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보국(事業報國), 작문보국(作文報國) 수행보국(修行報國)의 삶을 위하여
사업보국(事業報國), 작문보국(作文報國) 수행보국(修行報國)의 삶을 위하여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다. 마음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좌선을 끝내고 나면 마음은 충만 된다. 세상의 왕권이 부럽지 않다.
시월도 끝자락이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도 해야 할 일이 있다. 눈만 뜨면 부리나케 일터로 달려와서 행선을 하고 좌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오전에는 그 어떤 정보도 접하지 않는다. 메일은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나서 열어 본다. 메일에서 품질문제에 대한 것이 있다면 마음은 심하게 동요 된다. 하물며 뉴스에서 정치권 소식을 접하면 어떠할까?
정치를 멀리 한다고 해서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나는 민주당의 권리당원이다. 천원짜리 당원도 아니고 오천원짜리 당원이다. 투표로서 의사표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당원이다. 당연히 선거에서 한표도 행사한다.
지난 세월을 돌아 본다. 그 동안 너무 외부 정보에 의지해서 살았다. 눈으로는 끊임 없이 유혹이 되는 형상을 찾았다. 귀로는 끊임 없이 아름다운 소리를 찾았다. 그 결과 마음을 빼앗기는 세월을 살게 되었다.
요즘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 뉴스도 보지 않고 유튜브도 보지 않으니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 심심해서, 무료해서, 따분해서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인터넷을 보았으나 이제 그럴 일 없다.
세상의 온갖 정보를 차단하니 한가한 시골에 있는 것 같다. 사무실 창 밖은 늦은 가을의 햇살이 따사롭다. 이런 때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의 루완웰리세이야 대탑 등이 있는 유적공원이 떠오르는 것은 왠 일일까?
(루완웰리세이야 대탑)
은퇴하면 해외불교 성지에서 살고 싶었다. 인도 보드가야 대탑 지역도 후보이다. 미얀마의 국제선원도 좋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리랑카만한 곳이 없는 것 같다.
스리랑카는 2022년 12월에 성지순례 갔었다. 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 등 ‘신성도시’라 불리우는 유적지가 보기 좋았다. 또한 스리랑카는 인도와 달리 불교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신성도시에서 ‘한달살이’ 하는 꿈을 꾼다.
나는 왜 스리랑카를 꿈꿀까? 그것은 스리랑카가 ‘청정도론’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5세기 붓다고사가 살았던 아누라다푸라의 신성도시에서 그때 당시 사람들과 교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은퇴후보지로서 스리랑카도 좋지만 수행의 나라 미얀마만한 곳이 없는 것 같다. 전세계 위빠사나 수행자를 위한 국제수행선터가 이곳 저곳에 있다. 한달살이가 아니라 건기 ‘한철살이’ 하기에 최적의 나라가 된다.
은퇴는 언제 해야 할까? 나이로 보아서 정년 나이는 훨씬 지났다. 그러나 생업이 있는 한 은퇴는 꿈도 꾸지 못한다. 어쩌면 현실의 삶에 매여 끌려 다니는 지 모른다.
현실의 삶을 살고 있다. 현실은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다. 언제까지 이런 삶이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언젠가는 끝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약간의 숨통은 트인다. 생업에 기반을 두는 삶을 살지만 일이주 해외여행 하는 것은 가능하다.
해외여행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 있다. 매 철마다 나가는 사람이다. 아니 아예 해외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 물가가 비싼 선진국 보다 물가가 저렴한 후진국이 대상이다.
해외방랑자들이 전하는 소식을 본다. 주로 사진으로 보여 준다. 여기에 먹는 것도 빠지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방랑자의 삶은 감각적인 것이기 쉽다.
내가 만약 은퇴에서 스리랑카나 미얀마에서 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루 종일 담마와 함께 지낼 것이다. 오전에는 명상과 글쓰기로 보내고, 오후에는 산책으로 보낼 것이다. 또한 현지언어를 배워서 그들과 소통할 것이다. 과연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한동안 일감이 뜸 했었다. 어제 메일을 열어 보니 반가운 소식이 있다. 고대하던 일감이다. 담당이 잊지 않고 일감을 준 것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어제 저녁 늦게까지 일했다. 귀가하니 열한 시가 가까웠다. 오후 세 시부터 두 모델 인쇄회로기판 설계 작업을 했다. 수천, 수만번 클릭해야 하는 단순작업이다.
오랜만에 손맛을 느꼈다. 일감이 있어서 일을 하고 있으면 마음은 차분하고 안정된다. 일이야 말로 최고의 힐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수입이 생기는 것이다. 어제 일로 한달 임대료 내는 것을 벌었다.
세상에는 할일 없는 한량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이는 나이를 먹어 은퇴한 은퇴백수, 그리고 정년으로 직장을 나온 정년백수와는 다른 사람이다. 하는 일 없이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감각을 즐기는 사람이 한량이다.
사람은 일을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다. 한량이 되어서, 백수가 되어서 유튜브 등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남는 것은 허(虛)와 무(無)뿐이다.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일을 해야 한다. 책을 보는 것도 일이다. 공부하는 것도 일이다. 글을 쓰는 것도 일이다. 수행을 하는 것도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 TV나 유튜브 보는 것으로 시간을 죽이는 것 같다.
백수와 한량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자는 백수라고 말할 수 있고 감각을 즐기는 삶을 자는 한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는 할 일 없는 한량도 있고 백수도 있지만 아침을 여는 사람도 있다. 이른 아침 백권당 가는 길에 보는 청소하는 사람들이다.
청소부는 세상에서 지위가 낮은 자에 해당된다. 그러나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일이 된다. 동시에 고귀한 자가가 된다. 세상에서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 일보다 더 고귀한 일이 어디 있을까?
청소부는 거리를 깨끗이 한다. 그런데 보기에 따라 세상을 청소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하릴없이 감각을 즐기기만 하는 한량보다는 백배, 천배 나은 삶이다.
누구나 고구한 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된다. 글을 써서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하면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일을 해서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하면 역시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이를 보국(報國)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신입사원 시절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업을 해서 사회와 국가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나이 먹어서도 일을 하고 있다면 사업보국이 된다.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글로서 세상을 맑고 향기롭게 만든다면 작문보국(作文報國)이 될 것이다. 글을 써서 사회와 국가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수행을 해서 마음이 청정해진다면 수행보국(修行報國)이 된다. 수행을 함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
이제 한달 지나면 라오스 성지순례를 가게 된다.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회원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다. 담준스님과 함께 하는 여행이기도 하다. 아는 사람은 이해모 선생과 김영란 선생이다. 10일 일정으로 15명이다.
해외성지순례는 구도여행이 되고자 한다. 단지 사진과 영상으로 볼거리만을 전하지는 않는다. 경전을 근거로 하는 글쓰기가 되고자 한다. 이제까지 해외성지순례를 수차례 다녔는데 모두 순례기를 남겼다. 이런 것도 여행보국(旅行報國)이 될 것이다. 여행을 함으로써 사회와 국가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 감각을 즐기기만 하는 자가 있다.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 다니며 여행하는 한량이다. 방랑자가 기여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 이상은 없다. 마치 먹방채널을 보는 것처럼, 마치 포르노를 보는 것처럼 허무하다.
이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사람이 있다. 그것은 남이 즐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마치 타화자재천의 존재처럼 보인다. 먹방이나 포르노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매혹적인 감각적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이런 것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래서 수행승들이여, 고귀한 제자는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들은 무상하고, 공허하고, 허망하다. 그것들은 환상이고 어리석은 자의 지껄임과 같다. 현세에서의 어떠한 감각적 쾌락이나 내세에서의 어떠한 감각적 쾌락이든지, 현세에서의 어떠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지각이나 내세에서의 어떠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지각이든지, 이 두 가지들은 악마의 왕국, 악마의 영역, 악마의 먹이, 악마의 사냥터이다. 그것들 때문에 탐욕, 분노, 자만과 같은 악하고 불건전한 정신적 상태가 생겨나고 그것들이 이 세상에서 배우는 거룩한 제자에게 장애를 만든다.”(M106)
뉴스를 보지 않은지 수년 되었다. 유튜브를 끊은 지 사주 되었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모니터의 한줄뉴스에도 눈길을 두지 않는다. 식당에서 뉴스채널의 화면음성을 애써 피한다. 알아도 그만이고 몰라도 그만인 것이다.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이다.
최근 몇 개월 나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가능하면 모임은 자제한다.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이 큰 이유이다. 시간낭비, 돈낭비, 정력낭비가 크다. 그러나 담마에 대한 것이라면 아무리 멀어도 찾아 간다.
시월의 끝자락에 와 있다. 올해도 열 달이 지나고 두 달 남았다. 연초인가 싶었는데 연말로 다가간다. 이렇게 한해, 두 해 세월이 흐르다 보면 나이도 들고 몸도 쇠약해진다. 이럴 때 마음을 외부의 대상에 빼앗기는 삶을 산다면 손해 보는 삶이 된다.
외부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기 말아야 한다. 마음이 감각의 대상에 가 있으면 악마의 영역에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마치 악마의 낚시바늘을 문 것이나 다름 없다. 악마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할 것이다.
유튜브를 끊으니 동네가 조용하다. 오랜 세월 감각의 대상에 마음을 빼앗겨 왔다. 내 삶이 아니다. 마치 먹방채널을 보고 즐기는 것처럼, 포르노를 보고 즐기는 것처럼 감각의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면 악마의 영역에 가 있음에 틀림 없다.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명상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런데 명상을 하고 나면 마음이 충만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명상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명상 하는 것 없이 막바로 글쓰기를 하면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삼십분이라도 마음을 채우고 나면 마음은 뿌듯해진다.
시간이 없다. 해야 할 일은 많다. 일이 없으면 찾아서라도 한다. 넋을 읽고 감각의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는 삶은 지양되어야 한다. 오늘도 감각의 대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하루가 되고자 한다.
2024-10-31
담마다사 이병욱