 감은 상태였다. 지상에서 가장 편한 상태에서 앉아 있었다. 스님의 운율에 맡겼다. 몸이 릴렉스 되는 것 같았다. 스님의 리드에 마음도 맡겼다.

 

오늘 천장사 정월대보름법회에 다녀왔다. 토요일이라 막힐 것을 예상했다. 그러나 전혀 막히지 않았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제한최고 속도까지 달렸다.

 

정월보름날은 불교명절일까? 백중 못지 않은 명절일 것 같았다. 왜 그런가? 하안거가 끝나는 날 백중이기 때문에 동안거가 끝나는 날인 정월대보름날도 틀림 없이 중요한 불교명절일 것으로 생각했다.

 

이번 정월대보름은 토요일이다. 천장사에서는 일요법회를 하루 당겨 토요일에 학기로 했다. 지난 입춘법회 때 스님과 신도들이 모여서 합의한 것이다.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나의 역할도 있었다. 정월대보름날을 뜻 깊은 날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올 줄 알았다. 정월대보름날 북콘서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날은 불교명절일까?

 

천장사에 대한 글이 있다. 천장사를 다니기 시작한 2012년부터 쓴 글이다. 한권의 책으로 만들기 위해서 글을 모아 보니 지난 12년동안 41개의 글이 있다. 이 글을 모아서 천장사 일요법회라는 제목의 책을 하나 만들었다.

 

북코서트를 언제 해야 할지 망설였다. 신도회 회장에게 뜻을 비쳤더니 부처님오신날이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일요법회 멤버들이 가장 많이 오는 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글을 모두 수집해 놓은 상태에서 너무 멀었다. 그래서 정월보름날 하자고 주장했다.

 

천장사에서는 민주적으로 의사결정한다. 스님은 일정에 대하여 신도들에게 의견을 물어서 결정한다. 북콘서트를 정월보름날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경솔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월대보름은 백중과 같은 큰 명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결정된 일이다. 다시 번복할 수 없다.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토요일에 법회를 하기 때문에 일요법회 멤버들의 참여가 저조할 것 같았다. 예상은 맞아 떨어졌다. 평소보다 적게 나왔다.

 

일요일은 쉬는 날 개념이다. 그런데 일요일은 종교행사 하는 날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토요일은 다르다. 토요일에는 각종 행사가 몰려 있고 또한 생업이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스님과 신도들이 결정한 사항이기 때문에 예정대로 정월보름날, 토요일에 법회를 하기로 했다.

 

정월대보름법회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동안거가 끝나는 날인 것이 가장 크다. 그러나 선방 스님들은 이미 절을 떠났다. 어제 수덕사에서 동안거 해제법회가 있었기 때문에 어제 다 떠난 것이다. 이런 것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선방스님들과 함께 하는 정월대보름법회를 생각했었다. 그러나 스님들은 하루 전에 모두 떠났다. 재가불자들만 남아서 법회를 했다. 그런데 천장사 주지 중현스님에 따르면 오늘 법회는 관음기도회향 날이라고 했다.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관음불공 회향하는 날

 

천장사에 매주 나가지 않는다. 안양에서 서산까지 거리가 멀어서 매주 일요일 나갈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오신날, 입춘, 방생 등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나간다. 그러다 보니 천장사에서 진행되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오늘 점심시간에 길상화보살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관음기도는 입재가 있었다는 것이다. 동안거가 시작될 때 입재법회가 있었음을 말한다. 이런 이유로 동안거 해제 날에 회향법회가 있는 것이다.

 

 

오늘 정월대보름법회는 관음불공회향법회가 되었다. 마치 하안거가 끝날 때 백중법회를 하는 것과 동등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꽤 큰 행사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아래 마을에 사는 노보살들이 참석했다.

 

법회는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스님 혼자서 염불도 하고 종도 치고 축원도 하고 법문도 하는 등 마치 홀로 다 소화했다. 참석자들은 스님의 리드에 따라 일어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절도 하는 등 스님의 리드에 맡겼다.

 

어떤 이는 스님의 염불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스님이 천수경, 진언 등 갖가지 염불을 할 때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한다. 법회에 참석하여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힐링 되는 것 같음을 말한다.

 

회향법회의 꽃은 제사 지내는 것이다. 일종의 천도재라고 볼 수 있다. 아미타불을 정근하기도 하고 장엄염불을 하기도 한다. 이는 법당 우측에 마련된 제단 위에 선망 부모의 위패가 있기 때문으로 본다.

 

스님들은 정진하고 신도들은 불공하고

 

동안거가 시작되면 스님들은 선방에서 한철 정진한다. 신도들은 입재 불공에 들어간다. 스님들은 수행하고 신도들은 불공드리는 것이다. 어찌 보면 서로서로가 좋은 것이다.

 

천장사는 작은 절이다. 그것도 시골에 있는 가난한 절이다. 그럼에도 선원이 있다. 이름하여 염궁선원이라 한다. 이렇게 작은 시골절에 선원이 있어서 선방스님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경허스님과 관련 있을 것이다.

 

천장사는 경허스님의 보림도량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한국불교 선종 성지와도 같은 위치가 되었다. 아마 그것은 최인호 작가의 소설 길 없는 길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본다.

 

천장사는 연암산 기슭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천장사는 선방스님들 사이에서는 한번 한철 정진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경허스님의 영향이 크다. 또한 경허스님의 세 제자, 즉 혜월, 수월, 만공이라는 스님의 영향도 크다. 그래서 어느 스님은 천장사에 대하여 도인을 만드는 도인공장과도 같은 절이라고 했다.

 

천장사에는 해마다 7명 가량 스님들이 안거를 난다. 절이 작기 때문에 선방스님도 적다. 이렇게 천장사에서 한철 살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경허스님과 스님의 제자인 혜월스님, 수월스님, 만공스님처럼 되고자 하는 것인지 모른다.

 

선방이 있는 도량은 청정하다고 볼 수 있다. 안거철에 하루종일 정진만 하기 때문에 도량이 청정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다름 아닌 수행공덕이다. 그런데 이 수행공덕을 모두 회향한다면 어떻게 될까?

 

불교에서는 공덕회향을 말한다. 자신이 지은 모든 공덕을 회향하면 다른 사람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정신적 공덕을 말한다.

 

물질적인 것은 나누면 나눌수록 작아진다. 그러나 정신적 공덕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 그래서 안거가 끝났을 때 스님들이 쌓은 수행공덕을 회향 했을 때 이를 받는다면 자신의 것이 된다. 그래서 하안거가 끝났을 때 백중법회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천장사 신도들은 이번 동안거 들어가기 전에 입재법회를 가졌다. 신도들은 입재법회에 참여한 신도들은 오늘 동안가 해제날 회향법회를 가졌다. 삼개월동안 공덕을 쌓은 것이다. 그것도 청정한 선방스님들의 청정한 수행공덕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늘 해제법회에서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관음불공에 참여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별도로 마련된 제단 위에 위패를 보니 28기이다. 아마 입제 때 28명의 신도가 참여한 것 같다. 스님은 축원명단을 읽어 주었다. 주소와 가족이름을 부르고 영가의 이름도 불렀다.

 

 

두 종류의 불교를 접하고 있다. 하나는 기존 한국불교이고 또 하나는 남방 테라와다불교이다. 그런데 한국불교는 정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천장사 관음불공회향법회를 보고 알았다. 입재하고 난 다음 회향하는데, 회향하는 날 축원카드를 읽어 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천장사에는 노보살들이 많다. 어느 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님에게 노보살 평균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 보았다. 아마 75세가 평균연령일 것이라고 말했다. 절에 60년 다닌 보살들이다. 사실상 천장사의 주인과 같다.

 

노보살들이 절에서 와서 앉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공덕 짓는 것이라고 본다. 법회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공덕으로 보는 것이다. 더구나 천장사와 같이 선방이 있는 사찰에서는 선방스님들의 수행정진 공덕을 돌려 받을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노보살들은 스님이 축원카드 읽을 때 자신의 주소의 가족이름, 영가 이름이 나오면 속으로 흐믓해 하는 것 같다.

 

주지스님은 만능스님

 

천장사 주지 스님은 만능인 것 같다. 마치 북치고 장구치고 무엇이든지 다 하는 것 같다. 두 시간 동안 염불을 하고 축원문을 읽는 등 쉼 없이 말을 했다. 더구나 법문까지 했다. 그것도 대념처경 마무리 법문이다.

 

일요법회에서는 대념처경을 공부하고 있다. 스님이 강의하는 것이다. 오늘은 대념처경 회향법회날이기도 하다. 선방스님들은 선방에서 매일 정진하고 신도들은 일요법회 시간에 대념처경 공부를 한 것이다.

 

스님은 법문에서 바히야이야기를 했다. 초기경전 우다나에 실려 있는 바히야의 경’(Ud.6)에 실려 있다. 스님은 바히야 경 인연담을 말하면서 여삼미거(驢事未去)마사도래(馬事到來)”라는 말을 했다.

 

바히야는 마음이 급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시바삐 도를 깨우쳐야 했다. 그래서 탁발 중에 있는 부처님에게 자꾸 물어 본 것이다. 이처럼 급박한 상황에 대하여 중현스님은 여사미거마사도래 )”와 같다고 말했다.

 

천장사는 경허스님과 관련이 깊다. 그래서 스님은 경허스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이번에 바히야 이야기를 하면서 여사미거마사도래 라는 말을 언급한 것도 경허스님과 관련된 말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경허스님이 참선 중에서 문밖에서 이 처사란 이가 내뱉은 말을 듣고 문득 깨달은 공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천장사 입구에 있는 표지판을 보면 다음과 같은 경허스님의 오도송이 있다.

 

 

문득

콧구멍 없는

소리라는 말을 듣고

삼천대천세계가

내 집임을 몰록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서

나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네."

 

 

 

바히야는 탁발 중에 있는 부처님에게 세 번 물어 보았다. 부처님은 탁발 중임에도 짧게 법문해 주었다. 그것은 볼 때는 보여질 뿐이며 들을 때는 들려질 뿐이며 감각할 때는 감각될 뿐이며 인식할 때는 인식할 뿐이다.”(Ud.6)라는 말이다. 바히야는 이 말을 듣고 깨달아 아라한이 되었다.

 

바히야의 경에 실려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매우 유명하다. 중현스님에 따르면 이 말에 대념처경의 핵심이 다 들어가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는 새김(sati)과 알아차림(sampajana)에 대한 것이다.

 

볼 때는 볼 뿐이라고 했다. 이는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아가 개입되면 왜곡된다. 그래서 중현스님은 내가 보면 번뇌가 일어납니다. 나를 세우지 않아야 제대로 봅니다.”라고 말했다.

 

중현스님은 만능스님 같다. 염불이면 염불, 법문이면 법문 등 못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더구나 신도들과 소통도 원활하다.

 

천장사 북토크

 

오늘 오후 북토크가 있었다. 점심식사를 한 후에 책 이야기를 한 것이다. 이미 2주부터 예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카톡방에도 몇 차례 공지가 나갔다.

 

책은 20권 준비했다. 사람이 그다지 많이 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많이 왔다. 15명가량 되었기 때문이다.

 

 

 

책에 대해서 설명했다. 천장사와 처음 인연 맺었을 때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읽기에 불편한 내용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장사에 대한 글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 것이다. 글을 쓸 때는 이렇게 북토크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만약 이런 상황을 예상 했다면 자기검열이 있었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책을 읽어 볼 것이다. 어쩌면 천장사의 작은 역사일지 모른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쓰고자 했다. 누구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다. 그날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쓴 것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생생한 글이 될지 모르겠다.

 

인생해제는 없을까?

 

천장사 정월대보름법회가 끝났다. 동안거 해제날도 되기 때문에 선방스님들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선방스님들은 어제 수덕사에서 동안거 해제법회에 참석하고 난 다음 모두 다 떠났다.

 

중현스님은 어제 수덕사 해제법회 참석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방장스님이 각 선방에서 온 스님들을 모아 놓고 법문을 했는데 재미 있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좋아 좋아 해제가 좋아라는 말이다. 마치 유행가 가사를 연상케 하는 법문이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해제가 마치 해방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학교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졸업이 기다려 진 것이다. 군대 훈련소에서는 빨리 수료하고 싶어졌다. 직장에서 교육을 받을 때도 빨리 끝나기를 바랬다. 마찬가지로 선방스님들도 해제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수덕사 방장스님은 선방스님들의 마음을 꿰뚫어 본 것 같다. 해제날을 기다리는 선방스님들에게 마치 유행가 가사를 연상케 하듯 해제가 좋아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자 인생해제는 없을까?”라고 생각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선방에서 입제가 있으면 해제도 있다. 불공도 입재가 있으면 회향이 있다. 인생은 어떠할까? 인생에도 해제가 있고 회향이 있으면 좋을 같다. 마치 선방스님들이 해제날에 자유롭게 만행 떠나듯이 인생에도 해제가 있다면 자유로울 것 같다.

 

 

2024-02-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