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불교 전법현장 한국마하시선원 2024년 붓다의 날
미얀마불교 전법현장 한국마하시선원 2024년 붓다의 날
이 공부의 끝은 어디일까? 벌써 이십년 되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을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이미 닦았으며,
버려야 할 것을 이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나는 깨달은 님입니다.”(Stn.558)
수타니파타 ‘쎌라의 경’(Sn.3.7)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맛지마니까야 ‘브라흐마유의 경’(M91)과도 병행한다.
부처가 되는것은 단지 깨달은 자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알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하고, 닦아야 할 것을 닦고,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부처가 된다.
알아야 할 것은 사성제, 즉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이다. 닦아야 할 것은 팔정도, 즉 여덟 가지 고귀한 진리이다. 버려야 할 것은 갈애에 의해서 이끌려지는 오염원(kilesa)이다.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세상에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 필요는 없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만 알면 된다. 그러나 진리의 길에 있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팔만사천법문을 설했다. 정확하게는 팔만이천법문이다. 나머지 이천법문은 사리뿟따나 아난다 등 제자들이 설했다.
팔만사천법문을 알고자 한다. 사부니까야 또는 오부니까야를 다 읽어 보아야 한다.
니까야를 읽은 것은 2010년 무렵부터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발간된 법구경을 구입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수타니파타를 구입했고 쌍윳따니까야, 맛지마니까야, 디가니까야, 앙굿따라니까야를 구입했다. 또한 우다나, 이띠붓따까, 테라가타, 테리가타, 자타카 등을 갖추었다. 논서로서는 아비담마, 청정도론,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등을 갖추었다. 율장 대품, 소품, 비구계, 비구니계 등 율서도 갖추었다.
현재 백권당에는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빠알리 삼장을 모두 다 갖추어져 있다. 한국빠알리성접회본은 물론 초기불전연구원본도 갖추었다. 비교해서 읽으면 이점이 있다.
처음 경전을 접했을 때는 필요한 경만 읽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 없이 읽기로 했다. 각주도 놓치지 않고 모두 읽어 나갔다. 그 결과 시중에 번역되어 있는 모든 빠알리경전을 거의 다 읽게 되었다.
경전은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다. 그렇다고 경전 무용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읽을 때 마다 감동한다. 새겨 두고 싶은 문구가 너무나 많다.
인생은 길다. 요즘 기대수명이 늘어나서 백세를 바라보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긴 세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경전을 읽으면서 보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 같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불교를 종교로 가진 사람들에게는 축복과도 같다.
탄생보다는 열반을 더 중요시
오늘은 ‘붓다의 날’이다.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올해 불기는 2568년이다. 그런데 이 불기는 부처님이 탄생한 해를 기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불기는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한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의 탄생은 2568년에 80을 더해야 한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2648년이 되는 것이다.
한국불교에서는 음력 사월초파일에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한다. 이는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고 불기 2568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부처님의 탄생은 2648년이 되기 때문이다.
스리랑카, 미얀마, 태극 등 테라와다불교권 국가에서는 음력으로 사월보름날 붓다의 날 행사를 한다. 그런데 이 날은 부처님의 탄생뿐만 아니라 성도와 열반도 함께 기린다는 사실이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탄생보다는 열반을 더 중요시하게 여긴다. 이는 불기가 열반한 해를 기준으로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음력 사월 보름날에 세 가지 사건, 즉 탄생과 성도와 열반을 한꺼번에 치루는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네 번 치루고자
요즘 부처님오신날과 관련하여 사중과세를 치루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네 번 치루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불교에도 인연이 있고 테라와다불교에도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 부처님오신날은 5월 15일(수)이었다. 이 날은 국가가 인정하는 공휴일이다. 이박삼일 남도 여행 갔는데 귀가 길에 금산사에 들러서 비빔밥을 먹고 왔다.
두 번째 붓다의 날 행사는 5월 19일(일) 청파동 담마와나선원에서 있었다. 한국불교에서 음력사월보름날인 5월 22일(수)은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흘 앞당겨서 치룬 것이다.
오늘 세 번째 붓다의 날 행사를 치루었다. 안양 관악역 근처에 있는 한국마하시선원에 간 것이다. 네 번째 붓다의 날 행사는 5월 23일(목) 아산에 있는 스리랑카 사원 마하위하라에서 치룰 예정이다.
유엔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붓다의 날은
한국에도 테라와다불교가 있다. 그러나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절대다수는 대승불교이다. 그러다보니 음력 사월초파일은 국가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붓다데이는 음력 사월보름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평일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마다 붓다데이 날자가 다른 것 같다. 올해 붓다데이는 음력으로 사월보름날인 5월 22일(수)이 된다. 그런데 스리랑카불교 전통에서는 하루가 늦추어진 5월 23일(목)이다.
현재 유엔에서 인정하는 붓다데이는 음력 사월보름날이다. 동아시아불교에서 치루는 사월초파일이 아닌 것이다. 1990년대 말 유엔에서 크리스마스처럼 성스러운 날로 지정한 것이다.
안양에 있는 한국마하시선원
스리랑카불교 행사에 참여하고자 했다. 음력 사월보름날인 5월 22일인줄 알았다. 그러나 하루가 늦어졌다.
오늘 새벽 잠에서 깼을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붓다의 날에 한국마하시선원에 가고자 한 것이다. 마하위하라의 붓다의 날 행사는 5월 23일(목)이다.
한국마하시선원은 집에서 가깝다. 같은 안양에 있기 때문이다. 비산사거리에서 버스를 타면 네 정거장이면 갈 수 있다. 사무실이 있는 백권당에서 전철을 타면 두 개의 역에 지나지 않는다. 명학역에서 안양역을 거쳐 관악역에서 내리면 된다.
오늘 갑자기 선원에 가고자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 졌다. 먼저 보시를 해야 한다. 보시통장에서 십만원을 선원계좌로 이체했다.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책 사인을 받는 것이다.
한국마하시선원에 처음 간 것은 2022년 붓다의 날 때이다. 그때 코로나 말기임에도 행사를 가졌다.
2022년 붓다의 날에 청파동 담마와나선원에 가고자 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완전히 진정되지 않아서 붓다의 날 행사는 취소되었다.
한국마하시선원 일정표를 보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확인한 것이다. 평소와 다름 없는 일정이다. 붓다의 날이 평일이라 하여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앞당겨 시행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마하시선원은 가까이 있다. 가까이 있음에도 자주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만은 늘 선원으로 향했다. 오늘 붓다의 날을 맞이하여 2년만에 찾아가게 되었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1권과 2권을 배낭에 넣고
선원에 가기 전에 책을 챙겼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 1권과 2권을 배낭에 넣었다. 2년 전 담마간다(일창) 스님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은 다 읽었다. 머리맡에 놓고서 2년에 걸쳐서 읽은 것이다. 지금은 두 번째 읽고 있다.
책을 가져 간 것은 사인을 받기 위한 목적이 크다. 또한 책을 잘 읽었다는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기 위한 것도 있다.
선원에 9시 40분에 도착했다. 10시부터 붓다의 날 행사가 있다. 붓다의 날 의식과 소참법문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행사가 끝나면 점심공양이 있다.
불교행사가 평일에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다. 직장 다니는 사람은 올 수가 없다. 내가 갈 수 있는 것은 사업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업을 하는 사람은 시간 내기가 자유롭다.
흰옷은 재가불자의 상징
붓다의 날과 같은 큰 행사가 있는 날은 옷에 신경 써야 한다. 가능하면 흰옷을 입고 가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부터 흰옷은 재가불자의 상징과도 같다. 이는 유행자 밧차곳따가 “존자 고따마와 존자 고따마의 수행승 제자와 존자 고따마의 수행녀 제자 이외에, 존자 고따마의 제자로서 흰 옷을 입고, 청정한 삶을 살며, 다섯 가지의 낮은 경지의 장애를 끊고, 홀연히 태어나, 거기서 열반에 들어,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재가의 남자신도가 있습니까?”(M73)라고 물어 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백의는 재가불자의 상징이다. 인도성지에서 미얀마나 태국, 스리랑카 불자들을 보면 흰옷을 입었다. 컬러풀한 옷을 입은 한국불자들과 대조적이다.
2022년 12월 스리랑카 성지순례 갔었다. 그때 아누라다푸라 등 성지에서 본 스리랑카 불자들은 거의 대부분 흰옷을 입었다. 그것도 위와 아래 모두 흰옷을 입은 것이다.
한국마하시선원은 미얀마불교 전통을 따른다. 미얀마에 있는 마하시선원의 한국분원과 같은 위치에 있다. 그래서일까 미얀마 스님이 상주해 있다. 우 소다나 사야도가 그분이다.
한국마하시선원 붓다의 날에 참석한 불자들은 대부분 흰옷을 입었다. 로마가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흰옷 입고 오기를 잘 했다.
팔계를 다 지킬 자신 없는 사람은
오전 10시부터 붓다의 날 행사가 시작되었다. 의식은 법요집에 따라 진행 되었다.
붓다의 날은 포살일이기도 하다. 음력으로 신월(초하루)과 보름날은 신성한 날로서 포살의 날에 해당된다. 또한 반달에도 포살을 행한다. 이렇게 본다면 한달에 네 번 포살이 있게 된다.
일창스님은 포살법회에 앞서 하나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팔계에 대한 것이다. “오늘 하루 팔계를 다 지킬 자신 없는 사람은 오계만 결의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참으로 합리적이다.
팔계에서 가장 지키기 힘든 것은 오후불식이다. 팔계를 받으면 그날 저녁밥은 먹을 수 없다. 특히 노동을 하는 사람은 오후불식을 지키기 힘들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오전까지만 지키겠다고 결의하면 된다고 했다.
포살계는 하루낮하루밤에만 해당되는 계이다. 효력은 딱 하루만 지속되는 것이다. 포살계 여덟 가지 항목을 다 낭송한 다음에 오전만 지키겠다고 결의할 수 있다. 그러나 오계까지만 낭송하고 여섯 번째부터는 낭송하지 않았다. 오계만 지키기로 한 것이다.
부처님 칠대 기념일
붓다의 날 법회의식은 무려 40분 가량 진행되었다. 한국마하시선원 법요집에 실려 있는 의식에 따른 것이다. 인례, 참회예경, 청계, 예경문, 삼귀의, 팔계, 마하시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에 관해 항상 명심해야 할 게송, 삼보공덕 새김 순이다. 특히 붓다의 날 행사이기 때문에 ‘부처님 7대 기념일로 예경함’이라는 게송을 낭송했다.
부처님에게 일곱 가지 특별한 일이 있다. 이는 입태, 탄생, 출가, 성도, 초전법륜, 반열반, 다비에 대한 것이다. 레디 사야도가 지은 게송이다. 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 7대 기념일로 예경함- 레디 사야도)
1) 입태: 음력 6월 보름, 목요일
삼계으뜸 부처님을 머리위에, 모십니다 일만우주 천신범천 한맘으로, 청하여서 반짝반짝 숲이푸른 유월보름 목요일에 편안하고, 거룩하게 입태하셨네 사람들과 천신들의 행복위하여
2) 탄생: 음력 4월 보름, 금요일
입태한지, 열달지나, 기원전, 육이사년 사월보름 금요일에, 아름다운 룸비니에 온대지의 진동함께, 탄생하셨네 人天들을 승리의성 가게하려고
3) 출가: 음력 6월 보름, 월요일 태어난후, 열여섯해, 아름다운, 나이부터 장엄한 삼시궁전 십삼년을, 누리신후 이십구세 젊은나이, 네징조를 보시고서 감각욕망, 혐오하고, 절박감이 생겨나서 유월보름, 월요일에 출가하셨네 울창하고, 깊은숲에 들어가셨네
4) 성도: 음력 4월 보름, 수요일 깊은숲속 육년고행 정각이룰 시간되어 사월보름 수요일 거룩한 금강좌에 보리수를 일산삼아 깨끗하게 지내시며 마군무리 물리치고, 깨달음빛 드러났네 큰복덕도 빛을발해 일만우주 넘으셨네 삼계세상 중생들의 행복위하여
5) 초전법륜: 음력 6월 보름, 토요일 성도한후 녹야원에 법펴시려 가신후에 오비구와 일만우주 모여들은 천신들에 유월보름 토요일에, 초전법륜, 굴리셨네 천상세계, 법의북을 크게울렸네
6) 반열반: 음력 4월 보름, 화요일 법의북을 울리시며, 삼계세상, 일만우주 제도가능 인간들과, 천신범천 중생들을 위험없는 안온한곳, 열반이란 저언덕에 팔정도란, 반야용선, 태워건네 주신후에 법랍으로 사십오夏, 세납으로 팔십세에 입멸시간, 다가오자, 기원전, 오사사년 말라국의 꾸시나라, 사라쌍수 아래에서 사월보름 화요일에 반열반에 드셨네 일만우주 천신들 슬퍼하였네
7) 다비 : 음력 4월 하현의 12일, 일요일 반열반에 드신후에 황금같은 장육금신 사월보름, 지난후에, 십이일의 일요일에 연기없이 열기없이, 불요소가 발하여서 자화장이 되리라는 부처님의 서원대로 불이절로 일어나, 예경하였네 십육되의 사리를 남겨주셨네
서원
이와같이 거룩하고, 길상스런 일곱날을 청정한 믿음으로 기뻐하며 맘에새겨 삼계세상人天중에 최고이신 부처님께 몸과말과 마음으로 정성다해, 예경하니 깨끗한 신심으로 예경올린 공덕으로 모든행복 축복들 성취하기를
(한국마하시선원 법요집, 47-49쪽)
이 게송은 일창스님이 번역한 것이다. 미얀마에서 통용되는 게송이다. 사사(4-4)조로 맞춘 흔적이 엿보인다.
부처님의 일생에 칠대 사건이 있다. 한국불교에서도 이와 유사한 명절이 있다. 한국불교에서는 탄생절, 성도절, 열반절, 출가절이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미얀마에서는 입태, 초전법륜, 다비가 추가 되어 있다.
대역(對譯)으로 되어 있는 미얀마 경전
의식은 계속 진행되었다. 공양게에서는 음식, 꽃, 청정수, 등불 공양 순으로 낭송되었다. 자애관은 청정도론에 실려 있는 자애수행을 기본으로 해서 구성되어 있다. 수타니파타에 실려 있는 자애경(Sn.1.8)은 아니다. 세계적인 불교음악가 이미우이가 창송한 자애송(The chant of metta)과 매우 유사하다.
의식을 마칠 때는 서원을 해야 한다. 빠알리어와 한글로 된 서원을 낭송했다. 빠알리어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한글이 따르는 구성이다. 이는 다름 아닌 ‘대역(對譯)’이다.
일창스님에 따르면 미얀마 불교경전은 대역으로 된 것이 많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원문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런 것이다. 서원에서 ‘담망’에 대한 것을 보면 “네 가지 도, 네 가지 과, 열반, 교학이라는 이러한 열 가지 가르침에”라고 옆에 쓰여 있다.
기쁨과 환희의 회향게송
의식의 절정은 아마 회향일 것이다. 이를 모든 대중이 합송하는데 노래 가사 형식이다. 서원과 회향에 대한 게송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 행한 공덕으로 행복하고 위험없는
열반으로 장애없이 도착하길
수많은생 윤회할 때 고통위험 원수들과
나쁜것들 안만나고 모든행복 길상들을
바람대로 이루길
오늘지금 행한모든 공덕몫을 부모스승
친척친구 자신보호 천신들을 시작으로
삼십일천 존재하는 제도가능 모든중생
성취하길 회향하니 모두사두 부르세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이 게송을 보면 우리말 사사(4-4)조이다. 그러다 보니 문법이 무시되었다. 아마 운율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 보여진다.
게송은 아름다운 운율로 낭송된다. 노래가락 형식이다. 합송하는 것을 저절로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자애가 넘쳐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기쁨과 환희이다. 합송하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세 부류의 테라와다불교 전통
법회의식이 모두 끝났다. 아마 미얀마불교의 전통을 그대로 가져 온 것이라 보여진다. 미얀마불교가 한국에 전래된 것이다.
한국은 1700년 불교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 들어온 불교이다. 특히 선종의 경우 중국불교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테라와다불교가 소개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빠사나 수행방법이 소개 되었다. 2000년 이후부터는 부처님의 원음이라 일컬어지는 니까야가 번역되었다.
한국에서 테라와다불교의 역사는 짧다. 1980년대부터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등 테라와다불교권 국가에서 도입된 불교는 이제 토착화 단계에 이르렀다.
테라와다불교 토착화는 한국테라와다불교 교단의 창립과 관련이 있다. 2009년 한국테라와다불교 교단이 창립되었는데 이는 테라와다불교의 토착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테라와다불교의 토착화와는 별도로 테라와다 전래의 불교가 있다. 이는 테라와다 불교권 국가에서 스님들을 파견하여 자국의 불교 전통을 전파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마하시선원이 대표적이다.
현재 한국에는 세 부류의 테라와다불교 전통이 있다.
첫 번째 부류는 토착화된 테라와다불교이다. 이는 서울 청파동에 있는 담마와나선원이 대표적이다. 미얀마나 태국에서 계를 받은 한국스님들이 그 나라의 불교를 배워서 한국실정에 맞게 토착화 한 것이다. 이런 경우 오로지 한국말만 사용된다. 빤냐와로 스님이 한국말로만 법문하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두 번째 부류는 테라와다불교권 국가에서 스님들을 파견해서 자국의 불교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를 전래된 불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안양 관악역 부군에 있는 한국마하시선원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미얀마 스님이 상주하고 있어서 미얀마식 불교를 전파하고 있다. 이런 경우 미얀마말과 한국말이 동시에 사용된다. 우 소다나 사야도가 법문하면 일창스님이 통역하는 식이다.
세 번째 부류는 외국인 이주민을 위한 불교이다. 충남 아산에 있는 마하위하라가 대표적이다. 이런 사원은 한국에 있는 사오만명에 달라는 스리랑카 이주민들의 쉼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경우 오로지 스리랑카 말로만 의식이 진행된다.
보리수 예경 소참법문
법회의식이 끝나고 소참법문 시간이 되었다. 약 20분간 가량 우 소다나 사야도가 법문했다. 우 소다나 사야도가 미얀마어로 말하면 일창스님이 통역했다.
우 소다나 사야도는 붓다의 날을 맞이 하여 보리수 예경과 관련된 법문을 했다. 미얀마에서는 지금이 가장 더울 때인데 이렇게 더울 때 보리수에 헌수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위빠시 부처님 당시에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보리수에 정성스럽게 헌수했다. 그 결과 대겁 기간 내내 천신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고따마 부처님 당시에는 장자 가문에 태어나 출가해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아라한이 되었다는 말에 참석자들은 “사두 사두 사두”하며 찬탄했다.
보리수에 헌수하면 이점이 있다고 한다. 건강하고 장수하는 등 선업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보리수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다. 그러나 다리가 부러졌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보리수 가지를 꺽었는데 황금덩어리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우 소다나 사야도는 ‘방해업’으로 설명했다.
보리수를 돌보았는데 다리가 부러졌다. 이는 죽어야 할 업인데 방해업이 업이 작용한 것이다. 우리 “속담에 그만하길 다행이다.”라는 말이 연상된다.
보리수 가지를 꺽은 자는 황금덩어리를 갖게 되었다. 그는 왕이 될 업이었는데 방해업이 작용해서 그 정도에 그친 것이다.
주변을 보면 악행한 자가 잘사는 것을 볼 수 있다. 악행 했다고 하여 반드시 악과보를 받는 것은 아니다. 과거 전생에 선업한 것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과거의 원인에 대한 것이다. 미래는 현재가 원인이 된다. 보리수에 헌수한 자는 천상과 같은 선처에 태어났다. 보리수 가지를 꺽은 자는 다음 생에 악처에 태어났다.
점심공양을 하고
모든 법회의식이 끝났다. 다음은 점심공양 시간이다. 선원 봉사자들은 음식을 준비 해 왔다. 먼저 스님들께 공양 했다.
법회참석자들은 2층에 있는 공양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갖가지 나물과 정성이 담긴 음식이다. 마두라 님, 담마기리 님, 에히빳씨까 님과 함께 식사했다.
스님들과 만남의 시간을
식사가 끝나고 스님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함께 식사를 한 네 명이 4층에 있는 스님들의 처소로 올라 갔다. 담마기리 님과 에히빳씨까 님은 공양물을 준비 했다. 운동화 등이 있는 공양물이다.
오늘 일창스님을 만나기를 희망했다. 마두라 님의 인도로 소원은 이루어졌다. 오늘 온 목적 중에 하나는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 대한 것이다. 2년전 선물로 받은 것을 다 읽었기 때문에 이를 알리고자 온 목적이 크다.
일창스님은 나를 알아 보았다. 2년전 붓다의 날 이 자리에서 대화 나눈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스님은 놀라운 말을 했다. 스님은 내가 쓴 글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에 올린 글은 공유된다.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 대한 글을 수 없이 썼는데 스님은 읽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스님에 따르면 내가 쓴 글을 읽은 독자들의 책 주문이 많았다고 한다. 그 결과 한번 더 인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머리맡에 놓고서 매일 조금씩 읽은 것을 글로써 표현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고서 주문한 것이다.
이번 생에서 경전공부를 해 놓으면
오늘 책 두 권을 가지고 갔다. 싸인을 받기 위한 것이다. 두 분의 스님은 기꺼이 싸인 해 주었다. 우 소다나 사야도는 미얀마어로 썼다. 일창스님은 다음과 같이 썼다.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열반에 도달하는
바탕과 조건이 되기를..
우 담마간다
2024.5.22
(붓다의 날)”
일창스님의 글에서 ‘조건’이라는 말이 와 닿는다. 왜 그런가? 주로 경전을 읽고서 글을 썼기 때문이다. 이는 교학만 공부하고 수행은 소홀히 하는 것과 같다.
글을 쓰다 보면 종종 충고를 받을 때가 있다. 이제 경전 보는 것과 글 쓰는 것에 대하여 줄이라는 말이다. 지금은 수행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근기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수행보다는 교학에 재미 붙인다. 이런 사람은 아마도 수행근기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일창스님은 “이번 생에서 경전공부를 해 놓으면 다음 생에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일이든지 단계적으로
어떤 일이든지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처님은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는 점차적인 배움, 점차적인 실천, 점차적인 진보가 있지 궁극적인 앎에 대한 갑작스런 꿰뚫음은 없습니다.”(A8.19)라고 말했다. 깨달음에는 단계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수행을 강조한다. 그 사람은 경전도 보지 않고 교학도 배우지 않는다. 오로지 수행만 할 뿐이다. 그러나 교리와 교학을 모르면 엉뚱한 길로 빠질 수 있다.
경전공부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은 평생 공부해도 다 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번 생에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없다. 배움은 단계적으로 성취된다. 깨달음도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번 생에 안되면 다음 생을 기약해야 한다. 그래서 “열반에 도달하는 바탕과 조건이 되기를..”라고 써 놓았을 것이다.
일을 할 때 단계적으로 한다. 오늘 이만큼 했으면 다음날 또 저만큼 한다. 이렇게 그날그날 하다 보면 어느 날 상당히 진척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우 소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에게 읽은 책을 보여 주었다. 책에는 온통 붉은 형광메모리칠과 노랑메머리칠이 되어 있다. 일창스님도 이런 식으로 읽었다고 말했다.
책을 읽을 때 한꺼번에 다 읽을 수 없다. 특히 경전이나 논서는 새기면서 읽어야 한다. 머리맡에 놓고서 하루하루 조금씩 새기며 읽다 보면 어느 때 다 읽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이든지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저런 선물을 받고
오늘 새벽 갑작스럽게 생각이 나서 한국마히시선원에 가게 되었다. 가서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에 싸인 받아 왔다. 싸인 받을 목적으로 갔지만 책을 다 읽은 것을 신고하기 위한 것도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일창스님은 부담이 없다. 권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겸손은 기본이다. 칭찬할 줄도 안다. 그래서일까 재가불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오늘 마하시 선원에서 많은 선물을 받았다. 일창스님의 누님이 만들었다는 연등을 받았다. 뜨개질해서 만든 것이다. 떡을 받았다. 선원 봉사자들이 제공한 것이다. 책도 하나 받았다. 난다 말라 사야도의 ‘참사람의 길’이다.
한국마하시선원을 2년만에 갔다. 집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주 가 보지 못했다. 오늘 붓다의 날을 맞이하여 시간을 내었다. 낯이 익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이름까지 기억한다. 어떤 이는 글 잘 읽고 있다는 말을 했다. 오늘 한국마하시선원에 가길 참 잘했다.
2024-05-2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