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에 이정표가 있다면
삶의 길에 이정표가 있다면
2024년 10월 21일 휴양림에 날이 밝았다. 이대로 가만 있을 수 없다. 휴양림에서 아침산책이 없다면 의미가 반감된다. 어느 휴양림이든지 산책코스가 있다. 이곳 칼봉산자연휴양림도 예외가 아니다.
산책코스 안내판을 보았다. 숲속의 집에서 시작되는 임도가 표시되어 있다. 산의 능선을 따라 계곡에서 합류되는 지점에서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갈래길을 보니 절로 가는 길도 있다. 절이름은 경반사이다.
등산객은 산에 가면 정상으로 향한다. 불교인은 산에 가면 절로 향한다. 그렇다고 어느 산이든지 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명당자리에 위치한다. 절이 있는 곳은 또한 기가 가장 센 곳이기도 하다. 경반사는 어떤 절일까?
걷는 길은 경반숲길이다. 휴양림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임도이다. 비포장이어서 승용차로는 갈 수 없다. 사륜구동 RV차는 가능할지 모른다. 시멘트길과 흙길, 자갈길 등 전형적인 오프로드 산길이다.
아침 7시에 출발했다. 산이 깊으니 골도 깊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해뜨기 직전에 동녘하늘에는 구름이 끼여 있다. 터진 구름 사이로 붉은 기운의 여명이 형성되었다. 마치 태초가 시작되는 것처럼 가장 신성하고 숭고한 순간이다.
새벽은 하루의 시작이다. 새벽은 해뜨기 전의 전조현상이다. 새벽이 되면 반드시 해가 뜨게 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초기경전에서는 압빠마다(appamada), 즉 불방일에 대하여 해뜨기 전의 새벽과 같은 것이어서 깨달음의 전조라고 했다.
해뜨는 광경을 보고자 했다. 산책길에 마침 전망대가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니 전방 시야가 탁 트였다. 가파른 산과 산 사이에 하늘이 터져 있다. 아래로는 가평의 특산품 잣나무군락이 펼쳐져 있다.
해가 뜨려면 시간을 좀더 필요로 했다. 붉은 기운의 새벽노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새벽기운을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된 것 같다.
임도를 따라 길을 계속 갔다. 때로 가파른 길도 나타났다. 혼자 걷는 길이다. 배낭 하나 메고 나왔다. 날씨가 영도대라 두꺼운 옷을 입었다. 그럼에도 머리가 시러웠다. 모자가 달린 겉옷을 입고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을이 깊어간다. 나뭇잎은 붉거나 노랗게 물들어 간다. 가을에 피는 이름모를 산꽃도 피어 있다. 들리는 것은 저벅저벅 걷는 신발소리이다. 간혹 새소리도 들린다. 바람은 고요하다.
걷기를 하면서 명상을 했다. 걸으면서 위빠사나 명상을 한 것이다. 강한 대상을 관찰하여 생멸을 본다. 이런 시상이 떠 올랐다.
“새소리가 부서진다.
물소리가 부서진다.
보는 것도 부서진다.
생각도 부서진다.
나도 부서진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 도중에 삼거리 길을 만났다. 저쪽 아래 길에서 차가 올라온다. 바퀴가 크고 높이가 있는 RV차량이다. 오프로드 길을 거침 없이 달린다. 도시탈출 했더니 도시를 만난 것 같다.
산정에 가는 길은 여럿 있다. 대개 걸어서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차로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힘들이지 않고 오른다. 요즘은 케이블카로도 오른다. 걸어서 가는 사람들 보기에는 허탈한 것이다.
도의 길을 가고자 한다. 도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차나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도의 길에 왕도는 없다. 왕도가 있다면 단계적으로 성취도는 길이 있을 뿐이다.
목적지는 경반사이다. 길을 걷다 보니 걷기로 전국일주하는 박선생이 떠올랐다. 박선생은 사오년전부터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 휴전선 길을 걸었다. 이제는 내륙길을 걷는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 국토대장정순례를 하고 있는 중이다.
박선생은 페이스북에 소식을 전한다. 하루에 8-10시간 걷는다. 걸을 때마다 느낌과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박선생은 왜 이런 고행을 하는 것일까?
박선생은 걷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아니 어떤 이익이 있어서 걷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걸을 때 얼마나 외롭고 고독할까? 그러나 외로움은 없다고 했다.
박선생은 혼자 걸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박선생에게 “걸을 때 어떤 생각이 듭니까?”라고 물어 보았다. 이에 박선생은 “아무 생각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무념, 무상, 무아라는 말이 연상되었다.
박선생의 걷기를 보면 따라하고 싶어진다. 언젠가부터 걷기는 나의 로망이 되었다. 그 길을 따라 걷고 싶었다. 오늘 이렇게 임도를 걷는 것은 어쩌면 미리 연습하는 것인지 모른다. 혼자 걷는 길이다.
능선길에서 내리막길로 이어졌다. 곳곳에 단풍이 시작되고 있다. 어떤 이는 단풍에 대하여 시적으로 표현한다. 단풍은 색소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성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노년도 마찬가지로 본다.
노인에게는 지혜가 있다. 산전수전 다겪은 노인은 삶의 지혜가 있다. 젊은이에게 그 길로 가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 노년은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 간다고 말할 수 있다.
7시 56분이 되었다. 길에 나선지 한시간 되었다. 두갈래 길을 만났다. 휴양림 안내판에 있는 그 길 같다. 그러나 이정표가 없어서 경반사로 가는 그 갈래길인지 알 수 없다. 더구나 갈래길 도착하기 전에 소망탑이 있다고 했는데 보지 못했다. 어느 길로 가야 할까?
지도가 없다. 출발하기 전에 찍어 둔 경반숲길안내판 사진을 보았다. 5번 위치가 삼거리길이라 되어 있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 소망탑은 지나친 것 같다. 아래로 내려 가면 경빈사로 가는 길이 있을 것 같았다.
갈래길에서 이정표 없으니 방향을 알 수 없다. 지레짐작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삶에도 이정표가 있을까?
삶의 길에 이정표가 있다면 헤매지 않을 것이다. 이정표 없는 삶을 살다 보니 다른 길로 가게 된다. 다른 선택을 해서 다른 인생길을 간다. 도와 과의 길에도 이정표가 있을까?
도와 과에 길에 이정표가 없지 않을 수 없다. 부처님의 원음이라 불리우는 니까야(경서)는 확실한 도와 과의 이정표이다. 그 길만 따라서 가면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초기경전은 지도와 같고, 부처님은 안내자와 같은 것이다.
길을 잘못 내려 왔다. 앞서 갈래길에서 왼쪽 내려가는 길을 택했는데 경반사길과는 반대로 간 것이다. 20분 동안 내려 와서 보니 경반사 안내 표지판이 있다. 여기가 본래의 삼거리길이었던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계곡길을 20여분 올라가야 할까?
아래 갈래길에 경반사안내표지판이 있었다. 안내판 지도를 잘못 본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레짐작한 것이 크다.
배가 고팠다. 일단 먹고 나서 판단하기로 했다. 먹을 것을 준비해 왔다. 배낭에 는 단호박, 고구마, 구운계란, 자두가 있다. 그리고 무우말랭이 들어간 끓인 물도 있다. 이 정도면 아침 한끼 식사로 충분하다
무우말랭이차는 깊고 그윽하다. 커피보다 더 좋고 차 보다 훨씬 더 낫다. 작년 백권당에서 담마와나선원 북토크했었는데 그 때 선물 받은 것이다. 매일 저녁에 마신다. 새벽에 갈증 날 때도 마신는다. 보리차 보다 더 애용한다.
휴양림에서 시간은 철철 넘친다. 연박이므로 경반사까지 갔다와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점심시간 전까지만 돌아 가면 된다. 세상에 이런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
경반사까지는 2.4키로 52분 걸린다. 다시 망설임이 일어났다. 또한 갈등했다. 왔던 길을 또다시 20여분 되돌아 가야 하는 것이다. 거기서 부터 새로 시작이다. 참으로 맥빠지는 일이다. 인생에서 이런 때가 어디 한두번 있었던가?
나는 거기에 무엇이 있기에 가려 하는 것일까? 부처님 뵈러 가는 것일까? 부처님이라면 니까야에도 있다. 초기경전에 있는 부처님이 더 현실적이다. 경을 읽다 보면 부처님이 바로 앞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무엇 때문에 계곡길을 다시 올라 가려 하는 것일까? 그것도 경반사까지는 한시간 가까이 걸린다. 무엇때문에 계곡길을 그것도 한시간 가까이 올라가야 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 보는 장사인 것 같았다. 그러나 가야 한다. 왜 그런가? 거기에 절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 먹은 힘으로 올라 갔다. 20여분 휴식 취한 힘으로 걷기로 했다. 과거는 잊어 버리기로 했다. 새출발 하는 거다.
8시 54분에 경반사를 향해서 출발했다. 호젓한 산길이다. 도시에서 걷는다면 피곤하다. 물소리 새소리와 함께 걸으면 힘들지 않다. 걷기명상하듯이 왔던 길을 되돌아 올라 갔다.
9시 17분에 다시 두갈레 길에 섰다. 7.56분에 이 자리에 섰으니 1시간 14분만에 원위치 한 것이다. 지레 짐작으로 왼쪽 길을 선택한 것이 잘못된 길이 되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학교, 그 직장, 그 사람을 선택한 것도 최종적으로는 내가 선택한 것이다. 그때 다른 길을 선택 했다면 내인생은 달아졌을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왜 그런가? 이 몸과 이 성향으로 봐서 다른 길로 갔어도 지금과 비슷한 인생을 살았을 것으로 본다.
처음 삼거리 갈림길에서 네이버 지도앱을 보았어야 했다. 인생의 지도앱은 없을까? 빠알리 삼장이 있다. 경에서는 “왼길을 버리고 바른길로 가라.”라고 했다.
경에서 바른길과 왼길은 오늘날 우파와 좌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인도에 있어서 통용되던 사고방식이다. 한국에서도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경에서 바른길은 팔정도의 길이고, 왼길은 팔사도의 길이다.
경반사는 이제 반절 남았다. 20여분 올라 왔으니 또 20여분 올라가야 한다. 두 명의 등산객이 따라 붙었다. 아마 정상으로 향하는 사람들 같다. 그들을 따라 갔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큰 탑차 뒤를 따라 가는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도중에 등산로 안내지도를 보았다. 가장 높은 산은 연인산으로 해발 1,068미터이다. 가평에도 천미터가 넘는 고봉이 있다. 휴양림이 있는 칼봉은 해발 899미터이다.
길을 가다 보니 집이 나타났다. 강호동과 박찬호가 출연한 집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KBS 1박2일 프로에 대한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다. 안내판은 녹이 슬어 심하게 훼손 되어 있다. 세월의 무게를 말해 주는 것 같다.
바로 위에 또 하나의 집이 있다. 지붕이 널판지로 되어 있는 너와집이다. 이번에는 자연인이 사는 집이다. 낡은 입간판을 보니 ‘나는 자연인이다’의 69회 주인공이 사는 집이다. 개가 짓는 것으로 보아서 사람이 사는 집 같다.
자연인이 살 정도로 깊은 산골짜기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진정한 자연인은 스님이 아닐까 생각해 본 것이다. 똑 같은 자연인이지만 도를 닦고 사는 자를 진정한 자연인으로 보는 것이다.
계속 길을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길은 가파르다. 마침내 저 멀리 집의 지붕이 보였다. 기와지붕은 아니다. 여법한 가람을 상상했으나 스레트기와지붕의 가정집이다. 9시 42분에 경반사에 도착했다.
경반사는 어떤 절일까? 절 입구에 "해뜨는 절 경반사 오신걸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라는 문구가 있다. 왜 해뜨는 절이라고 했을까? 아마 해 뜨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산이 높고 골은 깊기 때문에 해는 일찍 질 것이다.
법당문은 잠겨 있다. 스레트지붕으로 되어 있는 건물에는 대웅전이라 현판이 걸려 있다. 법당문은 전기줄로 문고리를 감아 놓았다.
법당 앞에 서자 허탈했다. 여기까지 애써서 왔는데 문이 잠겨 들어가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살고 있을까? 스님은 있을까? 법당 입구에 흰고무신이 놓여있다.
법당 계단에 앉았다. 이왕 온김에 쉬어 가기 위함이다. 그때 알림판이 눈에 띄었다. 알림판에는 "(알림) 경반사 법당은 여러분의 법당입니다. 누구든지 들어 오셔서 기도 하시고 나오실 때는 촛불을 끄시고 법당문을 꼭 닫아 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자비로 소원 성취 바랍니다. 주지 합장"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일림판을 보자 용기가 났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 없다. 전기줄을 걷어 내고 들어가보고자 한 것이다. 불전에 참배는 해야 한다. 그렇다면 저 흰고무신은 무엇이란 말인가? 혹시 스님이 저 안에서 묵언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9시 57분에 법당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황금빛 부처님이 보였다. 겉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여법한 법당 모습이다.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이 있고 천정에는 연등이 빼곡히 걸려 있다.
법당에서 삼배했다. 불, 법, 승 삼보에 삼배한 것이다. 그리고 자리에 앉았다. 오분명상을 했다. 배의 부품과 꺼짐에 집중했다. 그러나 집중이 되지 않았다. 계곡 물소리가 새차게 들려 왔다. 소리를 주관찰대상으로 했다.
참배를 마쳤다. 그냥 갈 수 없어서 이미우이음악씨디를 하나 놓고 갔다. 추리닝복 바지를 입고 와서 지갑을 가져 오지 않았다. 불전함에 넣고 싶어도 넣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씨디로 대체 한 것이다.
법당문을 나서자 어느 보살이 왔다. 물어 보니 여기에 산다고 했다. 스님도 올라 오고 있다고 했다. 보살을 보자 보시금을 드리고자 했다. 스마트폰 은행앱으로 결재하면 된다.
절에 가면 빈손으로 가지 않는다. 반드시 보시를 한다. 절은 보시로 유지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보살에게 계좌를 물었다. 계좌로 십만원을 송금했다. 보살은 놀라는 눈치였다. 이에 등이나 하나 달라고 했다. 그러자 보살은 안심하는 듯 했다.
오늘날 절에 가서 등 하나 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스님에게도 등을 달 수 있다, 스님의 계좌에 등 값을 송금하면 스님에게 등 하나 다는 것이 된다. 하물며 절에서 등 하나 다는 것은 불자로서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나에게는 보시전용통장이 있다. 올해 사월에 만든 것이다. 경조사비, 후원금, 선물, 보시금은 모두 보시통장에서 나간다. 등 하나 다는 것도 당연히 보시통장에서 나간다.
올해 12월에 라오스순례가 예정되어 있다. 십일간 상당한 금액이 들어간다. 나를 위해서는 이렇게 많은 돈을 쓰면서 타인에게는 쓰지 않는다면 불자로서 도리가 아니다. 보시통장이 있어서 마음 놓고 보시한다.
등을 하나 달았다. 꼬리표에는 가족의 이름을 써 놓았다. 조견표를 보고서 태어난 해의 십이지를 찾아서 썼다. 가장 중요한 축원문은 법구경에 있는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길”이라는 문구를 써 넣었다. 이것 보다 더 좋은 축원문을 아직 보지 못했다.
등의 꼬리표를 쓸 때 절의 주인이 들어 왔다. 스님인줄 알았으나 머리가 긴 내 또래의 남자였다. 이 절의 법사라고 했다. 법사가 운영하는 절인 것이다. 아마도 보살과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부부가 운영하는 절 같다.
법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법사 이름은 이제남이다. 경반법사라고 한다. 일어서려고 할 때 축원카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누군가 축원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절에 일부로 먼길을 찾아 갔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등을 하나 달게 되었다. 보살은 믹스커피라도 마시지 않겠느냐고 했다. 더 나아가 점심을 먹고 가라고 했다. 그러나 오래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휴양림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시간 걸어가야 한다.
경반사에서 10시 42분에 출발했다.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 가면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너무 경솔했던 것 같다. 법사와 이야기할 때 내 자랑만 했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7,800개 썼고, 책을 137권 만들고, 명상을 매일 한다는 등 자신의 자랑을 잔뜩 늘어 놓았기 때문이다. 초면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이런 일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휴양림에 11시 40분에 도착했다. 아침 7시에 출발하여 무려 3시간 40분 산행한 것이다. 이것으로 힐링은 충분히 된 것 같다.
2024-10-2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