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상이 왜 법당에 있을까?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에서
기러기상이 왜 법당에 있을까? 서산 문수사 극락보전에서
“저 사람한테 걸리면 죽습니다.” 이 말은 문수사에서 들었다. 천장사 중현스님이 문수사 범주스님에게 말한 것이다.
천장사 백중법회를 마치고 사람들은 문수사로 이동했다. 중현스님과 함께 하는 사찰순례이다. 스님을 포함하여 모두 열두 명 참석했다.
문수사는 서산에 있는 전통사찰이다. 개심사 가는 길에 있다. 작년 벚꽃 필 때 개인적으로 처음 가 보았다. 이번이 두 번째이다.
문수사는 개심사와 함께 겹벚꽃으로 유명하다. 해마다 겹벚꽃이 필 무렵 수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런 문수사에는 보물이 있다. 고려시대 목조 극락보전이 최근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절에 보물이나 국보가 있는 절과 없는 절은 사격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절에 보물이라도 하나 있으면 혜택 받는다고 한다.
천장사에도 보물이 있을까? 중현스님에 따르면 책 한권이 있다고 한다. 수덕사에 보관 되어 있는데 최근에 알았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문화재 관련 부서에 알렸더니 전기세를 20프로 감면 받았다고 한다.
전국방방곡곡 전통사찰에는 문화재가 있다. 오래 되었다고 해서 모두 문화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탱화의 경우 영정조 시대 것은 보물로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적어도 숙종 시대 때 것은 되어야 함을 말한다.
천장사 순례팀은 극락보전을 참배 했다. 극락보전은 겉으로 보기에 마치 골동품처럼 고색창연하다. 내부에 닫집을 보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문수사 극락보전에는 세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그런데 중앙에 있는 주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일반적으로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문수사 극락보전에는 다른 사찰의 법당에서 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공중에 매달려 있는 기러기이다. 기러기가 불상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다. 기러기상이 왜 법당에 있을까?
천장사 순례팀은 극락보전 참배를 마치고 문수사 주지실로 이동했다. 문수사 주지 스님이 차를 대접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스님과 함께 떠나는 순례에서 일종의 특혜라고 볼 수 있다.
문수사 주지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무더위가 극심해서 차 대신 시원한 매실차를 대접 받았다. 문수사 주지 스님은 문수사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극락보전이 보물지정 받은 이야기도 해 주었다.
문수사 극락보전이 보물이 되기 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이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동아미타불에서 충목왕 시절 때 만든 복장 유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 중에 발원문이 있는데 이는 충목왕 2년인 1346년에 만든 것이다.
문수사 극락보전은 오래 된 것이다.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맞배지붕형식이다. 이런 맞배지붕은 주로 고려시대 건축물에서 볼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도 맞배지붕이고, 봉정사 대웅전도 맞배 지붕이다. 모두 고려시대 때 것이다.
문수사 주지스님은 문수사에 대하여 설명을 마쳤다. 그리고 물어 볼 것이 있으면 물어 보라고 했다. 이에 스님의 법명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그러자 천장사 주지 중현스님이 “저 사람 무서운 사람입니다. 저 사람에게 잘못 보이면 죽습니다.”라고 말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일까? 아마 그것은 비판의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전천장사 주지 허정스님과 함께 종단개혁운동을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비판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잘못을 지적하는 글도 쓸 수 있다. 천장사 다니면서 후기를 썼는데 책으로 한권 되었다. 천장사 사람들에게 한권씩 선물했다. 그때 “일부 불편한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아마 이런 말을 듣고서 “저 사람 무서운 사람입니다.”라고 말 했을 것이다.
문수사 극락보전에는 기러기상이 하나 공중에 매달려 있다. 어느 법우가 이에 대하여 연유를 물어 보았다. 그러자 문수사 주지스님은 자타카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문수사를 소개하는 팜플렛에 자세하게 소개 되어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문수사 나무기러기)
문수사 안에는 나무로 만든 기러기가 날고 있다. 기러기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윽하게 바라보시는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기러기에 대한 설화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기러기 고기를 좋아하는 왕이 있었다. 사냥꾼은 매일 그물로 기러기를 잡아 밥상에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기러기 왕이 500마리의 기러기를 거느리고 내려 왔다가 그물에 걸리고 말았다. 이에 기러기 무리는 공중을 맴돌며 떠나지 않고,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화살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피를 토하며 밤낮으로 슬피 울었다.
사냥꾼이 이 사실을 기이 여겨 왕에게 알리었고, 그때부터 왕은 기러기를 먹지 않았다. 이때 기러기의 왕은 부처님이요. 500마리의 기러기는 500분의 나한이며, 피를 토하며 밤낮으로 울던 기러기는 아난이었던 것이다.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이자 부처님 곁에서 제일 많은 법문을 들었던 제자이다. 가장 많이 들은 자라고 하여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도 불린다.
(문수사 홍보 팜플렛에서)
문수사 기러기 이야기는 자타카에서 근거한다. 부처님이 전생에 보살로 살았을 때 아난과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수사 기러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타카에서 본 백조 이야기를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자타카를 완역 했을 때 교정자로 참여 했는데 그때 자타카를 모두 다 읽어 보았다. 거기에 문수사 기러기 이야기와 유사한 백조 이야기가 있었다.
오늘 아침 문수사 순례 이야기를 쓰고자 할 때 먼저 자타카를 찾아 보았다. 이는 자타카 534번째 이야기인 ‘백조의 큰 본생이야기(Mahāhamsa Jātaka)’가 바로 그것이다.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어느 스님은 기러기와 관련된 게송을 올렸다. 법구경에 “그물을 벗어난 기러기 떼가 하늘을 높이 날아오르듯이, 어진 사람은 악마와 그 무리들을 물리치고 세상에서 벗어난다”(Dhp.91)라는 글을 올린 것이다.
스님의 글에 이의를 제기했다. 기러기가 아니라 백조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동아시아에서는 백조 보다는 기러기가 정서에 더 맞을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한자어로 되어 있는 게송에서는 기러기 ‘안(雁)’자가 있었던 것이다.
기러기와 백조는 같은 새일까? 둘 다 기러기 목에 속하지만 엄연히 다른 새이다. 백조는 오리과에 속하는 기러기보다 몸이 크고 길다. 더구나 백조는 순백의 힌 털이 있어서 행운을 주는 길조로 알려져 있다.
초기경전에서 백조가 자주 등장한다. 백조는 빠알리어로 ‘항사(haṃsa)’이다. 영어로는 스완(swan)이다. 이를 한자어로는 거위 아(鵞) 또는 백조(白鳥)라고 한다. 항사와 관련하여 수타니파타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하늘을 나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백조의 빠름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
재가자는 멀리 떠나 숲속에서 명상하는 수행승,
그 성자에 미치지 못한다.” (Stn.221)
초기경전을 보면 출가자에 대하여 백조로 비유하고 있다. 왜 백조라고 했을까? 백조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백조의 흰 이미지가 청정한 삶을 추구하는 수행승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다음으로 백조는 널리 하늘 높이 날아간다. 이는 닭이나 오리와 같은 가금류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는 공작도 멀리 날아 갈 수 없다.
게송에서 백조는 출가자를 상징한다. 공작은 재가자를 상징한다. 걸림 없는 삶을 사는 출가자는 사미일지라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재가의 삶, 세속의 삶을 떠난 출가자는 한철만 지나면 성자가 될 수 있다. 마치 백조가 하늘 높이 날아 먼 곳까지 갈 수 있는 것과 같다.
초기경전에서 백조는 출가자의 상징이다. 법구경에서는 “새김을 갖춘 님들은 스스로 노력하지 주처를 좋아하지 않는다. 백조들이 늪지를 떠나는 것처럼 그들은 집마다 그 집을 떠난다.”(Dhp91)라고 했다. 이런 백조에 대하여 한자문화권에서는 기러기라고 번역했다.
문수사 극락보전에 있는 기러기 상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목각 기러기상에 흰색의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왕이 기러기 고기를 좋아하자 기러기 고기를 먹지 않게 하기 위한 이야기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자타카를 보면 이와 다르다.
문수사 극락보전 기러기상을 보고서 자타카를 다시 읽어 보았다. 언제 읽어도 감동적이다. 시대와 민족을 초월한다. 그래서 경전은 영원한 고전이다.
마하항사자타카는 부처님이 보살로 살았을 때 백조왕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까시 국의 왕비가 꿈을 꾸고 난 것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왕비는 황금빛 백조로부터 설법을 들었기 때문이다.
왕비는 황금빛 백조를 보고자 했다. 왕은 왕비의 소원을 들어 주고자 했다. 왕성 근처에 연못을 만들어 백조 떼가 오도록 한 것이다.
히말라야에 사는 백조의 왕은 연못에 왔다. 먹이를 구하러 온 것이다. 그러나 사냥꾼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이를 본 장군 백조는 그냥 갈 수 없었다. 사냥꾼을 교화하여 덫에서 나오게 만들었다.
마하항사자타카에는 수많은 게송이 등장한다. 그 중에 백조의 왕과 백조 왕의 장군에 대한 우정의 게송이 있다. 이는 전생의 부처님과 아난다를 말한다. 전생의 아난다는 사냥꾼 케마까를 다음과 같이 설득한다.
“구만 마리의 백조들 가운데 등 최상자인 다따랏타 백조가 당신의 덫에 걸려 들었습니다. 그는 지혜와 계행을 갖추었고 이 모두에게 친절하여 그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이분에 대해 요구할 일이 있다면, 내가 대신해드리겠습니다. 이분은 황금빛 백조이고 나도 그렇습니다. 나는 그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그대가 이분의 날개를 갖고 싶다면, 나의 날개를 가지십시오. 혹은 가죽, 살, 힘줄, 뼈 등의 어떠한 것이라도 갖고 싶다면, 나의 몸에서 그것을 가지십시오. 혹은 완상용 백조를 만들고 싶다면, 나를 그렇게 만들어주십시오. 죽여서 팔아 재물을 얻고 싶다면, 나를 죽여서 팔아 재물을 얻으십시오. 이 지혜와 덕성을 갖춘 백조 왕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그를 죽이면, 그대는 지옥 등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Jat.534)
전생의 아난다는 전생의 부처님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런 지극한 노력이 있어서 사냥꾼은 덫에 걸린 백조의 왕을 풀어 준다.
백조의 왕은 인간의 왕 앞에 섰다. 백조는 인간의 언어로 설법했다. 백조의 왕은 인간의 왕에게 “그대는 정의롭게 다스리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폭력 없이 정의롭게 평등하게 이 왕국이 통치되고 있는가?”라며 물어 본다.
백조의 왕은 풀려 났다. 그것은 백조의 왕의 장군의 헌신적인 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전생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과거에도 아난다는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적이 있다.”라고 말씀하신 뒤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의 사냥꾼은 지금의 찬나, 케마 왕비 는 수행녀 케마, 왕은 싸리뿟따, 쑤무카는 아난다. 나머지 대중은 부처님의 권속이었으나, 백조 왕 다따랏타는 바로 나였다.”(Jat.534)
문수사 극락보전에 기러기상이 있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데 흰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다. 이 기러기상은 전생의 아난다이다. 문수사 나무기러기 이야기를 보면 “기러기의 왕은 부처님이요. 500마리의 기러기는 500분의 나한이며, 피를 토하며 밤낮으로 울던 기러기는 아난이었던 것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는 자타카에 있는 내용과는 다르다.
니까야가 번역되면서 하나 둘 사실과 다른 것이 발견되고 있다. 문수사 나무기러기 이야기도 그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고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오랜 세월 전승되는 과정에서 그 지역에 맞게 그 시대에 맞게 각색되고 변형 되었기 때문이다.
문수사 사찰 순례 때 무서운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대체로 비판적이기 때문에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천장사 주지 스님은 “저 사람에게 잘못 보이면 죽습니다.”라고 농담 했을 것이다.
2024-08-2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