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시장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시장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오후 세 시가 되었을 때 갑자기 할 일이 없게 되었다. 책 만들 것 편집과정을 어느 정도 마치자 시간이 남았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유튜브 보지 않은지 삼주가 되었다. 전에 같았으면 두시에 시작하는 ‘매불쇼’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관련된 정치유튜브를 연달아 보고 있을 것이 뻔하다. 그러나 단칼에 잘라버렸기 때문에 할 일이 없어진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럴 때는 시장에 가야 한다.
안양중앙시장에 가면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지난번에 식물도 싸게 산 바 있다. 이번에도 그런 기대 반 다른 기대 반으로 배낭을 메었다.
시장에 갈 때 배낭이 있으면 편리하다. 매일 아침 배낭을 메고 다니는 것이기도 하다. 시장에서 이것 저것 산 것을 넣으면 다 들어 간다. 생각보다 용량이 꽤 큰 것이다.
배낭도 바꾸어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등산용 배낭에 가깝다. 일터에 갈 때 늘 메고 다니는데 심지어 공부모임에도 메고 다니고 기타 여러 모임에도 메고 다닌다. 좀더 멋 있는 배낭이 필요하다.
이년은 된 것 같다. 백권당에 ‘강리도 1402’ 저자가 찾아 왔다. 외교관 출신 김선생은 키가 훤칠하다. 옷도 잘 입었다. 마치 바바리코트와 비슷한 겉옷을 입었다. 그런데 배낭도 메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선생의 배낭을 유심히 보았다. 등산용 배낭과 같은 누구나 메고 다니는 그런 배낭은 아니었다. 각이 진 인조가죽으로 된 것이다. 이런 배낭을 보자 나도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백권당에서 중앙시장까지는 이십여분 걸린다. 버스 정거장으로는 다섯 정거장이다. 안양 구도심을 가로 지르는 안양로를 따라 주욱 걸어 가면 된다.
햇볕 따사로운 가을 날씨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호시절에 천천히 걸었다. 급할 것 하나도 없다. 시장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가는 것이다.
시장에 가면 삶의 활력을 찾는다. 시장 분위기 자체가 활력이 있다. 거래를 하는데 있어서 볼 수 있는 활력이다. 어쩌면 생생한 삶의 현장을 보고자 가는 것인지 모른다.
삶이 따분할 때 시장에 가야 한다. 대형마트보다는 재래시장에 가서 삶의 활력을 보아야 한다. 마치 그물에서 걷어 올린 물고기가 파닥파닥 뛰는 것처럼 살 맛 나는 곳이다.
중앙시장은 안양 최대 재래시장이다. 안양에서 올드타운이라고 볼 수 있는 구도시에 있다. 뉴타운이라 볼 수 있는 평촌에는 재래시장은 없다. 그 대신 대형 마트가 여러 개 있다.
오늘 시장에 간 것은 기대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식물에 대한 것이다. 그 집에 가면 저렴한 가격에 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마치 다이소처럼 생활용품을 파는 매장에서는 입구에서 식물도 판매하고 있다.
식물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식물을 보면 다 사고 싶어 진다. 홍콩야자가 눈에 띄었다. 묘목처럼 작은 것이다. 작은 화분 하나에 3,500원이다. 찜해 두었다. 국화도 있었다. 가을철이라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역시 찜해 두었다.
시장에 가면 팔아 주고자 한다. 사는 것이 아니라 팔아 주는 것이다. 어느 것이라도 하나 사야 한다. 의무적으로라도 사는 것이다. 그래 보았자 만원 이내이다.
안양중앙시장은 이제 익숙하다. 수년 동안 심심하면 다녔기 때문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빈대떡 파는 노점은 항상 그 자리에서 장사한다.
한번 맛 본 것은 다시 찾게 되어 있다. 녹두빈대떡을 언젠가 사서 먹어 보았다. 이른바 가성비, 즉 가격대비 성능이 좋은 먹거리이다. 돼지고기가 들어간 녹두 빈대떡 한판에 6,000원이다.
빈대떡 노점 옆에는 술판이 벌어졌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 노인 두 명이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이런 술판은 중앙시장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재래시장에서는 물건만 팔지 않는다. 먹거리 장터도 있다. 마치 포장마차처럼 주욱 길게 먹거리 장터가 형성되어 있는데 동남아시아 야시장을 보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대낮부터 푸짐한 안주에 소주를 마신다.
사람 사는 곳에 술이 있다. 시장에 가면 안주와 술이 있다. 시장에 가면 국밥 등 먹거리로 넘쳐 난다. 여러 명이서 함께 마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마시는 사람도 있다. 고단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이런 일도 없으면 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시장에 가면 수천, 수만 가지 상품이 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일까 시장에 가면 구경하는 것 자체가 재미이다. 마치 공항에서 사람 구경하는 것처럼 상품 구경을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리고 충동구매하게 된다.
견물생심이라고 한다. 눈에 걸리면 사고 싶은 것이다. 완두콩을 보았을 때 지나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격이다. 그리고 양이다.
완두콩은 가격과 양에 있어서 만족이다. 완두콩 한봉에 3,000원이다. 두 봉에는 천원 할인 하여 5,000원이다. 두 봉 5,000원 어치 사면 몇 달은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완두콩 두 봉 5000원어치를 조금도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주인은 매우 감사해 한다.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서 사진을 찍었다. 주인은 “냉동 보관해서 드세요.”라며 먹는 방법도 알려 주었다.
중앙시장에는 인도에 노점도 많다. 주로 나이 든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누가 이런 사람들의 물건을 사줄까?
노점상을 보면 지나치지 않는다. 무어라도 하나 팔아 주고자 한다. 한노점에서 호박을 보았다. 이른바 조선호박이라고 하는 애호박이다. 한 개의 2,000원 하는 것이 보통이다. 된장국 끓여 먹으면 최상의 웰빙음식이 된다.
조선호박을 하나 샀다. “한 개의 이천원이죠?”라며 가격을 확인 했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아저씨는 잘 아네요.”라고 말했다. 그리고서는 “어떤 사람은 두 개에 이천원에 달래요.”라고 말한다. 노점 좌판 것을 깍으려고 하는 것이다.
노점 좌판 물건은 달라는 대로 주어야 한다. 콩나물가격은 깍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노점에서 파는 야채는 고작 이삼천원이다. 버스비용 보다 조금 많은 것이다. 깍을 것이 없는 것이다.
노점에서 하나 더 샀다. 이번에는 고구마줄기 깐 것을 샀다. 한봉에 3,000원이다. 고구마줄기무침해서 먹으면 훌륭한 웰빙음식이 된다. 된장국으로 끓여 먹어도 좋다. 주인은 고구마 줄기를 계속 까고 있다. 손을 보니 물이 들어서 까맣다.
오늘 중앙시장에 가서 쇼핑을 했다. 시장의 활력을 보기 위해서 눈으로만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생생한 삶의 현장에 참여 했다. 그 결과 홍콩야자 화분 2,500원, 노랑국화 화분 5,000원, 녹두빈대떡 한판 6,000원, 감 12개의 5,000원, 완두콩 두 봉 5,000원, 조선애호박 한 개 2,000원, 고구마줄기 깐 것 한봉 3,000원, 이렇게 해서 모두 28,500원 들었다.
등산용 배낭 용량은 무척 크다. 화분을 제외한 나머지 물건은 모두 들어 갔다. 등 뒤에 배낭의 무게를 느낄 때 마음은 뿌듯했다. 제철 먹거리를 싸게 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장 상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이든지 시장은 있다. 사람의 삶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시장이 있다. 시장은 사람의 삶과는 뗄래야 떼어 놀 수 없다. 시장은 이데올로기도 초월한다.
시장에는 우파도 없고 좌파도 없다. 오로지 삶만 있다. 또한 시장에서는 경기의 경향도 없다. 경제가 좋거나 좋지 않거나 삶만 있을 뿐이다. 경기가 좋아도 더 좋은 것도 없고 경기가 나빠도 더 나쁜 것도 없다.
어느 정파가 집권하든 시장 사람들은 오늘도 내일도 장사를 할 것이다. 경기가 좋든 좋지 않든 노점좌판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장사를 한다.
잘나고 똑똑한 놈만 사는 세상은 아니다. 못나고 미련한 사람도 사는 세상이다. 시장에 나지도 못하고 들지도 못한 사람이 모여든다. 빈대떡에다 막걸리로 세상 시름을 놓아 버린다.
배낭이 묵직하다. 배낭을 메고 집까지 걸어가야 한다. 오늘 저녁은 완두콩 밥에 녹두빈대떡을 먹어야겠다. 오랜만에 소주도 한잔 할까 한다.
현재 계(戒)가 파한 상태에 있다. 육일전에 이박삼일 가평 ‘칼봉상자연휴양림’에 갔었는데 하나로마트에서 가평소주를 산 것이 화근이 되었다. 증류식 소주로 무려 가격이 9,600원이다. 가평특산품이라고 볼 수 있다.
지역에 가면 지역특산품을 팔아준다. 가평증류식소주는 오로지 가평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품이다. 이에 한병 샀다. 그리고 두 잔을 마셨다.
가평소주는 두고 두고 마신다. 두 잔 이상을 마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파계한 것은 사실이다.
파계한 상태로 있을 수 없다. 계를 복원해 놓아야 한다. 어디서 복원해야 할까? 어는 사원에 가서든지 법회에 참여하여 복원해 놓으면 된다. 테라와다 사원에서 가능하다. 한국절에서는 오계 받는 의식이 없다. 한국마하시선원이 좋을 것 같다.
요즘 까티나행사기이다. 우안거가 끝나면 한달 이내에 가사공양법요식을 하게 되어 있다. 마침 집과 가까운 안양 관악역 부근에 ‘한국마하시선원’에서 11월 2일(토) 까티나가사공양법요식이 열린다. 테라와다 스님 일곱 분이 참석할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 가서 계를 복원할 생각이다.
시장에 가면 삶의 활력을 찾는다. 세상에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 서민들이 사는 모습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그들만의 리그가 있듯이 여기에는 이들만의 리그가 있다. 오늘 저녁에는 완두콩밥에 빈대떡을 먹을 수 있겠구나.
2024-10-2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