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부정하지 않은 부처님, 백중날 천장사에서
제사를 부정하지 않은 부처님, 백중날 천장사에서
나의 원찰은 어디인가? 자주 다니는 절이 원찰이라 할 수 있다. 천장사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2024년 8월 18일 일요일 천장사에 갔다. 음력으로 칠월보름으로 백중날에 간 것이다. 이날은 하안거 해제날이기도 하다.
천장사에서 올해 하안거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천보루 공사때문이다. 두달전부터 천보루 공사가 본격화 됨에 따라 천장사 염궁선원은 문을 열지 않은 것이다.
불교에 명절이 있다.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지, 입춘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칠월칠석과 같은 소명절이 있다. 이 밖에도 천장사에는 음력 삼월삼짓날 무렵에 방생법회를 간다. 또한 천장사에만 있는 것으로 음력 구워보름날에 ‘달빛다회(茶會)’도 있다.
요즘 천장사에 자주 다니고 있다. 7월 28일에는 방글라데시 사라낭카르 스님 초청법회가 7월 28일에 있어서 갔었다. 그리고 3주만에 다시 찾았다.
천장사에 들어 서자 아침부터 우렁찬 망치소리가 들렸다. 천보루 기초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올해 안으로 천보루를 볼 것 같다.
시골절, 작은 절, 가난한 절
천장사에 대하여 표현할 때 늘 쓰는 정형구가 있다. 그것은 시골절, 작은 절, 가난한 절이라는 것이다. 이런 절이 좋다. 크고 화려한 절보다 소박한 절이 정서에 맞는다.
연암산 깊숙한 곳에 숨어 있듯이 있는 천장사는 작고 보잘 것없는 절이다. 국보나 보물 급 문화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가파른 언덕 작은 터에 인법당과 염궁선원과 성우당 세 채가 사실상 전부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천보루가 건설되고 있다.
시골절, 작은 절, 가난한 절 천장사에도 볼거리가 있다. 경허스님이 머물렀던 공간이다. 인법당 한켠에 아주 작은 방이 하나 있는데 경허스님이 보림하며 살았다고 한다.
천장사에 또 하나 볼거리가 있다. 그것은 삼월이라 불리우는 경허스님의 세 제자 혜월스님, 수월스님, 만공스님을 말한다. 세 제자가 함께 기거한 작은 방도 볼거리이다.
천장사는 본래 인법당만 있었을 것이다. 인법당이란 큰 법당이 없는 절에서 볼 수 있다. 스님이 거처하는 곳에 불상을 모신 곳을 인법당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법당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부엌이 있다. 부엌에서 밥을 짓고 방에서 밥을 먹는 집이다. 이런 인법당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인법당은 법당과 주거공간이 함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별도의 법당이 없는 암자에서 이런 형태를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불과 십여년전까지만 해도 천장사는 ‘천장암’이라고 불리웠다.
천장사인법당은 몹시 비좁다. 경허스님 당시 스님들이 기거하는 공간에 불상을 모셔 놓은 방을 법당으로 사용해서일까 열 명 들어가면 꽉 차는 공간이다. 앞으로 천보루가 완성되면 너른 공간에서 법회가 열릴 것이다.
석달 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의 청정한 힘을 빌어
인법당에서 백중 행사가 열렸다. 법당 우측에는 천도재를 위한 제단이 차려져 있다. 떡과 나물, 과일 등 갖가지 음식으로 푸짐하다. 삼십 개 가량 되는 종이 위패가 금강경 탑글자 위에 붙어 있다.
백중날 행사는 천도재 형식으로 진행된다. 누구나 신청하면 된다. 천도재가 열리는 날에는 아래 마을과 서산 지역의 노보살들이 상당수 참여한다. 나이가 칠십 이상 팔십대가 대부분이다.
천도재는 오전 열 시에 천수경을 합송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글 천수경이다. 한문으로 외웠는데 한글로 하다 보니 책을 보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격적인 천도재는 10시 50분부터 시작되었다. 오른쪽에 마련된 제단을 향했다. 스님은 축원카드를 읽어 주었다. 지장기도에 동참한 사람들의 주소와 망자 이름을 불러 주었다.
천도재에 망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매번 놓치고 있다. 이는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청자나 신청하지 않은 자나 모두 제단에 차 공양을 했다.
천도재를 여러 번 치루어 보았다. 주로 신림동 성원정사에서 했었다. 성원정사에서 부모님과 장인 천도재를 했었다.
천도재를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다. 가장 마지막에 하는 것은 장엄염불이다. 이는 나무아미타불을 계속 염하는 것이다. 천도재 하일라이트라고 말할 수 있다.
천장사 주지 중현스님은 백중 천도재의 의미를 설명했다. 목련존자가 신통으로 모친이 지옥에 있는 것을 알았는데 자신의 신통으로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석달 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의 청정한 힘을 빌어 구제하는 것이다.
백중날 천도재를 하는 것은 안거를 마친 스님들의 청정한 힘에 의지하고자 하는 열망도 있다. 신통으로도 지옥중생을 구할 수 없을 때 수많은 수행승들의 정진의 힘, 수행의 힘으로 제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음력 칠월보름날은 안거가 끝나는 날이다. 또한 백중날이기도 하다. 이 날을 우란분절이라고도 한다. 악처에 떨어진 조상을 천도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옛날부터 칠월보름은 민중들에게 있어서 최대 명절이나 다름 없다.
제사를 지내면 커다란 공덕이 될 것
천도재를 하면 효과가 있을까? 천도재를 하면 정말 악처에 떨어진 조상이 구제 되는 것일까? 불교를 접하고서 처음에는 믿었다. 도중에 믿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다시 믿고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
요즘 유튜브에서 윤회논쟁을 볼 수 있다. 윤회는 당연히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윤회가 없다고 말하는 스님들도 있다. 문필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H스님이 대표적이다. 또한 즉문즉설로 유명한 B스님도 윤회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정말 윤회는 없는 것일까?
사람들은 권위 있는 사람이 말을 하면 믿는 경향이 있다. 수행 이력이 있는 스님이나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의 말을 믿는 것이다. 이들 권위자들이 윤회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면 역시 믿을 것이다.
H스님은 영혼장사하지 말라고 말했다.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하느냐고 말하면서 영혼 같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천도재는 쓸데 없는 짓이 된다.
스님의 말보다 학자의 말보다 더 권위 있는 말이 있다. 그것은 부처님의 말씀이다. 미심쩍을 때는 경전을 열어 보아야 한다. 그것도 초기경전이다. 구체적으로 니까야를 말한다.
부처님은 제사를 지내도 좋다고 했다. 더 나아가 제사를 지내면 커다란 공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경전적 근거가 있다.
“말을 희생하고 사람을 희생하는 제사
나무봉을 던져 제단을 쌓는 제사
승리의 축배를 드는 제사, 무차(無遮)의 제사는
많은 수고만 있을 뿐 공덕은 크지 않네.
산양과 양과 소 등을 희생하는 그 곳
올바른 길을 가는 지혜로운 자는 그러한 제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네.
거창한 행사 없이 언제나 순조롭게 행하는
산양과 양과 소 등을 희생하지 않는 제사
올바른 길을 가는 지혜로운 사람은 그러한 제사에 참여하며
현자들은 살생이 없는 제사를 행하니 그 제사는 큰 공덕을 가져온다네.
훌륭한 제사를 행하는 자에게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일은 없네.
살생이 없는 제사는 위대한 것 하늘사람조차 기뻐한다네.”(S3.9)
쌍윳따니까야 ‘제사의 경(yaññasutta)’(s3.9)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부처님은 피의 제사를 부정했다. 동물이나 사람을 제물로 바쳐 죄를 사하고자 하는 공희(供犠)나 희생제(犠牲祭)와 같은 제사를 부정한 것이다. 그 대신 살생 없는 제사를 찬탄했다.
내면의 제사는 어떤 것인가?
제사에는 외면의 제사와 내면의 제사가 있다. 외면의 제사를 지내면 피의 제사가 되기 쉽다. 부처님 당시에도 피의 제사가 있었다. 수백마리의 황소와 양을 도살하여 제사 지내는 것이다. 더 이전에는 사람을 바치는 ‘인신공희(人身供犧)’도 있었을 것이다.
외면의 제사가 있다면 내면의 제사도 있다. 어떤 것인가? 바라문이 “존자 고따마시여, 세 가지 확립과 열여섯 가지 요건을 갖춘 제사의 성취보다 덜 번거롭고 덜 성가실 뿐만 아니라 더욱 큰 과보와 더욱 큰 공덕을 낳는 또 다른 제사란 어떠한 것입니까?”(D5)라고 물었을 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말씀하셨다.
1) “바라문이여, 사방승가를 위하여 승원을 세우는 일입니다.”(D5)
2) “바라문이여,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가르침에 귀의하고 참모임에 귀의하는 것입니다.”(D5)
3) “바라문이여, 청정한 마음으로 학습계율 곧,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사랑을 나눔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삼가고, 거짓말 하는 것을 삼가고,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가 있는 것에 취하는 것을 삼가는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세 가지 확립과 열여섯 가지 요건을 갖춘 제사의 성취보다 덜 번거롭고 덜 성가실 뿐만 아니라 더욱 더 큰 과보와 더욱 더 큰 공덕을 낳는 또 다른 제사입니다.”(D5)
4) 계-정-혜의 제사. (D5)
네 가지 내면의 제사를 보면 제물이 필요 없다. 보시하고 지계하고 수행하는 것이 내면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내면의 제사 네 가지 가운데 ‘계-정-혜의 제사’가 있다. 이는 수행자의 내면의 제사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출가수행자를 말한다. 그래서 수백가지 계행을 지키고, 네 가지 선정을 닦고, 무엇보다 통찰지를 닦는 것이다.
내면의 제사는 아라한선언으로 완성된다. 계, 정, 혜 삼학을 닦아서 마침내 “태어남은 부수어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알게 될 때 내면의 제사는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바라문이여, 이러한 제사의 성취는 다른 보다 뛰어나고 보다 탁월한 제사의 성취는 없습니다.”(D5)라고 말했다.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아귀계에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지은 업에 적합한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아귀계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언젠가 최봉수 교수의 유튜브 강의를 들은 바 있다. 최봉수교수에 따르면 이미 죽은 조상들은 아귀보를 받을 확률이 매우 크다고 했다. 이는 일반사람들이 좋은 일 보다 약간 나쁜 일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주 나쁜 업을 지으면 지옥이나 축생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하고 어정쩡한 경우 대게 아귀계에 떨어진다고 한다. 아귀가 되어서 배고픔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아귀는 일종의 조상신이다. 따라서 죽은 조상들이 아귀로 되어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제사를 부정하지 않았다.
제사는 배고픈 조상을 위하여 ‘시식’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시식이라 하여 반드시 음식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시식하게 하는 것도 해당된다. 바로 이것이 천도재를 하는 목적이 된다.
천도재는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 ‘무상게’를 들 수 있다, 초기불교나 대승불교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는 게송이다. 이 게송은“모든 조건 지어진 것은 무상하니, 생겨나고 소멸하는 법이네. 생겨나고 또한 소멸하는 것, 그것을 그치는 것이 행복이네.”라고 해석된다.
천도재를 하면 갖가지 제철 음식과 과일 등 성찬이 차려 진다. 후손은 조상에 대하여 차를 올린다. 부모가 아귀계에 있을지 모른다. 부모가 아귀계에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조상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조상에게 차 한잔 따라 주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덕회향이다.
가신님들을 위한 공덕회향 게송
제사는 외면의 제사와 내면의 제사가 있다고 했다. 내면의 제사는 보시공덕, 지계공적, 수행공덕에 대한 것이다. 아귀가 된 조상에게 자신이 지은 공덕을 회향 했을 때 음식을 시식케 하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시식이 된다. 그래서 예경지송 추모경송품에 다음과 같은 ‘가신님들을 위한 공덕회향 게송’이 있다.
“제가 얻은 이 공덕을
가신 님들에게 회향하니
세상을 하직한 님들에게
행복이 깃드소서.
제가 얻은 이 공덕을
가신 님들에게 회향하니
세상을 하직한 님들에게
행복이 깃드소서.
제가 얻은 이 공덕을
가신 님들에게 회향하니
세상을 하직한 님들에게
행복이 깃드소서.”
(가신님들을 위한 회향공덕, 예경지송 추모경송품 738-739쪽)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면 잘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과학문명이 발전된 물질문명 시대에 특히 그런 것 같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깜냥(感量)’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도 있음을 말한다. 내세와 윤회, 육도윤회 같은 것이다.
부처님은 초기경전에서 수도 없이 육도윤회를 말씀하셨다. 그 가운데 아귀의 세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육도에서 인간과 감응이 가능한 유일한 세계가 아귀계라고 한다. 보통사람들이 죽으면 가는 세계이다.
아귀계는 탐, 진, 치로 살며 아주 악한 죄업을 짓지 않은 자가 가는 세계이다. 그 세계는 늘 배가 고프다고 한다. 그렇다고 제사날이나 천도재할 때 음식을 흠향하게 하는 것만으로 그치게 해서는 안된다. 부처님 말씀을 들려 주어야 한다. 천도재를 하는 목적이다.
진정한 천도재는 자신이 지은 공덕을 회향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은 지계공덕, 보시공덕, 수행공덕을 회향하는 것은 그 어떤 음식보다 수승한 것이다. 그래서 가신님들을 위한 회향공덕 게송에서 “제가 얻은 이 공덕을 가신 님들에게 회향하니 세상을 하직한 님들에게 행복이 깃드소서.”라고 했다.
제사를 부정하지 않은 부처님
부처님은 제사를 부정하지 않았다. 이는 천도재를 부정하지 않았다는 말도 된다. 가장 고층 경전으로 알려져 있는 수타니파타에서 바라문 학인 마가는 부처님에게 “저는 부탁을 잘 들어주고, 재물을 베푸는 재가의 신자로서, 공덕을 구하고 공덕을 기대하며,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베풀어 제사 지내는데, 세존이시여, 제게 완전한 제사에 대해 설해주십시오.” (stn505) 라고 말했다. 이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말했다.
“마가여, 제사를 지내십시오.
제사를 지내면서 어떤 경우라도 마음을 청정하게 하여야 합니다.
제사는 제사지내는 자의 토대입니다.
여기에 참여하는 자신의 죄악을 버립니다.” (stn506)
부처님은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 제사를 지내면 큰 공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진정한 제사는 내면의 제사이다.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쌓아 조상에게 회향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효력 있는 제사가 된다.
천장사 백중 우란분절 천도재가 끝났다. 중현스님은 인법당 우측에 있는 위패를 모두 떼라고 했다. 금강경 5천여자가 있는 종이탑도 떼어졌다. 이 위패를 모두 모아 소각해야 한다. 커다란 스탠레스 그릇에는 갖가지 나물과 음식을 조금씩 담았다. 유주무주고혼을 위한 시식용이다.
사람들은 스님의 뒤를 따라 갔다. 야외 불상이 있는 소각장에서 위패는 태워졌다. 천도재가 끝난 것이다. 중현스님은 사람들에게 “오늘 백중 행사 다 마쳤습니다. 여러분들 행복하고 건강하세요.”라고 말했다.
마늘 한접 선물을 받고
천장사에 삼주만에 다시 갔다. 안양에서 백키로 이상 되는 먼거리이지만 달려 가는 것은 반겨 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월거사 길상화보살 부부가 반겨 주었다.
천장사 가기 전에 카톡방에 “안양에서 출발합니다.”라는 문자를 남겼다. 수월거사는 이 메시지를 보고서 반가웠던 것 같다. 길상화 보살과 함께 왔다. 와서는 선물을 하나를 주었다. 마늘 한접을 준 것이다.
마늘 한접 무게는 상당하다. 이 많은 마늘을 어떻게 다 먹어야 할까? 수월거사는 시골이라 달리 줄 것이 없어서 마늘을 가져 왔다고 말했다. 신심 깊은 수월거사와 길상화보살 부부의 마음이 느껴졌다.
천보루는 언제 완성될까?
천장사에 천보루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삼주 전에 왔을 때 기초를 다시는 중이었는데 이제 철근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거푸집 기둥이 올라 가고 있다. 한적한 산골에 인부들의 망치질이 힘차게 울려 퍼진다.
천보루는 언제 완성될까? 천보루 공사로 인하여 염궁선원에서는 올해 하안거 스님들을 받지 않았다. 주지 스님에게 물어 보니 “올해 동안거 시작 되기 전에는 끝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본다면 남은 기간은 삼개월이다. 현재와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면 어쩌면 11월 중에 완성될지 모른다.
천보루가 완성되면 천장사는 사격을 갖추게 된다. 인법당 하나만 있었던 옛날 절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천장사는 여전히 작은 절, 시골, 절, 가난한 절이다. 이런 절에 선원도 있다.
선원이 있는 절에서 백중 우란분절 천도재가 열렸다. 선원이 없는 절에서 천도재가 열리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신통으로도 구제 되지 못한 사람을 선방스님들의 청정한 힘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천정사에 때 되면 간다. 다음에는 음력 구월보름 달빛다회가 될 것 같다. 달빛다회는 매년 열린다. 작년에는 달빛음악회를 했었다. 올해는 어떤 달빛다회가 될지 궁금하다.
2024-08-2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