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미오기전도 있지만 여기 병우기전도
세상에 미오기전도 있지만 여기 병우기전도
저기 한무더기 사람들이 있다. 흰 탑차 뒤에 중년여인들이 소란스러워 보인다. 무슨 일일까?
아파트 단지에 복숭아 장사가 왔다. 귀가길에 본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싸게 파는 것임에 틀림없다.
올해 복숭아를 제대로 먹어 보지 못했다. 주먹보다 큰 상품성 있는 복숭아는 그림의 떡이다. 마트에서 사고자 해도 망설여진다. 모든 과일이 다 그렇다.
세상은 시장경쟁의 원리에 의해서 돌아간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시장은 있다. 사람 사는 곳에 교환이 없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교 때 일이다. 시골 외할머니는 물물교환 했다. 복숭아를 구입하기 위해서 보리를 판 것이다. 화폐가 없어도 교환이 가능했다.
탑차에서 판매 된 복숭아는 B급이다. 그런데 C급도 있다는 것이다. C급은 종이박스가 아닌 플라스틱 박스에 담겨 있다. 상처난 것도 있다. 크기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C급만 찾는다.
줄이 형성되었다. 너도나도 서로 사고자 하니 자연스럽게 줄 선 것이다. 나도 따라 섰다. 남자는 오로지 나 하나 뿐이다. 대부분 사오십대 여인들이다. 아파트 주민들이다.
탑차에서는 방송을 했다. 녹음기를 튼 것이다. 탑차에서는 "밭에서 방금 따온 '햇살에 꿀복숭아'를 만원, 만오천원에 폭탄 세일합니다. 십분동안만 깜짝 세일합니다."라는 말이 계속 흘러 나왔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마트보다 싼 것이다. 그것도 두 배 가까이 싸다. 마트에서 한박스에 만오천하는데 여덟 개가 들어 있다. 상처 없고 상품성 있는 상품이다. 그러나 탑차에서는 열 여섯 개이다. 덤으로 하나 더 준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준다.
길거리에서 물건을 즐겨 산다. 길거리 노점상이 대상이다. 트럭노점상도 대상이다. 상추, 호박 등 야채를 파는 할머니 것을 사준다. 트럭에서 밤이나 대추 등 과일을 팔면 역시 사준다. 뻥튀기 노점을 발견하면 역시 사준다. 양말트럭노점에서 사기도 했다.
물건을 반드시 마트에서 사야하는 것은 아니다. 노점도 있고 인터넷쇼핑도 있다. 가능하면 노점 것을 사주고자 한다. 지역에서 장사하는 사람의 것을 지역사람이 사주지 않으면 누가 사주겠는가?
길거리 노점은 서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서민이 사주지 않으면 누가 사줄까? 지역에 사는 서민이 노점 것을 사준다.
노점 상품은 대부분 B급이다. 서민들은 길거리노점에서 B급을 산다. 이렇게 본다면 서민도 B급이 된다.
이 세상은 A급만 사는 세상은 아니다. 마치 저 하늘의 새가 있는듯 없는듯 사는 것처럼, B급의 사람들도 있는듯 없는듯 살아간다. 나는 A급일까 B급일까?
매일 인터넷에 글을 쓰고 있다. 매일 오전에 쓴 글을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린다. 이런 사람도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한번도 작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작가 증명서가 없는 것이 큰 이유이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작가라고 말해준다. 내 글을 읽고서 고마움의 표시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진짜 작가나 시인, 기자 등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무관심한 것 같다.
상품에는 A급과 B급이 있다. 글 쓰는 사람도 A급과 B급이 있을 것이다. 글을 써서 돈 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라고 할 수 없다. 아무리 잘 써도 돈이 되지 않으면 프로페셔널이라 볼 수 없다.
주류가 있으면 비주류가 있다. A급이 있으면 B급이 있다. 블로거는 작가의 세계에서 주류가 될 수 없다. 아무리 글이 훌륭해도 상품성을 인정 받지 못하는 B급과 같다.
최근 페이스북에 '미오기전'이 회자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작가를 칭찬한다. 어떤 류의 글을 쓰는지 대충 알고 있다. 그렇다고 책을 사서 보지는 않는다. A급 작가임에 틀림없다.
미오기전이 있다면 여기 '병우기전'도 있다. 그것도 무려 132권이다. 18년에 걸쳐 매일 쓴 것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판매용은 아니다. 딱 두 질 만들어 보관한다.
병우기전 책은 서점에서 판매되지 않는다. 블로그에서 배포된다. 블로그 '책만들기' 카테고리에 피디에프(pdf)파일을 올려 놓았다. 누구든지 다운받아 갈 수 있다.
미래 정약용을 꿈꾼다. 정약용은 유배 20년에 수백권 책을 썼다. 일설에 따르면 역적 누명을 벗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책으로 남겨 두지 않으면 역적으로 이름 남을 것을 염려하여 썼다는 것이다.
병우기전 책은 미래 사람을 위한 것이다. 정약용이 그랬던 것처럼 미래 독자들을 위해 쓰는 것이다. 누군가 절망에 처했을 때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다.
탑차에서 B급 복숭아를 샀다. 아니 C급을 샀다. 만오천원에 열일곱 개나 된다. 대형마트보다 반값이다. 하루나 이틀에 하나씩 먹는다면 올여름이 다 갈 것 같다.
복숭아에 흠이 좀 있으면 어떤가? 맛 있으면 그만이다.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혼신을 다해 쓴 글은 언젠가 인정받을 날 있을 것이다.
인기영합 위주의 글은 쓰지 않는다. 독자를 고려한 글도 쓰지 않는다. 돈 벌자고 쓰는 것이 아니다. 길이 남을 글을 쓰고자 한다. 세상에 미오기전도 있지만 여기 병우기전도 있다.
2024-07-3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