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왕산 천년 주목
발왕산 천년 주목
여행이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멀리 떠나야 한다.
용평에 왔다. 말로만 듣던 용평스키장이 있는 곳이다. 평창올림픽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는 용평리조트 그린피아콘도이다.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도시탈출 해야 한다. 동네 뒷산에 가는 것도 해당된다. 관악산 고래바위계곡은 늘 가는 곳이다. 설악산 계곡에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어제는 멀리 떠났다.
용평은 대관령 가까이 있는 곳이다. 지대가 높어서일까 서늘하다. 유월 초의 도시에서는 삼십도 가까이 된다. 밀폐된 곳에 있으면 불쾌지수가 높아 진다. 고원에 이르니 겉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초봄 날씨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여름 열대야가 절정일 때 이런 고원에서 살면 어떨까에 대한 것이다. 몽골과 같은 시원한 나라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 매여 있는 자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루밤 숙박료는 이십여만원이다. 서민에게는 부담 되는 금액이다. 할인이 있어서 오게 되었다. 주차장에는 대형차가 즐비하다. 여기에 경차도 끼게 되었다.
일박이일 휴가에서 첫째날 해야 할 일이 있다. 케이블카 타는 것이다. 발왕산 정상까지 가는 것이다.
케이블카는 여려 개의 산을 넘었다. 중국여행 갔을 때 탄 이래 처음이다. 이십여분 탄 것 같다. 힘 안들이고 정상에 이르렀다.
발왕산 정상이다. 해발 1458고지이다.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로 높다고 한다. 그러나 높은 줄 잘 모르겠다. 같은 높이에서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위대한 사람이 있다. 가까이 있으면 잘 모른다. 마치 커다란 산 바로 아래 있으면 얼마나 큰산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큰 산은 먼데서 보아야 큰 산인줄 안다. 위대한 사람도 멀리서 보면 위대한 사람인 줄 안다. 그래서 "깨달은 자는 깨달은 자를 알아본다."라고 했을 것이다.
고원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저멀리 풍력발전기가 돌어간다. 리조트 건물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새로운 리조트 단지가 건설되고 있다.
산 여기저기에는 스키장이 있다. 산 정상에는 스카이워크도 있다. 더구나 정상에는 데크길도 있다. 이른바 천년주목길이라고 한다. 산 전체가 훼손 되었다.
사람들은 사진찍기에 바쁘다. 포인트에서는 줄을 서야 한다. 평일 임에도 정상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다들 여유만만한 표정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곳으로 인도했을까?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이 집중되면 마천루를 만든다. 도로는 시원하게 뻗어 있다. 산이 나타나면 뚫어 버리고 강이 나타나면 다리를 만들어 버린다. 자본의 위력이다. 케이블카 하나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논스톱이다. 도시에서 힘 안들이고 정상에 섰다. 1458고지 정상에 서니 파노라마가 펼쳐쳤다. 하늘과 구름과 산의 향연이다. 호연지기를 가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정상에는 주목이 있다. 태백산매 높은 곳에서만 자라는 희귀목이다. 그런데 곳곳에 나목이 있다는 것이다.
실크로드 여행을 한 바 있다. 사막에는 호양나무가 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쓰러져서 천년 산다는 호양나무이다.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오롯이 서 있는 나무이다. 발왕산 정상에도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주목이 있다.
주목길을 걸었다. 정상에서 아래로 데크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갖가지 이름의 주목이 있다. 산 것도 있고 죽은 것도 있다. 산 것은 천팔백년 되었다고 한다.
주목은 천년을 산다. 아니 그 이상을 산다. 그런데 죽어서도 천년이라는 사실이다. 천년 주목이 저 아래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산은 온통 생채기 투성이다. 데크길로 인하여 천년주목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호연지기도 맛보았다. 이런 것도 자본의 혜택일까?
산은 첩첩 포개져 있다. 그 끝을 알 수 없다. 저 아래 듬성듬성 자본의 위력이 보이지만 압도적 스케일의 산맥에 비하면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설령 생채기가 났다고 할지라도 모든 산을 다 파헤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발왕산은 마치 시범케이스에 걸린 것 같다. 그렇다면 천년 후에도 자본의 위력은 지속될까?
주목은 천년을 그 자리에 서 있다. 여기에 사람들이 찾아 왔다. 케이블카가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자연파괴 현장에 우뚝섰다. 환경파괴 현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도시의 삶에 지친 자에는 호연지기를 심어 주기에는 충분하다.
2024-06-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