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주왕산 주산지에서 풀벌레명상하기

담마다사 이병욱 2024. 9. 29. 21:01

주왕산 주산지에서 풀벌레명상하기

 

 

소백산자연휴양림의 아침이다. 창 밖에는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높게 떠 있다. 하늘 아래는 온통 녹색빛깔이다. 이런 삶을 꿈 꾼 것일까?

 

삼박사일 국내여행 세 째날 아침이다. 어제는 청송소노벨에서 잠을 잤었다. 콘도보다는 숲속의 집이 더 낫다. 마치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자본집약적인 고급리조트보다는 서민친화적인 휴양림이 더 좋다.

 

 

자연휴양림 예약경쟁이 치열하다. 주말은 꿈도 못꾼다. 평일에 자라가 나서 가능한 것이다. 직장인에게는 힘든 평일예약이다. 그러나 일인사업자는 언제든지 시간 낼 수 있다. 노트북만 가져가면 움직이는 사무실이 된다.

 

자연친화적인 삶을 오랫동안 꿈꾸어 왔다. 가장 좋은 것은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을 짓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다. 자연휴양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삼사년전의 일이다.

 

이제까지 열 군데 이상 자연휴양림에 갔었다. 가능하면 글과 사진으로 기록을 남겼다. 나중에 글을 모아 놓으면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 노트북으로 글을 쓰니 속도가 난다.

 

삼박사일 첫날에는 안양에서 청송까지 이동했다. 도중에 영주 선비도서관, 시립도서관에서 인증샷을 찍고, 안동에서는 회회마을과 병산서원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25일 저녁 늦게 청송소노벨에 도착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콘도는 상업적이다. 그럼에도 하루 머문 것은 할인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청송 주왕산과 주산지를 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26일 이른 아침 주산지로 향했다. 깊은 산골에 있어서일까 도로에는 차도 없고 마을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주산지주차장은 농민들의 삶의 현장과도 같다. 이른 아침임에도 사과 파는 사람들이 있다. 초입에 어떤 노년의 여인이 안녕하세요.”라며 말을 건넨다. 그리고 어데서 왔어요?”라며 경상도 억양이 섞인 말로 관심을 끈다.

 

참으로 노련한 상술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청송사과 시식을 권한다. 먹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 오는 길에 팔아주기로 했다. 사과 한봉지에 만원이다. 부사 큰 것이 칠팔 개 된다. 마트에서는 이만원 가량할 것이다. 장사치에게서 삶의 활력을 보았다.

 

주산지에 도착했다. 늘 사진에서만 보던 것이다. 나무가 물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2022년 스리랑카 남부지방 순례에서도 보았다. 그것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이곳 주산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호젓한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 갈 때 세상에 이런 평화가 없었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높았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무더위로 힘들었으나 겉 점퍼를 입어야 할 정도로 서늘했다.

 

주산지에서 오분명상을 했다. 단지 보는 것으로 그친다면 너무 허무한 것이다. 한번 둘러 보고 사진 찍는 것으로 그친다면 다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럴 때는 눈을 감고 가만 있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이런 시상이 떠올랐다.

 

 

들리는 것은 풀벌레소리 새소리뿐,

한줄기 바람이 쉐하고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소리를 듣지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풀벌레소리는 더 이상 풀벌레소리는 아니다.

명색으로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듣는 것은 아니다.

 

얼굴에 바람이 스치운다.

부딪치는 것은 물질이고

이를 아는 것은 정신이다.

명색으로 느끼면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다.

 

아침햇살에 잎은 찬란하게 빛난다.

평화로운 적막강산이다.

이곳에서 살고 싶어라.”

 

 

 

가만 눈을 감고 오분 앉아 있었다. 풀벌레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다. 새소리, 바람소리도 들렸지만 풀벌레소리가 압도했다. 가장 강한 대상에 주의를 기울였다.

 

명상이라고 하여 반드시 배의 부품과 꺼짐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대상이 나타나면 주관찰대상은 바뀐다. 풀벌레소리에 집중했다.

 

위빠사나수행은 명색을 관찰하는 수행이다. 대상에 대하여 정신과 물질로 구분하여 새기는 것이다. 풀벌레합창소리는 물질적 현상에 해당된다. 소리를 듣는 것은 정신적 현상에 해당된다.

 

 

 

 

 

이런소리 저런소리가 들린다. 들려지는 것은 물질이고 들리는 것은 정신이다. 들려지는 물질을 새기고, 들리는 정신을 새겨야 한다. 이렇게 새기다 보면 나는 사라진다.

 

명상하다 보면 세상에 오로지 물질과 정신, 또는 물질과 정신만 남는다. 여기에 하나 더 있다. 세상에 원인과 결과만 있는 것이 된다. 자연스럽게 위빠사나 1단계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지혜와 2단계 조건을 파악하는 지혜가 이르게 된다.

 

주산지에서 눈여겨 본 것이 있다. 입구에 비석 하나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건륭삼년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주산지가 숙종 때인 1721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증거가 되는 비석처럼 보인다.

 

 

다시 주차장에 이르렀다. 사과장수의 사과를 팔아 주었다. 청송꿀사과사과 한봉지에 만원이다. 부사 큰 것이 칠팔 개 된다. 마트에서는 이만원 가량할 것이다.

 

사과장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좋은 말을 건넸다. 장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사과장수에게서 강한 삶의 활력을 보았다.

 

 

2024-09-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